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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46화 (446/741)
  • 445화

    용봉지회(龍鳳之會).

    무협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청춘의 장으로 경쟁, 시기, 질투, 연애 등등등…….

    수많은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그 이벤트를 현대의 무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창하게 볼 것도 없이 젊은 무림학교의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교류회가 바로 그런 '용봉지회' 아니겠는가 말이다.

    작게는 동아리 단위부터 시작하여 크게는 국가 단위로 그런 교류회가 한국에서도 제법 많이 열리곤 했다.

    상품이나 상금이 걸린 비무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논검(論劍), 그러니까 토론회가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역사 있는 교류회도 있다.

    중요한 건, 순수하게 청춘의 장이 되기도 하는 교류회가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어른들의 영역이 더 넓어진다는 것이다.

    간단한 이야기다.

    판이 커지면 그 판에 걸리는 '돈'의 규모 또한 커지니까.

    보통은 무인을 중심으로 이야기 되는 무협지의 용봉지회 역시 주인공이 무인이 아닌 상인이라면 그 부분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사람이 몰리니 노점이 성황일 것이고 숙박업 또한 제법 돈을 만질 수 있다.

    그에 따른 물류의 이동에 주목해야 할 것이고 어디와 계약하여야 큰 마진을 남길 수 있는가도 따져야 한다.

    현대인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고 때문에 현대의 커다란 교류회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파악할 수도 없을 만큼 복잡한 '계산'이 따라붙는다.

    그런 계산이, 이문호가 내민 서류에 포함되어 있었다.

    도진은 그 서류와 이문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그래. 한 번 책임지고 추진해 봐."

    "…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이문호는 너무나 간단히 나온 긍정과, 그 뒤에 나온 심지어 책임을 지고 추진해 보라는 말에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도진은 옅게 웃고선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 니가 제안했으니 니가 책임지고 추진해야지. 그렇잖아?"

    "…예. 그, 렇습니다."

    "잘 해 봐."

    이문호는 드물게도 조금 멍한 표정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며 집행부실을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심복이라 할 수 있는 태종훈과 감우상이 함께 한 자리에서 말했다.

    "왜 우릴 도와주는 걸까."

    이문호는 물론이요 태종훈과 감우상 또한 며칠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글로벌 무림학교 교류회는 의천검가가 주도하여 '론칭'하려 하는 상품이다.

    단순히 무림학교의 학생과 관계자들이 모이는 교류회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커다란 사업 아이템으로 보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의천검가의 영향력이 미치는 여러 분야에도 협조를 부탁하였고 스타트부터 크게 끊으려는 의도로 준비를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도진'이 그런 의도와 정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걸 모를 거라 낙관할 만큼 멍청해서야 의천검가 출신이란 말도 못한다.

    그렇다면. 그걸 알면서도 김도진은 왜 이문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심지어 책임지고 추진해 보라는 말까지 꺼낸 걸까.

    태종훈이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문호와 감우상의 시선이 향한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이문호의 말에 태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선배가 우리한테 적대적이거나 뭐 그런 건 하나도 없었잖아?"

    "…그러고 보면 그랬지."

    감우상이 동의했다.

    "우리가 집행부를 먹겠다는 걸 선배도 잘 알고 있으니까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겠더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꼭 그렇지가 않다고?"

    "봐. 선배 입장에서는 지금 2학년까지 포함해도 요번 1년만 지나면 사실 숭무고를 완전히 떠나는 거나 다름없잖아."

    그렇다.

    김도진이나 서소담, 그리고 유지은까지도 사실 특이 케이스로 3학년에도 학교에 남아 있던 것이지 보통 무림학교 3학년은 학교는 이름만 올려두고 무림에서 활동을 한다.

    그러니까 이번 1년만 지나면 김도진은 졸업생이 되고 자연스레 학교를 떠나는 김도진을 따라 소위 말하는 '잠룡 패밀리' 또한 학교에서 손을 떼게 되는 수순을 밟을 거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건 선배가 넌지시 눈치를 주는 거 아닐까? 요 1년만 조용히 지내면서 밑작업만 하고 선배가 학교를 졸업하면 그때부터 제대로 하란 거지."

    "흐음……."

    일리가 있다 생각하는 감우상이었다.

    반면 이문호는 오답이라 판단했다.

    그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한 김도진이란 인간이 그렇게 '안 보이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움직일 거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허나 그렇기에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왜 그토록 쉽게 제안을 수락하고 책임자로 임명해 주었는지.

    이문호에겐 그것 자체가 의문을 넘어 생애 첫 경험이기까지 했다.

    서로가 패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의 수 싸움.

    가문에서조차 이문호가 무언가를 할라치면 그런 수 싸움을 해야 했고 어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치열하게, 처음부터 절반 이상이 반려될 것까지도 각오하고 열이 날 정도로 설득하고 또 열변을 토해서야 그렇게 반절이 된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게 기본이었다.

    가문에서도 그러했는데, 명백하게 적이라 생각했던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책임자로 임명하고 잘 처리해 보라고 '격려'까지 해 주었다.

    심지어 그 격려는 말뿐이 아니었으니.

    "이번에 교류회 한 번 가볼까 하는데 가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 해 줘."

    다른 멤버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문호가 아닌 김도진이 직접 그런 말까지 해 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문호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정말로 순수한 호의란 말인가.

    이게? 그런 게 정말로 있다고?

    그렇게 혼란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울려던 차.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으니까, 겠지?

    기억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 있었으니 무진혁과의 대화다.

    -도진이 생각은 그거지. 입부해서 해야 할 일만 잘하면 터치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잘못을 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간단하지?

    그 대화가, 이문호의 생각의 방향을 확 꺾이게 만들었다.

    '아, 그래. 그건가?'

    안절부절못하고 고민하는 건 나뿐이고 김도진은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다만 헛짓거리를 하면 무사하지 못할 거다.

    그래, 그런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김도진은 압도적인 강자이니까.

    '……열받네.'

    * * * *

    도진이 이문호의 제안을, 교류회 참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한 건 그것이 긍정적인 경험이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윤상미와 성민혁, 그리고 성지인에게.

    여러가지 경험은 윤택한 삶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동시에 무(武)에도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준다.

    도진이 기억하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있었던 사회적인 문제에 관한 화두 하나가 '젊은 무인들의 성장 정체'였다.

    일류 무인의 증거인 A-3 자격증이 소위 말하는 '사짜 직업' 이상의 성공을 상징하게 되면서 그 A-3 자격증을 따기 위한 족집게 과외와 학원 등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A-3 자격증, 일류에 이르기 위한 '더 정교한 공식'이 계속해서 갱신되어 갔다.

    최소한의 재능만 있다면. 설령 그 재능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점점 더 정교해져 가는 공식을 달달 외워 반복 숙달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일류에 이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미래를 파는 행위다.

    위지혁은 이에 관해 그렇게 평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일전 보았던 '신비가 사라진 술법'처럼.

    무도(武道)이자 심공(心功)이어야 할 무공이 그저 수식화된 공식으로써 다루어졌고 본래 수련하는 과정에서 동반되어야 할 심(心)적인 부분이 거세되었다.

    그러니까 육체와 기술만이 일류에 이른, A-3 자격증만을 따는 데 특화된 그 '길'은 독이 되어 이들이 절정으로 이를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서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마치 공부만 파느라 '사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삶에 관해선 전혀 모르는 인간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소위 말하는 'A-3 세대'가 그 진전이 더디고 절정에 이르는 비율이 너무나 낮자 나온 화두였고 장호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화두라고 했다.

    -위 형님 사후 무림에서도 그런 유행이 있었다. 무공은 진보했고 환경만 받쳐준다면 누구나 쉽게 상승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지. 허나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그 이상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지 못하는 후기지수가 많았고 오히려 몇십 년이나 무림은 퇴보했지.

    그리고 위지혁과 장호는 지금 현대가 바로 그런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했다.

    '전생에서는 이런 건 생각하지도 못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렇다.

    무수한 정답이 있는 무공의 영역에서 누군가가 정해 놓은, 정형화된 수식만을 받아들인다니.

    그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데.

    시야가 넓어진 지금 보면 마치 재능 있는 젊은 후기지수들을 함정으로 밀어 넣는 것만 같다.

    그런 것들을 본 도진이었기에 윤상미와 성민혁, 그리고 성지인을 위해 이번 교류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의천검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도진이 그것을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가이니까.

    그런 면에서 무(武)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지만 인(人)으로서는 아직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게 많은 셋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것들을 보기를 바랐다.

    아마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세 사람에게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네. 한 번 가 볼게요."

    "소, 소지존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도진의 제안에 성민혁은 생기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성지인도 긍정적이었다.

    "오빠도 가시는 거예요?"

    "응."

    "네!"

    그리고 상미 또한 도진이 함께 간다니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교류회에 참가하는 멤버는 총 여덟이 되었다.

    3학년의 김도진, 2학년의 윤상미, 벽태웅, 그리고 1학년의 성민혁, 성지인, 이문호와 태종훈, 감우상까지.

    멤버가 여덟에 모두 집행부로 구성된 건 이번 1회에 한해서는 각 학교의 학생회에 해당하는 인원만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첫 개최인 만큼 인원을 한정하여 실수가 없도록 하면서 경험을 쌓고 2회부터 제대로 개최한다는 의도였다.

    여기에 인솔 교사로는 강거혁이 함께 하게 되었다.

    아무리 성인 대우를 받는다 해도 아직은 학생 신분인 학생들과 함께 갈 교사가 한 명은 있어야 했는데 여기에 강거혁이 흔쾌히 나서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참여 인원이 확정되고 이문호가 생각 이상으로 잘 준비하여 숭무고는 문제없이 얼마 뒤 열린 제 1회 글로벌 무림학교 교류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금요일 오후.

    큰돈이 투자되었다는 걸 그 규모로 짐작케 하는 드넓은 교류회장에 들어선 도진이 슬쩍 웃었다.

    "왜 그러세요, 오빠?"

    곁에서 함께 걷던 상미의 물음에 도진이 웃음을 조금 더 진하게 하며 말했다.

    "아, 그냥. 다 아는 얼굴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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