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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49화 (449/741)
  • 448화

    아니, 됐어.

    감우상의 수작에 성지인은 그렇게 딱 잘라 말하지 못했다.

    사실 그것이 보통이라 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일반적으로 싫어하는, 비호감인 사람이 무언가를 제안했을 때 딱 잘라 거절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과 현실은 많은 부분이 달랐으니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말과 행동, 그리고 일이란 때와 장소, 맥락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속으로야 싫어한다 해도 겉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하게 제안하는 걸 거절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감우상은 몇 가지 '기술'을 더했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운 그림을 만들어냈다.

    아직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서투르고 경험도 적은 성지인은 그렇기에 감우상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이었다.

    -어휴, 저 착한 바보…….

    도진의 곁에 선 상미가 그런 성지인의 모습에 몰입하여 답답해 했다.

    상미는 성지인에게 많이 공감하는 입장이었고 그 공감은 자연스레 '과몰입'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전음에 가슴을 탁탁치며 답답해 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도진은 하하 웃으며 그런 상미의 등을 남몰래 다독여 주었다.

    감우상에게서 이너 슈트를 받아든 성지인이 한 켠에 마련된 탈의실로 들어갔다.

    동시에 감우상 또한 이너 슈트 하나를 들고서 남자 탈의실로 향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둘이 무복 안에 이너 슈트를 입고 탈의실을 나왔는데, 제법 태가 났다.

    "오."

    "괜찮네."

    무복 사이로 드러난 이너 슈트는 실제로 고급스러웠으며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빨간색에도 싸구려와 고급스러움이 있듯, 무려 500만원이 넘는 이너 슈트는 그 재질과 디테일한 부분에서 문외한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던 것이다.

    '흐응.'

    도진 또한 그런 고급스러운 이너 슈트에 더욱 고급스런 곡선이 무복 사이로 드러나는 성지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위 말하는 'S 라인'이 아니라 단련을 통해 다져진 무인으로서의 라인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아무래도 기초부터 코치했기에 그런 부분에서 자신의 몸도 아닌데 만족감이 느껴지는 도진이다.

    "와, 잘 어울린다. 역시 바탕이 좋으니까 옷도 핏이 사네."

    감우상이 갈아입고 나온 성지인의 모습에 박수를 치며 칭찬한다.

    그리고 본론을 꺼냈다.

    "그럼 기능을 한 번 알아봐야겠지? 너무 세게는 말고, 나를 한 번 공격해 볼래?"

    "…공격을?"

    "어. 뭐 너무 세게 치지는 말고, 적당하게. 나는 방어만 할게."

    "……."

    "아! 걱정 마. 비무를 하자거나 그런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슈트의 성능을 보여 주고 싶은 거니까."

    "…알았어."

    관심에 몰린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였기에 긴장한 얼굴로 성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해, 라고 말하며 가볍게 진각을 내딛으며 주먹을 뻗었다.

    내공도 거의 담겨 있지 않았으며 속도도 느렸기에 감우상은 문제없이 거기에 맞춰 대응할 수 있었다.

    텅-!

    "……."

    "오?"

    "와."

    감우상은 팔뚝을 들어 방어했다.

    그런데 주먹과 옷에 감싸인 팔뚝이 부딪쳤는데 터엉하는 소리가 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공격을 막아낸 감우상이 씨익 웃으며 소매를 걷어 이너 슈트를 보여 주었다.

    이너 슈트는 슬쩍 각이 져 있었으며 한 눈에 봐도 경화, 그러니까 딱딱해져 있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내공을 불어 넣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옷이 그 자체로 방패가 되는 거지. 자! 그럼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여러 번 공격해 봐!"

    감우상이 흐름을 탄 목소리로 재촉했고 성지인이 거기에 끌려가듯 연속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터텅! 터터터텅!

    주먹은 팔뚝만이 아닌 가드를 뚫고 여기저기에도 몇 방이 박혔다.

    감우상이 일부러 허용한 듯한 그 공격은 하나도 빠짐없이 아까와 같은 단단한 것을 때린 듯한 소리가 났다.

    "오오오……."

    "와, 저거 진짜 호신강기 아니냐?"

    성지인의 공격을 정말로 갑옷, 호신강기가 막아내는 듯한 연출에 지켜보던 학생들은 물론이요 인솔 교사들마저 감탄했다.

    감우상이 그 감탄을 갈채처럼 받아들이고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때? 괜찮아 보이지 않아?"

    "아, 응. 좋은 거 같아."

    "이게 내공을 불어 넣어서 단단하게 할 수 있는 면적을 세밀하게 컨트롤할 수도 있단 말야. 아까처럼 한 부위를 단단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고 아예 몸 전체를 커버할 수도 있어. 익숙해지면 원하는 부위만 즉시 단단하게 할 수도 있는 거지. 나는 이게 앞으로 이너 슈트의 판도를 바꾸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많은 학생들이 은연중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다만 도진만큼은 그 미래를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로 흥이 오른 듯한 얼굴로 감우상이 성지인을 보며 말했다.

    "자, 그럼 너도 한 번 해 봐."

    "내가?"

    "어. 천천히, 살살 공격할 테니까 원하는 곳에 내공을 집중해서 주입하는 느낌으로 하면 돼."

    "어, 내공 주입?"

    "빡센데."

    내공을 '신외지물(身外之物)', 그러니까 육체가 아닌 것에 주입한다는 건 기실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어려운 게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가 일류에 가까운 경지를 요구하니 학생 기준으로는 허들이 터무니없이 높다.

    그러니까 내공을 주입해야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너 슈트는 범용성이 부족해 보이지만 아니었다.

    "아, 그건 오해입니다. 이건 특수 제작된 물건이라 내공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공을 발출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오……."

    "그건 좀 쩌는데."

    직접 주입해야 하는 것과 단순히 발출하는 걸 외부에서 스스로 흡수하는 건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때문에 사람들이 또 한 번 감탄하는 사이 감우상이 성지인에게 준비됐어, 하고 묻고선 움직였다.

    성지인은 조금 불편한 얼굴로 감우상의 공격을 막았다.

    텅-!

    "오, 잘하네. 한 번에 성공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은데. 역시 용봉이야."

    "그럼 아까처럼 나도 연속해서 공격해 볼게."

    칭찬을 하고선 감우상이 페이스를 높였다.

    터텅-!

    두어 방 정도를 성지인은 감우상이 했던 것처럼 막아냈다.

    하지만.

    퍽!

    "아."

    "어, 미안. 괜찮아?"

    그 다음 세 번째를 성지인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몸으로 받았다.

    옆구리를 가격한 감우상이 놀란 얼굴로 다가가 부축하려 했다.

    "응. 괜찮아."

    '흐음.'

    그런 감우상의 접근을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물러나 피하는 모습을 보며 도진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놀란 척을 했지만 그게 다 연극이었다.

    감우상이 뭘 노리고 있는지 도진에게는 그 순간 다 보였다.

    '적응이 필요한 물건이야.'

    내공을 발출하는 것 자체가 학생의 수준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익숙지 않은, 신외지물에 내공을 주입해야 하고 그것을 컨트롤해야 하는 게 단번에 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우상은 템포를 빠르게 가져갔고 그것은 성지인의 실수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부축을 하는 그림, '스킨십'으로 이어지는 것이 감우상의 노림수였다.

    그러면서 덤으로 자신의 능력도 뽐내고 말이다.

    하지만 그 시도 또한 성지인은 완벽하게 차단, 거절했다.

    '속이 좀 타겠지.'

    배짱이 있다고 해야 할지, 철면피라 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보는 입장에서는 불쾌한 도전 정신인지 성지인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한 감우상이다.

    하지만 성지인은 말로는 딱 잘라 거절하지 못했지만 행동으로는 일체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니 감우상으로선 더 감질나고 미쳐 버릴 일일 것이었다.

    그런 감우상에게.

    "저기, 이거. 나랑은 안 맞는 거 같아."

    성지인은 그런 말을 했다.

    "어, 안 맞다고?"

    "응. 미안한데, 나한테는 방해가 돼."

    감우상이 아니아니하고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좀 그럴 수 있어. 신경 쓸 게 많아져서 평소랑 다르게 꼬이는 느낌이 드는 게 정상이야."

    "하지만 쓰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익숙해지면 정말로 든든하고 좋은 물건이라는 걸."

    성지인을 설득하려 드는 감우상.

    그러나 이번만큼은 단호하게 성지인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있겠지만 나는 아니야."

    "아니, 왜?"

    분명한 그 말에 감우상이 되물었다.

    여기에 성지인이 답했다.

    "나는, 내가 익힌 무공은 그 자체로 호신기(護身氣)의 효과가 있거든. 그래서 슈트랑 충돌을 해."

    "…어?"

    "뭐야? 호신기?"

    성지인의 말에 학생들이 한 박자 늦게 반문했다.

    그리고 이어서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뭐야? 호신기라고?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아니 무슨 무공에 패시브로 호신기가 있어? 그런 무공이 있다고?"

    이름없는 이가 했다면 무슨 헛소리냐고 반문했겠지만 그것이 무려 '잠룡 키즈'이자 후기지수 용봉인 성지인이었기에 그렇게 놀라움이 웅성거림이 되어 퍼진 것이었다.

    호신기란 것은 그만큼이나 파급력이 큰 단어였다.

    "아니, 무공 자체에 호신기가 있다니 그게……."

    철면피가 수준급이었던 감우상마저 당황하고 말 정도로.

    허나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신공(神功)이 괜히 신공이겠는가.

    하물며 성지인이 익힌 격룡신공(激龍神功)은 천마신교의 기둥 중 한 명이었던 광룡군이자 용마의 독문신공이다.

    이 격룡신공을 연마함으로써 얻게 되는 격룡기는 육체를 가득 채우고 휘돌며 자연스럽게 호신기의 공능을 발휘한다.

    일전 입학 시험 비무에서 이문호가 악랄한 한 수로 성지인의 늑골, 그러니까 갈비뼈를 노렸을 때 느꼈던 반탄력.

    그것이 바로 격룡기에 의한 호신기였던 것이다.

    육체만으로도 단단하지만 거기에 격룡기에 의한 호신기까지 더해졌기에 성지인은 이문호의 그 한 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지인이었기에 호신기의 기능을 가진 이너 슈트가 맞지 않았다.

    내공을 흡수하여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는 이너 슈트를 입고서 격룡기를 다루려 하니 아직은 부족함이 있던 성지인이 불편한 얼굴로 불편한 운용을 해야 했던 것이다.

    때문에 아까와 같은 파탄을 보인 것이었고.

    "아니, 그……."

    감우상은 성지인의 그런 사정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인정하기 힘들었으니까.

    "이게 그러니까 내가 직접 보고, 내가 추진해서 들여온 거거든? 그러니까 장담할 수 있어. 익숙해지면 정말 좋은 장비란 말이야."

    '그랬구나.'

    도진은 감우상의 말에 상황을 다 알 수 있었다.

    어쩐지 적극적이었던 데다 성지인을 설득하려고 조금 무리수를 두는 듯하다 싶었더니 직접 들여온 물건이었던 것이다.

    감우상 정도 되면 집안에서, 오너 일가로서 한 자리를 자연스레 맡게 된다.

    그 자리에서 직접 추진하여 들여온 물건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지인이 부정해 버렸으니 조금 멘탈이 흔들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린 멘탈이 감우상이 또 한 번 무리수를 두게 만들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어?"

    "한 번 제대로 공격해 봐. 내가 그걸 이 슈트로 완벽하게 막아줄 테니까."

    "아, 그건……."

    "네가 특별한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라는 걸 부정하는 건 아냐. 하지만 동시에 나도 이 슈트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거든. 그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여기까지만 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리고 분위기가 심각해지면 안 되니까 가벼운 내기를 더하자. 내가 막아내면 작은 소원 들어주기. 대신 막아내지 못하면 내가 작은 소원 들어줄게."

    "아……."

    감우상의 끈덕짐에 결국 성지인의 시선이 어미새를 찾듯 도진에게로 향한다.

    그 시선에 도진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았어. 그럼 조심해."

    소지존의 '계시'에 성지인이 마음을 굳혔다.

    쿠오오오오-!

    그리고 격룡기가 깨어나며 그 주먹에 깃들었다.

    '너무 세게는 안 돼.'

    죽일 순 없으니 어느 정도 자제는 한다.

    그러나 절대로, 결코! 감우상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진심을 담았다.

    감우상은 그런 성지인의 기세에 힘을 꽉 주고 아랫배에 내공을 모았다.

    명치를 칠 수는 없으니 그 아래를 치려 한다는 걸 대놓고 보여 주고 있었기에 거기에 집중한 것이다.

    내공이 빠져 나가며 이너 슈트가 전에 없이, 할 수 있는 최대로 단단해진 것을 느낀다.

    당연히 전체를 단단하게 하는 것보다 한 점에 집중하는 것이 더 높은 방어력을 보장한다.

    '오케이.'

    좋다. 이거면 된다.

    감우상은 생각 이상의 방어력에 만족했고.

    뻐어어어어어억-!!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지켜보던 누군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와, 씨발……. 존나 아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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