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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89화 (489/741)

488화

이번 사건에 관한 숭무고생들의 반응은 제법 복합적이었다.

-일진 쓰레기 새끼들 참교육해 준 거니 난 어쨌든 무조건 긍정임.

-아니 시발, 아무리 그래도 숭무영재고에 숭무고 상위 티어가 쳐발린 건 좀;;

-상위 티어는 무슨. 그래봐야 양아치 씹새끼들이지.

-? 숭무고엔 잠룡 패밀리가 있워요. 쳐발린 건 느그 일진 십새끼들뿐인 거시야요.

-너 이름 뭐냐 십새끼야

-엘렐레~ ㅋㅋㅋㅋㅋ

익명이 보장되는 에타의 분위기는 무조건 그놈들 참교육해 준 게 속시원하다, 잘됐다는 쪽이었으나 실제로는 숭무영재고의 학생에게 숭무고 학생이 당한 게 학교의 체면을 구겼다는 의견 또한 적지 않았다.

일진 노릇을 하지 않더라도 특권 의식만큼은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둘이 같은 '숭무고'라 불린다지만 사실은 결코 넘을 수 없는, 넘어서도 안 되는 격의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의 역사 속에서 숭무영재고 학생이 숭무고 학생을 이긴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건 아직 '무림 르네상스'의 영향이 제대로 미치기 전인 오래 전 일이거나 본래 숭무고생이 될 만큼의 배경과 실력을 지닌 이가 그 외의 이유로 숭무고에 입학할 수 없어 숭무영재고를 택한 경우뿐이었으니 이번이 사실상 최초였다.

때문에 서태주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거냐는 등의 이야기로도 시끄러웠던 때에, 돌연 서태주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는 소식이 퍼지며 그쪽으로 화제가 완전히 뒤덮인 것이었다.

-? 그 일진 새끼들만 간 게 아니라 서태주까지 징계위원회 갔다고? 왜?

-몰?루

-학교 미친 거임?ㅋㅋㅋ

처음엔 납득할 수 없다는 소리로 들끓었다.

그러나 곧 '이유'로 짐작되는 소문이 퍼지면서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 선배'가 주도했다는데.

-그 선배가?

-ㅇㅇ 서태주가 월권을 했다는 쪽으로 가닥 잡고 찔렀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징계위 열린다는 듯.

-ㅁㅊ.. 이렇게 되면 김도진도 가만 안 있는 거 아님?

-맞음. 그래서 그 선배랑 김도진이 같이 출석한다는 듯.

-헐 존나 재밌겠다 시발

-뭐야시발 나도 들여보내줘요

-응 집행부원 아니면 못 들어가.

이문강이 수를 써 서태주를 징계위원회에 올렸다.

그리고 거기에 김도진 또한 참석한다는 소문이 퍼지며 이번 징계위원회엔 어마어마한 관심과 시선이 몰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징계위원회엔 일반 학생들의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으니 그런 관심과 시선이 단절된 가운데.

"징계위원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문강이 개입한 징계위원회가 시작되었다.

* * * *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참석한 건 삼재인 정도수를 포함한 교수진, 당사자인 서태주와 일진 학생들, 그 학생들의 부모.

그리고 집행부에서 이문강과 김도진, 그 외 관련자들까지다.

개회 절차를 거치고 바로 이문강이 나섰다.

"사건의 개요는 외곽의 공원에서 소요가 있었는데 그와 관련한 신고가 들어오자 숭무영재고의 집행부원들이 개입, 불합리한 벌점을 부여한 것입니다."

"불합리한 벌점이라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삼재인 정도수의 물음에 이문강이 준비한 내용을 풀어놓았다.

"활동을 위해 허용된 바디캠의 영상뿐 아니라 당사자들의 증언을 더하여 취합한 결과, 이들이 실제 싸움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가지고 공원에서의 퇴거를 강요할 뿐 아니라 벌점까지 부과한 것은 명백한 월권 행위였습니다."

"공용 공간에서 여럿이 모여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끼리의 다툼까지 철저하게 틀어막고 어겼다면서 벌점을 부여하다니요. 심지어 다른 학생들에게 불편을 준다며 퇴거 강요까지. 하물며 그는 현 숭무영재고 집행부장을 포함한 다른 부원들과의 상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정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그런 설득력이 있었기에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숭무고는 기계적인 학칙에만 집착하는 멍청한 조직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유도리'가 충분한 조직이었으니 인간적인 부분 또한 고려를 하여 일을 진행한다.

그렇기에 서태주의 행동에는 분명히 지적할 부분이 있었고 반론을 펼칠 여지가 얼마든지 있었다.

숭무고는 물론이요 숭무영재고의 학생들에겐 특히나 상점과 벌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만점이 기본에 상점 싸움이 되는 세상에서 경쟁하니까.

때문에 웬만해선 벌점을 부여하는 경우가 드문데 그런 벌점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건에 부여해 버린 것이다.

공원은 공용 공간이다.

그곳을 먼저 점유한 학생들이 의견이 맞지 않아 싸움 좀 했다고 해서 다른 학생들의 불편을 유발했으니 퇴거를 강요하고 불복하자 벌점까지 부여하다니, 이게 월권이 아니면 뭐겠느냐는 말이다.

심지어.

"그렇게 퇴거 강요와 벌점을 언급하는 등의 행위로 도발을 하여 싸움을 유도한 것 또한 올바른 행위가 아닙니다. 때문에, 저는 서태주 학생의 집행부 부원 자격 박탈을 건의합니다."

"……."

무림에서 명분을 갖추지 않고 먼저 덤비는 건 추후 있을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만 하는 '패널티'를 안게 된다.

반대로, 그렇기에 명분을 만들기 위해 싸움을 유도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다루어졌다.

정도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 행동에 참석한 양아치 부모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무림학교에 입학시켰는데 벌점을 받게 될 지 모른다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고 걱정을 했는데 희망이 보인 것이다.

그리고 정도수의 시선은 서태주의 뒤로 향했다.

김도진이 손을 들고 있었다.

"김도진 집행부장. 발언하세요."

꿀꺽!

손을 내리고 조용히 일어서는 도진에게로 시선이 집중된다.

누군가는 자신의 침 삼키는 소리가 너무 커 화들짝 놀란 얼굴이 되었을 만큼 도진의 존재감은 컸다.

그런 김도진의 첫 마디는.

"촌극이 따로없네요."

였다.

"……!!"

"……!!"

모두의 눈이 커졌다.

도진이 직설적인, 아니 아예 말을 때려박는다고 할 정도로 강렬한 화법을 구사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었지만 설마 이 자리에서 첫 마디부터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허나 벌써 놀라기엔 일렀으니 이제 시작이었다.

"친구끼리의 다툼? 언제부터 일진 노릇하는 싹이 노란 놈들의 폭력이 친구끼리의 다툼으로 포장될 수 있었죠?"

"그 싹이 노란 놈들이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 걸 건전하게 공원을 이용하는 걸로 포장하는 것도 가관이네요."

"듣자듣자 하니까!"

"싹이 노랗다니!"

도진의 발언에 참다못한 보호자 몇몇이 일어나 항의한다.

하지만 그들의 높아진 목소리는 도진의 시선이 향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지워졌다.

그저 시선만으로도, 기세를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도진은 그럴 수 있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들이 그러니까."

담담하지만 그래서 더 무겁고 날카로운 말이 된다.

"애들의 싹이 노래진 겁니다. 잘못을 했으면 잘못을 했다는 걸 알려주고, 그러지 않도록 이끌어야 하는데."

"그딴 식으로, 오냐오냐하니까 싹이 노래졌다는 겁니다. 모르시겠나요?"

"……."

몇몇은 그 뜻을 알았지만 애써 모른 척했고 몇몇은 정말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한 가지 똑같았던 건 부끄러움과 분노로 얼굴을 붉히면서도 도진에게 말대꾸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런 식으로 말대꾸를 했다가 더 심한 꼴을 당하는 이들의 선례가 몇 번이고 있었으니까.

침묵하는 그들을 도진은 굳이 더 지적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가치도 없었으니까.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일진들의 기강 세우기였습니다. 그 행위에 대한 서태주 집행부원의 처리에는 일절,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의견은 대립했다.

"짭행부장이라는 멸칭, 그리고 반말까지. 그 언행만으로도 벌점 부여 대상입니다."

"언행에 문제가 있다는 부분은 인정하겠으나 학생들에 대한 과한 비난에 대해서는……."

도진은 칼같이 잘랐고 이문강은 말장난을 하듯 허물을 축소하고 가리려 들었다.

그리하여 비공개로 진행된 징계위원회의 결론은.

-헐. 걔들 벌점 취소라고?

-개 미쳤네 ㅋㅋㅋㅋㅋ

그 자리에서 부여된 양아치들의 벌점 취소였다.

그러니까, 징계를 받긴 받았는데 벌점이 취소되고 봉사 활동 등으로 내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와 씨발.. 이건 말도 안 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서태주가, 봉사 활동의 징계를 받았다.

다른 게 아니라 월권 행위에 대한 내용이 인정된 것이었다.

-아니 씨발 이게 말이 되냐? 미친 거 아님?

-하..ㅋㅋㅋㅋㅋ 뭐지? 진짜.

같은 봉사 활동이지만 부여된 시간이 천지 차이였으니 그 경중도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어쨌든 벌점이 취소되고 서태주에게도 봉사 활동이 조금이나마 부여됐다는 부분에서 학생들은 납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서태주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니 냉정하지 못했어. 지금 부장은 너고, 너희들이 중심인데. 내가 너무 독단적으로 처리했던 거지."

"아, 아니에요. 부장! 우리는 지금도 부장을 부장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하하.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된다고. 너희도 좀 자신감을 가지고! 응?"

억울해하기보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경험으로 삼는다.

도진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이문강 또한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걱정을 놓았습니다."

양아치 보호자들이 이문강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것은 이문강이 공언했던 대로 학교에 항의하여 징계위원회를 열자 정말로 아이들의 벌점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그 김도진'이 참석한다는 소식에 마음을 졸였는데 이렇게나 일이 잘 풀렸다.

이문강은 그들의 인사를, 그리고 후배들의 존경이 담긴 시선을 받으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의도한 대로 일이 잘 풀렸다.

잡을 꼬투리만 있다면 이렇게 '쌍방 과실'로 일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덤으로 이렇게 빚도 지워두고 말이다.

더더욱 이번 징계위원회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겨우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이득은, 당장 다음날의 분위기로 확인할 수 있었다.

* * * *

숭무고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것은 숨죽이고 있던 일진 양아치들의 기가 살아남으로 인해 일어난 변화다.

그들이 숨죽이고 있어야 했던 건 김도진을 중심으로 한, 일진으로서 티를 내고 다니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변했다.

징계위원회의 결과가 보여주었다.

'명분'만 갖출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그 명분만 갖추면 이문강이 나서서 어떻게든 해 줄 거라는 약속까지 해 주었다.

그것은 과거 숭무고를 지배했던 '숭무회'의, 이문강을 정점으로 한 숭무회의 부활이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그들이 설치지 못하게 만들었던 김도진.

그 김도진의 대척점에 이문강이 선 형태가 된 것이다.

그렇게 반대편의 정점에 서고 무리를 모은 이문강의 시선이.

'다음은 너다.'

윤상미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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