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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93화 (493/741)

492화

치안 유지 계약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잠룡문과 화온이 임대하여 함께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에는 이제 민지서가 있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다른 직원들과의 어색함이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업무만큼은 자연스럽게 함께 수행할 정도로는 개선이 됐다.

"비서 선배. 같이 식사 하죠."

"…알겠습니다."

근래 자주 나타나 식사를 함께 하는 도진의 역할이 컸다.

그들끼리만 모이면 어색함이 남지만 도진이 중간에서 중화제 역할을 해 주니 그때만큼은 잘 섞일 수 있었고 그런 경험이 도진이 없을 때에도 어색함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 준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몇몇이 모여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각자의 그룹으로 흩어졌을 때 도진은 민지서와 함께 캔음료를 하나씩 들고 벤치에 앉았다.

"데자와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단 말이죠."

"예."

"그런 의미에서 맥콜도 한 잔 하실?"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하, 이걸 안 드시네."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한 손에는 캔음료를 쥔 정장 차림의 민지서는 길가의 벤치에 앉아 있음에도 그림이 된다.

특히 요즘엔 무언가 가련하면서도 그늘이 진 듯한 분위기가 더해져 지나가는 이들이 목의 가동 한계 범위를 시험하게 만든다.

도진이 그런 민지서의 곁에서 맥콜을 홀짝이며 물었다.

"유아 선배랑 자주 연락하세요?"

"…정기적으로는 하고 있습니다."

대답이 나오기 전의 공백에 많은 복잡함이 묻어난다.

"정기적이라는 건 사적으로는 잘 안 하고 있으시다는 거네요."

"…예."

"유아 선배도 아닌 척해도, 강한 척해도 사실은 지서 선배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자주 연락하시는 건 어때요?"

"제가 연락을 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안 그래도 힘든 대표님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자제하고 있습니다."

"흐음."

도진이 벤치의 등받이에 등을 기댄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말했다.

"가끔은, 알면서도 어리광 부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요."

"……."

"유아 선배도 사실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조금, 아주 조금 다른 길로 방향을 틀기 위한 힘이 부족할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지서 선배가 유아 선배의 등을 밀어 주는 거죠."

매력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실행하기엔 너무나 걸리는 게 많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한유아만큼은 아니어도 민지서 또한 생각이 많은 타입이었으니까.

많은 생각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장점이 되지만 때로는 족쇄가 된다.

"대표님이…… 아니, 아닙니다."

대표님이 직접 해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민지서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무심코 내려다 멈췄다.

그야말로 어리광이자 떼 같았으니까.

도진은 그렇게 급히 말을 멈춘 민지서를 보며 씨익 웃었다.

"괜찮아요. 지서 선배의 어리광은 귀한 것이니까요. 오늘은 좋은 걸 들었네요."

"……."

민지서의 귓가가 미미하게 붉어진다.

도진의 미소가 진해졌다.

"제가 말해도, 유아 선배에게 닿지는 않을 거예요. 그만큼 특별한 사이가 되진 못했으니까."

민지서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다만, 나는 나쁜 사람은 절대로 잘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라서요."

떨어졌던 시선이 마주한다.

"슬슬, 깽판을 좀 쳐볼까 해요."

* * * *

"찌라시가 돌고 있어."

나지윤은 그렇게 말하며 도진에게 찌라시의 내용을 말 해 주었는데 그것이 보통 내용이 아니었다.

"이문강과 한유아의 약혼식 이야기가 돌고 있다, 라……."

다른 찌라시도 아니고 무려 '증권가 찌라시'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지윤이 준 정보가 소위 말하는 카더라 통신이나 뜬소문이 아니라 하오문이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진짜 사설 정보'라는 거다.

소문이 아닌 진짜 정보.

그렇기에 나지윤 또한 신경쓰고 있다 취합한 것이었고 도진에게 이야기를 해 준 것이었다.

"지금이야 허무맹랑한 소문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 정식으로 기사가 나갈 거야."

의천검가와 금화의 합작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가시화되었다.

이쯤 되면 두 세력이 정말로 손을 잡았다는 믿음을 주고 그 상징이 있어야 했으니 약혼식이라는 수단이 나온 것이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도진을 보며 나지윤이 씨익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깽판을 칠 거야?"

도진은 한유아라는 인재에 욕심을 내고 있다.

비록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은 또 아니었다.

이문강 같은 인간과 의천검가 같은 집단을 혐오하며 그런 것들이 잘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민지서를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이문강을 정의구현함으로써 뒤로 감춘 한유아의 손을 잡을 계기 또한 생길지 모른다.

할 수 있는 건 해 볼 생각이다.

그 첫 걸음으로는 역시.

"저쪽이 시비를 걸어줬으니까 말이지. 이쪽도 한 번 갚아줘야지."

이문강을 직접 손봐 줄까 싶었다.

사실 도진이 지금껏 이문강의 문제를 외면하고 피한 적은 없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도진은 이문강을 충분히 도발해왔다.

다만 이문강이 신중하게 움직여 그 도발을 피해왔을 뿐.

별다른 일이 없다면 하던 대로 느긋하게 상대해도 충분했겠지만 이번은 조금 빠르게 진행할 이유가 생겼다.

약혼식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이문강을 철저하게 밟아줄 생각이다.

언론 플레이나 물타기 등이 일절 통하지 않을 정도로.

그럼으로써 한유아의 희생을 강요하는 합작 프로젝트니 약혼식이니 하는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게 만들 수 있다.

일단은 거기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방침을 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진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 * * *

"김 부장님, 요즘 진짜 많이 바뀌신 거 같지 않아?"

"동감. 엄청 바뀌셨지."

점심시간.

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건 회사의 젊은 직원들이다.

정확히는 김서우가 과장에서 부장으로 진급하여 다니고 있는 회사의 직원들.

그들이 말하는 김 부장이 바로 김서우다.

김서우는 회사 내에서 본래 유명했다.

자처하여 당직을 도맡고 도대체 언제 집에 가나 몰래 이야기를 할 만큼 회사의 붙박이였으니까.

그 관심이 나름 잘 나가던 회사의 사장이었다 몰락했다는 속사정까지 소문으로 돌게 만들었다.

성격 괜찮고 배려심 또한 깊은데다 성실하다.

그래서 모두가 싫어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낡은, 그러니까 생각이나 사상 같은 게 아니라 고생이 심하여 단어 그대로 사람이 낡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느새 완전히 달라졌다.

단단해졌다.

우울하고 낡은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고 생기와 의지로 가득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많이 젊어졌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드님이 진짜 잘 나가잖아. 그러니까 덩달아 회춘하신 걸지도?"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들이 하는 말에 악의는 없다.

인망이 두터운 사람이라 이야기를 나누는 직원들도 그를 싫어하지 않으니 이건 순수한 동경과 부러움이다.

그런 김서우는 오늘도 당직을 자처하여 퇴근 시간에도 자리에 남았고.

"김 부장님."

"예, 오 이사님."

저녁 식사 후 회사의 사장을 포함한 중역들이 모인 회의 자리에 출석하게 되었다.

김서우를 포함하여 여덟 명이 모인 자리에서 50대 후반의 사장이 말했다.

"이번에 경원을 통해서 우리 단강에 큰 건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경원은 이쪽 업계의 대기업으로 무림인들의 단련과 관련된 시설의 시공과 보수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었다.

김서우가 부장으로 있는 단강은 바로 그 경원의 1차 협력사였다.

"큰 건이라고 하시면?"

임원의 물음에 사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의천검가와 금화 쪽에서 커다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요. 그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이번에 프로젝트를 통하여 발족될 무림인들이 사용할 단련 시설이 건설될 예정입니다. 그 시공을 경원에서 수주하게 됐습니다."

"오, 그러면?"

"예. 우리 단강에도 큰 일거리가 생긴 것이지요."

한국의 건설 업계는 하청으로 시작해 하청으로 끝난다.

그 병폐가 깊은 게 사실이지만 모든 것이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니 이번 경우엔 단강에도 제법 이득이 되는 하청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김 부장님."

"예, 사장님."

"김 부장님이 이번 일을 맡아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요?"

"예. 김 부장님이시면 저희가 믿고 맡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김서우는 회사에서 신뢰하는 직원이었다. 여기에 본래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의 사장이었던 경험까지 있으니 더더욱 큰 프로젝트를 맡겨볼 만하다.

"김 부장님도 슬슬 이사직을 달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이사직이요."

"예. 사실 저희 입장에서야 믿을 만한 분이 한 분 더 계시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눈치가 좀 보이지 않습니까."

김서우가 과장에서 부장을 단 것이 오래 되지 않은 일인데 여기서 가파르게 임원으로 올라가는 건 아무래도 분위기에 좋지가 않다.

"하지만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잘 완수해 주시면 명분이 충분해지지 않습니까."

사장의 말에 김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심을 했다.

"예. 제가 한 번 맡아서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잘 결정하셨습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이제 김서우에게도 명확한 목표가 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사업을 하는 것.

그 목표의 발판이 될 경험, 그리고 보수인 승진을 위하여 한 번 해 볼 생각이다.

그렇게.

김서우는 금화가 발주한 공사 의뢰의 단강을 대표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 * * *

"…그래. 아버지가."

"응."

도진은 나지윤을 통하여 아버지, 김서우가 의천검가와 금화의 새로 발족하는 무력 단체가 사용할 단련 시설의 건설에 관여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일반 공사가 아닌 무림의 시설인 만큼 일반 건설 업체뿐 아니라 무림 업계의 전문 업체도 참여하는데 김서우가 재직하고 있는 단강은 제법 업력이 있는 1차 협력사였으니 여기에 포함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하는 김에 이문강의 개인 단련실도 개보수를 한다고 하더라고. 거기에 단강이 투입되게 됐어."

계약하는 김에 추가로 초절정에 이른 이문강의 개인 단련실도 리모델링하게 됐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쓰던 단련장은 초절정에 이른 지금 제대로 된 단련을 하기에 부족하여 실제로 많은 부분이 망가졌다니 이 부분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 겉보기에는 말이다.

"그리 긍정적인 생각은 안 들어, 솔직히."

"응, 그렇네."

기인지우, 괜한 걱정이다,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이문강이니까.

상미에게 호되게 당한 뒤로 집행부실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얼마나 벼르고 있을지 그 심성에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거다.

결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

그리고 나지윤은.

도진의 미미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흉포함을 언뜻 보았다.

'선을 넘지 마, 이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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