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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69화 (469/741)

468화

본래 호진이는 겁이 많고 조금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아는 게 병이라고, 많이 아는 만큼 그것이 고스란이 겁으로 이어지기도 했었다.

전생의 호진이는 가족에게는 결코 말하지 않았고 티도 내지 않았지만 그 성격 때문에 제법 고생해야 했다.

다만 천재답게 스스로의 단점과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해 나감으로써 잘못 꿰었던 첫 단추부터 풀고 새로 잠그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생은 그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육체를 단련했다.

도진이 알려준, 천마신교 교주의 혈육들에게 허락된 연호신공은 호진이에게 건강한 육체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고 그것이 앎으로써 무서운 것들을 무섭지 않게 해 주었다.

그래.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 호진이는 겁과 소심함 대신 자신감과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천재성과 앎을 추구하는 성격이 연호신공의 뛰어난 성취를 이루도록 했다.

그러니까 표정을 구기며 덤벼드는 불량아들을 마주하여 첫 실전에서도 겁먹지 않고 차분하게 가진 것들을 발휘하여 압도, 승리를 차지했다.

"이, 새끼가!"

내려다 보는 호진이의 시선에 자빠진 놈들이 눈가가 붉어진 채 씩씩거리며 일어났다.

오히려 수준이 낮았기에 방금 상황에서의 격차를 인지하지 못하고 싸구려 자존심을 챙기려 드는 것이다.

호진이는 얼마든지 그 자존심을 다시 뭉개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삐이이익-!

2차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강생들 간에 싸움은 규칙 위반입니다!"

식당에 대기하고 있던 '가이드(Guide)'들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주최측에서 배치한, 쉽게 말해 온갖 업무를 다 도맡은 어른들로 식당의 안내와 주문에 관한 도움 등의 업무를 수행하던 그들이 싸움을 말리기 위해 개입한 것이다.

일진 꼬마들은 어른들의 개입에 움찔하더니 이내 호진이를 한 번 노려보고선 도망쳐 버렸다.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게 제법 비참한 꼴이다.

가이드들은 굳이 학생들을 잡지 않았다.

그저 호진이에게 사정 청취를 듣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호진이는 그렇게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가이드들에게 말했다.

"기왕 개입하실 거면 새치기를 못하게 막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

가이드들은 거기에 대꾸하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어수선함이 남은 가운데 주문을 마친 호진이가 맡은 테이블로 윌리엄이 릴리와 함께 다가왔다.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 초등부가 가장 먼저 특강이 끝나고 거기서 20분 뒤 중등부가, 그리고 또 20분 뒤 고등부가 마치는 시스템이었다.

이래서 초등부뿐이었던 식당에서 그 일진 꼬마들이 당당하게 새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 있었어?"

어수선함의 중심이 호진이임을 파악한 릴리가 물었다.

호진이는 웃으며 아까 있었던 일을 들려 주었다.

"헤에, 그랬구나. 그래서 걔가 인상 쓰면서 돌아갔구나."

'걔'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래미를 괴롭히는 무리의 중심인 아이일 것이었다.

일진들 간에도 급이 있으니 줄을 맡으러 왔던 건 그룹 내에서 심부름을 도맡은 하위층의 일진이었던 거다.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릴리가 또 물었다.

"앞으로 귀찮아질 수 있는데 괜찮겠어?"

호진이는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되든 겁나지 않으니까요."

호진이의 대답에 릴리가 예쁘게 웃었다.

"응응, 그렇지. 도진 오빠 동생이 그런 걸 겁낼 리가 없지."

* * * *

오후 특강 시간.

화풀이를 하듯 일진 꼬마 무리들은 래미를 소리없이, 그러나 집요하게 괴롭혔다.

호진이의 시선이 향하자 더욱 과시하듯 괴롭혔고 래미는 호진이의 시선을 모른 척했다.

그리고 다음날.

호진이는 정식으로 새치기에 관한 문제를 건의하였고 시정하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호진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 김도진'의 동생이라는 걸 그들이 잘 알고 있었기에 즉각 피드백이 온 것이다.

다만 일진 꼬마 무리들의 반응은 볼 수 없었으니 그들이 결석을 했기 때문이다.

호진이는 그 이유를 간단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했던 거겠지.'

이런 특강에 아이들을 보낼 정도 되는 집안이면 아이들에게 그만큼의 교육을 해야만 한다는 걸 알 것이다.

그러니까 망나니 아이를 억지로라도 엘리트 교육에 보내려 할 것이었고 이 특강을 신청했을 거다.

아이들은 부모의 강압에 이틀 정도는 어떻게 나왔으나 3일은 버티지 못하고 결석을 했겠지.

그리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호진이는 격리되었던 래미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래미."

"……."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래미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호진이 주도하여 자리를 만들었다.

"…무슨 용무야."

완전히 어두워진 채 고개를 숙인 래미에게 호진이가 말을 골랐다.

"부모님에게 말씀은 드려 봤어?"

다 알기에 한 번 더 생각하여 그렇게 묻는다.

친구도 경찰도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지만 그렇기에 이런 특강에 아이를 보낼 만큼의 힘이 있는 부모라면, 어른이라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래미는 더욱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나를 낳으면서 돌아가셨대."

"……."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싫어하시는 거야. 나보다 일에 몰두하시지. 그러니까 말해 봐야 소용이 없어."

포기한 얼굴로 래미는 호진이를 마주했다.

"나에게 참견하지 마. 참견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우리는 곧 안 보게 될 사이고 그렇다면 차라리 참견하지 않는 게 날 도와주는 거야. 괜히 걔들을 자극하면 나만 더 힘들어 지니까."

호진이는 거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반박하기엔, 호진이로서도 답을 찾기가 너무 어려운 문제였으니까.

그 말에 틀린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것은 알면 알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문제다.

"안녕."

래미는 인사하고서 떠나 버렸다.

* * * *

그리고 또 다음날.

일진 꼬마 무리 중 몇이 호진이에게 수작을 걸었다.

스윽-

들고 있던 우유를 호진이의 위에서 들이부으려 했다.

식당에서의 일과 거기에 대한 호진이의 시정 요청이 소문으로 퍼져 나갔고 아이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걸 결석 다음날 알게 되자 복수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호진이는 당해주지 않았다.

툭!

퍽!

가볍게 우유를 뒤집으려던 손목을 쳐 주었고 우유는 손목의 주인인 꼬마의 얼굴에 처박혔다.

"악!"

"빌어먹을 새끼가 진짜!"

뀐 놈이 성낸다고 얼굴에 우유 마사지를 하게 된 놈이 도끼눈을 뜨며 덤벼들었다.

호진이는 앉은 채 상체를 가볍게 기울이는 것만으로 주먹을 흘렸다.

그리하여 고스란히 코앞에 열린 녀석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

녀석은 입을 쩌억 벌린 채 소리도 내지 못하고 상체가 꺾였다.

그리고 호진이가 녀석을 가볍게 밀어내니 마치 쭉 당긴 고무줄이 튕기듯 달려들던 다른 두 녀석에게 부딪쳐 함께 나뒹굴었다.

꾸당탕!

"뻐킹!"

축 늘어진 녀석 밑에 깔려 허우적거리며 일어나려는 두 녀석을 호진이가 농락하듯 이마를 밀어 계속 자빠뜨렸다.

"그만해, 이 개자식아!"

여기에 기습적으로 뒤에서 달려든 다른 녀석을 유도를 하듯 그대로 업어쳐 덩어리에 포함시켰다.

삐이이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순회하던 가이드의 호각 소리와 함께 싸움은 거기서 중단되었다.

분명히 다수였던 아이들이 먼지에 엉망이 된 꼴로 씨익거렸고 혼자였던 호진이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깔끔한 모습이었다.

"…수강생들 간의 싸움은 규칙 위반입니다. 다음에 한 번 더 적발되면 안내문이 발송됩니다."

가이드는 그렇게 말하고서 가 버렸다.

호진이는 식당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그들을 이해했다.

위에서의 지침과 고용인으로서 할 수 있는 범위.

그것을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걸 알았으니까.

저번엔 그걸 알지만 적극적이지 못했던 그들에게 한 소리를 한 것이었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호진이 또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으니까.

* * * *

그건 분명히 영악하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무리에서 가장 무공이 세면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가정에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래미를 괴롭히던 무리는 '리더'의 명에 따라 더 이상 호진이를 도발하지 않았다.

소 닭 보듯 모르는 척하고 시비도 걸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복한 건 아니었으니 보란 듯이 래미를 더 괴롭혔기 때문이다.

호진이가 그걸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걸 알아챘기에 그것으로 도발하고 먼저 덤비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문제가 되면 책임 소재를 따질 거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래미가 호진이의 편을 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들에게 굴복당했고 결국 그들과 가까이, 오래 지내야 한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래미는 괴롭힘을 당하는 중에도 호진이를 거부하는 시선을 줄곧 보냈고 만약 문제가 터지면 호진이를 위해 증언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호진이가 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거야."

릴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 누군가를 구한다는 건 그런 거다.

결코 간단하지 않다. 너무나도 어렵다.

당장 이번 일을 알린다 해도 저 아이들이 얼마나 처벌을 받을 것이고 그 처벌의 효과는 얼마나 갈 것인가.

이번 특강 이후로 호진이는 래미를 만날 수 없을 것이지만 저 일진 꼬마들은 래미와 같은 학교를 다니니 결국은 다시 볼 것이다.

호진이는 천재였기에, 그렇게 넓은 시야로 문제의 거대함을 인지했고 그렇기에 쉽사리 나설 수가 없었다.

그것이.

호진이는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고민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런 고민이 계속 되던 어느 날.

일진 꼬마 무리들이 호진이의 앞에서 보란듯이 가방을 여럿 맨 래미를 끌고 가고 있었다.

호진이와 눈을 마주하며, 입꼬리를 올려 비웃으며.

그리고 호진이는 결심했다.

녀석들이 래미를 끌고 간 공원 으슥한 곳으로 들어갔다.

"뭐야, 저 동양인 놈."

"어디 우리가 노는 곳에 더러운 동양인 놈이 끼어드는 거야. 안 그래, 래미?"

"더러운 수작 부리지 마. 겁쟁이 녀석들아."

"…뭐야?"

"맞잖아, 너희. 겁쟁이 녀석들. 덤빌 용기는 없고 덤벼도 못 이기니까 이런 비겁한 짓을 하는 거잖아."

"새끼가!"

스윽-

목소리만 높이는 녀석을 제치고 앞으로 나서는 건 이 무리의 리더인 녀석이다.

언제나처럼 비싼 것들을 두른 녀석은 호진이를 정면에서 마주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너, 진짜 주제 파악 못하는 구나. 이러면 뭐가 해결될 거 같아? 네가 영웅이 될 거라 생각하는 거야?"

녀석은 얼마든지 호진이와 싸워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건 그래봐야 얻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부모의 감시와 규제만 더욱 심해질 뿐.

그래서 이렇게 번거로운 형태로 도발을 했는데, 딱 걸려들었다.

여기엔 보는 눈이 없으니까.

흠씬 두들겨 패고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쪽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동시에, 몸만이 아닌 마음도 두들겨 줄 생각이었다.

"래미는 앞으로 널 아주 많이 원망할 거야. 네가 나타나지 않는다에 건 친구들이 많거든. 내기에 진 아이들은 래미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게 될 거야."

"……."

넌 그걸 못 막잖아?

그러니까 왜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멍청하게.

녀석은 그렇게 호진이를 힐난했다.

요 며칠간 호진이가 그것을 고민하며 나서지 못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 힐난에.

호진이는 오히려 녀석을 비웃으며, 답을 찾은 얼굴로 받아쳤다.

"막을 건데?"

"뭐?"

"막을 거라고. 너희가 다시는 래미를 괴롭히지 못하게 막을 거야."

"하! 네가? 무슨 능력으로?"

"나는 못해. 하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뭐라고?"

눈을 크게 뜨는 녀석에게 호진이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우리 형한테 말할 거야."

"뭐?"

"우리 형한테 다 말할 거라고."

그리고 답을 찾은 호진이의 호쾌한 주먹이 작렬했다.

빠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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