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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64화 (464/741)
  • 463화

    도진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안민선의 수행원들이 뒷걸음질 쳤으며 고용된 무인들 또한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그들이 옳은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론을 나열할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민선이 틀렸고 안민선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건 제 무덤 파기밖에 안 된다는 것을.

    그러니까 그들은 공포를 이기고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거리를 좁히는 잠룡문과 무림 전담 타격대, 그리고 무림맹 무인들 앞에서 도망치거나 안민선을 외면하지 않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이성을 유지하고 나설 수 있었던 건 당사자이자 인생이 걸린 꼴이 된 안민선뿐이었다.

    "모두 멈추세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기세를 담아 외친다.

    범상치 않은 기세와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안민선에게로 향했다.

    "무슨 이유로 무림 전담 타격대가 여길 찾아온 겁니까?"

    출동한 무림 전담 타격대의 대장이 나서서 답했다.

    "1급 수배령이 내린 대마두의 목격 정보를 입수하고 출동한 겁니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마두……."

    안민선과 무림 전담 타격대로 이어졌던 시선이 자연스레 안지오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불쾌함과 혐오로 바뀌었으니 여전히 그 냄새가 진하게 나는 탓이다.

    동시에 겨우 가려진 안지오의 사타구니가 검게 물들어 있던 걸 떠올린다.

    "의원님의 저택에서 나왔던 대마두가 사람들에게 목격되자 다시 저택으로 숨어든 것을 확인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우리가 그 마두를 숨겨 주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불쾌하군요! 정 수색하고 싶다면 영장을!"

    "지랄도 적당히 하시죠."

    "헐."

    "으헉."

    일부러 말을 복잡하게 하여 시간을 끌던 안민선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지켜보던 이들은 감탄을 내뱉고 낄낄거렸으니 지켜보던 도진이 핵직구를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지, 지금 뭐라고……."

    "지랄도 적당히 하라구요."

    "어디서 그런 상소리를!"

    도진은 항의하려는 안민선의 기세를 썩둑 잘라 버리듯 말했다.

    "무림의 흉악범을 잡기 위해서라면 선 조치 후 보고가 가능하지 않던가요? 그런데 뭔 영장이요. 그딴식으로 시간 끌어서 마두가 도망치면 책임질 겁니까? 아니, 이미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네. 혹시 한패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 그래요? 그러면. 혹시 수색하면 안 되는 곳이라도 있나봐요? 켕기는 게 너무 많으신가?"

    "……!"

    안민선이 입을 뻐끔거렸다.

    도진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뭔 생각을 하면서 발악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아줌마."

    '아, 아줌마!'

    "당신 이미 끝났어요. 그 마두가 찍은 영상 진짜잖아요. 그러면 저 범죄자 새끼랑 같이 찍힌 거, 그 쳐죽여도 모자랄 짓거리들. 어떻게 해도 덮을 수가 없단 말예요."

    "누가 범죄자 새끼야!"

    격앙한 안민선이 귀신 같은 얼굴로 도진과의 거리를 좁힌다.

    누구도 제지하지 않아 안민선은 도진의 앞에 섰고.

    "누가 범죄자 새끼긴. 저 인생 끝난 새끼지."

    탁!

    도진의 뺨을 노리던 손이 가볍게 막혔다.

    그 손을 막은 도진은.

    짜아아악!!

    망설임없이 안민선의 뺨을 후려갈겨 버렸다.

    "헉!"

    "미친."

    상상을 뛰어넘은 행동에 모두가 또 경악했다.

    허나 당사자인 도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요즘 법이 좋긴 좋아요. 무림인한테 선빵치면 되돌려 줄 수 있으니까 말예요."

    일반인이 무림인에게 먼저 무력을 행사하면, 무림인은 생명의 위협이나 장애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반격을 할 수 있다.

    반대로 무림인이 먼저 일반인에게 무력을 행사하면 무시무시한 가중 처벌을 받는데 이런저런 논쟁이 과거에도 격렬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법률이다.

    배경 등이 어찌되었든 그런 법이 있었기에 도진은 적극 활용해 준 것이었다.

    도진이 나가떨어진 안민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들이 그런 소리 듣는 게 싫었으면 똑바로 교육했어야지. 오히려 범죄를 덮어 주고 도와줘 놓고선 왜 화를 내는 거야? 당신 아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쳤는지는 생각 안 해 봤어?"

    "……."

    안민선은 대꾸하지 못했다.

    도진의 말에 죄를 인지하고 부끄러워져서가 아니라, 갑자기 숨이 턱 막혔기 때문이다.

    모든 게 끝났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죗값을 치를 시간이야. 절대로, 싸지 않을 거야."

    * * * *

    엄청난 뉴스가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았다.

    순혈 정치인들의 중심이라던 안민선과 그 안민선의 아들로 장차 대통령까지도 될 인물이라 평가받던 안지오가 엮인, 그것도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사건이 일어났다.

    안지오의 은밀한 취미가 여성들을 스토킹하고 심지어 직접적인 위협까지 하여 얻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자위를 하는 것이라는 게 드러났다.

    직접 스토킹을 하거나 위협하진 않았지만 흑도의 무인들을 부려 대대적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얻었으니 그 죄질이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악질적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그런 아들의 행동을 어머니이자 정계의 거물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안민선이 말리기는 커녕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증거가 너무나 명확함에도 오히려 거짓말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이내 불같이 분노했다.

    -야 안민선 불체포 특권 행사하려 했다던데?ㅋㅋㅋ

    -와 진짜 프로 십새끼는 달라도 다르구나 ㅋㅋㅋ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는 불체포 특권이란 게 있다.

    쉽게 말해 범죄를 저질러도 체포당하지 않는 특권이다.

    본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필요하고 또 중요한 특권인데 안민선은 그걸 악용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쥬? ㅋㅋㅋ

    -바로 의원직 박탈당하고 구치소행 ㅋㅋㅋ

    허나 그 시도는 대번에 무력화되었으니 그만큼 안민선과 안지오의 상상도 못할 만큼 악질적인 범죄가 널리 알려졌으며 국민들의 분노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제 식구를 감싸다간 불이 옮겨 붙어 재도 못 남길 판이라 대번에 손절을 당하고 일사천리로 수사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또 화제가 된 것이 예의 1급 수배령이 내린 '대마두'였다.

    다크나이트다, 아니다 흉악 범죄자 대마두다 말이 많았었는데 겉잡을 수 없이 퍼진 영상으로 인해 여론이 많이 기울었다.

    -그 다크나이트가 업보라고 했잖아.

    -ㅇㅇ 안지오 그 새끼 때문에 자살한 피해자도 있다면서.

    -안민선 그 국썅이 수사 뭉개서 충격 받아 자해한 사람은 열 명이 넘음.

    대마두를 그저 잔인한 소시오패스라 치부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바로 그 대마두가 직접 카메라를 달고 찍은 듯한 영상이 그대로 퍼지면서 여론이 바뀐 것이다.

    바로 그가 피해자와 깊이 연관된 사람이 아닐까 하고.

    그렇다면 범죄에 연루된 이들을 그런 꼴로 만든 것 또한 정당한 복수이지 않느냐는 거다.

    실제로 도진은 그런 생각으로 행동했었다.

    현생에서 만약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면 모르겠지만 현생에서도 마찬가지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으니 그 업보를 직접 갚게 만들어 준 것이다.

    안지오와 안민선 또한 마찬가지다.

    흑도의 무리들보다는 '조금' 나은 몰골이지만 그 속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 ㅋㅋ 영상 진짜 시작부터 임팩트 오져 버림 ㅋㅋㅋ

    -ㅋㅋㅋ 밤꽃맨의 분출ㅋㅋㅋㅋ

    -밤꽃맨 ㅇㅈㄹ ㅋㅋㅋ

    널리 퍼진 영상에서 허연 액체를 뿌려 버리는 모습.

    그리고 손에 그 허연 액체를 범벅으로 만드는 모습, 중요 부위가 시커멓게 물든 상태로 덜렁거리는 모습 등이 여과없이 찍힌 영상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버렸다.

    그야말로 인과응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안지오와 안민선은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저 국썅것들 꾀병 부리는 거 봐라

    -시바 ㅋㅋ 휠체어는 진짜 사이언스다 ㅋㅋㅋ

    사람들은 그걸 꾀병이라 욕하고 심지어 격앙한 이들은 계란에 돌까지도 던져댔다.

    그 돌에 맞아 안민선이 피를 토하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 동정해주지 않았다.

    그것은 꾀병이 아니었지만, 설령 진짜로 아픈 것이라 인정받아도 사람들의 의견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정성스레 해체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진이 몸 성히 둘을 보내주진 않았다.

    침기(沈氣)를 주입해 신체 기능에 치명적인 장애가 남도록 했다.

    안지오는 사타구니를 통하여, 그리고 안민선은 뺨을 통하여 주입한 것이다.

    서서히. 시간을 들여 조금씩.

    그러나 평생을 더욱 심해지는 불편에 적응조차 하지 못하고 고통받으며 살게 될 거다.

    그것이 도진이 직접, 하늘과 법을 대신하여 안지오와 안민선에게 내린 벌이었다.

    -끌끌. 결국 성에 차는 벌을 내렸구나.

    -둘 다 잡으려 했으니까요.

    위지혁의 말에 도진이 답했다.

    그래,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도살'은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렁하게 죄의 근원인 안지오와 안민선을 징치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느낌'을 좀 달리했을 뿐 벌만큼은 확실히 내린 것이다.

    그 느낌의 변화는 효과적이어서 주변에서는 더 이상 도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도진아!"

    "응, 소담아."

    벚꽃보다 예쁜 소담의 미소로 하루를 시작하고.

    "어서오세요, 선배님."

    "응, 안녕."

    인연을 맺은 후배들과도 정겹게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어. 그래."

    신입생인 이문호 패거리 삼인방을 마주했다.

    감우상이야 원래 그런 놈이고 이번 난리에서 벗어나 있다지만 이문호와 태종훈의 표정도 나쁘지 않은 게 시선이 가는 부분이다.

    이문호는 생각을 좀 깊게 하면 이해가 간다.

    수족인 대호문이 이번 사건에 휘말려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다지만 오히려 호재인 부분이 있으니까.

    명분이라지만 대호문이 너무 커져 의천검가가 가만두지 않을 거라던 대호문주의 동생이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호문의 의천검가에 반기를 들었던 이들이 싹 쓸려 나갔다.

    자연스레 그들과 함께 대호문의 전력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준으로 약화되었다.

    심지어 여기에 대립하던 순혈 정치인들의 중심이던 안민선까지 몰락하지 않았나.

    의천검가에서는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으니 그 의천검가의 후계로서 태종훈을 '친구'가 아닌 그저 수족으로 여긴다면 겉으로야 표현하지 않아도 호재라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호문은 좀 다르지 않은가.

    어찌되었든 식구였고 이번 일로 인해 가문이 반토막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훈은 표정 관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덤덤한 얼굴이었으니 이는 놀랍게도, 아버지이자 문주인 대호문주와 장로들이 회의에서 이를 호재로 여기고 활기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두었다면 대호문은 정말로 둘로 쪼개져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예, 그랬지요. 그걸 반동분자들을 쳐내는 걸로 수습한 데다 의천검가와의 사이는 더 돈독해졌으니 전화위복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군요."

    후계자의 자격으로 참석한 가문의 회의에서의 분위기가 그랬다.

    태종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아버지와 장로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그게 맞겠지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의견을 주도한 이들의 중심이자 대호문의 문주 태무진이 문주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문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앉아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쉽게 되었군요, 태 문주.

    "예. 오래도록 공을 들인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한둘이 아닌 여럿과 화상을 통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신풍회의 회주 카자카미 노보루였기에, 이 모임이 다름 아닌 무형독의 모임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이 화상 회의의 목격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 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는 인물 또한 존재할 수 없었다.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김도진. 그놈이 얽혔군.

    "예. 이쯤 되면…… 김도진 그놈이 하늘의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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