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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86화 (486/741)

485화

분명히 제대로 된 건수를 잡았는데 상황이 이상해졌다.

이문강은 그 이상해진 상황을 바로잡아 보려 했다.

스윽, 도진의 뒤를 둘러보며 말한다.

"그때랑 다르게 지금은 아주 꽃밭이네. 여리여리한 애들이 많아."

도발이다.

기분 나쁘게 훑는 눈길이 절로 표정이 찌푸려지게 만든다.

하지만 분명히 나쁜짓인데 거기에 무어라 말을 하기엔 묘한 그런 도발.

여기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역대급이라고 칭찬들이 자자한 시기죠. 하지만 선배님 말씀대로, 그렇죠. 아무래도 요즘 애들이 좀 여리여리하다 보니 예전 이야기에 내성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

"사람 죽인 쓰레기들로 구성됐던 당시 집행부의 수장이셨잖아요. 소문이 흉흉할 수밖에 없고, 그 당사자를 준비없이 갑작스럽게 대면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시도를 초장부터 아주 찢어발겨 버렸다.

어딜 우리 애들을 그딴 눈깔로 본단 말인가.

'이 개…….'

"그래도, 뭐. 소문은 소문이잖아요. 바보한테 바보라고 하면 욕이지만 바보가 아니면 욕이 아닐 수 있는 거잖아요? 선배님이시니까 관대하게 이해해 주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죽여 버리고 싶다.

이문강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생애 처음으로,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안 된다.

여기서 말려서 성질을 부렸다간 아무리 대체할 수 없는 의천검가의 후계자라 해도 치명적인, 평생을 따라다닐 오점을 남기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문강은 한 번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한창 즐기던 디저트가 놓인 테이블의 빈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적당히 끼어들어 우선 자리를 휘저어 놓으려 했다.

하지만.

"아, 먹다 남은 거긴 한데 잘 보시면 손 안 댄 게 있긴 할 거예요."

"……."

도진의 그 말이 이문강의 두터운 손이 뚝 멈추게 만들었다.

이문강은 누가 먹던 걸 절대로 먹지 않는다.

그 부분을 도진이 제대로 찌른 것인데, 이는 의도한 것이다.

답청문의 문주 나지윤이 잘 조사해 준 이문강에 대한 자료를 숙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이문강은 남이 손 댄 걸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도진의 말 때문에 또 그림이 이상해졌다.

덕분에 이문강은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는커녕 또 한 번 심대한 타격을 받고 몰래 부글부글, 온도가 또 올라 버린 속을 달래기 위해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아 이문강이 잽을 날렸다.

"그런데 말이야."

"네."

"집행부 부장 자리, 나한테 돌려주는 게 어때?"

"……."

과연 효과가 있어서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도진이 아니라 주변에서지만 말이다.

그것으로 아주 조금 평정심을 되찾은 이문강이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말했다.

"나야 관련이 없었지만 어쨌든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폐관에 들긴 했는데, 정식으로 부장 자리를 물려주진 않았단 말이지. 전통적으로 집행부 부장의 자리는 2학년이 맡는 거였고 정식으로 물려준 적이 없으니 따지고 보면 지금 네가 부장인 건 어디까지나 '임시'잖아? 그러니까 돌려받고 싶어서 말이야."

도진이 그런 이문강을 보며 마주 웃었다.

"아, 그런 낡은 전통은 버리기로 했어요."

"…버려?"

"네. 쓰레기 소굴이었던 집행부의 분위기도 한 번 대청소를 하고, 그러고도 꼬였던 벌레들도 유아 선배랑 지은 선배, 그리고 대현 선배가 완전히 정리하고 쇄신했잖아요."

"……."

"선배는 폐관하시느라 잘 모르셨겠지만 그러면서 집행부가 많이 바뀌었거든요. 당장 저번 부장도 유아 선배였고 지금은 제가 부장을 하고 있으니 나름 3학년이 부장을 하는 것도 2년 전통이기도 하고 말이죠?"

"……."

"그런 의미에서 졸업할 때까진 제가 부장 하려고요. 그 다음은…… 투표로 뽑으면 되지 않을까요?"

스윽.

이문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러면 되긴 하겠네."

"어, 벌써 가시게요?"

"내가 요즘 할일이 많아서 말이야. 알다시피 유아랑 맡은 프로젝트가 좀 크잖아?"

한유아를 아무렇지 않게 부른다.

그 또한 나름의 도발이었지만 도진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

"하긴, 그러셨죠. 그럼 내일 뵙도록 하죠. 그런데 너희도 같이 가?"

"…아, 예."

"그렇구나. 너희도 내일 보자."

"안녕히 가세요."

이번엔 실수하지 않고 이문호 패거리와 함께 떠나는 이문강에게 집행부 멤버들이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인사가 마치 축객령 같아서, 이문강은 인사를 받으면서도 기분이 더러워야만 했다.

그렇게 이문강이 '패퇴'하여 기척마저 사라지자.

짝짝짝!

약리지가 뜬금없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그 박수에 성지인이 따라 박수를 쳤고 소담까지 가세했다.

"갑자기 웬 박수야?"

도진이 피식 웃으며 물으니 약리지가 박수를 끝내고 말했다.

"나쁜놈을 훌륭하게 선배가 물리쳐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박수치는 거예요."

"어이구."

약리지의 대답에 도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 저 기분 나쁜 사람한테는 저어어어어어얼대로 사과하기 싫었다구요. 그러니까 선배가 절 구한 거예요."

"예전부터 혐오했던 거 같네?"

"유명한 사람들 중에 우리 집에 안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어릴 적부터 봤는데 그때부터 싫었어요. 본능의 영역에서 저어어얼대로 친밀감이 생성될 수가 없는 타입이라구요, 저 사람은."

"와, 우리 리지 공주님 집 자랑 하신다."

"아이잇!"

그런 느낌으로 이문강을 패퇴시킨 집행부실의 분위기는 훈훈했지만.

"너희 뭐 했냐?"

"……."

"뭐했냐고 이 병신 새끼들아!"

빠아아악!!

의천검가 내 이문강의 '수련장'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이문강의 흉흉한 주먹이 거침없이 이문호와 태종훈, 감우상에게 때려박혔다.

"아으으, 아아아아……."

퍼어억 하는, 살거죽이 무지막지하게 벽에 처박히는 소리를 내고서 바닥에 나뒹군 감우상이 꼴사납게 눈물을 질질 흘린다.

아프기야 정말로 아플 것이었지만 저런 꼴까지 보이는 건 더 안 쳐맞고 싶어서 엄살을 더한 쇼를 하는 것이다.

"……."

반대로 태종훈은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이문강의 앞에 가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대호문의 직계다운 태도다.

그런 태종훈의 모습 때문에 이문호도 어떻게든 비르적거리며 일어나 이문강의 앞에 서야 했다.

이문호 또한 의천검가의 직계였으니까.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수하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어이구. 그래도 꼴에."

이문강이 그런 둘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으나 또 주먹을 휘두르진 않았다.

물론 화가 풀린 건 아니었다.

이문강이 쏘아붙였다.

"그래, 그래서. 반 년동안 너희는 도대체 뭘 한 거냐?"

"꼴을 보아 하니 아주 그냥 병신 찐따 새끼마냥 끼어들지도 못하고 숨만 쳐 쉬고 있었던 거 같은데."

"내가 듣기로 너. 집행부 먹겠다고 아주 큰소리치며 들어간 거 아니었냐? 근데 오늘 보니까 아주 가관이던데. 도대체 뭐 했냐고 이 새끼야!"

결국 버럭 소리를 치는 이문강에게 이문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건 화풀이다.

김도진을 상대하러 당당하게 가서는 개쪽만 팔리고 온 그 화를 자신들에게 푸는 것이다.

하지만 이문호가 그 화풀이에 당하는 것보다 더 화가 나고 억울한 건, 그런 이문강에게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이었다.

"아가리 쳐 다물고 있지 말고 말을 하라고 새꺄!"

뻐억!

"컥."

화를 참지 못한, 참을 이유가 없는 이문강의 발길질에 이문호가 나가떨어졌다.

"말 해 보라고 이 새끼야!"

빠악! 빠악!

그러고도 이어진 몇 번의 발길질.

그 발길질에 이문호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내년을 보려 했어."

"내년?"

"응, 내년."

피를 줄줄 흘리며 엉망이 된 몰골로 이문호가 말한다.

"어차피 김도진이 있는 동안엔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반년만 지나면 되는 거였어. 반년만 지나면 김도진은 학생이 아니게 되고 2학년들도 3학년이 되면서 영향력이 약화될 거였으니까."

3학년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학교 일에서 손을 떼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거지 학칙이나 규칙이 아니었다.

다만 학생이 아니게 된, 완전히 사회인이자 무림인이 된 도진을 따라 지금 '잠룡 패밀리'라 불리는 이들 중 3학년들이 학교보다 바깥의 일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거라는 건 확률이 높은 추측이었다.

"지금이야 김도진이 꽉 잡고 있지만 그때는 김도진이 없고 3학년들 영향력도 충분히 약화될 테니 우리에게 우호적인 신입생들을 집행부로 데려오면 그때부터 집행부는 우리 거잖아. 그럴 생각이었어."

시간은 걸리지만 안전하고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건 제아무리 김도진이라 해도, 지금의 2학년들이 3학년이 되어서까지 관여한다 해도 막을 수가 없는 계획이다.

저도 모르게 도진과 함께 지내며 압도당한 이문호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기에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조용히 지내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무진혁이 의도했던, 도발당한 이문호가 도진에게 덤벼드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이문호의 말에 이문강은.

"하. 이 병신 새끼."

신랄하게 이문호를 매도했다.

이문강의 두터운 손가락이 이문호의 이마를 턱, 턱. 찔렀다.

"야이 새끼야, 그게 김도진 무서워서 아가리 여물고 대가리 처박고 있겠다는 거랑 뭐가 다른 소린데? 그렇게 해서 집행부 먹으면 사람들이 어이구 대단하다 이러겠냐? 응? 이 병신 새끼야."

"……."

"하……. 참 너도 불쌍하다, 불쌍해. 내 동생으로 태어난 게 불쌍하고 의천검가 사람인 게 또 불쌍하다. 차라리 어디 개 병신 같은 좆만한 문파에서 태어났으면 그래도 좋은 대접 받았을 텐데 말이다."

꾸우욱-

저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진다.

하지만 그 주먹을 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은 형의 말대로라고 이문호는 생각했다.

나는 병신이고 패배자라고.

평생 형의 그늘 밑을 기는 놈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렇게 또 스스로를 비난하는 이문호에게 이문강이 말했다.

"하려면 김도진 그 새끼가 있을 때 집행부를 먹어야지. 그래야 최소한 어디가서 집행부 먹었다고 자랑이라도 할 거 아니냐. 응?"

그러면서 이문강이 비죽 웃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소리를 할 만큼 이문강이 바보는 아니었다.

당연히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을 이문호 패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쓸 만한 새끼들 좀 모아 놔."

"알겠습니다."

태종훈이 고개를 숙였고 이문강의 비죽이 올라간 입꼬리가 기분나쁜 곡선을 그렸다.

* * * *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매년 반복되는 2학기였으나 이번 년도의 2학기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으니 '복학생' 이문강 때문이다.

외부에서의 평가야 반전되었다지만 적어도 숭무고에 다닐 정도 되는 학생들은 그날의 사실을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문강으로 인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 이 씹새끼 진짜. 야."

…혹은 기대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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