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화
도진이 서민희의 번호를 알려 달라는 요청을 수락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으니 첫 번째가 눈동자에 깃든 공포 때문이었다.
그 공포를 만드는 어떤 문제가 그녀에게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몰랐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눈에 보인 이상 도움을 건넬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두 번째 이유, 서민희가 도움을 건네기에 합당한 '평범한 학생'이라는 부분이 작용하여 도진이 그녀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고 번호를 건넨 것이었다.
그렇게 번호를 교환한 바로 다음날.
도진은 그녀의 눈동자에 깃든 공포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네.
도진의 전음에 서민희가 다시 한 번 대답했다. 그러고서는 자신이 분명하게 찍힌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녀가 인지하지 못하는 때에 타인이 찍은 구도의 사진이었다.
도진은 확신이 담긴 그 대답과 증거를 보고서 감각을 내공에 실어 펼쳐냈다.
은밀하게, 그러나 끈끈하고 분명하게 뻗어나간 내공으로 확장된 감각에 수많은 정보가 밀려들었다.
평범한 이라면 감당하지 못할 정보량을 도진은 순식간에 인지하고 구분해내며 원하는 정보를 찾았다.
그렇게 무려 수십 미터를 확인한 도진은.
'음.'
-찾으셨나요?
서민희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쪽을 보는 시선은 없는 것 같네.
단순히 감각을 펼친 게 아니다.
무흔잠영의, '선(線)'의 묘리에 따라 확인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도진보다 월등한 고수가 아니고서야 피하지 못할 것이었으니 이 정도면 정말로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서민희는 도진의 대답에 그럴 거라 생각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스토커는 아마도 대포를 사용하고 있을 거예요."
대포. 무기도 아니고 대포 통장도 아닌 '대포 카메라'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겠네."
휴대폰에도 수십 배, 심지어 백 배 줌이 탑재되는 시대가 가까운 시기였다.
'한낱 휴대폰'이 그 정도이니 체급이 깡패인 전자 제품, 그것도 해당 분야에 특화된 대포 카메라 정도 되면 수십 미터가 아닌 수백 미터를 훌쩍 넘는 거리에서도 사진을 찍는 등의 관찰이 가능하다.
애초에 망원경도 있고 말이다.
도진은 여타의 고수들 이상으로 감각이 날카롭고 정밀하지만 그 범위가 아직 수백 미터라는,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커버할 만큼의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그것도 시내를 말이다.
서민희는 분명히 자신을 지켜 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얼굴로 말했다.
"몇 개월 정도 됐거든요, 이게. 처음에는 흔한 사생이라 생각했어요."
사생은 사생팬의 줄임말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까지 추적하는 극성팬을 뜻한다.
말이 팬이지 그냥 스토커에 다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아서 그런다'는 변명을 하니 어떤 면에선 스토커보다 더욱 악질이다.
"처음엔 DM으로 어디에 간 걸 봤는데 어땠냐 같은 그런 식으로 시작했어요."
DM은 다이렉트 메시지로 쉽게 말해 개인 쪽지다.
"제가 일상 사진 같은 걸 자주 올리니까 그런 쪽지가 심심찮게 오긴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해했어요."
잘생기고 예쁜 애들은 스스로가 그렇다는 걸 잘 안다.
성지인 같은 특이 케이스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을 사니까.
서민희 또한 그런 삶을 살며 무수히 겪었던 '흔한 관심'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스토커는 그렇게 흔한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점점 심해지더라구요. 사진을 올리지도 않은 곳에 간 걸 알고서는 나랑 같이 가면 어떨 거 같냐는, 그런 식의 DM을 보내더라구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들에 관해 말하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생활마저 엿보고 심지어 거기에 나도 끼고 싶다는 내용의 쪽지는 공포와 불쾌함 이외의 어떤 감정도 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단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공계를 만들어서 계속, 계속 DM을 보냈어요."
공계는 빈 계정으로 그걸 계속해서 만들어 DM을 보내니 DM 자체를 차단하는 것 말고는 막을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DM을 막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이 역시 서민희만 손해를 보았으니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서민희에게 계속 연락을 보냈던 것이다.
"문자에 심지어 전화까지 온 적이 있었어요. 변조된 목소리를 들었을 땐, 정말로 미칠 것 같았어요."
시크한 얼굴에 어울리는 목소리에 떨림이 묻어난다.
"신고해 봤어요. 나름 열심히 수사를 해 준 거 같긴 한데, 못 잡았어요. 애초에 스토커를 찾지도 못했어요."
서민희의 집안은 나름 힘이 있는 집안이었으니 경찰이 정말로 수사를 대충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찰의 선에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정도로 스토커가 보통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빠가 경호원분들을 붙여 주기도 하셨는데, 역시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았어요."
주변의 직접적인 위협은 경호원으로 어떻게 할 수 있겠지만 원거리에서의 은밀한 스토킹에는 효과가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내가 하찮게 느껴지긴 처음이었어요. 배운 무공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짙은 무력감과 스트레스, 그리고 공포가 느껴진다.
도진은 그 감정을.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에 진심이 묻어났고 서민희는 조금 더 속내를 꺼내 놓았다.
"비무 대회에서 선배랑 비무를 해 보고 싶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정말로 대단한 무림인이란 건 얼마나 강한 걸까, 하고요. 그 정도가 되면 범인을 잡을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랬구나."
"뭐, 저보다 한 살 어린 후배도 못 이겼으니 제가 얼마나 약한지는 알 수 있었지만요."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분명히 성지인이 월등한 건 맞았지만 여기엔 상성적인 부분도 컸으니까.
올라운더라 할 수 있는 격룡신공에서 특히나 뛰어난 부분을 꼽자면 수준 이하의 무인들이 상대라면 그 수가 얼마나 되었든 압도적인 우위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지에 이른 격룡신공의 호신기는 호신강기로 진화하며 그것은 마르지 않는 내공에 의해 결코 끊이는 법이 없다.
즉 강력한 호신강기를 상시 두르고 있는 격룡신공의 사용자는 수준 이하의 공격에 한해서는 말 그대로 무적이 된다는 말이다.
서민희의 경우 그 화려함과 의외성을 바탕으로 상대의 방어를 혼란시키고 그로 인해 드러난 틈을 노리는 타입이었는데 호신강기까지는 아니어도 호신기를 두른 성지인의 방어를 뚫는 게 무리였기에 그토록 허무하게 패배한 것이었다.
다만 도진은 굳이 이 부분을 풀어 설명하진 않았다.
그럴 만한 대화의 흐름이 아니었으니까.
대신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는 말을 해 주었다.
"잘 알겠어. 그러니까, 내가 그 스토커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되는 걸까?"
서민희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네. 스토커를 잡을 수 있도록 잠룡문에 정식으로 의뢰하고 싶어요."
"좋아. 그 의뢰, 접수할게."
"…감사합니다."
"아냐. 스토커는 나도 아주 싫어하는 거니까. 방침 정해서 내일 안으로 연락 줄게."
"네."
"흠, 집까지 바래다 줄까?"
"그래 주시면 저는 정말로 감사하죠."
"오케이."
* * * *
"그러니까 그 스토커 때문에 오빠랑 굳이 둘이서 만날 약속을 잡았던 거네요."
"응, 그랬어."
서민희를 집까지 바래다 준 도진은 바로 이사한 잠룡문의 사무실에서 문도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쩐지 진지한 분위기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소담과 상미, 성지인 등의 문도들은 도진의 설명에 약간 날카로웠던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토커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김도진에게 굳이 번호를 묻고 약속까지 잡아 만나면 무언가 꼬리를 드러내지는 않을까.
사진을 찍는 등의 행동에 마음이 흔들릴지 모르고 그런 식으로 흔들리면 초고수인 도진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그런 여러가지 생각으로 서민희가 만든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상황을 다 알지 못했던 도진은 그러나 서민희의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읽고선 거기에서 장단을 맞춰 준 것이고.
"뭐, 그래서 의뢰는 접수했고 일단 내 생각은 이런데……."
말을 흐리면서 도진이 시선을 향하는 건 다름 아닌 나지윤이다.
도진의 연락에 찾아온 나지윤은 도진의 시선을 받고선 무얼 원하는지 바로 읽어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능할 거야."
주어가 생략된 그것은 웹을 통한 추적이다.
스토커는 주도면밀하게 추적을 피할 수 있는 영역에서 움직였다.
그것은 현실만이 아니라 인터넷상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제법 그 수준이 높아 경찰 쪽에서는 꼬리조차 잡지 못했었다.
하지만 답청문은 다르다.
지금 시대에 정보 집단은 어떤 면에선 현실 이상으로 인터넷에 집중해야 했으니 답청문은 이 분야에서도 수준 높은 문도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심지어 답청문과 협력하고 있는, 그리고 천마신교의 교도인 슈미트라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정보 단체마저 있다.
도진과 나지윤은 충분히 스토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행조는 소담이랑 암산서가에 맡길까 해요."
"어, 나?"
도진에 의해 이름이 언급된 소담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그 모습에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암산서가는 그런 쪽으로 특화된 기술들이 있잖아? 잘할 거라 생각해."
압도적인 무공으로 타깃을 처단하던 처단자 가문 암산서가.
그들은 그 특성상 음지에 숨어 도주하던 이들을 처단해야 하는 일이 잦았고 그러면서 쌓은 지식과 기술이 있었다.
그것을 스토커를 붙잡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도진의 생각에 소담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열심히 해볼게!"
"오케이. 그러면 이번 일은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믿고 맡길게."
"스승님은 참여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손을 들고 질문하는 건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한숨 돌리게 된 클로에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담은 시선들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응. 밑고 맡길 수 있는 문도들이 있는데 전부 내가 처리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응! 맞아! 믿고 맡겨 줘!"
도진의 말에 소담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다른 이들도 만족한 얼굴이었다.
특히나 소담과 상미, 성지인은 물론이고 클로에 등이 흡족한 기색이었다.
그렇게.
이번 의뢰는 도진이 받았으나 해결은 문도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활동 영역을 정하고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이번에 우리가 치안 유지 계약을 했으니까 그 구역이라면 CCTV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있거든. 이 정도면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야. 그쪽에서 스토킹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지."
"오케이."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나지윤의 말대로 진행, 금방 해결될 거라 도진은 생각했다.
그렇게 잠룡문에서의 일까지 마치고 하루가 지나 다음날.
도진은 바른 엔터의 사옥에서 안티체리와 함께 걷던 유진이를 만났다.
그리고 함께 차를 마시던 중 나온.
"아, 오빠."
"응?"
"예전 우리가 살던 동네에, 귀신이 나온대."
유진이의 그 말에.
스으으으으…….
도진의 눈동자에 무시무시하게 얼어붙은 살기가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