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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71화 (471/741)

470화

서글서글한 인상에 살집도 어느 정도 있는 남자다.

오래 무공을 수련했다는 걸 느껴지는 내공의 양을 통해 알 수 있었지만 그에 비해 경지는 낮으니 진지하게 무공에 매진한 사람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무공보다는 CEO로 유명했으며 어느 정도냐면 세계 단위에서 그를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은 만큼, 아는 것 또한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었다.

조건을 완화하여 얼굴은 몰라도 누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아, 이 사람이 그 사람이구나'라고 말할 사람.

바로 다국적기업 '넷비전'의 창업자이자 CEO가 바로 그였다.

넷비전.

인터넷의 발달로 대중화된 개인 방송과 함께 방송국의 쇠락을 가져온 다국적 OTT 기업이다.

텔레비전을 인터넷과 결합시켰다는 평가 그대로의 이름을 가진 이 회사는 이미 외국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1년 전 한국에도 진출을 하면서 방송가를 뒤흔들었다.

세계 500대 부자 안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며 그 영향력 또한 무시무시한 사람.

그러니까.

"크리스토프 뒤몽, 저 아이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

"허어억!!"

프레데릭과 가브리엘의 부모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신일강이 경악하여 입을 쩌억 벌렸다가 그런 스스로에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게 결코 웃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거물이란 소리다.

분위기에 민감한 아이들 또한 불안한 얼굴로 벌벌 떤다.

크리스토프는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도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리는 분노로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가 지독한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그것을 이제서야 알고 달려온 게 이 자리다.

아비로서 그 분노가 얼마나 대단할지, 부모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었다.

"내 아이에게 절망과 고통을 주었던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당신들은 알아야만 합니다."

크리스토프는, 그 분노를 조금이라도 알게 해 주겠다는 감정을 가득 담아 그렇게 선언했다.

* * * *

"고마워요, 소년. 소년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분노로 그 자리의 모두를 떨게 만들었던 세계의 거물은 호진이의 앞에서는 호의가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을 해 주세요. 내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호진이는 그 인사에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한 거니까, 인사 말고 다른 건 받지 않아도 돼요."

제법 의젓한 대답에 크리스토프의 호의가 깃든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런! 생각보다 더 대단한 소년이었군요. 그렇다면 더욱, 무언가를 드리지 않을 수 없겠군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하! 이건 내가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년도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호진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크리스토프였다.

"일단은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싶군요. 소년, 그리고 소년의 형이라고 했었지요. 나는 당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웅이라고 들었습니다. 저기 우리 프랑스의 영웅과 함께 제 식사 초대에 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토프의 식사 초대를 호진이는 거절하지 못했다.

여기에 도진과 클로에까지 포함되었는데, 클로에가 이 자리에 함께 있게 된 건 도진의 부탁 때문이었다.

"나 대신 오늘 호진이 마중 나가 주지 않을래?"

호진이가 요 근래 고민이 좀 있는 거 같다.

그걸 당연히 눈치챈 도진은 사생활을 파는 대신 마침 시간이 맞았던 클로에에게 돌아오는 길에 마중을 나가 넌지시 물어봐 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게 공교롭게도 일과 겹쳤던 건데 더욱 공교로웠던 건 사색이 되어 나온 비카르 가문의 사람들과 클로에 또한 면식이 있었던 거다.

그 자체는 우연이 아니었다.

덴젤 공방은 프랑스 최고의 공방이었으니 귀족이자 군벌에 속해 있던 비카르 가문의 사람들과 클로에 덴젤이 안면이 있는 건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 덴젤 공방의 '공주님'이 호진이, 그리고 도진과 친밀한 모습이었으니 생각지 않게 그들에게 또 한 번 절망적인 충격을 주게 되었다.

그런 일들이 있었던 다사다난한 하루가 저물고 도진은 호진이에게 있었던 일을 들었고 나지윤에게 그 뒤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호진이의 사생활을 존중해 자제하고 있었던 부분을, 이제는 일이 다 끝났으니 자세하게 들은 것이다.

나지윤은 '어휴, 이 동생바라기 같은 놈'이라는 바른 말(?)을 날리고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뭐, 일단 근본적인 원인은 신일강 이사장의 미숙함이었지."

사업 계획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계획만 좋았고 경험이 없었던 재단의 사람들은 실전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고 여러가지 파탄이 있었으니 그로 인해 생긴 일이었다.

애초에 비카르 가문과 호진이 등 드러난 것에만 신경을 쓰고 그 외엔 주먹구구식이었으니 래미가 넷비전 CEO의 아들 '래미 뒤몽'이란 것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래미가 그저 수강료를 낸 것만으로 등록을 마쳤으니 말이다.

"래미 뒤몽이 호진이에게 했던 이야기는 대부분 사실이야."

래미 뒤몽의 어머니는 래미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크리스토프 뒤몽이 충격에 일에만 몰두하고 가정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한 가지, 크리스토프 CEO가 아들을 미워한 건 아니었어."

크리스토프는 아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에 단 하나 남은 혈육으로 생각했다.

"그저, 그 표현에 서툰 사람이었던 게 문제였지."

부모라고 해서, 아버지라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 또한 대부분은 미숙한 한 명의 사람이다.

다만 그 미숙함이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되면서 메꿔지는 거다.

비카르 가문의 부모와 달리 이 부분에 관해서 도진은 크리스토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와 달리 나는 나이를 먹어도 몸만 크지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그랬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면서 바뀌는 거라고.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그러지 못했던 거다.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내를 잃으면서 온전히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던 거라고.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를 이번에 가지게 되었으니 이 부분만큼은 긍정적이라 보았다.

"그건 그렇고, 크리스토프 뒤몽이라니. 진짜 세상 일 모르는 거네."

"하하. 그러게."

프랑스도 아니고 한국에서, 그것도 클로에를 통해서도 아니고 호진이를 통해서 이렇게 안면을 트게 될 줄이야.

나지윤의 말대로 세상 일은 모르는 것이었다.

"맛있는 거 먹고 와."

"그래. 고맙다."

* * * *

식사 약속을 한 날이 되어 도진은 클로에, 그리고 호진이와 함께 약속 장소인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제가 같이 가는 게 조금은 어색하네요."

그저 그 자리에 있다가 함께 가게 된 클로에가 말했다.

도진은 하하 웃었다.

"크리스토프 CEO랑도 아는 사이 아니야?"

"파티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눈 적은 있는데 그걸 아는 사이라고 하기엔 어색하네요."

"뭐 어때. 초면인 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도진이 직접 슈킨팍시를 운전하여 15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안에 들어서니 크리스토프가 아들 래미와 함께 벌써 앉아 있었다.

"어서오세요."

크리스토프의 환영에 도진이 답했다.

"조금 더 일찍 왔는데, 저희보다 오히려 더 일찍 오셨네요."

"하하. 좋은 만남은 기다리기 힘든 법이니까요."

크리스토프는 과연 대단한 사람답게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고 화기애애한 대화 속에서 식사가 진행되었다.

래미 또한 생각보다 더 밝은 얼굴이었는데, 크리스토프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그 결과가 긍정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싫어하셨던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날 자신을 위해 분노하는 모습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었으니 마음을 열고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다.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나왔다.

그 디저트 시간에 도진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크리스토프, 제가 제안드려야 할 게 하나 있어요."

"음? 어떤 제안입니까?"

도진이 곁에 앉은 호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호진이가 말했거든요. 그 아이들이 다시는 래미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고."

크리스토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랬지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래미가 방학 기간만이라도 우리 잠룡문에서 무공을 배웠으면 합니다."

"예?"

예상치 못했던 제안에 크리스토프가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리스토프는 호진이의 그 말이 이미 지켜졌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도진은 물론이요 호진이의 기준에서도 아직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도진이 말했다.

"래미는 조금 더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럴 수 있는 건강한 육체를 가지도록 해 주었으면 싶거든요."

"아……."

래미가 입을 살짝 벌렸다.

그리고 크리스토프가 하하하, 웃었다.

"그렇군요. 그런 약속이로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크리스토프는 이건 정말로 대단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이토록 순수하면서도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호의는 처음이었으니까.

다른 의도가 없는, 그리고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한 호의라니.

그래서 크리스토프는 식사 후 만든 도진과 둘만이 있는 자리에서 준비해 온 제안 중 하나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꺼내야만 했다.

"이것은 사소한 보답이면서 동시에 넷비전의 CEO로서의 사업 제안입니다. 특혜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업 제안이니 부담없이 들어주십시오."

그러면서 크리스토프가 하는 제안은 다름 아닌 정글 게임에 대한 투자와 송출이었다.

"어떤 것을 해드리면 좋을까 싶어 조금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눈에 띈 것이 정글 게임이었습니다. 그 아이템은 분명히 매력적이었고 저는 가능성을 보았기에 진지하게 계약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음."

그것은, 예상 외의 제안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크리스토프가 '특혜'가 아닌 정식 사업 제안으로 정글 게임에 대한 투자와 송출 계약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방송국과의 협업이 결렬되고 플레이버 또한 생각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기에 바른 엔터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려고 했던 프로젝트.

"아직 한국에서 우리 넷비전에 관해 믿음을 가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아니, 아닙니다. 크리스토프."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도진은 크리스토프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크리스토프가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프. 나는 당신의 넷비전이 지금보다 더 성공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과 넷비전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무언가 다른 게 걸리는 것입니까?"

이를테면 크리스토프는 아니라고 했지만 특혜라고 생각한다거나.

도진은 크리스토프를 마주하며, 흔쾌히 수락하지 못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사실은, 이미 제안을 넷비전에 했었거든요."

"예?"

"그리고 거절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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