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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51화 (451/741)

450화

무술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무술, 더 나아가 무공의 근원에 대한 여러가지 설 중 하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공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되었고 그것을 목표로 지속적인 연구를 해 온 무인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아름답게 보이는 그것을 시궁창과 같은 현실에 대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 목적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게 무술이라 했는데.

그 무술을 약자가 아닌, 강자가 익히면 더 좋은 건 아닐까.

꽈아아아앙-!!

그 생각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듯한 비무가 지금 글로벌 무림학교 교류회의 비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아앙-!!

한 발 한 발이 마치 포탄이 터지는 듯 강렬하게 지켜보는 이들의 귀와 몸을 때린다.

태산이라 했던가.

그 별호가 과장이 아니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힘이 담긴 거대한 주먹이 연신 공태식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온다.

평범한 이라면 한 방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웬만큼 피지컬에 자신이 있는 이라 해도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 주먹이었다.

그 주먹을, 놀랍게도 절반밖에 안 되어 보이는 체구의 강거혁이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다.

믿을 수 없게도 왜소한 강거혁은 공태식의 주먹을 물러나지 않고 일일이 받아쳐낸다.

'약자' 강거혁이 강자를 이기기 위한 수단인 무공으로써 그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과연 놀랍다.

허나, 그것은 승기를 잡은 자의 주먹이 아니다.

강자로서 무공을 익힌 공태식의 주먹은 약자 강거혁의 무공을 매순간 위태롭게 뒤흔들어댄다.

그래. 일견 대등해 보이는 공수의 교환은 사실 일방적이기만 했다.

강거혁의 모습은 쏟아지는 폭우를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우산으로 막아내는 형국이었다.

"…예전에도 저랬다고 해."

"예전에도?"

굉음이 터져 나오는 중에 일부 학생들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눈다.

무림의 대선배들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섭음술로 몰래 하는 이야기를 도진은 들을 수 있었다.

"어. 공태식 노사님이랑 강거혁 노사님이 무림 르네상스 때 피지컬 투 톱이었잖아. 그런데 사실 그게 묶어서 말을 한 거지 사실은 원 톱이었단 말이지."

"그랬어?"

"어. 그때도 딱 저랬다고 해. 두 사람이 대련을 하면 공태식 노사님이 피지컬에서는 압도하잖아. 그게 고스란히 무공에도 반영이 되는 거였지."

생물학적인 부분에서부터 남자와 여자의 피지컬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그런 류의 피지컬적인 부분을 메우는 것이 무공이다.

그것은 곧 무공에 대한 부분이 메꾸어지면 다시 또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격차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소리가 된다.

이에 따라 무공이 호각이었던 두 사람은 타고난 피지컬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되니 강거혁은 결국 공태식을 이길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무공의 방향이 다르다면 이야기가 복잡해지겠지만 두 사람은 똑같이 '피지컬'이 바탕이 되는 무공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마주친 비무대 위에서 공태식은 그것을 재확인하며 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변하지 않았구나, 너는.'

그 작은 체구에서 생각할 수 없는 힘과 육체의 내구도로 유명했던 강거혁은 그렇기에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공태식과 묶여 외공의 대가라 불렸다.

겉으로는 그런 무림의 시선에 웃으며 강거혁과 친구 노릇을 했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많았던 게 공태식이었다.

상대도 안 되는 놈인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차이가 더 벌어질 놈인데.

쥐방울만한 놈과 묶여 불리는 게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은근히, 대놓고 하지는 못했지만 은근히 깎아내리고 면박을 주었다.

먼저 떨어져 나가라고.

친한 척하지 말라고.

그런데 이놈이 꼴에 자존심만큼은 커서는 모른 척하면서, 그러면서도 아득바득 수련을 해서 이기려 드는 게 아닌가.

그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아가 치밀었다.

너 자신을 알라고. 분수를 알고 좀 대가리를 숙이면 될 텐데 아득바득 덤벼드는 게 짜증이 났었다.

결국 놈은 날 이긴 적이 없었다.

패배하고 또 패배하여 결국은 절망하여 산에 처박혀 버렸다.

그때가 공태식이 기억하는 가장 후련했던 날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는 것이 공태식을 기쁘게 했다.

제자를 발견해 희망을 찾아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고 했던가.

과연 그럴 만한 무골을 타고난 놈이었다. 벽태웅은.

허나 그것마저 부럽지 않았으니 그가 찾은 제자인 허성호 또한 그가 찾던 최상의 무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공태식은 그저 기분이 좋았다.

결국 이놈은 평생 날 이기지 못할 거라 확신을 가지게 해 준 것이.

마찬가지의 생각을 했으니 이놈은 이렇게 모든 걸 다 포기한 것마냥, 그 분수에 맞지 않는 자존심 때문에 정면에서 아득바득 덤벼드는 것 아니겠는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지켜보던 학생들마저 강거혁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도진은, 전혀 다른 눈으로 강거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곁에서 조금은 흔들리고 있는 벽태웅에게 말했다.

-흔들리지 마.

-…선배님.

-평소 네가 믿던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도 돼.

벽태웅은 누구보다 스승을 믿었다.

고모와 고모부. 부모님처럼 자신을 길러준 두 분과 함께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준 또 다른 부모가 바로 스승님이었으니까.

그런 스승이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벽태웅은 조금 생각이 많아지고 말았다.

하지만 선배가, 누구보다 '장남' 같은 선배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해 주었다.

그 등이 말했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자네, 여전하구먼."

비무대 위의 공태식이 말한다.

연신 강맹한 주먹을 내뻗는 중에 입을 열었음에도 기세에 흔들림이 없다.

그에 비해 풍랑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쪽배 같던 강거혁은.

"아니, 그렇지 않네."

돌연 그 풍랑을 너무나 부드럽게 빠져 나와 버렸다.

"……!?"

흠칫 놀란 공태식의 공세가 일순 무뎌지고 거리가 벌어졌다.

'무슨!'

그러나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발끈하여 공태식은 다시 주먹을 내뻗었고 정면에서 부딪친 강거혁의 주먹에.

쿵-!

"!!"

"어, 어어?"

"뭐야?"

거짓말처럼 팔이 뒤로 튕겨나고 말았다.

믿을 수 없게도.

완전히 같은 상황에서 정반대의, 공태식이 완패하는 상황이 나와 버린 것이다.

"…뭔가, 이게?"

너무 놀라고 분노하여 무림인인 공태식의 이성이 반대로 차갑게 식었다.

강거혁은 앞서와 달리,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웃었다.

"내 밑천이라네."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알아낼 수밖에!

공태식은 한층 신중하게, 집중하여 다시 공세를 펼쳤다.

저것은 '모르는 무공'이다.

그렇다면 분석해서 알아낼 수 있다.

강거혁이 익힌 건 거신공(巨神功)으로 진무(眞武)다.

거기에 저런 수법은 있지 않았으니 방금 보여준 것은 강거혁이 만들어낸 '트릭'일 것이니까.

트릭이라면 경지에 이른 자신의 눈으로 얼마든지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주먹을 쏟아내던 공태식은.

'뭐……야, 이건.'

곧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본능의 영역에서 인정하고 말았다.

쿵!

분명히 정면에서 격돌하는 주먹이거늘.

거짓말처럼 자신의 힘은 흩어지고 외부의 힘으로 주먹이 궤도를 벗어나 튕겨지고 만다.

도대체 왜,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즉.

그것은 분명히 '신비'가 깃든 수법이었다.

강거혁은 옅게, 부드럽게 웃었다.

젊은 날 평생의 숙원이었던 친우이자 벽이었던 무인을 이기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강거혁의 미소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 이유가 있었다.

'스승님.'

강거혁에게도 스승이 있었다.

그 스승은 완벽했으며 거신공의 대성에 이르는 토대를 닦은 대종사였다.

그런 스승의 제자가 자신이었던 게 평생의 짐으로 남았다.

-왜 저를 제자로 선택하셨습니까? 저는 그게 밉습니다.

그리고 평생의 흉터로 남고 만, 뱉어내고 만 그 말.

스승은 거기에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었다.

-너이기에 내가 하지 못했던, 대성에 이르는 길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야, 너는 나보다 좋은 무인이 될 것이다.

머릿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스승의 그 말이 상처가 되고 스스로에 대한 자조가 되었다.

그것이 오기가 되어 공태식에게 안 될 걸 알면서도 덤비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안 되었다.

절망했고 은둔했다.

'안 돼.'

그러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못난 나 대신 뒤를 이어 거신공을 완성해 줄 후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에 나왔고 벽태웅을 만났다.

-스승님.

처음엔 그저 의무감이었다.

하지만 거신공의 완성에 대한 희망으로만 선택했던 제자가, 마음 속에 들어와 버린 것이 아닌가.

믿을 수 없게도, 그것이 강거혁의 평생에 걸쳐 쌓이고 또 쌓였던 감정의 벽을 녹여 버렸다.

아집과 고집과 자조. 외면했고 그리하여 결국 보이지 않게 된 또 다른 길.

그것이 혼자가 아닌 둘이 됨으로써 드러났다.

후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의무가 아닌 미지의 감정의 발로로 강거혁이 그 길을 걷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 마음의 구현이다.

후우우웅-!

쇄도하는 주먹은 거대하기만 하다.

강거혁으로서는 절대로, 평생을 걸어도 도달하지 못할 길.

오랜 세월 그것을 그저 원망만 했었다.

원망하면서 그 길을 걷고 싶어서 아득바득 나아갔다.

뭐 어쩌라고. 난 타고난 천형(天刑) 따윈 엿이나 처먹으라 하고 결국 도달하고 말 거다.

그런 생각으로 나아갔건만.

결국 안 되는 길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고 이내 절망하고 말았다.

다만 얻은 건 분명히 있었다.

본래는 안 될 길을 걸었기에, 그 길을 걷는 이들과는 다른 시선에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고 그 길의 '약점' 또한 많이 보았다.

젊은 날엔 그 약점을 알면서도 찌를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혐오로만 점철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자가 생기게 되면서, 그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내 제자에게는 이런 약점이 없도록 해 주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이 약점을 보완하여 제자에게 알려 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했던 길을 걸었다.

필사적으로, 열심히 걸었다.

본래는 혐오와 원망만으로 점철되었던 그 길이, 믿을 수 없게도 밝기만 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음에도. 오히려 그렇기에.

그러니까 이것은 그 마음의 집대성이다.

원망과 혐오, 자조만으로 나아갔던 길이 아닌.

자신을 바꿔 준 제자를 위한 궁구이자 스승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던 못난 제자가 드디어 무언가를 자랑스레 말할 수 있게 된 그런 한 걸음.

그러한 한 걸음이니 당연히.

거신공(巨神功), 포부(抱付).

"크흑!"

이 수법은 결코 보는 것만으로는 꿰뚫어 볼 수 없는, 신비가 깃든 한 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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