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459화 (459/741)

458화

잠룡문주 김도진이란 이름은 이미 대한민국 무림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인맥과 본인의 무공 경지는 물론이요 특히 인지도와 영향력에 있어서는 웬만한 무림의 명숙들조차 상대가 안 될 지경이다.

그러니까 만약 김도진에게 아직 무림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그나마 '폄하할 여지'조차 없었다면 그 명성이 어디까지 치솟았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음지에서 이름 높은 청부 살인 조직 은살(隱殺)은 그런 김도진을 건드리는 의뢰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였다.

그 내용과 금액이, 은살이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수준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A-1 자격증으로 스스로의 실력이 초절정이라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걸 증명한 김도진 본인을 암살해 달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김도진을 상처입히라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간단히.

그 주변 인물을 적당히 손봐 달라는 정도였으니까.

이 정도라면 금액에 따라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의뢰였다.

열 손이 한 손을 못 막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김도진 그 스스로야 얼마든지 지킬 수 있겠지만 주변까지 완벽하게 지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그에 가깝게 얼마간은 경계를 할 수 있겠지만 그걸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다.

하물며 그렇게 경계를 지속하는 것 자체가 전력을 깎아먹는 행위가 된다.

시간, 돈, 체력, 정신력까지.

어디를, 어떻게, 언제 노릴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온전히 은살의 선택에 따른 영역이었고 잠룡문은 이에 관여할 방법도 경험도 없다.

그에 비해 은살은 이 분야에 있어 스페셜리스트다.

누군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 주변을 망가뜨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며 그 경험도 풍부하다.

이를테면 소중히 여기는 아이의 손가락을 잘라 보낸다거나 아이 중 하나를 납치하여 망가뜨린 뒤 다시 보내는 것으로 경고를 한다거나.

그들에게 주변을 망가뜨림으로써 대상을 무너뜨리는 건 아주 쉬운 일이요 일상이었다.

여기에 의뢰자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겠지만 은살은 '진짜 의뢰인'이 누구인지조차 파악하고 있었다.

의뢰인이 정계의 거물 안민선의 아들 안지오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안지오라면 잠룡문이 '양지'에서 치는 발버둥을 가볍게 무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거리낌없이 의뢰를 수락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 모든 것의 전제가 잠룡문이 은살을 알지 못하며 찾지 못한다는 사실이라 믿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맹신이었다.

오늘 '업무'에 착수한 은살의 살수는 아직 목적한 구역에 가지도 않았다.

살수로서의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고 살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평범한 인간'으로서 밤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이 미지의 공포는 무엇인가.

그의 머리는 이성이 남았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허나 그런 의문은 곧 이성과 함께 공포에 잠식 당했으니 미지의 존재가 나타난 순간 그는 현실과 유리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하게 눈으로 보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존재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런 스스로의 눈과 감각을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이 공포스럽다.

그리고 그 공포는 곧 바깥으로 확산되었으니 보이지 않지만 인지하지 못할 수가 없는 그 이질적인 존재를, 지금 이 자리에서 오직 자신만이 인식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뭐야. 안 보여? 저게 안 보인다고? 말이 안 되잖아.'

극도로 이질적이면서 분명한 것이 길 한복판에 떡하니 서 있다.

그런데 그걸 아무도 못 보고 있다.

아니, 못 보는 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미쳐 버린 나만이 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현실에서 박리되어 이 공포스런 존재가 있는 차원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다.

이해를 넘어선 현상이었고 이해를 넘어섰기에 공포가 되었다.

그는, 평생을 가도 스스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느낀 모든 의문을.

고대 무림에서 죽음을 선고하기 위해 나타난 사신(死神)을 마주한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짐승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짐승. 죽여야 할 자였다.

'사람'으로서, 그리고 '사신'으로서 숨을 거두어 가야 할 짐승을 알아보지 못하고서야 장님이나 다름없으니 장호는 눈을 떠야 한다고 했다.

이미 신안(神眼)을 뜬 도진이었기에, 그리고 사신으로서의 심지 또한 갖춘 도진이었기에 거기에 사신으로서의 소양을 더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짐승이 사람을 죽이기 위한 기술을 배웠다면, 더욱 알아보기 쉬울 것이다.

그렇게 눈을 뜬 도진에게 살수는, 은살의 살수는 사람 사이에 섞인 명확한 특징을 가진 짐승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짐승은 거기에 필요한 길을 다니니 추적하고 찾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살수는 기척을 죽이고 살기를 숨기는 연습을 한다.

그것을 꿰뚫어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작정하고 몸을 숨기는 놈들을 찾는 건 그 이상으로 쉬운 일이었다.

주변인들을 노릴 거라고 했던가.

그래. 어딜 노려야 할지를 모르니 모든 곳을 지켜야 했고 모든 시간을 신경을 곤두세운 채 피가 마르도록 할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의미없는 시도다.

모든 곳을 지킬 필요가 없으니까.

놈들이 다니는 모든 길을 살수로서 하늘 너머의 영역에 이른 장호에게 배운 도진은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그 길을 다니는, 너무나 티가 나는 짐승을 행동하기도 전에 찾는 건 그렇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놈에게만 모습을 드러냈다.

이 또한 어렵지 않았다.

무흔잠영은 선(線)을 의지대로 잇고 끊는 이치를 담은 체술.

그 존재감과 시선까지도 오직 은살의 살수와만 선을 이었으니 다른 이들은 도진을 보아도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도, 도망쳐야 돼.'

이해를 넘어선 공포에 살수는 겨우 그런 결론만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의심받아도 별 수 없다.

아니, '평범한 인간'이 갑자기 뛰어서 도망치는 것 정도는 그리 큰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도망치자.

그런 생각으로 몸을 돌린 그는.

'……왜?'

움직이지 않는 몸에 정신세계가 쩌저적, 금이 가는 듯한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왜? 왜? 왜?'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 또한 무림인이다.

철저하게 의지 하에 있어야 할 몸이 움직이지 않는, 아니.

'…어떻게?'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다.

'사라졌다'라고 해야 할 상황이란 걸 그는 뒤늦게 제대로 인지했다.

물론, 그 이유가 도진의 침기 때문이라는 건 역시 알 수 없다.

침기(沈氣).

사신공을 운용함으로써 발현할 수 있는 독문진기로 이 기운에 잠식당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된다.

장호는 선입견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른 것에 비유하지 않았는데 도진은 이것을 마취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했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고 안에 담긴 이치는 궤가 다르지만 상대의 신경을 완전히 기능 정지시켜 버린다는 부분에서는 일치했으니까.

천마신공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야 연마하기 시작한 도진의 사신공의 경지는 당연히 장호에 비할 수 없고 침기 또한 한계가 있으니 결코 만능이 아니다.

허나 이 현대의 '제대로 된 무공과 그에 수반하는 지식'을 익히지 못한 한낱 짐승 따위를 잠식하는 것 정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 침기에 잠식당하고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살수의 눈을 통해 형언하지 못할 공포를 확인한다.

도진은 그 공포를 마주하며 아무렇지 않게 걸었고.

툭-

쿠당탕!

"아, 미안합니다."

부딪쳐 저항하지 못하고 자빠진 살수를 향해 눈웃음지으며 사과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의 시선이 둘에게로 향했고 그 순간 살수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안도'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다.

나를 본다.

아. 나는 아직 현실에 있구나.

평생을 가도 느끼지 못했을 공포와 상황이 이런 때에 그런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도록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절망했으니.

"아저씨? 뭐야. 어디 아파요?"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쓴, 그러나 평범한 남자를 연기하는 '그 존재'가 그를 끌고가려 했기 때문이다.

가서는 안 되는 곳에.

'놔. 아니야. 안 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씨. 왜 이래, 이 아저씨."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척을 하며 그를 부축한다.

그리고선 아무렇지 않게 어딘가로 향한다.

'놔. 가지 마. 살려 줘.'

분명히 평범한 남자로 보인다.

하지만 살수의 본능이 '일부러' 그 존재가 보여주는 내부를 엿보게 만들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안 된다.

죽는다? 아니. 그런 단어가 답답해서 가슴을 쥐어뜯게 만들고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불길함이 본능을 난도질한다.

'살려달라고. 살려 줘.'

허나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라진 것 같다.

당연히 입도 열리지 않으며 소리조차 칠 수 없다.

그는 그렇게, 현실과 격리되었다.

* * * *

스걱. 쩌걱.

그는 스스로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쩌어억.

몸이 제멋대로 주물러지고 있었다.

그를 현실에서 격리시켜 버린 놈이, 여전히 감각이 없는 몸을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놈은 그것을 잘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스스로의 몸이 상궤를 벗어난 형태로, 분명하게 기능해야 할 것들이 파괴되는 것을.

그러면서 놈은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죽지 않을 거니까. 분명하게 살려서 보내줄 거야."

그것이 더 무서웠다.

그는 필사적으로, 목숨을 짜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필사적이 되어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아. 으."

그러나 그 소리는 말이 되지 못했다.

그저 놈의 시선을 잠깐 향하게 할 수 있을 뿐.

"너, 가족이 있잖아."

'……!!'

"아!"

"걱정 마. 가족도 건드리지 않을 거니까."

말할게.

알고 있는 건 다 말할 테니까 그만 해.

그리고 놈이 물었다.

"아. 혹시 은살문주가 어디 있는지, 알아?"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잃었던 목의 감각이 돌아왔고 말도 할 수 있었다.

"알아! 알아! 내가 알아! 말할게! 다 말할게!!"

이토록 필사적일 수 있을까.

스스로의 목소리라는 걸 스스로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말해 봐."

말했다.

다른 생각은 일절 할 수 없었고 그저 요구한 것들만을 떠오르는 대로 쏟아냈다.

"그렇구나."

그리고 다시 모든 감각을 잃었다.

"가족들한테 보내 줄게. 살려서."

"끄!"

차라리 죽여. 죽여 달라고!

하지만 놈은 들어주지 않았다.

무언가를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넌 오래 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좀 많이 아플 거고,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없게 될 거야."

"반성하지 않아도 돼. 그쪽이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 테니까. 살아서, 벌을 받도록 해."

그리고 그는 현실로 내동댕이쳐졌다.

* * * *

-잔혹한 마두, 또 다시?

-흑도의 유명했던 청부 살인 집단, 폐인으로 발견돼…….

어느날 어떤 소식이 뉴스 속보로 온갖 매체에 도배가 되었다.

흑도에서 이름 높았던 청부 살인 집단의 구성원들이 '폐인'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그에 있어 많은 부분이 검열되었지만 지금 세상에서 그렇게 검열된 것들은, 알고자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 시바..;; 괜히 봤다;;

-아니, 이거 맞음?;; 괜찮냐?;;

발견된 살수들은 그래, '폐인'이 되어 있었다.

팔다리를 놀릴 수 없게 됐으며 내장의 기능도 극도로 저하됐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게 됐다는 말이다.

허나 그들에 대한 여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난이 더욱 컸으니 그들이 해 온 악랄한 짓들을 철저하게 정리한 자료들이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아니, 예전에 다크나이트라던 놈 있었잖아. 근데 이건 그냥 미친 마두 맞는 거 같은데?

-? 안 죽였잖아. 게다가 이번에도 사회에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들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다크나이트 맞지.

-쓸모없는 쓰레기라니. 말이 심하네.

-?

-쓰레기한테 실례다. 최소한 방사능이라고 해라.

-엌ㅋㅋㅋ

-미친 새낀가;; 아무리 그래도 선이라는 게 있지;;

-그 선 안 지키는 게 다크나이트가 처리한 쓰레기들 아님? 아니 그딴 짓들을 하고도 선량한 사람인 척 잘 처먹고 잘 살았더만.

-나는 아무데나 인권 갖다 붙이는 인권충들이 제일 역겹더라. 이 새끼들 한 짓 봤으면 이 새끼들한테 지킬 선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음 ㅋㅋ

-이게 사필귀정이고 권선징악이지. 아님?

-ㄹㅇㅋㅋㅋ 다크나이트 응원한다.

아이의 손가락을 잘라 부모를 협박하고,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려던 이의 자녀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협박하고.

그런 짓들을 하던 은살에 대한 여론은 결코 좋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다크나이트'에 오히려 열광했다.

온갖 커뮤니티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그 불은 현실에도 옮겨붙어 대한민국이 떠들썩해졌다.

허나 한 명, 그런 소란에 특히나 신경써야 할 한 명은 그러지 못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몸을 떨고 있었으니.

- - - -

곧 찾아갈게.

- - - -

'음지의 편지'가, 그에게 보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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