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이게 무슨 소리지?
지켜보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수성중고.
이른바 부자 사립 학교로 무공에는 재능만큼이나 재력이 중요하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제법 수준 높은 무림학교로 꼽히는 곳이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제법' 그렇다는 것이지 그 무공의 평균적인 수준은 상위권에 미치지 못했다.
혹자는 그것이 재능이 아닌 치열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둥의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수성중고는 무림학교 사이에서 상위권으로 통하는 '무투파'에 들지 못하는, 적당히 중상위권에 위치한 학교라는 것이다.
여학생은 그 수성고에서 수위권을 유지하는 실력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건 외모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허나 그 또한 어디까지나 수성고에서의 이야기이니 숭무고에 댈 수 있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당연히, 김도진은 애초에 논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아니다.
때문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술렁인 것이다.
김도진한테 올라와 달라고? 제정신인가?
혹시 당하는 데 취미가 있는 성격인가?
별의별 생각들이 소리없이 비무대 주위를 휩쓰는 가운데 일부의 시선이 교류회 직원들에게로 향했다.
룰을 정하고 운영하는 게 그들이니 그들의 판단을 들어 보겠다는 시선이었다.
그 시선 이전에 이미 수군거리던 그들이 내놓은 대답은.
"비무 대회의 규칙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학생들만 비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김도진 학생의 비무 참가는 규칙 위반이 됩니다."
불가(不可)였다.
도진은 예상대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곳에서는 저게 맞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어차피 교류회이고 엄정한 비무 대회도 아니니 재미있는 쪽으로 예외를 허용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하지만 아니다.
주최측은 이 교류회에 '권위'가 깃들길 바랐으니까.
그 권위가 살기 위해선 원칙이 지켜져야만 했고 그것을 어길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룰을 지키는 게 맞는 것이다.
뭐 도진의 입장에서도 흥미 본위로 비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이곳에 참여한 본래의 목적대로 성지인이 비무대 위에 오르는 것이 더 좋았고 말이다.
주최측의 결정에 여학생이 따로 더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숭무고 대 수성고의 학생 비무 첫 번째 무대는 성지인과 여학생, 서민희의 대결이 되었다.
"시작!"
두 사람이 포권을 하고 비무가 시작되었다.
선공은 서민희였다.
그리고 수투를 낀 그녀가 구사하는 무공은.
"오?"
"와, 저걸?"
몸을 흔들며 보법을 밟아 접근하더니 하단에서 상단으로 강하게 찌르는 발차기가 쏘아진다.
'카포에라'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수투에서 할 수 있었던 모든 예상을 벗어난 무공이다.
흔들리는 몸과 보법에 따라 무게 중심이 이동한다.
그리고 평범한 무공에서는 보기 힘든 현란한 움직임과 회전력을 이용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강한 발차기.
성지인은 평소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생소한 무공에 당황하며 수세에 몰렸다.
쾅!
서민희의 회전력을 더한 강렬한 발차기가 성지인의 격룡기로 감싸인 팔뚝을 격타하며 폭음이 터진다.
완벽하게 방어했지만 성지인은 공세로 전환하지 못했으니 서민희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동하는 원의 흐름이 제법 볼 만하다.
본래 카포에라는 체력의 소모가 무엇보다 큰 단점으로 지적되었으나 무공으로 발전하면서 단점은 희미해지고 장점은 커졌으니 체력의 문제는 무림인에게 있어 그리 부담되지 않았고 반대로 원을 그리는 그 특유의 동작이 무공에 접목되며 깊이가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다.
화려한 동작은 단순히 무술의 흔적을 가리는 데 그치지 않고 허초와 변초를 만드는 수단으로써 초식이 된다.
여기에 생소함.
무엇보다 그 생소함이 커다란 이점이 되어 서민희가 성지인을 상대로 공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서민희가 우위에 선 것 같지만…….
쿠오오오오-!
콰앙-!
"윽."
이어지며 계속 그려지던 원은 성지인의 거대한 한 방, 격류에 휩쓸려 모두 부서지고 말았다.
공세는 대번에 역전되었고 서민희는 분전했으나 제대로 된 유효타 한 방 먹이지 못하고 패배했다.
-밀도가 부족했구나.
-예, 스승님.
서민희의 기술은 제법 괜찮은 영역에 있었지만 성지인의 격룡기를 뒤흔들기엔 그 무게가, 밀도가 모자랐다.
그리고 성지인은 그 방어를 바탕으로 침착하게 상황을 끌고 가며 틈을 발견, 확실한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었다.
도진은 그 결과보다는 과정에 만족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카포에라를 기반으로 한 무공을 경험하는 건 지극히 드문 일일 테니까.
희귀한 경험이란 어떤 것이 되었든 삶에 좋은 양분이 되는 법이다.
"숭무고 승!"
첫 승을 끊은 성지인의 뒤를 이어 벽태웅이 나섰고 결과는 그 어떤 이변도 없이 당연하게 숭무고의 승리가 되었다.
그리고 결승까지도 무난하게 숭무고의 차지가 되었다.
상품은 무난하면서도 전형적인 영약과 상금이었는데 여기에 이번 기업 홍보 부스에서 나온 것들 중 제법 괜찮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게 특기할 만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비무 대회를 끝으로 오늘의 일정도 종료돼 귀가하려던 때였다.
"안녕하세요."
"아, 네. 서민희 씨?"
도진은 자신의 앞에 선 서민희의 인사에 마주 인사를 했다.
"선배이신데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서민희는 특유의 시크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고 도진은 '아, 그래'하고 답했다.
함께 온 일행도 없이 혼자 나타난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도진 선배님."
"응?"
"휴대폰 번호 알려주시면 안 돼요?"
쩌적-
도진의 곁에서 갑자기 무언가 어는 소리가 들렸다.
'상미의 한천검공이 또 성장했구나.'
쿠오오오오…….
그리고 반대편에서 갑자기 무언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인이의 격룡신공이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가 보구나.'
도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래. 알려줄게."
서민희에게 번호를 알려 주었다.
쩌저저저적!
쿠오오오오!
* * * *
글로벌 무림학교 교류회의 비무 대회가 일정대로 주말에 끝이 났고 월요일이 되었다.
도진은 오늘도 착실히 수업을 들었고 집행부에도 얼굴을 비춘 뒤 외출을 했으니 다른 이유가 아니라.
-안녕하세요, 선배님.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시면 뵐 수 있을까요?
바로 어제 번호를 알려 주었던 서민희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는 명품 카페 거리에 있는 카페 중 한 곳이었는데 서민희가 함께 어울리는 무리 중 한 명이 알바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안에 들어선 도진은 바로 창가 테이블에 앉은 서민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티셔츠에 청바지라는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그녀는 카페 내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것이 수준 높은 '꾸안꾸'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포니테일로 대충 묶은 듯 하지만 그것은 애교 머리까지 상당히 공을 들여 세팅한 것이다.
청바지 또한 그 색감은 물론이요 핏과 라인까지도 차별화되는 명품이었다.
오히려 그 브랜드가 대놓고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고급스러운.
그것들이 타고난 그녀의 미모가 배가되도록 꾸며주고 있었다.
"일찍 왔네?"
"네."
짧게 대답하는 서민희의 앞에는 예쁘게 차려진 커피와 디저트가 놓여 있었으니 흔히 말하는 'SNS 갬성'을 충족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사진 찍어야 해서요. 선배님 계신데 그러면 실례니까 오시기 전에 끝내려고 미리 시켰어요."
"그랬구나."
도진은 잘 모르는 영역이었기에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도진 역시 간단히 음료와 디저트를 시키고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의외로 단답이 중심이던 서민희가 주로 말하고 도진이 들어주는 형태가 되었다.
"저는 인플루언서를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그래?"
"네. SNS를 중심으로 해서 너튜브도 하는 그런 식으로요."
"팔로워도 목표까지 얼마 안 남았고 너튜브도 콘텐츠를 이것저것 구상해서 시도하고 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그렇구나."
조금 의외라면 의외다.
못해도 은수저 정도 되는 집안에서 태어나 나쁘지 않은 재능으로 무림학교에서 수위권의 성적도 유지하고 있다.
한데 그런 그녀의 목표가 인플루언서라고 하니 의외였던 것이다.
아직은 그것이 젊은이들의 꿈 1순위인 시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도진은 그녀의 목표에 무어라 의문을 가지진 않았다.
십인십색(十人十色). 각자의 생각은 다른 법이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녀가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았던 휴대폰을 들고선 말했다.
"선배님."
"응?"
"저랑 사진 하나만 찍어 주시면 안 돼요?"
도진과 서민희의 눈이 마주한다.
'흐음.'
그리고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너무나 간단히 수락해 주는 도진의 모습에 서민희가 오히려 놀랐다.
그 놀람이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에 파문을 만들고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도진이 서민희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민희는 곧 놀람을 지우고 언제나처럼 시크한 표정으로, 그러나 프로페셔널하게 휴대폰의 카메라 어플을 실행하고 구도를 잡았다.
소위 말하는 '얼짱 각도'만이 아니다.
예쁘지만 자연스럽게.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최적의 샷이 나올 수 있도록 가늠하는 걸 보고 있자니 고수들의 수 계산 못지 않은 깊이가 느껴진다.
찰칵-!
그 계산에 따라 나온 구도로 두 사람의 모습이 휴대폰에 담겼다.
"감사합니다."
"그래."
다시 자리로 돌아간 도진에게 서민희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 서민희의 모습을 도진은 두 눈에 담는다.
'성지인 자신감 뿜뿜 작전'을 할 때도 느꼈지만 서민희는 조금 달랐다.
다른 학생들이 연기하는 도진을 조롱하고 비웃을 때, 그녀만큼은 거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무리에 어울리고는 있었지만 도진의 조롱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친구'가 되었으니 어울린다.
그러나 관심없는 일에까지 어울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해도 지적하지 않는다.
때문에 도진은 그녀를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았다.
"이렇게 나왔어요."
서민희는 찍고 간단히 보정까지 한 사진을 보여 주었다.
시크함을 옅게 만드는 미소를 장착한 그녀는 완벽한 구도와 보정까지 더해져 몇 배는 더 예뻐 보였다.
그 옆의 도진까지도 꽃미남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과연 대단한 기술이다.
다만 도진의 눈에는 그 사진에서 치명적인 옥에 티가 보이고 있었으니 사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서민희의 미소 그 자체였다.
그 미소에는,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공포'가 묻어나고 있었다.
전날 도진에게 번호를 달라 했을 때부터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공포가.
그리고 지금도 애쓰고 있지만 다 숨기지 못하는 공포가 깃들어 있는 서민희의 눈을 마주하며 도진이 전음으로 물었다.
-그래서, 올리지도 않을 사진은 왜 찍은 거야?
"……!"
서민희가 살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서는 섭음술로 말했다.
-누군가가, 절 스토킹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마, 지금도 절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