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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75화 (475/741)

474화

냥, 하고 울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앞발을 드는 솜이에게 모두의 시선이 향한다.

"어……."

"이건 수영할 수 있다는 거죠?"

"응, 그렇지."

약리지의 질문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솜이는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들으니까.

"고양이가 원래 수영을 잘 하는 동물이었던가요? 물 싫어하지 않았나요?"

"응, 그렇지. 근데 얘는 고양이가 아니잖아."

"아, 그렇네요."

겉모습이야 귀여운 털뭉치 고양이지만 솜이는 고양이가 아닌 '설표(雪豹)'다.

본래 고양이가 워낙 물을 싫어한다는 게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아서 그렇지 고양잇과 동물 중에는 물을 좋아하거나 수영을 잘하는 동물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대표적으로 호랑이가 그러하다.

여기에 고양잇과라 할 수 있는 설표 솜이의 경우 물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수영도 수준급이었으니.

-설표는 수영을 아주 좋아하고 좋아하는 이상으로 수영 실력이 좋다.

이에 대해 위지혁이 말을 해 준 적이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녀석들은 내부의 양기를 식히기 위해 대부분이 천산에 살지 않았더냐. 그러니 천산설표라 불리던 것이고.

-예.

-그런 녀석들이니만큼 당연히 천산의 얼음물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

극양의 기운을 억누르기에 좋은 환경인 천산에 사는 녀석들이다.

여기에 더욱 도움이 되는 천산의 얼음물을 선호하는 게 당연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수영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되었다는 거다.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만, 아마 물이 있는 곳에 살았다면 수영도 적잖게 했을 게다.

"냐앙!"

솜이는 모이는 시선에 보여주겠다는 듯 귀엽게 울고선 망설임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참방-!

작게 물소리가 나고 고개만 빼꼼히 내민 솜이가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며 노닌다.

심지어 잠수까지 하는 게 이 정도면 오리보다 나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와, 진짜 잘하네."

"그러게요."

그 모습을 보다 문득 떠올랐다는 듯 성민혁이 말했다.

"어, 그런데 고양이 같은 애들은 귀에 물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녜요?"

"응…… 그렇긴 한데 영물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영물이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괜찮긴 해. 얘 머리도 매일 감거든."

"헐."

약리지의 추측에 이은 도진의 말이 모두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그렇게 솜이를 시작으로 모두가 물에 들어갔다.

배운 적 없는 수영을 이 기회에 체득하기로 했다.

도진은 제법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몸에서 힘을 뺐다.

둥실.

자연스럽게 몸이 떠오르고 물의 흐름이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호흡을 조절하며 팔다리를 움직여 보니 그 깨달음대로 자유자재로 몸이 나아갔다.

"수영, 어렵지 않네."

흐름에 따르는, 그리고 그 흐름을 의도대로 조율하는 이치에 따라 움직이니 저절로 수영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게요."

도진만이 아니라 모두가 수영을 배운 적이 없다고 했으면서 금방 수영을 터득하는 모습들을 보여 주었다.

천재에, 무공까지 연마한 이들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영의 기본은 간단히 말하면 호흡과 물에 뜨는 것, 그리고 나아가는 것이니까.

"냐아앙."

그렇게 도진이 여유롭게 물 위를 노니니 솜이가 등 위에 올라 가볍게 울었다.

"기분 좋아?"

"냐앙."

턱을 쓸어 주니 골골거리면서 기분 좋다는 듯 우는 솜이다.

환골탈태 후 솜이의 존재를 알린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솜이는 자신이 '위험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상당히 참고 양보해 왔다.

영물이란 본능을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위험한 맹수'가 아닌 지적 생명체다, 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가 귀찮게 해도. 심지어 약간의 선을 넘어도 솜이는 인내하고 이해하고 먼저 자리를 피하는 등의 노력을 하여 그것을 증명했다.

덕분에 이제 솜이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제약도 대부분 사라졌다.

그런 솜이에게도 힐링이 되길 기대하며 도진이 계곡에 함께 왔고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콰아아아아-!

다들 능숙하게 수영을 할 수 있게 되고 도진의 시선이 폭포로 향했다.

거센 폭포의 주변은 밑이 보이지 않는, 제법 깊은 규모의 호수 같다.

전생에서는.

그런 물가를 헤엄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두려워한 반면 한 번쯤은 그 아래를 헤첨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문득 그때의 욕망이 도진은 떠올랐고.

'하고 싶으면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곁에 있던 우서진에게 말했다.

"저기 폭포 밑에 말이야."

"네, 형."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한 번 가보자!"

악동 같은 도진의 얼굴에 우서진도 씨익 웃었고 어느새 벽태웅과 성민혁도 다가왔다.

"위, 위험하지 않을까요?"

성지인이 조심스레 말했고 약리지가 동의했다.

"선배니까 괜찮을 거 같긴 한데 굳이?"

"저 밑에 기연이 있을지, 드러나지 않은 동굴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는 건 우서진이다.

우서진의 발언에 성민혁의 눈도 반짝였다.

"와, 진짜 기연 있으면 어떡하죠?"

"그럼 대박인 거지! 가즈아!"

남자들이 모두 악동이 되어 폭포로 나아갔고 약리지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 이유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게 딱 그거네요."

그러면서 시선을 옆으로 향했는데…….

소담과 상미가 예쁘게 미소지으며 도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아."

약리지는 그렇게 한 마디를 하고선 이마를 짚었다.

평소와 다른 선배의 모습에 콩깍지가 더 강해진 모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기연이나 숨겨진 동굴 같은 건 없었다.

사실 그런 건 의선약가에서 이미 다 살펴봤단 말이다.

뭐 폭포 밑이 지극히 위험하다지만 여기 멤버들의 무공이란 요소가 더해지면 그렇지도 않았고.

아마 선배라면 폭포를 두 쪽 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약리지였다.

"햐, 이게 없네."

"그러게요. 이게 없네. 개발자들 일 안하나?"

다만 그저 '탐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던지 남정네들은 영문 모를 농담에 낄낄 웃으며 텐션이 올랐다.

"보트 탈 사람!"

"나! 나 타고 싶어!"

그리고 그 분위기는 곧 여성진에게도 전염되어 약리지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 웃으며 어울렸다.

고무 보트를 타고 물살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거나 튜브를 무슨 수상 스키처럼 타거나.

화룡점정은 상미였다.

"아, 그러고 보니 상미야. 수상비 해 볼래?"

"수상비요?"

"어."

수상비(水上飛). 말 그대로 물 위를 날듯 달리는 경공(輕功)으로 비주얼적인 임팩트가 말할 것도 없이 대단한 기술이다.

무협지에서는 엄청난 고수 정도는 되어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로 묘사하는데 현실에서도 그랬다.

수상비를 시전하기 위해서는 간단히 말해 내공을 발바닥의 용천혈을 통해 뿜어내고 그 반동을 이용하여 나아갈 수 있어야 했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으니까.

자연스레 구사하기 위해선 최소 초절정에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내공 운용 능력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상미는 좀 달랐다.

"바닥을 살얼음 얼 정도로 얼리고 그거 밟고 나가면 되지 않을까?"

"아……."

중2병을 좀 첨가하여 묘사하자면 얼음 속성을 띤 내공을 구사하는 윤상미는 그렇기에 그 속성을 이용하여 수면을 얼릴 수 있다.

넓게 할 필요도 없고 두껍게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잠시간 밟을 수 있을 정도로만. 한 번 밟고 뛸 수 있을 정도로만 얼린 뒤 그 언 곳을 밟고 뛰는 형식으로 수상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도진은 했던 거다.

다른 사람이 말을 꺼냈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겠지만 무려 도진이 꺼낸 이야기였다.

상미는 사명감을 가지고 수상비를 시도해 보았고.

"와!"

"저게 진짜 되네."

성공하여 박수 갈채를 받았다.

사실 이쪽도 웬만해선 엄두도 못 낼 내공 운용과 운동 능력이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수공(水功)과 수상비를 배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제자야.

-예, 스승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억누를 것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등 마음 놓고 웃고 떠들다 보니 점심 시간이 되었다.

"밥 먹을까?"

"네!"

도진의 말에 제일 기분이 업 돼 보이는 약리지가 손을 번쩍 들며 찬성했고 모두 모여 식사를 준비했다.

"고기는 저녁에…… 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지. 먹고 싶은 거 다 만들어 먹자!"

"찬성이요!"

가져온 물을 이용해 도진이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그 사이 상미와 클로에가 숙달된 손놀림으로 반찬을 준비하고 벽태웅은 고기 마스터의 특기를 살려 고기를 굽기로 했다.

그 외는 잡무 담당으로 움직였는데 처음 손발을 맞추는 것이었음에도 잡음이 없었다.

"부대찌개 다 됐어요!"

"밥도 다 됐어. 고기는?"

"소시지까지 다 구웠습니다."

"오케이! 먹자!"

"잘 먹겠습니다!"

일회용 그릇에 밥을 담고 반찬을 가져와 먹는다.

의자에 앉는 대신 불가에 둘러서서 조금은 불편하게 먹는데 그렇기에 특별했다.

"우리 밥만 먹지 말고 라면도 먹어요."

"그럴까?"

약리지의 제안에 따라 컵라면도 작은 것 하나씩 먹었다.

도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리지야, 그거 아니?"

"뭐요?"

"집에서 라면 먹으면 여기 맛 절대로 안 난대."

"진짜요?"

"어. 다들 그렇대."

이건 놀리는 게 아니라 진짜다.

도진도 경험은 없지만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안다.

TV에서 연예인들이 여행가서 둘러앉아 먹는 바로 그 라면의 맛.

그건 결코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도진은 전생에서 평생 그 맛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게 어떤 맛인지 알게 됐다.

* * * *

점심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장작을 자르거나 불을 피워둘 수는 없었기에 아쉽게도 캠프 파이어는 하지 못했지만 대신 플래시를 가운데 두고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누웠다.

-재미있었느냐?

스승의 물음에 도진이 눈을 감은 채 미소지으며 예, 하고 답했다.

전생에서 그런 경험을 했었다.

그 공장에 취직을 하고 회식 자리가 있었다.

신입으로서 빠지기엔 눈치가 보여 참석을 했는데, 크게 후회를 했다.

어디도 낄 수가 없었으니까.

겉으로는 환영해 주고 앞으로 잘 해보자고 술도 한 잔 건넸지만 모두 피상적이었다.

딱 체면치레를 할 정도로만.

그리고 도진은 마치 투명인간이 된 듯, 홀로 섬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끼고.

…술을 게워냈다.

술에 약한 건 부차적인 이유였다.

그저.

그렇게 덩그러니 놓여 있던 게 너무나 견딜 수 없이 괴로워서.

분명히 함께 있는데 지독하게 혼자였던 게 버틸 수가 없어서.

그리고 도진은 '짐짝'이 되어 퇴장당했다.

그 뒤로 도진은 상상했었다.

어떤 곳이든 무리 안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걱정을.

물론 이번 생에서는 그때와 같은 걱정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생각만큼은 했던 것이다.

이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상황이 되었을 때 실제로는 어떻게 될까. 어떤 감정을 느낄까.

경험은 하지 못해 알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 제대로 경험했다.

그저 자연스러웠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웃고 즐기고 떠들다 보니 하루가 가 버렸다.

그것이 너무나 즐거워서, 이렇게 겨우 1박 2일의 시간만을 지불함으로써 얻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생각으로 미소지으며 잠에 들려 했던 도진은.

……스윽.

조용히 눈을 떴다.

결코 이 자리에, 이 시간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감각에 잡혔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냄새.'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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