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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91화 (491/741)
  • 490화

    이 비무에서 이기면 승기는 내게로 완전히 기운다.

    이문강은 그렇게 계산했다.

    멍청한 놈들이 머지않아 사고를 칠 거라고 이문강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것까지 다 포함하여 계획을 세웠다.

    사고를 치면 즉시 연락을 받아 움직일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그리고 김도진을 제외한 누가 오든 그 현장에 바로 도착할 수 없도록 막아서고 명분을 만들어 비무를 한다.

    이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두 개가 있으니 하나가 이문강이 '불패 신화'를 썼던 김도진의 집행부에 지울 수 없는 패배를 안겨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가 그를 통하여 대놓고 설친 일진들을 김도진의 집행부가 처리하지 못하도록 이문강이 만들었다는 '팩트'다.

    이 두 가지를 얻음으로써 이문강은 리스크가 있는 김도진과의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도 승리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김도진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절대성', 그 상징성을 무너뜨림으로써.

    그리고 계획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까지 왔으니 비무대 위에서 이문강은 윤상미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한 마지막 조건.

    비무에서의 승리.

    그 조건을 달성하지 못할 확률은 제로라고, 이문강은 확신했다.

    스르릉!

    이문강이 검을 뽑아든다.

    그가 뽑아든 검은 태양권가가 운영하는 공방에 의뢰하여 맞춤 제작한 명검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검에 비해 1.5배는 크고 2배는 무거운 그 검은 평범한 무림인이 사용하기엔 크고 무거운, 이문강만을 위해 제작된 검이었다.

    "선공은 양보하지."

    이문강이 검을 늘어뜨리며 그렇게 말했고 상미는.

    휙-

    난상을 허공에 가볍게 긋는 것으로 답했다.

    "하. 그래."

    이문강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선배의 체면으로 선공을 양보했는데 상미가 조롱으로 그것을 거절한 것이다.

    "그럼 원하는 대로 내가 먼저 가지!"

    쾅!

    비무대를 울리는 강렬한 진각을 시작으로 이문강이 보법을 밟아 검을 휘두른다.

    부웅!

    맞으면 뼈가 으스러질 듯 강렬한 소리와 함께 휘둘러지는 검은 일견 강검(强劍)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게 의천검이라고?"

    "클라스가 다르긴 하네. 저건 인정이다."

    분명히 평범한 중단의 가로베기가 갑자기 곡선을 그리며 옆구리를 찔러들어오는 그것은 강검이 아닌 의천검가의 검공(劍功) 의천검(義天劍), 환검(幻劍)이자 변검(變劍)이었다.

    의천검가의 의천검은 환검이자 변검이다.

    그것은 왕실의 무공으로서 외부에 널리 알려지고 시연까지 해야 하는 환경에서 진체(眞體)를 가리기 위해 화려한 외연을 가미하며 발전한 역사를 통하여 성립된 것이다.

    보여주기 위한 검무(劍舞)처럼 보이는 화려하고 유려한 변초와 허초 속에 진짜를 숨겨 찌르는 무공.

    그러니까 자연스레 강(强)보다는 유(柔)의 묘리가 돋보일 수밖에 없거늘.

    부웅-!

    이문강이 그 거대하고 무거운 검으로 구사하여 윤상미를 몰아치는 의천검에는 놀랍게도 충실한 유의 묘리가 담겨 있으면서도 강검의 특성까지 띠고 있었다.

    "씨발……. 저게 재능이란 거네."

    "그러게."

    분하다는 듯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말대로, 그것은 '재능'이었다.

    후천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타고난 재능.

    이문강의 경우엔 그것이 '피지컬'이었다.

    단순히 몸이 좋다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거라면 이문강은 객관적으로 말해 벽태웅보다 부족하다.

    그러니까 이문강이 가진 재능은 그런 피지컬이 아니라 '육체 그 자체의 성능'이다.

    사람이 몸을 아무리 단련해봐야 종(種)의 차이로 맹수에 비견할 수는 없는 것처럼.

    이문강의 육체는 그 성능이 여타의 인간보다 뛰어나다.

    때문에 이문강은 굳이 위협하기 위해 기세를 내뿜지 않아도, 그 자체의 존재감만으로도 타인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타고난 재능을 살려 이문강은 더 크고 무거운 검을 이용하여 의천검을 펼쳤고 그렇게 펼쳐진 의천검은 변검이자 환검이면서도 강검으로까지 기능할 수 있었다.

    부웅-!

    직선으로 휘두르는 듯한데 타점에 이르는 순간 귀신처럼 곡선으로 변한다.

    그러자면 속도가 떨어져야 하는데 이문강의 의천검엔 그런 게 없다.

    힘이 더해지니 자연스레 쾌(快)의 묘리도 더해지며 그것은 비등한, 그리고 그 이하의 수준에서는 도저히 맞상대할 수 없는 완벽한 무공이 되어 상대를 압박하게 된다.

    윤상미는 그런 이문강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지럽고 빠른 공세를 위태롭게 피하고 있었다.

    단 한 차례의 방어도 반격도 없이.

    그것이 허용되지도 않았다.

    척 봐도 이문강과 윤상미의 피지컬에는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있다.

    기술이 비등하다는 전제 하에 일반적으로 그 피지컬을 상쇄하는 것이 내공인데, 이 내공에서마저 윤상미는 이문강에게 밀린다.

    무공을 수련한 세월이 낳은 격차는 물론이요 애초에 윤상미 또한 도진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수련의 시간이 짧음으로 인한 내공 부족이 약점으로 꼽히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윤상미는 이문강의 공격을 받아칠 수 없고 받아쳐서도 안 된다.

    부족한 힘의 차이를 메꾸기 위해서는 내공을 더 써야 하고 그렇게 내공을 더 쓰면, 확정적인 패배로 이어지니까.

    악순환은. 그렇게 회피에 집중함으로써 또한 비무의 흐름이 윤상미의 패배로 기운다는 것이다.

    부웅-!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일방적인 회피는 일방적인 공격만큼이나 체력을 소모하게 만든다.

    여기서 공격에 집중하다 자멸하는 건 어리숙한 이들에게나 적용되는 말이고 이문강은 A-1 자격증을 딴 초절정의 무인답게 철저하게 체력과 내공을 분배하여 윤상미가 더 손해를 보도록 흐름을 컨트롤하고 있다.

    즉, 어느 쪽으로든 윤상미는 패배를 피할 수 없다.

    "아……."

    "이건 안 되겠네."

    지켜보던 이들마저 그것을 깨닫고 중얼거린다.

    일부는 조용히 비무를 지켜보는 도진을 흘끔거리며 이 뒤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기도 했다.

    바로 그런 분위기가 팽배하던 때에.

    사아아……!

    상미에게서, 폐부를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가 터져 나왔다.

    한천검공(翰天劍功), 빙해(氷瀣).

    "……!"

    착실하게 상미를 패배로 몰아넣고 있던 이문강이 순간 놀라며 근육에 더 많은 힘을 주었고.

    슷-!

    상미가 쥐고 있던 난상이 처음으로 공격을 위하여 뻗어 나갔다.

    카각!

    미리 대비하고 있던 이문강은 검면으로 그 공격을 막아냈고.

    쩌저적!

    검면에 번지는 서리에 표정을 굳혔다.

    "와!"

    "쩐다."

    상미의 패배로 기우는 듯한 비무의 흐름에 침묵하고 있던 이들이 웅성거렸다.

    그만큼 지금 상미가 보여준 것이 놀라웠다.

    "맞다. 그러고 보니 윤상미 무공이 빙공(氷功)이었지."

    상당히 드물지만 무공 중에는 게임식으로 말해 '속성'을 띠는 무공이 있다.

    대표적으로 태양권가의 열양공이 그렇고 이제는 여기에 윤상미의 빙공 또한 자주 언급되었다.

    이런 속성을 띤 무공은 여타의 무공에 비해 우위를 가져가는 부분이 명확했는데, 예를 들자면 태양권가 무인들의 경우 상대가 화상을 입도록 만들 수 있어 평범하게 방어해서는 막을 수 없는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이쪽은 동상인가!'

    이문강은 공세로 전환한 윤상미의 공격을 피하거나 받아치며 조금 신중해졌다.

    동상(凍傷)은 화상 못지 않게 무서운 것이다.

    비무니까 괴사하여 신경이 죽거나 영구적인 손상이 남는 정도까지야 안 가겠지만 검에 상처입은 부위의 생살이 뜯겨 나가는 정도까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 특수성이 윤상미가 이문강을 상대로 조금이나마 공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오오……!"

    지켜보는 이들이 상미의 공세에 감탄한다.

    그러나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이들은 그리 긍정적인 표정이 아니었고 이문강 또한 여유가 있었으니.

    '어차피 오래는 못 간다.'

    속성을 띤 내공은 공짜가 아니다.

    평범한 내공 이상의 코스트를 요구하니 그것은 안 그래도 내공이 부족한 윤상미에게 더욱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더군다나 그런 내공을 주위로 퍼뜨리기까지 하고 있으니 소모가 극심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

    이문강은 이 한기를 자신의 내공으로 막기만 하면 되니 교환비에서 윤상미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무리하지 않고 몸을 지키기만 해도 윤상미는 자멸할 것이다.

    계산을 마친 이문강이 비무의 흐름을 조율한다.

    적당히 윤상미를 밀어붙이다 발끈하여 튀어나오면 슬쩍 물러난다.

    짐승 같은 기세를 발산하는 이문강이지만 그렇기에 영리하다.

    맹수는 결코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노련한 사냥꾼이니 섣불리 무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망설이지 않고 목줄을 물어뜯는다.

    이문강은 윤상미의 목줄을 잡을 기회를 노렸고.

    챙!

    '……어?'

    어느 순간 깨달았다.

    채챙!

    '뭐야?'

    자신이 느려졌다는 것을.

    "큭!"

    정확히는,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어?"

    "뭐야? 왜 저래?"

    무인의 감각은 정밀한 기계만큼 예민하고 그 기계를 통하여 조율되는 육체는 그 이상으로 섬세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육체는 기계보다 더 정확하게 움직여 줘야 했다.

    한데 그 육체가, 미묘하게 삐걱이고 있었다.

    타악!

    챙!

    때문에 감각이 어그러진 이문강에게 연쇄적으로 파탄이 일어나 윤상미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뭘 한 거야!'

    이문강이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두른다.

    어떻게든 어그러진 감각을 파악하여 그에 맞춰 보지만 제대로 되지 않아 수세에 몰린다.

    이렇게 된 원인은 고민할 것도 없이 몰아치는 윤상미다.

    하지만 그 원리를 모르니 대응하기가 힘들다.

    퍼퍽!

    "큭!"

    결국 안을 파고들어 장저, 손바닥으로 턱을 후려치는 윤상미의 공격을 허용하여 뒤로 밀려나는 이문강을 보며.

    스윽-

    도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제법이로구나.

    -예.

    윤상미의 경지는 절정이다.

    그러니까 A-2.

    A-1, 초절정의 경지를 증명한 이문강에 비하면 한 단계 낮은 경지인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디 싸움이라는 게 그렇게 경지만으로 결정이 나던가.

    변수없이 정해진 수치로만 싸워 결론이 출력되는 그런 단순한 게 아니란 말이다.

    실습에서 콧대 높은 숭무고의 애송이들이 하찮은 뒷골목의 밑바닥을 뒹구는 흑도에 칼을 맞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 것처럼.

    싸움이란 수많은 변수의 즉흥곡이었고 이번의 경우엔 거기에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는 '강력한 변수'를, 윤상미가 가지고 있었다.

    상미가 운용한 한천검공의 '빙해(氷瀣)'는 초식이 아니라 특별한 내공의 운용이다.

    검에 담아 상대의 동상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변초'이며 진짜는 그 한기를 호흡은 물론이요 심지어 방어에 사용된 내공에마저 침투하게 만들어 상대를 '느려지게 만드는 것'이 진짜다.

    쉽게 말해 혈류공의 반대의 효과를 유발한다.

    아직 상미의 경지가 낮아, 그리고 내공이 부족하여 그 효과에 한계가 있었으나 이것이 비무이기에 오히려 그 정도가 딱 맞았다.

    하물며 이문강은 초절정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 감각마저 어긋나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현대의 상대적으로 고차원적인 내공의 작용에 관한 영역에서 고대 무림에 비해 퇴보한 부분을 상미가 제대로 찔렀다.

    퍼걱!

    빠악!

    "이……!"

    결정타는 피하고 있지만 상미의 백타(白打), 맨손 타격에 계속해서 얻어맞는다.

    대미지 자체는 크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이문강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턱을 얻어맞고 옆구리를 걷어차이고.

    결정타는 아니지만 조그마한 년에게 이런 모양으로 쳐맞고 있으니 자존심에 연달아 흠집이 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상미와 눈이 맞았다.

    '이년이……!'

    그 눈에서 이문강은 알았다.

    지금 이년이 의도하는 건, 나의 철저한 굴욕이다.

    이런 식으로 몰아붙여 제대로 창피를 주게 만들겠다는 의도가 고스란히 읽혔다.

    '그렇게는 안 되지!'

    수에 말려 이 꼴이 된 것도 다시없을 굴욕인데 거기서 더 큰 굴욕을 봐야 한다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된 것!'

    이문강은 이를 악물었다.

    비무이기에 자제하고 있던, 조금 선을 넘는 수법을 쓰게 되더라도 이 빌어먹을 년의 의도대로는 끌려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쿠오오오오!

    그런 결심으로 이문강이 내공을 끌어올렸을 때.

    "그만!"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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