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화
학교 폭력은 결코 근절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어떻게 막을 것인가.
덜 자란 아이들의 양심에 맡겨서는 안 될 일이고 그렇다고 법적으로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선생님? 양심으로도 법으로도 안 되는데 '일개 직원'에 불과한 선생이 무얼 할 수 있을까.
직원이 아닌 스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려 해도 현실의 벽에 막혀 버리는 시대인데.
부모와 경찰 역시 당사자가 아니기에 도리가 없다.
바로 그런 학교 폭력을, 최소한 겉으로나마 근절한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김도진이다.
잠룡 김도진.
처음으로 그 이름을 날렸던 계기부터가 '꼴통들의 마굴'이라 불리던 문월동의 극악한 일진 클럽을 일망타진한 사건이었다.
이후로도 일진 소탕은 계속되어 기어코 숭무고의 숭무회마저 숨통을 끊어 놓았던 게 김도진이다.
그 안에는 김도진이 아니더라도 '역대급 황금 기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던 태양권가와 관현그룹의 직계들마저 포함되어 있었으니 경이로울 지경이다.
'숭무회 선배들과의 17:1'은 전설 축에도 못 낄, 당사자를 넘어 태양권가가 흔들린 후계 구도 때문에 침묵하고 관현그룹은 아예 반토막을 내 버린 리빙 레전드.
바로 그런 '일진 학살자' 김도진이 집행부의 부장으로 있는 시기였기에 최소한 겉으로만큼은 숭무고에서 일진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데 그렇게 평화로웠던 숭무고에, 또 한 명 나쁜 쪽으로 리빙 레전드였던 이문강이 복학을 하게 됐다.
웬만한 수준이라면 모두가 가벼운 흥미로 지켜보았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김도진도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A-1을 따며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김도진과 똑같이 A-1을 딴, 그러나 더 오래 무공을 수련한 이문강이다.
심지어 그 배경은 대한민국에서도 정점을 다투는 의천검가.
김도진의 '대항마'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문강이 복학을 해 버렸고 심지어 집행부원으로서의 자격까지 유지하고 있으니 무언가 파란이 일 게 확실하다.
에타에는 그런 예측이 팽배해 있었고 때문에 자신의 존재감을 일절 숨기지 않고 등교하는 이문강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선들을 당당하게 받으며 이문강은 이문호 패거리를 이끌고 집행부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그래."
집행부 내에 있던 도진을 포함한 멤버들이 인사한다.
영혼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인사였지만 이문강은 개의치 않았다.
마음에야 들지 않지만 그것까지 지금 일일이 따지기엔 너무 비효율적이니까.
그런 건 천천히, 기회를 잡아 단번에 몰아쳐야 한다.
도진이 안에 들어선 이문강에게 다가갔다.
"선배도 앞으로 계속 집행부에서 활동해 주실 예정인가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묻는다.
이문강은 그런 도진의 태도에 역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대신.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꾸준히는 나오기 힘들 거 같고. 그래도 가능하면 꾸준히 활동할 생각이야."
미래를 대비한 대답을 내놓았다.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바쁘시니까요."
기세는 맹수 같지만 이문강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인간이다.
언뜻 리스크가 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보험을 들어둔다.
도진이 이어서 물었다.
"그러시면, 어느 쪽을 주로 맡아주실 생각이신가요?"
집행부의 기능을 크게 둘로 나누면 선도부와 행정부다.
선도부야 그 이름대로고 행정부는 학교의 전반적인, 학생의 자치 단체의 성격을 띠는 부분이다.
여기에 관해서도 이문강은 이미 다 생각을 해 두었기에 바로 답했다.
"양쪽 다 할 생각이다."
"그러시군요."
예상대로의 대답이었다.
무력이 압도적이니, 그리고 예의 일진 양아치들과의 연관성을 생각하면 선도부로서 활동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그들을 커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밖으로만 돌아다녀선 의미가 없다. 근본이 되는 제도적인 부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니까 이문강은 양쪽에 다 관여할 생각인 것이다.
"오늘은 일단 학칙에 관해서 좀 확인해 보고 싶은데."
"그러시죠."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집행부의 비품 중 하나인 태블릿을 건넸다.
학칙은 집행부에게 할당된 서버에 접속하여 확인하면 된다.
이문강은 도진이 건넨 태블릿을 받아들고 터억, 거대한 맹수가 바위에 기대듯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쿵!
두 발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문강으로선 자연스런 행위였다.
애초에 눈치를 볼 생각도 없었고 이런 걸로 시비를 걸면 얼마든지 받아쳐 줄 생각이었다.
그런 이문강에게.
"발. 내리세요."
도진이 일말의 유예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뭐라고?"
이문강이 기다렸다는 듯 살벌한 눈초리를 도진에게 향했다.
도진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넘기며 다시 말했다.
"발 내리라구요."
"하."
이문강은 보란 듯이, 오히려 꼰 발에 더욱 힘을 주며 상체를 들었다.
"내가 내 다리 올리겠다는데 그것까지 너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냐?"
"아뇨. 허락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 그냥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하! 같잖네. 누구 마음대로?"
"그 테이블은 모두 함께 쓰는 것이고, 서류를 두고 보거나 음식을 둘 때도 쓰는 겁니다. 거기에 흙 묻은 발을 올린다니. 최소한의 교육만 받아도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거, 알지 않나요? 이런 것까지 설명이 필요한 분일 거 같지는 않은데."
"뭐 이 새끼야?"
쾅!
이문강의 기세가 더욱 거칠어지며 굉음과 함께 거구가 일어선다.
이건 상상을 넘어 아예 싸우자는 도발이었다.
튼튼한 테이블이 그대로 두 쪽이 나며 올렸던 발이 땅을 딛는다.
그리고 쿵! 쿵! 소리를 내며 도진의 앞에 섰다.
몸을 일으킨 거대한 곰이 살벌하게 사람을 노려보는 모양새다.
"여기 청소하는 사람 있잖아. 어차피 매일 청소할 거고, 그러면 되는 일을 굳이 꼬투리 잡아서 선배 욕하는 데 써? 가관이네? 내가 그런다고 누가 손해 보냐? 오히려 이렇게 일을 만들어 주니까 그 사람들이 고용되는 거 아니냐고."
"절반은 맞는 이야기네요."
도진은 언제나처럼 여유롭게, 평소와 같은 얼굴로 대답한다.
그것이 혼자 발작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 이문강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그렇죠. 누군가가 일거리를 만들어 주니까 다른 누군가가 고용될 수 있는 거죠. 저도 어느 정도는 이 논리에 동의해요. 하지만."
"청소한다고 끝이면, 선배가 식사할 때 쓰는 식탁을 누가 밟고 지나가도 상관없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
"자, 손해를 보네요? 한 명도 아니고 이 집행부실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요."
양손을 펼쳐 들며 슬쩍 웃는다.
도진의 그 모습에 이문강의 이성이 순간 부글부글 끓는 화에 흐물해졌다.
"이 새……!"
그러나 순간 이성을 녹였던 화는 다음 순간 싸늘하게 식어 버렸으니.
흉악한 얼굴을 들이밀며 입을 쩌억 벌린 순간.
훅-
분명히 눈앞에 서 있던 도진이 다음 순간, 마치 중간의 과정이 있었던 시간을 잘라낸 것처럼 이문강의 우측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
화만이 아니라 피까지 싸늘하게 식은 것 같다.
인성과 별개로 이문강은 숭무고의 폭군으로 군림했을 만큼의 재능과 실력을 지녔던 무림인이다.
방금. 지금이 만약 무림에서 적대하는 상황이었다면.
찰나, 이성을 잃었던 순간 도진에 의해 자신은 옆구리가 깊이 베여 내장을 줄줄 흘릴 상황이었다는 걸 이문강은 아는 것이다.
'이새끼, 신법과 보법이 은밀하다고 했었지.'
"어차피 보실 테지만 지금 상황에 적용되는 거니까 미리 말씀드리죠."
"함께 사용하는 집행부의 비품 사용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비품의 가치를 훼손하는 방식으로의 사용을 금한다."
그딴 게 있다고?
이문강은 속으로 생각했고 그 생각을 읽은 듯 도진이 말했다.
"보통은 양심에 맡기는데, 양심에만 맡기면 만일의 만일의 경우 적용할 규칙에 공백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만든 거예요. 지금까지는 만들어 놓고 쓰질 않았는데 그 첫 번째 적용 대상이 되셨네요."
그리고 평이하던 어조가 진지해진다.
"경고 1회입니다. 두 번째 경고를 받으시면 일정 기간 활동 정지 처분을 받으실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그리고 훼손한 비품의 경우 지금 당장 처리하시고 동일한 물건으로 3일 내에 복구하시면 됩니다."
"……."
만약 방금의 일이 아니었다면 이문강은 계획이고 나발이고 내공을 폭발시켰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김도진과의 비무는 확실하지 않은 한 하지 않으려 했다.
이기면 대박이지만 비기거나,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하지만 지기라도 하는 날엔 모든 게 끝이었으니까.
감수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러나 지금 김도진이 지껄이는 내용은 그 리스크 이상으로 이문강의 이성을 녹일 만큼의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다.
방금 도진이 보여 주었던 움직임이 냉각제로 작용하여 이문강은 이 자리에서 폭발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정리해."
이문강은 그 냉각제가 그대로 목소리에 스며든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불안한 얼굴로 서 있던 감우상, 그리고 조용히 지켜보던 태종훈이 움직여 뒷정리를 시작했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일 텐데요."
"본인들이 하겠다는 걸 굳이 막을 학칙따윈 없겠지."
도진이 피식 웃으며 또 한 번 어깨를 으쓱였다.
"뭐, 본인의 의지라면요."
그렇게 첫날부터 살벌한 대립을 했던 이문강은.
"흐응."
다음날 '사유서'를 제출하며 집행부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사유서의 내용은 한 마디로 맡은 업무로 인한 시간 부족이다.
예의 의천검가와 금화의 합작 프로젝트를 이유로 집행부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것이다.
소문은 빨라서 이 부분은 즉시 퍼져 나갔다.
-'그 선배' 오늘 집행부에 안 나타났다는데?
-결석계 내고 수업도 오전 것만 들었음.
-뭐냐 ㅋㅋㅋ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나도 알고 싶다;;
-김도진 선배한테 카운터 씨게 맞고 ㅌㅌ한 거 아님?
-ㅁㅊㅋㅋㅋ '그 선배'도 결국 김도진한텐 안 되는 거냐
첫날 집행부에서 둘이 만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없었을 확률은 제로였으니 분명히 뭔가 있었을 텐데 도진은 굳이 말하지 않았고 집행부의 멤버들도 그것을 소문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도 촉각을 곤두세우던 이들은 도진이 '판정승'을 거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문강이 결국 거품이니 찻잔 속의 태풍이니 하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할 때였다.
"선배님."
"그래.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다고?"
"네. 그게……."
서태주는 3학년이 되면서 숭무영재고 집행부의 부장 자리를 물려주었던 후배에게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됐다.
숭무고와 달리 숭무영재고의 경우 여러가지 이유로 3학년까지 정상적으로 학교를 마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3학년이 되면서 학교보다는 사회 쪽에 집중하는 경향은 동일하여 집행부장 등의 자리는 2학년이 주가 되는 것까지 숭무고와 같았다.
그런 이유로 후배에게 부장 자리를 물려주었던 서태주에게 현 숭무영재고 집행부장이 꺼낸 이야기는.
"일진 애들이 다시 활동하고 있는 거 같아요."
서태주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