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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78화 (478/741)
  • 477화

    삐닥하게 고개를 기울인 도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상대를 도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모욕까지 더해졌으니 의성문 무인들의 얼굴이 시뻘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으니 그렇게 모욕한 자의 기세가 결코 그들이 이길 수 없다는 걸 본능의 단계에서 인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게도.

    분명히 애송이여야 할 어린 놈의 기세가 항거할 수 없을 만큼 까마득했다.

    그래서 덤벼들지는 못하고, 그저 이를 빠득 악물고 말로 할 수밖에 없었다.

    "무협지랑 현실도 구분하지 못한다니. 우릴 모욕하는 것이냐!!"

    도진은 소리 높여 항의하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피식 웃어 혈압을 올려주고선 말했다.

    "아니, 사실이잖아요. 당신들."

    "무엇이 사실이란 말이냐!"

    "아, 그건 일일이 설명하자면 좀 긴데……. 뭐, 시간은 있으니까 한 번 따져볼까요?"

    느긋하면서도 하나하나 사람의 화를 돋군다.

    하지만 덤벼봐야 처참하게, 더한 창피를 당할 뿐이니 그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도진의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도진이 물었다.

    "일단 첫 번째. 마교(魔敎)가 뭐가 문젠데요?"

    "뭐라?"

    "마교가 뭐가 문제냐구요."

    의성문 무인들이 정말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장난 같은……."

    그래서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도진이 그걸 끊어 버렸다.

    "그러니까. 마교가 나쁜 집단이라고 증명이 됐냐는 말입니다."

    "……."

    헛소리 하지 마라.

    혹은 개수작 부리지 마라.

    그렇게 소리치려던 그들은 문득 떠오르는 어떤 것에 말문이 터억 막히고 말았다.

    "어?"

    "그런가?"

    여기에 눈치 빠르고 머리가 굴러가는 이들까지 도진이 무얼 묻는지를 깨달았다.

    도진이 입꼬리를 올리고선 말했다.

    "아니, 이게 무협지면 모르겠는데 우린 현실을 살고 있잖아요? 마교가 실존하는지 어떤지도 모르던 차에 서적 하나에서 나온 '마교'라는 단어만 보고 마교가 나쁜 집단이라고 단언하고 있잖아요. 팩트 있어요?"

    "……."

    없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없다.

    어떤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선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마교의 경우엔 그동안 알려진 사료(史料) 중에는 실존을 증명할 만한 문구조차 발견된 적이 없었다.

    의외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려주면 크게 놀라는데, 무협지의 영향으로 마교가 당연히 실존했던 단체라 여기는 경우가 적잖게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까 마교가 언급됐을 때도 반응이 둘로 나뉘어 한쪽은 마교의 언급 자체에 놀랐고 다른 한쪽은 그게 실존했냐는 얼굴로 놀랐다.

    어쨌든, 그렇게 '친숙한' 마교지만 중요한 건 그런 이미지와 달리 마교에 관한 사료가 그동안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도진의 질문은 반박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만약 여러분들이 가진 서적에 마교에 관한 더 자세한, 그러니까 마교가 나쁜 집단이라고 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 있나요?"

    "……."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있다'고 대답했을 때도 도진은 대비해 뒀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쉽게 풀린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요. 무협지랑 현실도 구분 못하냐고."

    으드득-!

    모멸감에 그들은 이를 갈았다.

    그리고 반박했다.

    "하지만 혈류공의 부작용은 분명하게 우리가 확인했다! 그것마저 부정할 테냐!"

    "네."

    하지만 그 반박마저 도진은 너무나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력화시켜 버렸다.

    "뭐, 뭐라……"

    "혈류공은 피의 흐름을 가속하여 신체 능력을 증폭하는 공능을 가진 심법입니다. 맞나요?"

    도진의 물음에 원화문의 화정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익히면서 혹시라도 광인(狂人)이 되거나 주화입마에 들 부작용이 큰가요?"

    "아니오. 선조들은 그런 위험이 있었다고 했지만 우리 대에 이르러서는 그런 부작용을 연구를 통하여 완전히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껏 대외에 그런 심법을 익히고 있다는 걸 숨겼느냐!"

    의성문의 무인이 끼어들어 외쳤다.

    그것은 제법 귀가 가는 내용이었다.

    도진의 말대로, 그리고 화정평의 말대로 그것이 부작용이 없고 마공이 아니라면 왜 굳이 대외 활동을 하며 보여주지 않았느냐는 거다.

    실제로 원화문은 화타가 창안했다는 기공(氣功) 오금희(五禽戱)를 보유하고 있다 알려져 있지만 혈류공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켕기는 게 없다면 왜 그랬느냐는 말에 화정평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우리는 의가이지 당신들처럼 무공으로 소란을 일으키는 왈패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오."

    "뭣이라!"

    "의술로 알려지면 충분한 것이지 굳이 무공을 자랑할 게 뭐 있겠소. 그리고 혈류공은 극성으로 발휘하면 눈의 흰자위가 붉게 물들어 보기에 심히 좋지 않으니 지양해 온 것이오. 단지 그뿐이지."

    의성문은 인천과 가까운 웨이하이시에 뿌리내린 세력이다.

    거친 뱃사람들이 많은 도시인데 그곳의 흑도와 호형호제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일 정도로 의성문은 의가이면서 정파의 탈을 썼지만 흑도에 가까운 문파였다.

    그에 비해 원화문은 무공보다는 말 그대로 '병원'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문파였으니 화정평의 말은 제법 아프게 의성문을 때린 것이었다.

    "무공을 사용하면 눈이 붉어지는 걸 감추려 했다는 걸 교묘하게 가리려 드는구나!"

    그래서 반발하는 의성문 무인의 말을 도진이 다시 끊었다.

    "아니, 거기에 왜 집착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터지기 일보직전으로 보이는 시뻘건 얼굴이 도진을 노려본다.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혈류를 가속하여 신체 능력을 높인다는 건 아예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부분 아니었던가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

    "어, 나 그거 어디서 배운 적 있는 거 같은데."

    무공이 없다면 그것은 허무맹랑한 소리가 된다.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하지만 무공이란 게 있기에, 그리고 아직도 과학으로 거의 설명되지 못하는 내공이란 게 있기에 '혈류 가속'은 그 내공을 더하여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어 버린다.

    "그건 마공도 뭣도 아니고 과학이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혈류를 가속하여 사용한 무공에 상대가 영향을 받는 거 말인데,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들이 구속한 흑도의 무인들. 말이 혈기가 머리까지 치달으려 했다지 사실은 과장한 거잖아요?"

    "……!"

    의성문의 무인들이 움찔했다.

    분명히 본 적도 없을 도진이 너무나도 확신에 차서 물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빙공(氷功)에 당하면 동상에 걸릴 수 있고 열양공(熱陽功)에 당하면 화상을 입을 수 있듯, 혈류공에 당한 사람이 그 영향으로 피가 좀 빨리 흐를 수도 있는 거죠. 그게 왜 마공이죠?"

    "……."

    부들부들…….

    의성문의 무인들은 속이 답답해 돌아버릴 것 같았다.

    심각하게 가져가야 할 문제를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쪽으로 말하니까.

    때문에 열이 오르니 도진이 왜 흑도의 무인들의 증상이 별 거 아니었다는 걸 알았는지, 확신했는지에 대해 묻지 못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여기에 또 도진이 선수를 쳤다.

    "그러고 보니 중국은 세계 무림맹에 가입돼 있죠?"

    "……?"

    "예, 맞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몰라 의성문의 무인들이 머뭇하는 사이 화정평이 답했다.

    도진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그럼 아예 여기서 세계 무림맹이 공인한 기관에서 테스트를 하면 되겠네요. 여기서 증명되면 뭐가 됐든 문제 없는 거잖아요. 그죠?"

    도진의 시선을 받으며 화정평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화정평은 짧은 시간만에 도진의 의도를 이해한 것이다.

    '저쪽의 무대'로 끌려가면 뭘 어떻게 하든 패배하겠지만 이쪽에서는 그런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원화문은 실제로 혈류공에 대한 검증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문파였다.

    지금까지는 비장의 한 수로, 흔히 말하는 '강호에서는 실력의 일부를 감추라'는 격언대로 혈류공을 감춰왔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감추어야 할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세계 무림맹이 공인한 기관에서의 테스트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으며 이로써 의성문의 억지를 대번에 무위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이 기회에 사실은 마공으로 여겨질까 두려워 혈류공을 더욱 지양했던 부분도 개선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명분을 잃은 의성문이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만다.

    "이익! 어디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냐!!"

    좋지 않게 흘러가는 상황에 의성문의 무인이 버럭 소리친다.

    그리고 음모론을 꺼내들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서서 주장하는 네가 저들과 한패일지 아닐지 모를 일이 아닌가!"

    "게다가 공인된 기관에서 검증을 해 보자고? 바로 그 공인된 기관이 원화문과 친한 의선약가 아닌가! 우릴 바보로 아느냐!!"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세계 무림맹에서 공인한 기관이 의선약가이긴 하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다른 곳에 가자고 해도 될 일이지만…… 그들의 억지를 깨트릴 수단은 얼마든지 더 있었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말하고 싶던 게 있었는데요."

    도진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의성문의 무인이 들고 있던 사진을 가리켰다.

    예의 근거라고 찍어 온 서적의 원본과 필사본의 사진이었다.

    "그거, 틀렸어요."

    "……!!"

    "어?"

    "뭐야. 저것부터가 사기였다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분노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던지 의성문의 무인 하나가 폭발하여 덤벼들었다.

    긴 소매에 가려졌던 손에는 수투를 끼고 있었는데, 끝이 미세하게 뾰족했다.

    그렇게 수투를 낀 손이 노리는 건 도진의 치명적인 요혈(要穴)이다.

    겉이 아닌 혈도를 노리는 듯 보였는데 이는 소위 '방어가 통하지 않는 무공'이라 불리는 혈도를 공격하는 의선약가의 점접공과 닮은 면이 있었다.

    허나 한 가지 명확한 차이가 있었으니 제압에 중점을 두는 점접공과 달리 의성문의 무인이 펼치는 무공은 살기(殺氣)가 진했다는 거다.

    도진은 팔꿈치를 노리는 의성문 무인의 공격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팔꿈치를 들이밀었다.

    "……!!"

    당황한 그는 투로가 어지러워져 제대로 된 점혈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닿은 손가락에 담겨 있던 내공은 도진의 혈도를 도는 천마기에 흔적도 없이 찢겨 버렸다.

    애초에 천마기가 휘도는 혈도를 점혈하겠다는 것부터가 어이가 없는 시도였다.

    "냐앙!"

    빠악!!

    그리고 이어진, 도진이 아니라 도진의 어깨 위에 있던 솜이의 '냥냥펀치'에 그는 훨훨 날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와!"

    "냥냥펀치!"

    지켜보던 이들의 탄성은 덤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동료가 꼴사납게 무력화되었으나 나머지 의성문의 무인들은 나서지 못했으니 이 짧은 한 번의 공수 교환만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도진은 파르르 떠는 의성문의 무인들을 마주하며 다시 말했다.

    "서적의 진위를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부정하는 건 그 서적의 해석, 그리고 주석이에요."

    "…우리의 해석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냐, 지금."

    더 이상 없을 모욕을 당한 얼굴로 그들은 이를 갈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성의 이름을 내건 문파에서 의성이 남긴 서적을 해석하여 지금껏 전한 것이다.

    한데 그게 틀렸다고 하니 어찌 모욕이 아닐 수 있겠는가.

    "네."

    하지만 도진은 단번에 그것이 틀렸다고 확답해 버렸다.

    "자신할 수 있느냐!!"

    으르렁거리며 외치는 기세는 제법 대단하여 확신이 없으면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도 않았어요."

    허나 도진은 확신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

    -쟤들 저거 오역 투성이인데?

    -글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수준이로구나.

    도진의 머릿속에 '원어민'이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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