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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62화 (462/741)

461화

안민선은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는 것이 많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비서가 보여 주는 영상을 다시 보았다.

샘이 날 정도로 결이 좋은 까만 머리카락을 올려 묶은 어려 보이는 여자를 필두로 하여, 간결하지만 그래서 더욱 중후해 보이는 검은 무복을 맞춰 입은 무인들이 당당하게 거리를 걷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름 있는 무가(武家)나 무파(武派)의 경우 그들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장식을 가지는데 잠룡문은 특이하게도 그런 게 없었다.

다만 간결하기에 더욱 장인의 섬세한 손길이 돋보이는 디자인에 또한 단순히 검지 않은, 척 보아도 범상치 않은 검은색이 시선을 잡아끄는 무복으로 차별화했다.

'소여은.'

그래서 안민선은 대번에 이들이 잠룡문임을 알아보았고 선두에 선 이가 암산서가 출신의 소여은이라는 것 또한 대번에 알아보았다.

정계의 거물이라는 게 폼만 잡고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녀 또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고 지식의 범위 또한 넓었으니 요즘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잠룡문 소속의 인물인 소여은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10분 전의 영상입니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하는 잠룡문이었지만 이렇게 단체로 길거리를 과시하듯 걷는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안민선은 그 의도를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시선을 모으겠다는 거지.'

소여은은 맡은 일에 비하면 대중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허나 그 뒤에 함께 걷는 서소담, 클로에 덴젤, 윤상미는 유명해도 너무 유명하다.

그런 이들이 완벽하게 장비를 갖춰 입고 단체와 함께 걷고 있으니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으며.

-어, 뭐야 저거?

-흑도 찌꺼기 같은데.

심지어 제대로 제압을 당한 몰골의 흑도 무인 둘을 끌고 가고 있으니 단순히 시선이 모이는 걸 넘어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웅성웅성-!

…그러니까 이렇게, 그들이 멈춰선 안민선의 저택 앞이 소란스러운 것이다.

그녀의 집무실은 바깥에선 안을 볼 수 없지만 안에선 바깥을 볼 수 있는 통유리로 되어 있다.

집무실로 자리를 옮긴 그녀의 눈에 창밖으로 기세를 내뿜으며 정문 앞에 도열한 잠룡문 무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어쩔 TV의 저쩔입니다!"

"보이십니까, 난리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리고 몰려든 벌레 떼까지도.

까득-

절로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천것들을 달고 와서 무력 시위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할까요?"

비서가 조심스레 묻는다.

처음 워낙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표정이 잠시 무너졌던 그녀는 생각과 자료를 정리하고선 말했다.

"나가도록 하죠."

정문에 선 그들은 안민선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뻔하지만 효과적인 수법인 '지금 안 계십니다' 같은 응수도 가능은 하겠지만 시선이 이렇게나 모인 상황에서 그랬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날 확률이 컸다.

잠룡문은 특히나 여론을 움직이는 힘이 강하다.

"…알겠습니다."

마침 저쪽의 대표가 소여은 같은 애송이이니 차라리 잘 됐다.

잠룡문주 김도진도 아니고 잠룡문의 안주인이라는, 오성에 당당하게 사표를 내고 나온 오성아도 아니다.

그 오성아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는 애송이 따위.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급 자체가 맞질 않는다.

평소라면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지만, 그러니까 아주 철저하게 박살을 내 자신이 누구인지 수많은 시선들 앞에서 보여줄 생각이다.

"아들. 나오지 마. 알겠지?"

-예, 어머니.

아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안민선이 나섰다.

무공의 경지는 처참하지만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서는 안민선의 기세는 절정 고수 못지 않으니 인생을 통하여 자연스레 깃들고 연마한 본연의 기세다.

"나왔다!"

"안민선이다!"

건방지기 짝이 없게 이름을 외치는 구경꾼들의 목소리가 거슬린다.

그러나 티내지 않으며 안민선은 정문이 열리길 느긋하게 기다려 소여은과 마주했다.

정계의 거물 앞에 여전히 동안인, 심지어 유약해 보이는 인상의 소여은이 선 것은 밸런스가 영 맞지 않아 보인다.

안민선은 한껏 엄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일로 예고도 없이 이렇게 남의 집 앞에서 무력 시위를 하고 있는 겁니까? 잠룡문의 정식 행사인가요, 이건?"

소여은은 물러서지 않고 답했다.

"네. 정식 행사입니다. 안민선 의원님, 그리고 아드님의 잘못을 따지기 위해 왔습니다."

안민선의 얼굴이 더욱 굳는다. 일부러 그렇게 연기했다.

"저와 지오의 잘못을 따지러 왔다구요?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소여은의 기세가 밀린다. 하지만 소여은은 굳이 그 기세를 밀어내려 애쓰지 않으면서 할 말을 했다.

"네. 증인을 확보했거든요."

"오."

"증인이래. 미친."

주변의 잡음이 안민선의 신경을 계속 거슬리게 한다.

그러는 사이 잠룡문의 무인이 꼴이 말이 아닌 흑도의 무인 둘을 앞으로 끌고 왔다.

안민선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당하지 못한 폭력을 행사하여 데려온 이들은 아닙니까?"

"요즘 유명한 다크나이트라고 불리는 분이 보냈다고 자백했어요."

"…그 흉악한 대마두 말입니까?"

"네. 그 분이 잠룡문으로 가서 잘못을 고스란히 자백하라고 보냈다면서 증언을 하더라구요."

"……."

또 그 새끼다.

싸한 느낌이 드는데 백주대낮에 구경꾼이 한가득이라 어떻게 행동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무런 방해없이 소여은이 말했다.

"개종자, 아 죄송합니다. 아드님이 사주해서 문주님이 대표로 계신 바른 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을 허락없이 몰래 촬영해 왔다고 해요. 그렇게 몰래 찍은 사진들을 아드님에게 보냈다고요."

"헐."

"미친. 실화냐."

"그, 이상한 단어가 들린 거 같은데?"

부글부글.

속이 끓는다.

허나 거기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으니 안민선은 표정 관리와 함께 꺼낼 말을 골라야 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예요. 그러니까 아드님이 몰카 같은 범죄를 이 사람들한테 사주했다는 거죠."

"말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안민선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했다.

"흑도의 무법자가 하는 말을 지금 곧이곧대로 믿고 쳐들어와 지금 그런 소리를 한단 말입니까! 우릴 음해하려는 목적입니까?!"

강하게 밀어붙인다.

어떻게든 그런 구도로 만들어 잠룡문이 실수를 하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소여은은 그런 안민선의 공세에 여전히 저항할 생각이 없는 얼굴로,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

"우리가 왜요?"

"뭐, 뭐요?"

"우리가 왜 아까운 시간을 써서 안민선 의원님을 음해해요."

"무슨 소리를……."

워낙 당당하게 그렇게 물으니 목 뒤를 잡을 뻔했다.

그렇게 안민선의 혈압을 올리며 소여은이 말을 이었다.

"문주님이 많이 화나셨어요. 이 쓰레기가, 죄송. 아니, 쓰레기 맞으니까 안 죄송해도 되죠?"

"……."

"어쨌든 이 쓰레기가 말하기를 안지오가 시켜서 바른 엔터 소속 아티스트들과 연습생들을 몰래 촬영했다고 해요. 아시죠? 문주님이 바른 엔터 아티스트들 아끼시는 거. 게다가 연습생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문주님 동생이란 말예요."

"와, 미친."

"김도진 동생을 몰카했다고?"

"죽고 싶으면 그냥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할 때 그 위에 올라타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게 되냐구요? 몰루."

낄낄거리며 개소리를 하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다급한,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야 했다.

소여은이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건들면 안 되는 걸 건든다.

몰래 사진을 찍은 걸 받아서, 건들면 안 되는 걸 건드렸다는 위기감과 긴장을 흥분으로 바꾸어 즐기던 게 아들이라는 걸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으니까.

평소에 워낙 잘 해서 그냥 두었는데.

그런 식으로 성장하는 거라 생각해서 그냥 두었는데.

그것이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도가 지나치군요. 흑도 범죄자의 말만 믿고서 그걸 사실인 것처럼 무력 시위를 하다니. 그냥 넘어가진 못할 겁니다."

"거짓말이라면 그렇겠지만…… 이건 사실인 걸요.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건 맞는데, 혼나야 하는 건 다른 쪽일 거예요."

'일일이……!'

바락바락 대드는 게 아니라 기세에 밀리면서도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게 더욱 사람을 화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감정과 별개로 이 자리만큼은 넘길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아까부터 계속 '증인'이 언급되고는 있지만 동시에 '증거'는 언급되지 않고 있으니까.

저 천한 심부름꾼 따위가 증거를 가지고 있을 만큼 허술하게 일처리를 하지는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녀 쪽에도 증거는 없다.

아들의 방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아들의 방 컴퓨터는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으니 그 자료가 외부로 유출될 일은 없으며 출입 또한 불가하다.

"와, 쩐다. 근데 이러면 안지오 방 공개하면 끝 아니냐?"

"그러네. 누구 말이 맞는지 패 까보면 되잖아."

"공개해라!"

"그래. 공개해라!"

지켜보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안민선의 얼굴이 굳고 수행원 중 한 명이 버럭 소리쳤다.

"이곳은 안민선 의원님의 저택입니다! 누가 감히 함부로 공개를 강요한단 말입니까!"

그로서는 충성심의 표현이었겠지만, 그것은 최악의 한 수였다.

"특권 의식에 절어 있으시네요."

"뭐요?!"

"국회의원이란 국민을 대표해서 일하는 자리 아닌가요? 그런데 국민에게 '감히'라는 단어를 쓰다니, 저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네요. 국회의원이란 국민의 위에 서는 신분이었던가요?"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큰 실수를 했군요. 어서 사과드리세요!"

"그, 그…… 죄송합니다. 실언을 했습니다."

험악한 분위기와 위기를 안민선이 넘겼다.

수행원의 실언으로 대번에 판이 엎어질 위기였는데 안민선이 주저없이 사과를 함으로써 수습을 해낸 것이다.

말이 쉽지 이런 상황에서 망설임없이 사과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과연 인물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안민선의 노력으로도 이미 결정되어 있던 파멸을 막을 순 없었으니.

"어, 어?"

"저, 저거 뭐야?"

돌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쪽으로 시선이 모조리 쏠렸다.

"헉!"

"미친?"

사람들이 일제히 경악하는 가운데 누군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누군가는 결코 놓쳐선 안 될 장면이란 생각에 본능적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들었다.

장엄한 저택을 배경으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계의 젊은 용이자 만찢남으로 불리던, 세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던 남자였다.

"허헉! 흐헉! 흐에엑!"

지금 그 남자가 꼴사나운 얼굴로 꼴사나운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집 정원을 내달리고 있었다.

안민선은 그런 아들의 행동에,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화를 내지 않은 게 아니라 낼 수가 없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으니까.

"…뭐야, 저거?"

잘 가꾸어진 안민선의 저택 정원.

그 정원을 '만찢남' 안지오가 알몸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덜렁이는 그의 사타구니가, 검게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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