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481화 (481/741)

480화

개학을 약 한 달 앞둔 때에 이문강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이문강이 복학 신청 서류를 넣었다는 것도.

세상은 물론이요 에타를 포함한 숭무고 학생들의 커뮤니티도 들썩였으니 도진은 그 이문강에 관한 이야기를 나지윤과 나누고 있었다.

나지윤은 블랙 커피를 그림처럼 홀짝이고선 말했다.

"처음에는 뻔뻔하다느니 개새끼라느니 하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물타기가 되기 시작했어."

이문강은 과거 일진들이 점령한 숭무고 집행부의 수장을 차지한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러니까 인성과는 별개로 그 재능은 진짜였으며 의천검가라는 태생까지 더해져 숭무고에서도 일진이랍시고 거들먹거릴 수 있는 이들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이문강이 일진들의 가장 위에 군림했다는 것을.

문제는, 그 '아는 사람'이 소수였으며 그들이 밖으로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는 거다.

더더욱.

"이문강은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었어. 나중에라도, 혹시라도 문제가 되는 걸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놓고 일진 노릇을 하지 않았다는 거지."

의천검가는 명문 중의 명문이며 그렇기에 겉에 남는 얼룩, 오점이 있어선 안 된다.

설령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워야만 한다.

이문강은 어릴 적부터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전면에 나서서 행동하는 대신 밑의 아이들을 부린 것이다.

"무혐의가 나온 건 그게 결정적이었어. 어찌되었든 피해자가 죽고 말았던 그 사건에서, 이문강은 그 자리에 없었고 손을 쓰지 않았다. 그게 받아들여졌으니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하지만 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 가능한 것이 이 썩은 세상이었기에.

이문강은 무혐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폐관이야."

현대의 폐관수련은 정말로 산이나 동굴에 처박혀 두문불출하는 형태가 아니다.

정말 쉽게 비유하자면 '연예인의 자숙'과 결이 비슷하다.

여러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수련에 매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네에서 목격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일반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뻔뻔한' 무림인은 바로 그 연예인이나 너튜버가 흔히 그러하듯 폐관을 6개월에서 1년 정도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문강은 무려 5년이나 그것을 지속했다는 부분이다.

이것이 여론의 흐름을 바꾸는 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무려 5년이나 자숙을 했다는 데서 어쩌면 이문강이 정말 억울했던 건 아닐까. 충격을 받아 그렇게 오랫동안 두문불출한 건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도는 거지."

그것이 연극이라면. 혹은 연출이라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자숙을 할 수는 없었을 거라는 논리는 과연 강력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의천검가의 첫째에게 있어 학창 시절은, 그 어린 시절은 비할 데 없이 귀한 시간일 수밖에 없는데 그 시간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보냈으니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던 이들조차 조금은 동요할 정도였다.

도진은 옅게 웃으며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냥 물타기지."

나지윤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그렇게 답했다.

그럴 수 있는 건, 그 당시의 '사실'을 나지윤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5년이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화가 나지만 알 수가 없었어. 하지만 폐관 중에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출국을 이문강은 몇 번이나 했었어. 아마 거기에 답이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판단의 근거는 있어. 의천검가에서 고용한 이들 사이에서의 평가가 아주 좋지 않다는 부분이지."

의천검가가 철저하게 입단속을 시키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금전적인 관계로 묶인 고용인들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는 없었다.

대놓고는 아니어도 간접적으로, 은밀하게 이문강에 대한 평가를 입수할 수 있었고 이문강의 글러먹은 인간성이 그대로란 판단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나지윤의 판단과 달리 세간에서의 이문강에 대한 평가는 며칠 뒤 '떡상'을 해 버리고 말았으니 이문강이 A-1 자격증을 따 버린 것이었다.

스물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면 피나는 노력을 계속하여 A-3를 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나이에 이문강은 A-1,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해 버렸다.

비록 도진이 열아홉에 A-1을 따 버리며 세상을 뒤집어 놓은 게 오래되지 않은 때라지만, 출발선과 조건에 있어 축복받은 의천검가의 후계자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물둘에 A-1을 딴 것이 빛이 바래기에는 그것 또한 너무 대단한 일이었다.

한국은 그 일을 대서특필하였고 해외에서도 또 한 명 천재가 나왔다며 떠듦으로써 이문강은 소위 말하는 '국뽕'을 채워 주었고 완벽하게 여론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보면 진짜 하늘이 자비롭지 않다는 말이 팩트라는 걸 실감하게 된단 말이지."

"그러게요."

개학을 앞두고 바할라에서의 집중 수련을 마치고 귀국한 성민혁이 도진의 말에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성민혁 또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었기에 이문강에 대한 평가는 좋을 수가 없었다.

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A-1 자격증을 딴, 의천검가의 차기 가주가 될 이문강에 대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그 관심에 편승하여 나온 기사가 이것이었다.

-단독)금화의 금지옥엽, 의천검가 희대의 천재와 긍정적인 만남중?!

시선을 잡아끄는 블랙홀급의 제목이었으며 무조건 클릭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아이 ㅅㅂ;;;

-기레기 개색키야;;;

-파닥파닥;;

사람들이 생각했던 '그 내용', 그러니까 열애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거짓말 또한 아니었으니 금봉 한유아와 '패룡(覇龍)' 이문강이 금화와 의천검가가 새로이 협업할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나지윤은 이 '낚시 기사'를 제법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마냥 낚시는 아니야."

"그래?"

"응. 한유아 선배의 이미지는 금화에서 아주 중요하게 관리하고 있거든. 그런 유아 선배를 언급하면서 이런 저급한 낚시를 하는 건 용납되지 않아."

즉. 그것은 금화의 허락, 혹은 의도가 담긴 제목이라는 말이 된다.

"그 말은…… 금화와 의천검가에서는 실제로 그런 의도로 유아 선배랑 이문강을 붙여 주려 한다는 거네."

"맞아. 끼리끼리. 카르텔. 그 바닥은 원래 그렇잖아?"

"…그렇지."

상류층에서 혈연(血緣)으로 묶이는 건 가장 보편적인 형태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생각하는 '집안의 강요와 필요에 의한 정략결혼'만 있는 게 아니다.

적나라하게 말해 '급이 맞는' 짝을 찾는 건 당사자 또한 다르지 않았으니 생각 외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결혼이란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으니까.

다만.

한유아는 여기에 해당되지 못했다.

이 부분에 관해 도진은 확신할 수 있었으니 바로 전생에서 그 미래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금봉 한유아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찬란한 이름이었다.

-한유아 씨는 의천검가의 기밀을…….

그 찬란함은 지극히 높은 곳에 있었기에 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한유아 씨의 계속되는 논란에…….

그렇게 높고 찬란했던 만큼 추락은 그 이상으로 극명했다.

-한유아 씨가 혼인 빙자 및 사기로…….

도진 또한 한 명의 '땅을 기는 엑스트라'의 입장에서 추락하는 한유아를 분명하게 보았었다.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을 만큼, 그 추락은 대한민국의 거대한 이슈였다.

엑스트라, 그러니까 개미로서 제 3자의 위치에 있었기에 도진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개미로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다른 은하의 사진을 보는 것만큼이나 먼 일이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입장이 된 지금은 또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으니.

'…유아 선배는 가해자가 아니었어.'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한유아는 결국 졸업할 때까지도 도진에게 마음까지 열어주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함께 한 시간이 있었고 서로에 대해 최소한 알 만큼의 인연은 맺었다.

한유아는 결코 전생에서처럼 '가해자'가 될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할 거야?"

생각에 잠겨 있던 도진에게 나지윤이 묻는다.

도진은 옅게 웃고선 말했다.

"글쎄. 어떤 형태로든 부딪치게 되긴 하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네."

이것은 '아이들 사이의 일'이 아니다.

그저 먼저 말을 걸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공부하는 것으로 친구가 되어서 끝나는 그런 수준의 일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도진은 결론을 내리지 않았고, 그런 채로 한유아와 이문강을 만나게 되었다.

* * * *

꽤나 회자되었던 '낚시 기사'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진은 한유아를 만나게 됐다.

장소는 치안 유지 계약을 한유아의 화온과 함께 딴 뒤 마련한 사무실이었다.

지구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이곳엔 평소 잠룡문과 화온의 무인들이 교대로 대기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두 집단의 수장이 마주한 것이다.

"오랜만이네."

"네, 선배."

서로가 동시에 사무실에 들른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도진이 마주한 한유아는, 그 찬란했던 금빛이 검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평소처럼 웃고 있지만, 그 웃음에 평소 보여 주었던 빛나는 영혼은 깃들어 있지 않다.

그런 한유아의 곁에 선 민지서 또한 평소와 달라서.

겉은 고요하지만 그 내부는 미친듯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 눈동자 너머로 보였다.

마주 앉은 자리에서 한유아가 말했다.

"음, 너도 들었지? 이번에 내가 새로운 사업 맡게 된 거."

"네."

금화에서 한유아에게 무언가 제대로 된 사업을 맡겼다는 건 예의 낚시 기사 이후 정식으로 금화에서 발표한 '오피셜'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었으니, '금봉 한유아'에게 금화가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말야, 화온은 다음 분기를 끝으로 치안 유지 계약을 끝내려고 해. 이제 잠룡문도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이기도 했고 우리가 빠진다고 해서 공백이 생길 만큼 부족한 문파가 아니잖아?"

"뭐, 그렇죠."

"응, 그러니까. 앞으로는 후배에게 맡겨도 될까?"

활짝 웃으며 묻는 한유아에게.

도진은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괜찮아요. 큰 프로젝트를 맡으셨는데 이해해 드려야죠."

잠룡문이 갑자기 일을 맡으면 안 그래도 큰 부담을 지고 있는 오성아에게 더욱 무리를 강요하는 게 된다는 실질적인 이유 외에, 한유아와의 끈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함께 했던 계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계약을 함께 할 수 없게 됐다.

올해를 끝으로 한유아와 화온은 계약을 끝낸다.

도진에게는 한유아를 붙잡을 명분이 없었으며 한유아 또한 이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도진은 한유아를 붙잡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보내기로 했다.

"고마워, 후배."

대신.

"대신, 선배."

"응?"

도진의 눈이 한유아의 깊게 가라앉은 바다를 연상케하는 눈을 떠나 그 옆에 있던, 민지서의 눈과 마주했다.

그리고 말했다.

"지서 선배를, 우리 잠룡문에 파견해 주시지 않을래요?"

"……?"

민지서의 평온을 가장하고 있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