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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67화 (467/741)

466화

강나철은 얼이 빠진 얼굴이 되었다.

워낙 믿을 수 없는, 나올 수가 없다 생각했던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써 정신을 다잡으며 확인을 위해 물었다.

"투자금을…… 돌려 주시겠다구요?"

"예. 다행히 아직 작업에 착수하지 않았으니 혼선없이, 투자금을 돌려드리는 것으로 깔끔하게 협업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겠네요."

"허, 허허……."

애써 웃는다.

이것은 여유를 되찾기 위함이자 이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상대가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닌가 압박감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김 대표님."

"네, 강 본부장님."

"지금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계시는 거겠지요?"

"불쾌하네요. 저는 지금 바른 엔터의 대표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건데요. 그런 걸 물으시는 건가요?"

"하하……."

강나철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지금 내 앞에 있는 게 바른 엔터 대표가 아니라 정말 어디 세상 물정 모르는 고딩을 하나 데려온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어이없는 부분은 다 떼고서 일단 지금 이 프로젝트의 '갑'은 분명하게 방송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콘텐츠'라는 건 TV를 통하여 세상에 소개되고 소비된다.

인터넷이니 개인 방송이니 하는 것들이 득세를 하고는 있지만 어찌되었든 그 중심은 TV라는 말이다.

특히 대형 콘텐츠라면 더더욱 TV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TV를 통해 우선 소개되고 거기서부터 사람들에 의해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것이니 TV란 뿌리이고 뿌리가 없는 나무, 콘텐츠는 결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뿐인가.

엔터 업계 또한 TV없이는 돌아갈 수가 없는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였기에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나설 수 있었다.

굽히는 건 예능국장으로 충분했다.

그걸로 제법 좋은 걸 가지고 있는 '을'의 기분을 맞춰주었고 이제 궤도에 올랐으니 본격적으로 우리도 이득을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이었는데 이 을이란 놈들이 너무 머리가 굳어선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퇴짜를 놓는 것이다.

아, 이거 옛날 영선 엔터 놈들이 여기저기 떠도는 놈들이 모인 근본없는 곳이라 그런지 머리가 굳은 놈들이 많다더니 그놈들이 고스란히 눌러앉은 바른 엔터 또한 마찬가지구나.

강 본부장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차라리 대표를 불러오라고 했다.

그래도 사업하는 무림인이라면 좀 오픈 마인드겠거니 하고.

그런데 아니었다.

이건, 아예 진짜 한 마디로 '끝판대장'이었다.

뭐? 협업을 관둬?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는 건 협업을 관두겠다는 겁니다. 협업을 관두겠다는 건…… 정글 게임을 우리를 통해 송출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분명히, 이해하고 계시는 거지요?"

그래. 그것이다.

뿌리없이는 콘텐츠라는 나무가 살 수가 없는데.

너희들이 우리없이는 안 될 텐데 정말로 그런 선택을 하겠다고?

말이 안 되잖아.

그러니까 눈 깔라고.

그런 의지를 가득 담아 강 본부장은 도진을 강렬하게 쏘아 보았고.

피식.

도진은 가볍게 웃고선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네. 서로가 잘 알고 있으니 긴 말은 필요가 없겠네요. 투자금은 바로 반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좀 바빠서요. 다음에 좋은 기회로 또 인연이 닿았으면 좋겠네요."

어. 어어어?

강 본부장은 상상도 못했던 일에 바보처럼 입을 헤 벌렸고 그 입이 닫히기 전에 도진은, 바른 엔터는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이…… 씨발?"

* * * *

"우리 대표님 화끈한 노빠꾸이신 건 잘 알고 있었는데, 정말로 이렇게 한 방에 질러 버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괜히 더 끌어봐야 우리만 약해 보이는 거죠."

"그렇기야 하죠."

여규열은 도진의 화끈함을 좋게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사이다'와 별개로 현실은 조금 고민해야 할 '고구마'가 박스 채로 쌓여 있었다.

방송국 하나와 척을 졌다는 건 당장은 미뤄두고 싶다.

당면한 문제의 경우 간단히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방송국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다른 방송국과 협업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정글 게임의 체급은 쉽게 말해 '주말 황금 시간대 예능'이다.

그러니까 지속을 하려면 그만큼의 대접을 받으면서 들어가야 했고 그러기 위한 '준비'를 해야만 했다.

정말 간단한 그림을 이야기하자면, 잘 진행하고 있던 프로그램 하나를 밀어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말이 쉽지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다.

설령 한다고 해도 멀쩡히 굴러가던 프로그램을 쳐내고 들어가는 그림이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방송가에서 그렇게나 중요한 '이미지'를 망치고 시작하는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로 준비를 계속 해왔던 판이 깨진 지금 새로운 판을 만들기 위해선 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그것은 규모만큼이나 정교하게 짜여진 일정을 엎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안 될 말이다.

이미 예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또 상당한 시간을 끄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정에 지장이 가지 않는 기한 내로 콘텐츠를 송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재수없는 본부장 놈도 그렇게 당당하게 깽판을 쳤던 거다.

여규열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에 도진이 말했다.

"플레이버랑 한 번 이야기를 해 보죠."

"플레이버요? 음……."

플레이버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포털 사이트다.

갑자기 나온 그 이름에 여규열은 꽤 오랜 시간 고민하는 얼굴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여규열의 말에 도진 또한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웹 예능이란 게 대박을 친 세상이다.

바른 엔터 TV가 그러했고 도진의 전생에 성공했던 웹 예능 또한 이번 생에도 대박을 침으로써 완전히 블루오션이 되었다.

블루오션치고는 성공한 웹 예능이 여전히 한 손에 꼽힌다는 게 문제이긴 한데…… 그래서 더 좋다.

정글 게임이 이 블루오션에서 초대박을 한 번 터뜨리는 그림이 제법 좋지 않겠는가.

하물며 웹 예능이라고 하면 시간대의 충돌을 포함한 대부분의 문제가 한 방에 사라진다.

플레이버가 팍팍 밀어주면 그로 인한 시너지와 서로의 이득도 기대해 볼 만하고.

계산을 마친 여규열이 걱정이 싹 싸라진 밝은 얼굴이 되었다.

"그럼 한 번 추진을 해 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안 하겠답니다."

드물게도 잔뜩 찡그린 얼굴이 되어선 돌아왔다.

도진도 이건 좀 예상 외여서 물었다.

"안 하겠다고요?"

"예. 아예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지 미팅도 말단이 나왔습니다. 아오, 이것들……."

'흐음…….'

무형독의 심술이, 혹은 영향력이 생각보다 더 컸던 걸까.

아니면 하필 담당자가 시류를 읽지 못하는 사람, 혹은 이쪽의 가능성을 그리 크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던 걸까.

정글 게임에 대한 평가 여부를 떠나서 말단이 나왔다는 것부터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뭐 어느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진은 대표로서 여기서 나아갈 다른 길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래서 대안을 바로 제시해 주었다.

"그럼 우리끼리 하죠."

"예? 우리끼리요?"

눈을 크게 뜬 여규열에게 도진이 평소와 같이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네, 우리끼리요. 못할 거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이미 바른 엔터는 '드래곤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예능 전문 제작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운용 중이었다.

그 첫 작업이 바로 정글 게임인 것이다.

믿고 맡길 만한 인재의 부족이 아쉽다는 것 말고는 성황리였으니 도진의 말대로 단독으로 정글 게임의 제작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다만…….

"걱정하지 마세요. 굳이 짱짱한 게스트들로 화면을 채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방송국이나 심지어 웹도 아니고 '개인 채널'에 정글 게임을 업로드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네임 밸류가 높은 연예인들이 섭외에 응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두 가지의 문제가 여규열은 크게 걸렸다.

하지만 도진은 다르게 생각했다.

이미 콘텐츠의 중심은 TV에서 웹으로 넘어올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다만 그 계기가 없었을 뿐.

그리고 도진은 전생에서 그 계기와 변화를 보았었다.

TV에서만 볼 수 있었던 대형 예능을 '대기업 너튜버'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고 그것이 그야말로 초대박을 쳤다.

그럼으로써 TV에서 너튜브가 아닌, 반대로 너튜브에서 TV로 진출하는 스타마저 탄생했다.

그 일로 언론에서 정식으로 '콘텐츠의 중심이 너튜브로 옮겨갔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TV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명백하게 그 영역 축소의 신호탄이 되었던 '합방 대형 예능'.

그 역할을, 도진은 이 기회에 정글 게임이 맡도록 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마침 도진은 개인 채널은 물론이요 바른 엔터 TV라는 좋은 무기를 이미 가지고 있기까지 했다.

"헤에, 괜찮을 거 같아."

"응, 나는 우리 아빠 매니저님 믿으니까!"

안티체리와 레드슈, 그리고 이은지까지 소속 아티스트들은 도진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도진이 단칼에 방송국을 손절해 버린 건 '과한 요구'에 그녀들까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든 걸 책임질 생각으로 테이블을 엎어 버린 도진에 대한 지지는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은지의 절친이자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된 대기업 너튜버 유애라도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요즘 다 TV보다는 인터넷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저는 성공할 거 같아요."

"그렇죠?"

"네!"

그리하여 정글 게임은 TV가 아닌 너튜브를 통하여 공개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여기에.

"정은정 국장님?"

갑작스레 방문한 정은정은 도진에게 어깨의 힘을 푼 얼굴로 웃고선 말했다.

"사표를 내고 왔습니다. 혹시, 일손이 필요하시진 않습니까?"

"…안 그래도 능력있는 도비가 어디 계시진 않을까 하던 차였습니다."

"…도비요?"

"환영합니다."

* * * *

조직에 실망한 업계의 베테랑이자 마당발인 정은정이 드래곤 스튜디오에 합류하고 정글 게임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도진은 거기에 굳이 개입하지 않았다.

도진이 개입하지 않아도 믿고 맡긴 사람들이 잘 해 줄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파악하고 있는 흐름은 순항 그 자체였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부분이라면 안티체리의 오랜 팬이었으며 이제는 어엿한 방송인인 모델 출신의 손정혁이 합류했다는 것일까.

본인의 강력한 의지를 소속사에서 받아줘서 그 소속사의 다른 식구와 함께 합류했다.

안티체리의 큰언니인 설현주가 그런 손정혁이 워낙 기특해 꼬옥 안아줬는데 정신을 못 차렸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가 그렇게 기가 허해서야. 나중에 헬창 게임에 참여시켜 줘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업무를 처리하던 도진은.

뚜르르르르-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네."

-아, 안녕하십니까. 김호진 학생의 형 되시는 김도진 문주님의 전화 맞습니까?

도진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예. 그게, 김호진 학생이 폭력 사건에 관계되어서요. 출석을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스으으으으…….

도진에게서 기세가 일렁인다.

만약 전화가 그 기세까지도 전달할 수 있었다면, 전화를 건 이는 머리가 새하얘져 숨쉬는 것마저 잊었을 것이다.

그런 무시무시한 기세와 달리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도진이 물었다.

"호진이가 가해자인가요, 피해자인가요?"

-그게…….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가 망설인다.

그러나 대답을 미루거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이내 실토했다.

-호진 학생이, 가해자입니다.

그 대답에 도진의 기세가 가라앉고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렇군요. 좋은 일이군요."

-예?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아, 그.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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