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461화 (461/741)

460화

본래 준비한 작전의 목표는 간단하고도 명확했다.

안지오와 그에 동조한 것들의 철저한 파멸과 징벌.

편지를 보내어 예고를 하고 동태를 살폈다.

그리하여 확인한 결과 그 추악한 취미는 안지오 개인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그 어머니이자 보호자인 안민선까지 넓어졌다.

안지오 개인의 영역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가문 단위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작전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징벌을 목표로 짜여졌다.

안지오에서 그치지 않는다.

관련자들, 그리고 안민선까지도 너무나 가벼운 처벌인 죽음에서 그치지 않고, 살아서 볼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지옥을 보여 주려 했다.

만약 그 의도를 타인이 알았다면 정계의 거물을 상대로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의문부터 갖겠지만 그건 도진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소리다.

과거 멍청한 숭무고의 학생 하나가 도진의 가족을 언급했다가 경고를 들었었다.

그리고 도진의 눈을 통하여 그 안에 깃든 '미증유의 공포'를 보고 오줌을 지리지 않았던가.

그래.

도진의 울타리 안을, 그것도 심지어 '음지'에서 노리려 들다니.

터무니없는 짓거리였다.

음지는 도진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양지의 모든 것이 그들을 지켜 주는 단단한 벽이라는 걸 몰랐던 것이, 안지오에게 있어 가장 큰 실책이었다.

경고를 함으로써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게 했다.

그 시간과 함께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시간을 낭비함으로써 발생하는 손해가 더욱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도진의 손해. 그러니까 단단한 방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진은 단순한 초절정 고수가 아니라 사신(死神)의 제자였으니까.

그들 따위가 얼마나 대단한 준비를 하든.

사신의 집행을 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피를 말리며 하나둘씩, 벌을 내려야 할 것들을 처단한다.

처음부터 중심을 노리지 않는다. 일부러 가장 외곽부터.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숨통을 옥죄어 간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어서야 안지오와 안민선을 '해체'한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고 숨을 쉬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식사가 불을 삼키는 것보다 고통스러울 것이며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것 역시 머리가 새하얗게 바래 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죽지 못한다.

혼자 죽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그 혓바닥부터 시작하여 모두 제거해 버릴 거니까.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안 될 이유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쓰레기라는 말조차 아까울, 도살해야 할 것들에게는 그 어떤 인권도 존중도 필요 없으며 오로지 극한의 벌만이 어울렸으니까.

천마신교의 교리에도 어긋남이 없다.

천마신교는 벌해야 할 자들을 벌하지 않는 하늘과 법을 대신하여 스스로 징치하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이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이 흔들렸던 건.

도진이 그저 천마신교의 교도가 아닌 소지존이었으니까.

장차 지존이 되어야 했으며 주변에 모인 이들의 인도자요 우산이요 그늘이요 보호자가 되어야 했으니까.

타의가 아닌 자의로.

가족에게 있어 이상적인 장남이 되고 싶었듯 자신의 주변에 모인 이들에게도 도진은 '이상적인 지존'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위취련은 말했다.

아직 소지존이니까 괜찮다고.

우리가 과욕을 부리고 있는 것이니 그것을 자비롭게 다 받아줄 필요가 없다고.

그땐 고개를 끄덕였지만…… 욕심이 강해져 버렸다.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 그 이상을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위취련이. 위연서가.

그리고 스승의 날이라고 정성껏 도진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내밀던 '제자들'이 생각하는, 아니 그 이상의.

이상적인 천마가 되고 싶었고 그 마음이 조금 더 강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결정한 것이다.

둘 다 잡는다.

안지오와 안민선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지옥을 보여 주겠지만, 그러면서도 모두가 걱정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하나를 위해 하나를 포기하는 건 도진의 스타일이 아니다.

둘 다 잡아야 만족할 수 있는 도진이었고 그 외의 선택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가부를 논하지 않는 도진의 날카로운 미소에 나지윤은 어쩐지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오케이. 이틀만 기다려."

* * * *

안지오에게 있어 피를 말리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안민선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그녀와 연이 있던 이들 다수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공통점은 은살문을 부렸다는 거다.

결코 신분을 노출시키거나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은 완벽할 수 없는 법이고 그렇게 드러난 '천려일실(千慮一失)'로 인하여 혹시 들켜서는 안 될 것이 드러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정치란 게 그렇다.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집단'으로 넓게 보아야 하는데 그 집단 중 자신의 집단이 흔들리고 있으니 안민선 또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기에 아들이다.

제대로 미친, 그러나 '대마두(大魔頭)'라 해야 할 놈이 들러붙어 스케쥴을 무엇 하나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고 집안 전체를 경계하느라 어마어마한 부담이 되었다.

은살에 심부름을 맡긴 적이 있는 건 안민선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특히 아들과 관련된 일이 많았으니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칠까 눈에 핏발이 설 지경이다.

그게 벌써 일주일이 넘어 이주가 가까워졌으니 누적된 손해가 복구에 얼마나 걸릴지 아득해질 지경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가진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그놈의 마두를 도륙내 버리고 싶다.

하지만 안민선은 그럴 수 없었으니 '음지의 일'을 양지로 가져와 손해를 보는 건 오히려 그녀였고 주변이 소란스러우니 일을 추진하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흔들리고 있는 안민선의 저택을 나온 안지오의 심복이자 대호문의 무인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떠냐."

가문으로 돌아온 그를 맞이해 준 아버지에게 고개를 저었다.

"초상집 비슷합니다."

무인에겐 결코 좋지 않은 담배를 피우며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하나라도 터지면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

댐을 무너뜨리는 데엔 아주 작은 구멍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까 댐을 관리하기 위해선 그런 작은 구멍을 오히려 더욱 철저히 경계해야만 한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 있단 거냐. 죄송하려면 집안의 병신 새끼들이 죄송해야지."

그의 아버지가 말하는 '병신 새끼들'은 다름 아닌 대호문의 문주를 포함한 핵심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친 의천검가파라는 거다.

대호문은 본래 밑바닥 양아치였으나 의천검가에 붙어 심부름을 잘 해냄으로써 어엿한 문파가 되었다.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대호문은 의천검가의 수족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여기서 문주의 동생이자 그의 아버지가 어느날 이런 주장을 한 것이다.

-언제까지 의천검가 뒤만 닦으면서 살 겁니까? 우리도 이제 독립을 준비해야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제법 많은 인원이 동조를 하였고 그 주장에 힘을 더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택한 것이 정계의 거물 안민선 의원이었다.

소위 무파(武派) 정치인들의 중심에 의천검가가 있으며 정통파, 순혈(純血) 정치인들의 중심에는 안민선이 있다고들 한다.

그리고 무파와 정통파 정치인들의 사이가 상극이니 그야말로 작정한 선택이다.

당연히 의천검가의 심기가 좋을 수 없었고 문주파는 '반 의천검가'를 호시탐탐 축출하기 위해 눈을 부라렸다.

-이 바닥에서 의리없는 새끼를 누가 써 주겠어? 좋은 꼴로는 안 끝날 거다.

문주는 그렇게 말하며 악담을 퍼부었다.

…바깥에서 보자면 역겹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다.

한쪽은 문주가 되지 못해 그 욕심이 다른 방향으로 튄 동생이고 한쪽은 그런 '반동분자'를 처단하지 못해 안달인 형이었으니까.

허나 그들은 애써 사실을 외면했고 안지오의 심복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아들 또한 모른 척했다.

"두고 봐라. 어차피 대호문은 너무 컸어. 의천검가 새끼들이 가만 안 놔둘 거다. 나중가면 우리가 옳다는 게 증명될 거다."

스스로에게 믿음을 주려는 듯 단단히 말하는 아버지에게 아들 또한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란이 일어났다.

"뭐, 뭐야!"

"무림 전담 타격대입니다! 적대 행위를 멈추고 협조 하십시오!"

"……."

진짜 무협지 시대도 아니고 소란과 함께 우르르 쳐들어오는 무리가 있어 놀랐는데 그들이 무림 전담 타격대라고 외치는 순간 싸함이 퍼져 나갔다.

무림 전담 타격대.

그러니까 경찰로 치면 강력계 형사와 비슷한 포지션이다.

당연히 '강력범'인 대호문으로서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란 소리다.

평소라면 의천검가는 물론이요 요즘 줄을 대고 있는 안민선 의원 때문에라도 이런 식으로 볼 일이 없으며 설령 볼 일이 있다 해도 미리 다 이야기가 된 뒤여야 하는데…….

결코 좋지 않은 일로 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고.

"폭행, 협박 등 사주 혐의에 관하여 조사에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들 부자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 * * *

-니들 그거 들었음? 대호문까지 은살문이랑 엮였음 ㄷㄷㄷ

-지리네 ㅋㅋ 이거 진짜 레알 은살 게이트 열리는 거 아님? 은살문이니까 히든 킬 게이트!

-아이 씹...

-히든 킬 게이트!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

세상이 난리가 났다.

대마두가 쏘아올린 공은 제대로 터져 그 파편을 대한민국 전체에 퍼뜨렸으니 그 영향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천검가 계열의 문파인 대호문까지 삼켜 버린 것이다.

작고 사소한, 혹은 '생계형 비리'도 아니고 무려 흉악 범죄 집단인 은살문과 엮여 버렸으니 그 여파가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팝콘을 씹으며 대호문과 의천검가의 추이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정작 진짜 피를 말리며 비상이 걸린 건 안민선과 안지오였다.

"…이 새끼들."

알고 있다.

안민선은 확신했다.

은살문의 정보를 뿌리는 놈들이 안지오와의 관계까지 알고 있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정보를 이런 식으로 나눠 뿌릴 리가 없다.

이건 그러니까 안민선과 안지오를 노리고 벌이는 일이라는 거다.

'누구지?'

문제는 이 짓거리를 하는 게 누군지 당최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웬만한 수준이 아니고서야 결코 벌일 수 없는 일인데 그 '웬만한 수준' 내에서는 도저히 집어낼 수가 없다.

그 정도 되면 어느 쪽으로든 약점이 있는 법이고 그 약점은 그들만의 리그 내에서 알음알음 공유된다.

때문에 같이 죽을 게 아닌 이상에야, 설령 같이 죽으려 해도 암묵적으로 들추지 않는 것들이 있고 그 안에 은살문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부에서 범인을 찾아야 하는데 그 정신 나간 마두까지 포함하여 누가 그러는 건지 도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증거는 다 끊었어.'

한 가지 다행이라면 안민선과 안지오에게 이어지는 선은 모조리 끊어 두었다는 거다.

마두가 편지를 보내고서 하루이틀도 아니고 제법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 두었으니까.

덕분에 대호문이 은살문에 연루되었음에도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대호문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녀와 관련된 부분을 실토할 리가 없고 그렇다면 문제될 건 없다.

침착하자.

살아오며 그녀가 겪었던 위기가 한두 번이었던가.

이번에도 그런 위기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마음을 다스렸고.

"의, 의원님!"

당황한 얼굴로 들어선 비서를 위압적으로 노려 보았다.

"보고할 때는 침착하게 하세요."

비서는 그녀의 일침에 숨을 흡 들이쉬고선 말했다.

"자, 잠룡문의 무림인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뭐요?"

안민선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잠룡문의 무림인들이 쳐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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