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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47화 (447/741)

446화

이번 글로벌 무림학교 교류회가 열린 곳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그렇기에 랜드마크가 된 커다란 전시장이었다.

이곳을 통째로 대절한 것만 보더라도 의천검가를 필두로 한 이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그 규모에 걸맞게 개최 전부터 대대적으로 보도 자료를 배포하는 등의 광고 작업이 선행됐지만 그로 인한 참가자들의 불편은 없었으니 기자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가 없었다는 말이다.

의천검가가 제법 처리를 잘 한 것이었다.

그런 형태로 '빈수레가 요란한' 광고를 하는 건 하책(下策)이다.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교류회가 되려면 동시에 그에 걸맞는 수준의 참가자들을 모아야 했고 그들이 불편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해 보면 간단하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지키지 못하는 부분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도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문호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던 것.

의천검가라면 당연히 알아서 해야 했던 숭무고, 그리고 김도진을 광고에 이용하려 드는 조잡한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

때문에 인솔 교사 강거혁을 필두로 한 숭무고 일행은 불편함없이 교류회장에 입장할 수 있었고.

흠칫-!

도진은 안에서 눈이 마주친 선남선녀 일행이 흠칫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림학교 학생임을 증명하는 무복 형태의 교복을 입었지만 '태'가 다른 이들.

아는 사람이 본다면 하나같이 명품으로 치장했음을 알아볼 그들에게는 그 명품만큼이나 자신만만한 기세 또한 묻어난다.

일전.

다름 아닌 '성지인 자신감 뿜뿜 작전'에서 좋은 조연 역할을 해 주었던 명품 카페 거리의 학생들이었다.

자신감이 조금 선을 넘어선 인상의 그들은 레드 카펫을 걷듯 당당하게 교류회장 안을 걷다 도진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고 만 것이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서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당시에야 그저 경황이 없어 머리가 새하얘진 정도였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스스로의 잘못이 되살아나 며칠간 잠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얕잡아 보고 섭음술조차 제대로 쓰지 않고 쑥덕거렸다.

그걸 김도진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 어떻게 맘 편히 잠들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물론 김도진은 그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당시의 일을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하길 의도하여 행동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의도대로 움직여 주었는데, 심지어 그게 사실도 아닌 이야기인데 화낼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안절부절못하는 그들과 달리 도진은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개중 한 명. 유독 돋보이는 여학생 한 명이 있어 시선이 조금 머물렀다.

그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그녀는 그렇기 때문인지 조금 겉도는 느낌이 있다.

동시에 다른 이들과 달리 도진을 보고서도 그다지 흔들림이 없다.

스스로 켕기는 게 전혀 없다는 그 태도에 도진도 조금 시선이 갔던 것이다.

'수성중고였지.'

수성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 학교인 수성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무림학교이면서 동시에 부자들의 학교로 유명했다.

재력이 받쳐주는 이들의 학교인 만큼 당연히 평균적인 무공 수준도 높다.

다른 것보다 특히 재력적인 부분에서 강점이 있다는 데서 이번 교류회에 참석한 이유가 보였다.

흠칫!

그리고 인사없이 그들과 지나친 뒤 또 한 번, 도진을 보고 흠칫하는 이들을 보았으니 이번에도 화려한 외모의 학생들이다.

무림학교 학생 중 남녀 가리지 않고 외모에 있어 부족한 학생은 지극히 드물다.

다만 그 정도의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그들의 외모는 한층 특별했으니 단순히 멋지거나 예쁘다가 아니라 조금 더 '고차원적인 기술'이 가미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 그런 '외모'에 관한 기술이 특히나 발달된 업계. 연예계와 가까운 무림학교의 학생들이 그들이었다.

화명고등학교.

무림학교이지만 동시에 예고의 성격 또한 강한 학교다.

현대의 어느 곳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예고 또한 무공의 중요성이 강조되니 연예인의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외모와 몸을 가꾸는 데 있어, 그리고 그것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도 무공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화명고는 그렇게 무림학교이면서 예고였는데 그렇기에 화명고 학생들은 도진을 보고서 특히나 큰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다름 아닌 도진이 3대 기획사 중 현재 원탑 포스를 자랑하는 바른 엔터의 대표이사였으니까.

그리고 개중에 조금, 다른 학생들과는 궤가 다른 감정으로 흠칫 놀란 몇 명이 있었으니 도진의 동생인 유진이와 같은 오디션에 참가했던 '양아치 그룹'이다.

여림이란 이름의 여학생과 그 여학생을 중심으로 한 무리의 몇 명.

도진은 그들의 불안한 눈동자와 그 안에 보이는 더 큰 공포에서 그날 '참교육'을 했던 남학생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는 걸 꿰뚫어 보았다.

그래, 예고로서의 성격이 강한 화명고의 학생이라면.

그리고 연습생까지 되었다면 유진이가 누구인지 뒤늦게라도 알 만하고 그렇다면 그날 남학생이 누구인지도 자연스레 유추할 수 있다.

어쨌든.

'세상이 좁다면 좁네.'

안에 들어와 처음과 두 번째로 마주친 학교가 모두 인연이 있다.

"왜 그러세요, 오빠?"

"아, 그냥. 다 아는 얼굴이어서."

그래서 슬쩍 웃음이 나온 것이었다.

교류회는 일주일로 일정이 잡혀 있다.

합숙은 아니고 준비된 여러가지 프로그램 중 원하는 곳에 신청을 하고 일정에 맞춰 참가하면 되는 형태다.

그러니까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마주치지 않을수도 있지만, 반대로 얼마든지 구면인 그들과 마주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마주치면 어떻게 될지. 도진은 다시 한 번 슬쩍 웃었다.

화명고와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지나쳤다.

이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기에 대부분은 그렇게 스쳐갔다.

다만 시선만큼은 숭무고에 집중되고 있었는데, 그 시선에는 높은 비중으로 경쟁심이 담겨 있었다.

'타도 숭무고…… 같은 건가.'

숭무고는 기업으로 치면 금화와 같이 부동의 1위로 인정받으며 그만큼의 명성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여타의 무림학교에서는 그런 숭무고의 '왕좌'를 탈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곳이 적지 않았다.

전국에서 이곳에 모인 이들 다수는 명문답게 아무래도 그런 목표를 가진 이들이 많은 듯했다.

그리고.

"오랜만이군."

그 경쟁심이 유독 강한 학생들의 무리가 도진 일행에게 다가왔다.

스으-

동시에, 그와 마주한 인솔 교사로 함께 온 소거인 강거혁의 기세가 일순 흔들렸다.

"그래, 오랜만이군."

강거혁과 마주하는 저쪽의 인솔 교사는 어마어마한 거한이었다.

단순히 키와 덩치가 큰 게 아니라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될 만큼의 기세를 풍긴다.

생물의 본능적인 부분에서부터 우위를 점하게 만드는 타고난 피지컬을 자랑하는 그는 그렇기에 흰머리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흔적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거의 20년 만인가? 자네가 갑자기 산에 들어가 버린 뒤로 못 봤었지?"

"그래, 그랬지."

그는 강거혁과 안면이 있는, 그 정도를 넘어 제법 친해 보이는 이였다.

'태산 공태식.'

공태식. 태산(泰山)이란 별호를 가진 무림 르네상스 시대 이름을 떨친 이로 강거혁과 함께 돋보이는 피지컬을 자랑하는 무인이다.

특기할 만한 부분은 타고난 육체적 한계로 벽에 부딪쳤었던 강거혁과 달리 공태식은 그 부분에서 축복받은 무골로 더 높은 경지에 도달, 더 이름을 떨쳤었다는 거다.

"그때 그렇게 자네가 절망하고 두문불출해서 꽤 걱정을 했는데, 이제 제법 얼굴이 폈어?"

"자네가 봐도 그런가? 맞아. 이제 걱정을 꽤 덜었어."

"하하! 그거 다행이군. 그렇지. 마음 편하게 먹는 게 좋은 거라는 걸 나도 요즘 느낀단 말이야. 저쪽이 그 유명한 자네 제자인가?"

"맞아. 태웅아, 인사해라. 내 친구다."

"…예.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오, 그래. 네가 황룡으로 그렇게 유명하다지. 타고났네."

"예.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이쪽도 제자를 소개시켜 줘야지. 여긴 내 제자인 허성호야. 태룡(太龍)이라고들 부르지."

공태식이 소개하는 건 뒤의 학생들 중 유독 돋보이던 남학생이었다.

지금까지 도진이 본 이들 중 최고의 피지컬을 자랑하는 벽태웅 못지 않은 육체가 눈에 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허성호라고 합니다."

170.

무림인으로서는 치명적일 정도의 단신인 강거혁의 앞에 선 허성호의 2미터를 넘는 키가 더욱 극명해진다.

그 정도의 키에도 불구하고 균형이 딱 잡힌 거대한 덩치의 그에게 강거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태식이보다 오히려 더 재능을 타고난 거 같군. 태식이가 제자 복도 좋구먼."

"하하하! 그렇지! 알아보는구먼. 이 녀석이 앞으로 내 이름을 물려받아서 최고의 권법가가 될 거야."

강거혁의 칭찬에 공태식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기뻐하며 웃는다.

"그럼 있다 다시 봄세."

"그래. 그러지."

공태식은 도진을 포함한 학생들에게도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선 떠나갔다.

그 인사를 건네는 시선 안에 여유로움으로 감춘 경쟁심이 불타고 있음을 도진은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벽태웅이 불편한 얼굴을 했다.

"어디 가서 좋은 이야기 듣기는 힘든 타입의 노사님이군요."

벽태웅의 감정을 대변하듯 도진이 말했고 강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좀 그런 면이 있는 친구였지."

공태식과 강거혁의 대화는 겉으로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간의 인사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상당히 달랐다.

무림 르네상스 시절 크게 이름을 떨쳤으나 역설적이게도 스스로의 한계를 더욱 크게 느껴 절망했던 강거혁.

그런 강거혁과 동시대에 이름을 떨치며 강거혁과 대비되는 무공의 가능성을 최대치까지 끌어낼 수 있는 육체를 타고났던 공태식이다.

한데 그 공태식이 얼굴이 폈다느니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게 좋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데 좋게 보일 수가 없다.

그것이 아무 생각 없이 한 게 아니라 의도가 담겨 있었기에 차라리 악질이라 할 만하다.

그걸 읽을 수 있었기에 벽태웅은 표정 관리를 하느라 좀 애를 먹어야 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허성호란 놈도 강거혁의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랑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벽태웅이 만약 조금이라도 생각이 얕고 성급한 성격이었다면 버럭 소리를 쳤을 것이다.

강거혁은 그런 제자의 마음을 다 알기에 껄껄 웃으며 말했다.

"뭐, 크게 신경쓰지 말게. 태웅이 너도 끙끙 앓을 것 없다. 그걸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엔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

자신이야 세월이 더해져 집착과 비움에 관해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지만 제자는 한창인 시기가 아닌가.

소림사의 중도 아니고 마음에 둘 것 없다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애초에 강거혁의 성격도 그런 허허로움과는 제법 거리가 있고 말이다.

그러니까 제자에게 앓는 대신 화끈하게 풀면 된다고 말한 것이다.

강거혁의 말에 도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급된 안내 책자에는 실제로 감정을 풀 수 있는, 제법 기대되는 일정들이 기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 또한 이 일정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재밌겠네.'

도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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