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화
숭무고에 김도진이 있다면 숭무영재고에는 서태주가 있다.
특히나 숭무영재고에서 많이 도는 이야기로, 재미있게도 거기서 더 발전하여 김도진과 서태주의 평행이론이란 것까지도 있었다.
둘 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해 반대로 일진들을 두들겨 팼다.
집안에 위기가 있었으나 극복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둘 다 집행부장이다.
뭐 그런 식이었는데 도진이 낄낄 웃으며 '오, 그러네'하고 말했었다.
서태주는 머쓱해 했으나 내심으론 뿌듯한 기분도 들고 그랬었다.
어쨌든.
반쯤은 끼워 맞추기 장난이지만 또 설득력이 없지는 않은 그 평행이론이 회자될 만큼 서태주는 숭무영재고의 '리빙 레전드'였다는 말이다.
때문에 이미 자리를 물려 주었던 후배가 무슨 일이 생기자 상담을 요청해 왔던 것이다.
'단순한 소문은 아니네.'
일진 양아치들이 박멸된 건 아니다.
애초에 그런 건 신이 아니고서야,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도록 만들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김도진이 있음으로 해서 대놓고 활동은 못하게 만들어 두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건…….
'이문강 때문이겠지.'
양아치들이 설치지 못했던 건 설쳤다가는 무사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설쳐도 괜찮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거다.
'무슨 꿍꿍이가 있긴 할 텐데…….'
그 꿍꿍이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부장님."
집행부원 한 명이 달려와 근처에서 일진 애들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상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숭무영재고 학생들을 숭무고 학생들이 때리면서 뭔가 윽박지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 이 씨발 새끼들. 말귀 존나 못 알아처먹네."
달려가 보니 과연 집행부원의 이야기는 틀리지 않아서 약간 외곽에 위치한 쉼터, 수풀로 시야가 가려진 공원 안에 양아치들이 모여 있었다.
본래 이 근처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쉬거나 점심을 먹는 장소로 이용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양아치들이 점령한 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똑같은 놈들인데.'
현장을 확인한 서태주는 단번에 그 면면을 알아보았다.
일단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나뉘긴 하는데, 더 파고들면 '똑같은 가해자들'이었다.
한쪽은 숭무고의 일진놈들이고 다른 한쪽은 숭무영재고의 일진놈들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더 급 높은 일진놈들이 급 낮은 일진놈들을 '교육'하는 꼴이었다.
그 일진놈들의 시선이, 현장에 끼어든 서태주에게로 향했다.
주먹으로 한 세 방 갈긴 메주 같은 양아치놈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뭐야. 짭행부장이잖아."
짭행부장.
숭무영재고 집행부의 부장을 숭무고의 양아치들이 부르는 멸칭이었다.
특히나 요즘에는 김도진과 서태주의 평행이론을 조롱하는 뜻까지 더해져 있었다.
현재 숭무영재고의 집행부 부장은 2학년, 서태주의 1년 후배지만 그 상징성으로 인해 서태주는 여전히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서태주는 그 멸칭에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물었다.
"뭐하고 있는 거지?"
메주 양아치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가 뭘하든, 그걸 너한테 보고할 필요가 있냐?"
2학년이 3학년에게 취할 태도가 아니다.
숭무고 양아치들이 숭무영재고를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피해만 안 주면, 너희가 뭘하든 상관할 필요가 없지. 하지만 여긴 공용 공간이고 너희가 다른 학생들을 불편하게 했다면 나한테 보고할 필요가 생기지."
"하! 아주 씨발 잘나셨어?"
"이유를 말하지 못하겠다면 당장 사라져. 여긴 너희가 멋대로 하라고 지어진 공간이 아냐."
"근데 저 새끼가!"
"아아. 잠깐만."
과시하듯 동작을 크게 하는 다른 양아치를 또 다른 양아치가 막는다.
삼류 연극을 뻔뻔하게 하는 모양새다.
그 연극을 하는 양아치들 앞에서 메주 양아치가 말했다.
"그냥 친구끼리 의견이 안 맞아서 좀 싸운 거야. 됐냐?"
"그냥 싸운 거라고?"
"그래. 친구라고 안 싸우는 건 아니잖아? 우리끼리도 좀 의견이 안 맞아서 싸울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가지고 나가라니, 월권도 이런 월권이 없네?"
말은 그럴싸하다.
그것이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논리적으로 성립하기만 한다면, 생각 이상으로 그것에 대한 반박은 어려운 일이다.
"월권?"
어디까지나 어려운 거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공용 공간에서 여럿이 모여 폭력을 행사하는 건 숭무고에서 인정되지 않아. 하려면 정식으로 비무를 했어야지. 너희들 모두 벌점이다."
"하?"
양아치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주 FM 그 자체의 처리로 인해 부여되는 벌점이 문제다.
양아치라고 하지만 그래도 숭무고의 학생이다.
그러니까 '명문고 학생'이며 이후 어딜 가든 학교에서의 생활 태도 평가는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그 생활 태도에 금이 가게 생긴 거다.
"야, 짭행부장."
"집행부장이다. 그리고 선배라고 불러라."
"아니 씨발 조까고. 벌점은 무슨 개같은 놈의 벌점이야."
웬만한 경우 이렇게 쉽게 벌점을 주지 않는다. 생활 태도 평가가 중요하니까.
그 사안이 크지 않다면 얼마든지 구두 경고로 끝날 수 있는 건데 벌점이라니.
양아치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태주는 눈썹도 꿈쩍하지 않았다.
"잘못을 했으면 합당한 처벌을 받는 거다. 불만이 있다면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도록."
"오냐 그래 씨발! 지금 제기한다 이 새끼야!"
버럭 소리를 치며 메주 양아치가 덤벼들었다.
눈을 희번덕거리는데 자신이 질 거라곤 일말의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 자세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 대부분의 숭무고 학생들이 숭무영재고의 평범한 학생들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한다.
세상이란 게 결코 정의롭지 않다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겉으로 보기에 양아치들은 서태주를 이길 수 없어 보인다.
도진이 준 신마공(身磨功)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필사적으로 수련한 서태주의 피지컬은 숭무고의 웬만한 외공을 익힌 학생들마저 압도할 정도로 대단해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아치들이 서태주를 전혀 경계하지 않는 건, 가진 무공의 차이 때문이다.
숭무고와 숭무영재고를 나누는 절대적인 차이.
숭무고의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
그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태양권가 등의 명문 무가 후계자와 그저 자금에 여유가 좀 있을 뿐인 평범한 가정의 학생이다.
재능과 가문에 차이가 있는데 심지어 구사할 수 있는 무공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이다.
숭무영재고의 학생들이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3학년까지 학교를 꾸준히 다니는 것도 그 이유의 연장선에 있으니 최대한, 교수와 수업을 통하여 무공의 한토막이나마 더 얻기 위해서다.
'허우대야 멀쩡하지만 그래봐야 잡놈 새끼지.'
밥집 새끼라고 했다.
그런 놈이 무공을 구사해봐야 얼마나 제대로 된 무공을 구사하겠느냐는 거다.
피지컬에서 차이가 나지만 그 피지컬을 압도하는 것이 기술을 넘어선 '무공'이니까.
메주 양아치는 그렇게 계산을 끝내고서 재수없는 놈의 명치에 주먹을 내뻗었고.
뻐억-!
"껙."
역으로 면상을 얻어맞고 엉망인 얼굴이 더욱 엉망이 되어 바닥을 처참하게 뒹굴었다.
"이 새끼가!"
"뒤져 이 새끼야!"
하나가 당했으면 오히려 침착하게 행동해야 하는데.
이놈들은 주위에서 떠받들어 주기만 하고 그 성격마저 방만하니 너무나 당연한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덤벼든다.
이러니까 육식계 실습 나가서 오줌 지리고 쳐맞는 놈들이 나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양아치들을 마주하여 서태주는 주먹을 쥐었다.
불의에 저항하지 못하여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쥐지 못하고, 입조차 떼지 못한 채 어깨를 수그리며 발끝만을 보던 서태주는 사라졌다.
지금 있는 건 허리와 어깨를 펴고 정면을 당당하게 볼 수 있는, 단단한 주먹을 내뻗을 수 있는 무인(武人) 서태주다.
양아치들은 확실히 쓰레기였지만 숭무고에서 일진 노릇을 할 만큼의 무공을 구사하고 있다.
서태주로서는 가지지 못한 '상승절학(上乘絶學)'.
그 상승절학을 구사하여 덤벼드는 양아치들이.
'하찮네.'
서태주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후웅-!
대번에 공중에서 회전하여 힘을 만든 뒤 그것을 고스란히 담은 발차기가 날아든다.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무공으로서의 묘리가 담긴 발차기였기에 과연 대단했지만.
툭-
"억?"
서태주는 그것을 간단히 발목을 건드려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무위로 만들어 버렸다.
뻐억-!
그리고 허공에 뜬 채 허수아비가 된 놈의 명치를 치는 건 특별한 기술 없이도 쉬운 일이었다.
꽈직!
"악!"
나름 진각을 밟아 주먹을 내뻗던 놈의 발목을 걷어차 뼈에 금이 가게 만든 뒤 날려 버리는 것도 쉬운 일이었으며.
훅-!
갑자기 몸의 중심을 아래로 옮기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나름의 보법으로 틈을 노리려던 녀석의.
쩌억!
턱주가리를 걷어차 찍소리도 못 내게 만들며 무력화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부장, 저렇게 셌어?"
"그러게."
살벌한 분위기에 사실은 무서워 굳어 있던 숭무영재고 집행부의 후배들이 경이로운 눈으로 서태주를 본다.
숭무영재고에서야 무쌍을 찍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숭무고 학생들에게도 통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기에 지금 광경이 경이롭기만 하다.
하지만 서태주에겐 정말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분명히 양아치들이 구사하는 것은 상승절학이었지만, 그 상승절학을 이해도 못한 채 엉망으로 구사할 뿐이어서야 위협이 되질 않았으니까.
그야말로 돼지 목의 진주였다.
무공이란 이치(理致)의 구현이다.
심오한 이치를 기술에 담아 '무공(武功)'의 영역에서 자아내야만 비로소 진짜가 된단 말이다.
서태주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해낼 수 있도록 피나는 수련을 했다.
그에 비해 양아치들은 피상적인 몸놀림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으니 제아무리 좋은 무공을 가지고 있어봤자 위협이 되지 못하는 거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서태주가 무조건 유리한 싸움이었다.
'도진이도 아니고 너희 따위가 좋은 무공을 알아봤자 뭐하겠냔 말이지, 등신들아.'
어설픈 앎은 무지보다 위험한 것이다.
서태주는 요즘 들어서야 그것을 깨달았고 근래 막혀 있던 작은 벽 하나를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작고 얇은 벽이 아마도 그토록 두텁던 숭무고와 숭무영재고를 나누는 벽이었다고.
서태주는 끙끙거리며 나뒹구는 양아치들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너희 모두 벌점 2점씩이다."
* * * *
소문은 금방 퍼져 나갔다.
-뭐? 짭행부장이 걔들을 줘팼다고?
-1:1도 아니고 여럿이 덤비는 거 걍 원펀으로 줘팼다던데?
-아니 ㅋㅋㅋ 미친ㅋㅋㅋㅋ 뭐임? 진짜 뭐임?ㅋㅋㅋㅋ
-앞으로 짭행부장이 아니라 갓행부장님이시다.
서태주에 대한 숭무고의 평가는 미묘했다.
서태주가 도진과의 친분을 과시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양아치들을 이기고 숭무영재고 집행부의 부장이 되었기에 숭무영재고에서야 '리빙 레전드'라지만 숭무고생들에겐 본래 찐따이던 것을 김도진이 구해줬고 그 뒤로 사람이 좀 바뀌긴 했는데 '그래봐야 숭무영재고'라는 인식에 그쳤던 것이다.
한데 그것이 이번 일로 완전히 반전되었다.
'숭무고 일진'이다.
양아치 쓰레기긴 한데 어찌되었든, 숭무고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을 자랑하던 놈들을 서태주가 단신으로 여럿을 상대하여 압도했다.
숭무고와 숭무영재고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을 아주 제대로 넘어 버린 일에 학교는 술렁였고.
"서태주."
"예, 교수님."
"징계위원회가 열릴 거다."
서태주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는 소식에 술렁이던 파장은 쓰나미가 되어 학교를 덮쳤다.
"그래, 그런 건가."
그리고 도진의 입꼬리가 스윽, 베일 듯 날카로운 호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