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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63화 (463/741)

462화

외부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안지오는 취미에 매몰되고 있었다.

쉽게 하는 착각들이 있는데, 화려한 삶을 사는 이들이 시간을 '낭비'할 거라 생각하는 거다.

사실은 그 반대다.

위에 사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쉼없이 발버둥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버둥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만 다른 이들을 밟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

안지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에게 정치를 배우고 그를 위해 시간을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왔다.

외부에서 보이는 이미지를 다듬기 위해 언변, 외모, 무공을 가꾸었고 그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잠을 줄이는 건 기본이었다.

그것이 당연한 삶을 살았던 안지오이기에, 거기에 투자되던 대부분의 시간이 남는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이때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케어를 좀 해줬다면 나았을 텐데.

안지오의 어머니 안민선 또한 외부에서의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 아들에게 시간을 써 주지 못했다.

요 근래엔 수족으로 성실히 움직여 주었던 대호문이 은살문 게이트에 엮여 많은 부분이 비어 버린 탓에 더더욱 바빴고 안지오는 혼자서 집 안에 처박혀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아야만 했으니.

슥슥슥슥.

자연스레 처박힌 방에서 접하기 가장 쉬운 자기 위로에 매몰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마찬가지로 안지오는 취미를 즐기기 위해 방을 가득 채운 여러 대의 모니터에 온갖 사진과 동영상을 띄워 놓고 몰두하고 있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무공에 소홀하고 양기를 토해내기 바빴던 안지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워낙 해대다 보니 이젠 쉽게 쾌락을 얻기도 힘들어 반쯤 억지로 손을 움직이던 그는 가까스로 쾌락에 도달할 수 있었고.

"가관이구나."

"……!!"

갑자기 뒤에서 들린 서늘한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후두둑.

"……누, 누구야."

쾌락이 선을 넘어 분출된 새하얗고 역겨운 것이 허공을 날다 떨어졌고 그 경로에 있던 낯선 목소리의 주인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모습을 본 안지오는 두 눈을 부릅떴다.

바지춤을 추스를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경악했으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것에 둘러싸인, 그리고 그 안의 윤곽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모습이 마치 '사신(死神)' 같았기 때문이다.

꺼림칙하다.

피부에 우둘투둘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우면서도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시커먼 존재.

본능적으로 사신이란 두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며.

"너, 너, 너."

"맞아. 곧 찾아갈 거라고 했잖아. 많이 기다렸어?"

"히이이익!!"

쿠당탕!

안지오가 내렸던 바지춤에 걸려 나자빠졌다.

사신, 도진은 그런 모습을 비웃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왜. 못 올 줄 알았어?"

"어, 어, 어떻게."

횡설수설, 그것도 혀가 제대로 돌지 않아 문장이 되지 못했지만 도진은 그 뜻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여길 들어왔냐는 거다.

뭐,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나쁘지 않은 보안이긴 했다.

안민선의 저택은 저택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규모에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어쨌든 '단독 주택'의 범주에 있었다.

그러니까 흔히 침입하기 어려운 곳하면 떠올릴 만한 그런 곳과는 거리가 먼 외관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하까지 이어지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땅을 파들어가지 않는 한 오직 정해진 루트로만 들어갈 수 있는 지하에 중요한 것들을 보관했고 정밀한 계산으로 철저하게 사람을 배치했다.

그 지하의 벽은 웬만한 폭탄으로도 뚫을 수 없었으며 그런 수준의 폭탄을 동원하려 하면 그 순간 이미 들킨다.

침입? 단조로운 길에 사각없이 배치된 경호 무인의 경계를 뚫는 건 일반적인 수준으로는 불가능했으며 설령 그것이 가능한 '진무(眞武)'를 구사할 수 있는 무인이라 해도 감시 카메라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 수준은 심지어 도진마저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인들은 사신공과 무흔잠영의 이치에 따라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선을 잇지 않고 사신공의 침기를 운용하여 존재를 완전히 지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감시 카메라는 그게 안 된다.

사람의 눈과 감각은 속여도 감시 카메라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부수면 그 즉시 상황실에서 경보를 울릴 테니 이 또한 쓸 수 없는 방법.

이 정도나 되니 안지오는 안심하고 취미에 몰두할 수 있었다.

허나 감시 체계는 완벽하지 않았다.

안지오는 물론이요 안민선과 보안팀은 알지 못했다.

안지오가 심복에게 받은, 컴퓨터에 꽂았던 USB가 '트로이의 목마'였던 것을.

답청문의 역작인 USB는 상상을 뛰어넘는 공작을 통하여 안지오의 손에 들어갔고 컴퓨터에 꽂힌 순간 컴퓨터를 장악했음은 물론이요 그 자체로 허브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고립되어 있던 안지오의 컴퓨터를 외부와 연결함은 물론이요 이를 통하여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던, 역시나 독자적으로 운용되던 보안 시스템까지도 탈취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 보안실에서는 답청문에서 보낸 거짓된 영상을 보고 있다.

도진이 쓰러뜨린 경호팀 무인들의 모습이 아닌 다른 영상을.

도진은 그런 이론을 이야기하는 대신 다른 이유를 말했다.

"업보란 말이야."

"……."

뚝뚝, 무시무시한 업보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네가 지금껏 해 왔던 일들의 업보. 그 업보가 이제서야 돌아온 거야. 지금껏 쌓였던 만큼 거대하게."

"너와 네 어미가 지금껏 쌓고 만 그 업보를, 감당할 각오는 되어 있을까?"

꾹.

안지오는 대답하는 대신 공포에 절은 몰골로 천천히 기어 이윽고 도착한, 책상 밑에 은밀하게 설치되어 있던 버튼을 눌렀다.

경보를 울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버튼이다.

도진은 그 수작을 다 보고 있으면서도 제지하지 않고 비웃었다.

"그러니까, 헛수고라니까? 그거 암만 눌러도 도움은 안 와. 어쩌나? 이대로면 너 정육점 돼지처럼 해체되게 생겼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오오오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소리에 안지오는 절규하며 바닥을 기었다.

훅-

그리고 갑자기 서늘해진 아랫도리에 뚝, 움직임을 멈추고 아래를 보았고.

"으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질렀다.

소중한 부위가 색이 시커멓게 변해선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빨리 치료해야 할 걸? 안 그러면 점점 커져서…… 썩어 문드러질 거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걸?"

"아아아아악!!"

거짓말이다.

그냥 침기에 잠식당한 부위가 육안으로 식별되도록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거짓말을 안지오가 눈치챌 상황이 아니었으니 그저 공포에 비명을 내지르기 바빴다.

도진은 그런 그를 천천히 괴롭히려는 듯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고.

"아."

갑자기 멈칫했다.

워낙 시선을 끄는 행동이었기에 안지오는 자연스레 시선을 향했고.

'저, 저거.'

자신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흩뿌린 체액을 보았다.

도진은 그 체액에 얼굴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춘 것이었다.

'…….'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그런 시도는 물론이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었기에.

사신, 대마두에게 당한 이들이 어떤 꼴이 되었는지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안지오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동했다.

"이야아아아아!!!"

피를 토할 듯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앞으로 돌진하는 대신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에서 뒷처리를 했던 휴지들을 꺼내…….

꾸우우우욱!

양손으로 쥐어짰다.

"……."

"끼야아아아앗!!"

그리고 그제서야 돌진했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도진은 혐오감 가득한 소릴 하며 몸을 물렸고 안지오는 덤비는 대신 그대로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팡!

꾸당탕탕!

가볍게 날린 지풍(指風)에 다리를 타격당한 안지오가 나자빠졌다.

안 그래도 팬티와 바지가 다리에 걸려 불편하던 상황이었으니 넘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이익!!"

안지오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를 악물고 팬티와 바지를 네발로 기며 벗고서 다시 필사적으로 달려 나갔다.

도진에게 당해 널부러진 경호 무인들의 모습에 바깥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다 판단한 것이다.

도진은 그걸 붙잡는 대신 천천히 걸었다.

어서 도망가 보라는 듯이.

그리고 안지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저택에서 사라졌다.

굳이 쫓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놈의 앞에 남은 건, 지옥뿐이었으니까.

"응. 시작하면 돼."

* * * *

"이, 이게 무슨 냄새야?"

만찢남이 백주대낮에 시커멓게 물든 사타구니를 덜렁이며 달린다는 충격적인 상황에 굳어 있던 중에 누군가가 그런 소리를 했다.

워낙 침묵이 두터웠기에 그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하게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고 이내 그 내용을 인식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 어."

"이, 이거……."

사람들이 경악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그 냄새'였다.

쉽사리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단어.

그 냄새가 너무나 진하고 선명하게 풍기고 있었으니 그 근원은…….

"……."

바닥에는 끝이 없다.

밑에는 그 밑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황에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말을 잃었다.

다만 이번엔 말을 잃은 침묵이 아닌 경멸과 경악의 침묵이었다.

"어, 어머니!"

"…옷. 옷 가져오세요."

말로 못할 꼴로 달려온 아들의 모습에 안민선은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려 노력하면서 말했다.

오랜 세월 명령에 단련되어 있던 수행원 중 일부가 자신의 옷을 벗어 안지오의 몸을 가렸다.

그리고.

"어, 이거 뭐야?"

"낚시 아니야?"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으니 그들이 휴대폰으로 보고 있던 온갖 커뮤니티와 실황 중계 개인 방송 채팅창에 수상한 주소가 떴기 때문이다.

-안지오가 저 꼴이 된 이유 영상 링크.

수상하다.

너무나 수상하다.

눌렀다가 돈이 빠져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사람이란 호기심을 이기기 힘든 동물이었으며 개중엔 뒷일을 생각지 않고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 이왜진?

-영상 진짜 맞음 ㅋㅋㅋㅋㅋㅋㅋ

영상이 진짜라는 것이 입증되었고 모두가 영상을 보게 되었다.

-가관이구나.

-누, 누구야.

어두운 방 안에 온갖 범죄의 흔적을 띄워 놓고 욕구를 푸는 더럽기 짝이 없는 모습.

그리고 그 더러운 욕구를 분출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공개되었다.

-아이 시발.

-이거 완전 개새키 아냐 이거?

"저거 진짜 개새끼네."

"저거 쳐 죽여야 되는 거 아니냐?"

인터넷에서 그치지 않고 비난의 목소리가 현실에서도 높아진다.

갑작스레 향한 시선과 비난에 안지오가 덜덜 떨었고 안민선 또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웨에에에에엥-!!

"무림 전담 타격대입니다!"

그리고 무림 전담 타격대와 무림맹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영상이 공개되기 전부터 신고가 들어갔던 것이다.

안민선의 충성스런 아랫사람들이 반사적으로 저택 입구를 막았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출입하려면 허가를 받고 오세요!"

우스운 일이었다.

그 우스운 꼴은.

두, 웅-!

갑작스레 현장을 내리누르는 거대한 기운에 기세를 잃었다.

"어, 어?"

"기, 김도진이다……!"

모두의 시선이 잠룡문의 문도들이 있던 방향으로 향했다.

거기에, 잠룡문의 무인들 사이를 천천히 걷는 도진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오오오오오오오……!

흉포하고도 거대한 기운이 안민선의 저택 정문에 가까워진다.

스크럼을 짜 무림 전담 타격대와 무림맹 무인들을 막아섰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도진은 천천히 걸으며, 그들 뒤에서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는 안지오를 노려보며 말했다.

"더러운 범죄자 새끼 감싸고 돌다 다쳐도, 보험 안 되는 거 아시죠?"

웃고 있었지만, 올라간 입꼬리의 날카로움이 막아선 이들을 모조리 난도질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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