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화
-예전 우리가 살던 동네에, 귀신이 나온대.
유진이의 그 말은 도진의 과거, 전생의 결코 잊지 못할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스물을 갓 넘었던 시기.
육체의 상처는 아물었으나 평생의 장애와 함께 감당해야 할 현실과 미래를 애써 외면하던 시기의 기억이었다.
어두운 골방에서 낡은 모니터에 대가리를 처박고 게임에 애써 몰두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진이 구부정한 몰골로 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유진이가 그런 말을 했었다.
"오빠. 우리 동네에 귀신이 나온대."
그때가 그러니까, 유진이가 열다섯이었다.
제법 키가 컸고 정말로 예쁘게 컸었던 거 같은데, 도저히 그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무림인이겠지."
도진은 그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그저 무심하게, 반사적으로.
그때의 그 못난 태도와 마음가짐. 그리고 그로 인해 더욱 가슴을 후벼팠던 후회가 이후 도진이 상대의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태도를 보이게 만들었다.
못난 오빠의 무심한 대답에도 동생은 밝게 웃으며 무언가를 재잘거렸다.
방의 갯수가 부족해서 집에 처박힌 도진의 방에는 여러가지 옷가지나 물건 등이 있었고 동생들은 방에 들어서면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무성의한 장남에게 포기하지 않고 말을 걸어 주었었다.
정말로, 정말로 좋은 동생들이었다.
못난 장남 때문에 말하지 못할 안 좋은 일들을 겪었을 텐데 티내지 않았다.
버리지 못한 미련과도 같이 들러붙어 있던 낡은 것들을, 그리고 추억이 깃들어 있던 짐을 과감하게 버렸던 것도 동생들이었다.
동생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고 거기에 딱지가 내리며 단단해지고 말았다.
그 동생 중 장녀 유진이.
유진이는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했다.
벌써부터 여러가지 알바를 했는데 개중에는 홈쇼핑 피팅 모델 같은, 다른 세상 일 같은 것들도 있었다.
그만큼 유진이는 예쁘게 자랐었다.
…그랬기에, 유진이를 노린 불행이 찾아왔었다.
"…악랄한 놈입니다."
스토커라고 했다.
유진이가 말했던 '귀신'이었다.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데 카메라가 찰칵거리는 소리가 나고, 누군가가 뒤따라오며 훅훅 숨을 내쉬고.
다만 '실질적인 피해'가 없었고 다른 곳도 아닌 달동네 문월동이었기에, 제대로 된 수사나 방범 순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허술했던 동네의 어두운 밤에.
피팅 모델 알바를 하고 늦게 돌아오던 유진이는, 평생에 남을 상처를 입고 만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카메라가 찰칵이고, 목덜미를 소름끼치는 더러운 숨이 훑고 가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예뻐서 그런 거야. 자랑스럽지?"
"아아아아악!!"
절규하듯 유진이는 비명을 내지르며 미친듯이 내달렸다.
그리고 유진이는,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다.
미친듯이 집으로 내달렸던 유진이는, 겉으로는 상처입지 않았지만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무너진 마음은 곧 외부로 발현되었다.
"유, 유진아!!"
지이익. 지이이이익……!
"그만해, 누나!!"
소름끼치는 그 소리는 유진이가 자신의 손톱으로 얼굴을 긁어내는 소리였다.
스스로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유진이의 눈은 고통 대신 공포와 광기로 뒤범벅 되어 있었다.
내가 예뻐서 그런 일을 당한 거야.
마음이 다친 유진이는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자해했다.
가족들이 뜯어 말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고 유진이는 그렇게 평생을 가도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폭식을 했다.
외부의 시선에 발작하듯 놀랐고 폭식으로 몸을 불렸다.
"와, 씨발 개돼지다."
그런 소리를 듣게 되고서야 안도했다.
안도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오빠?"
"…아. 그래."
그리고 도진은 현실의 시간을 마주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자신을 살피는 동생을.
과거 중학생 때의 얼굴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지금 더 예쁠 동생이 보였다.
구김살이 없는 그 얼굴을 마주하며 도진이 옅게 웃었다.
"우리 유진이, 많이 컸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응, 그냥. 정말 많이 큰 거 같아서."
전생에서는 이 시기에 이만큼 크지 못했을 것이다.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까.
그 작은 손으로 끼니를 챙겨 먹어야 했고 그나마도 반찬이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다르다.
그 어떤 걱정도 없이 밝게 자랐고 풍족하게 자랐으며 연호신공도 익히게 했다.
성장기와 맞물려 '환골탈태'한 유진이는 정말로, 예쁘게 쑥쑥 잘 자랐다.
"와, 저 눈에 꿀 떨어지는 거 봐. 아빠! 우리도 좀 그렇게 쓰담쓰담해 줘 봐."
옆에서 흉을 보는 건 설현주다.
도진이 거기에 피식 웃고선 말했다.
"어휴, 우리 딸은 너무 많이 큰 거 같아. 조금 느리게 커야 하지 않을까?"
"야!"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도진은 바른 엔터 사옥을 나왔다.
유진이는 슬슬 시스템을 갖추어 가는 바른 엔터의 1호 연습생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안티체리를 포함한 소속 아티스트들도 잘 보살펴 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보였다.
다음날.
도진은 집행부의 멤버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당분간 얼굴 비추기 힘들 거 같아. 일이 생겼거든."
그리고 잠룡문에도 말했다.
"할 일이 생겼어요. 웬만한 건 눈나 선에서 처리해 주세요."
도진의 말을 들은 이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겠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인 건, 그렇게 말하는 도진의 모습이 평소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도진에게는, 평소엔 느낄 수 없었던 날카롭고도 차가운 어떤 것이 배어나고 있었다.
* * * *
해가 지기 시작해 땅거미가 지는 시간.
제법 머리가 굵어진 문월동의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 들었냐. 요새 밤 되면 귀신 나온다는 거."
"어. 들었지. 그거 몰카 귀신이라던데."
"귀신은 지랄. 변태 무림인 새끼겠지."
"야. 말 조심해. 그 새끼가 듣고 있으면 어쩌려고."
함께 놀던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일부는 중학생이 되었다.
정구를 중심으로 놀던 아이들과 유진이를 중심으로 놀던 아이들은 이제 패를 가르지 않고 어울렸는데 그 아이들 사이에서 요즘 화제가 되는 건 밤만 되면 나타난다는 '귀신'이었다.
어려도 알 건 다 아는 나이가 되었기에 아이들은 그 귀신이 진짜 귀신이 아닌 무림인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질 나쁜 무림인이 말 그대로 악질적인 장난을 치고 있다는 거다.
아이 중 한 명이 눈을 좌우로 굴리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 예지 누나 있잖아."
"어."
"그 누나도, 귀신 봤대."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진짜?"
"어. 진짜."
아이들이 말하는 '예지 누나'는 다름 아닌 강치환의 여동생이었다.
강치환.
도진에 의해 뿌리까지 박멸당한 문월동의 일진 양아치 중 한 명.
본래 문월동의 공포이자 재앙으로 성장할 운명이었던 강치환은 지금 그 죗값을 호되게 치르는 중이다.
다만 그런 강치환과 달리 동생인 강예지의 평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쁘지 않았다.
무서운 형과 다른 예쁘고 착한 누나.
아이들의 강예지에 대한 평가는 그랬고 그랬기에 강예지가 귀신을 봤다는 말에 아이들은 안타까워했다.
"누나 괜찮대?"
"응. 귀신을 보긴 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대."
"다행이네."
"그러게. 진짜 다행이다."
"누가 귀신 안 잡아 가려나."
"도진이 형이 와서 잡아가면 좋을 텐데."
아이들은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를 하며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완전히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때에.
강예지는 공포에 몸을 떨며 밤길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귀신을 만났다.
찰칵. 찰칵.
소름끼치는 카메라의 촬영음.
후우, 후우…….
심장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목덜미에 느껴지던 더러운 숨결.
강예지는 그것을 이를 악물고 모르는 척하며 걸음을 빨리해 집으로 향했었다.
애써 태연한 척 했을 뿐 집 안에 들어선 순간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그 자리에서 소리 죽여 혼자 울었었다.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보통은, 평범한 가정이라면 저녁 알바 같은 건 하루이틀 쉬어도 벌 받지는 않을 것이다.
쉬어도 괜찮을 것이었다.
하지만 강예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하루를 쉬면 엄마와 그녀는 그만큼의 포기하기 힘든 것들 중 일부를 포기해야만 했으니까.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빠듯한 삶을 사는 처지에서 무서운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알바를 쉬는 건, 그녀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예견되어 있던 귀신의 장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찰칵. 찰칵.
사진을 찍힌다.
후욱, 후욱…….
소름끼치는 숨소리와, 더 강렬해진 존재감이 덜덜 떨리는 몸으로 느껴진다.
'괜찮아. 해치지 않아.'
무시하고 모른 척하고 갈 길을 가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억지로 자신을 속여가며 단 1초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기 위해 발을 옮긴다.
그런 강예지의 모습을, 어둠 속에서 귀신은 희열에 찬 눈으로 즐기며 따라붙었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다.
흑도에서 먹고 사는 입장이었기에 이해할 수 없는, 밤길에 다니는 예쁘장한 여자애를 괴롭히고 그 모습을 찍으라는 의뢰를 별 생각없이 수행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자신의 취미가 되었다.
의뢰주는 기뻐하며 보너스까지 주었다.
사진의 퀄리티가 올랐다면서.
귀신은 이번 달에 있을 또 한 번의 보너스를 생각하며 오늘은 조금 더 좋은 사진을 찍자 생각하고서 몸을 날렸고.
스으으으…….
생각에 따르지 않는, 완전히 굳어 버린 몸에 경악했다.
'어, 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이것은 '사라졌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뭐, 뭐야?'
공포가 온몸을, 아니 뇌를 잠식했다.
몸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혈을 짚힌다 해도 이렇지는 않다.
이것은 그러니까, 진짜로, 그래, '몸이 사라졌다고밖에는 형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으아아아아악!!'
그래서 그는 비명을 내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공포에 절어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에, 그를 구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넌 끄나풀이구나."
'예! 예!'
분명히 한국어였음에도 한국인인 그는 내용을 해석하지 못했다.
그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는 미치기 직전이었으니까.
그저 반사적으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 소리에 반응한 것이었다.
스으으…….
그리고 어떤,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차갑고도 공포스러운 무언가가 빠져 나가는 '느낌'과 함께 그는 얼굴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콰득.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크게 입을 벌린 그를 단단한 손이 틀어막았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그 손의 주인을 확인하려 했으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따다닥! 따다다닥!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공포를 더하고 그는 거세게 이를 부딪쳤다.
공포에 몸부림치는 그를 마주하며 그의 시선이, 선(線)이 자신에게 닿을 수 없게 하며 어둠에 녹아든 도진이 말했다.
"누가 시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