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화
도진의 채널은 어마무시하게 성장했다.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잠룡 김도진'이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인물이 되었으니 자연스레 소통할 수 있는 개인 너튜브 채널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 잠룡문으로 그 관심이 확장되고 결정적으로 '바른 엔터의 대표 이사'라는 직함이 날개를 달게 해 주었다.
3대 기획사란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된, 현재 폼으로는 압도적인 원탑 포스를 자랑하는 바른 엔터의 대표 이사.
이것이 단순한 직함이었다면 그럴 수 없었겠지만 도진은 전면에서 명성을 떨치는 사람이었고 '아빠 매니저'로 팬들에게도 압도적인 지지와 동시에 그것이 반영된 인기까지 얻은 특별한 포지션에 있었다.
바른 엔터 TV에도 꾸준히 얼굴을 비추었고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있어서는 친구이면서 동시에 수장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 주었으니 팬들이라면 지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도진은 개인 채널에서 그치지 않고 잠룡문과 바른 엔터를 묶어 소위 말하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운영하는 전략을 취했다.
흔히 말하는 '잠룡 유니버스'가 그것이다.
김도진은 개인 채널에서는 물론이요 바른 엔터와 잠룡문 관련 영상에서 그것을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게스트를 적극적으로 부르는 등 그것이 연동되도록 했고 큰 성과를 얻었다.
"좋은 전략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대세는 '꼴라보'거든요."
"서로가 윈윈할 수 있으니 저희도 적극 그것을 고려하여 전략을 수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진이 전권을 위임한 바른 엔터의 다섯 전문가들도 긍정적이었고(그 안에 김성덕이 잘 녹아들어 있어 도진이 만족했다) 오성아 또한 좋은 전략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보탰다.
"100만 구독자 이벤트로 시작한 거, 이벤트가 아니라 고정 콘텐츠로 해서 협력 하에 진행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잠룡 김도진 개인에서 그치지 않고 잠룡문의 이미지를 더하고 여기에 바른 엔터의 아티스트들 또한 참여하여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다.
"네. 그럼 저도 생각해 볼 테니 눈나도 좋은 의견 있으면 말해 주세요."
무림인의 3요소는 무력(武力), 금력(金力), 그리고 명성이다.
여기서 명성과 금력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것이 '너튜브 스타'인데 이 부분에 있어 도진은 잠룡 김도진이자 잠룡문주, 그리고 바른 엔터의 대중에 유명한 대표 이사로 단숨에 무림 명숙 이상의 영역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시청자들과 화려한 게스트들이 함께 하는 술먹방이 한창이다.
이은지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사실은 이번 앨범이 잘 될까 걱정을 좀 했어요."
"응응, 그랬지."
설현주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향하는 건 도진이다.
도진이 조금은 멋쩍게 웃었다.
"모두 제가 부덕한 탓입니다."
-??
-뭐 있었음?
시청자들의 궁금증에 유혜진이 말했다.
"도진이가 작업중에 계속 그랬거든요. 은지가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우리가 보기엔 진짜 말도 안 되는 퀄리티였는데 말예요."
그리고 거기에 설하은까지 말을 보탠다.
"사실 좀 도진이가 그런 게 있어요. 다른 사람들한텐 안 그러는데 은지한테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선."
"응응! 맞아. 그런 게 좀 있지."
-오, 그런 게 있었구나.
-요거 편애 아님?
설현주는 자신의 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 도진이는 편애 같은 건 절대 안 해요. 응. 이건 진지 잡숫고 말할 수 있는 거!"
"그건 맞죠."
-오 ㅋㅋㅋ
-겁나 신뢰받고 있네 ㅋㅋ
말 그대로 갑자기 진지한 분위기였으나 시청자들은 긍정적으로 그것을 받아 주었고 좋은 쪽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어쨌든, 그래서 은지가 도진이 채찍질에 더 열심히 해서 나온 게 이번 앨범이라는 거죠. 해피엔딩!"
사실 이 부분은 도진이 기억하고 있는 전생의 '여왕'이던 이은지의 모습 때문에 일어난 가벼운 해프닝이었다.
아직은 성장 도중인 이은지는 당연히 도진이 기억하는 여왕으로서의 이은지에 비해선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물론 도진은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며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이은지의 모습에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조금 내었던 것이다.
그 뒤로도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이 이야기되었고 시청자는 계속 늘어났다.
"정글 게임 제작을 위해서 아예 예능 전문 제작 스튜디오를 하나 설립해 볼까 해요."
-헐ㅋㅋㅋㅋ
-예능 자체 제작하는 엔터 ㅎㄷㄷ
펀딩을 통한 정글 게임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도 했고.
"연습생 시스템을 포함해서 지속 가능한 운영에 관한 부분도 깊게 논의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기대해 주세요. 물론 이 부분은 제가 아닌 유능하신 도비분들께서 노력해 주실 겁니다."
-도비 ㅋㅋㅋㅋ
-그놈의 도비 ㅋㅋㅋ
도진의 농담에 사람들이 웃는다.
그리고 참석한 이들 또한 웃었는데, 농담으로라도 도진의 무책임을 탓하는 멘트는 없었으니 실제로 가장 갈리는 게 도진이었기 때문이다.
숭무고 괴담 중 하나였던 그것.
-잠룡은 도대체 언제 잠?
그게 이젠 아예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도진은 고등학생으로서의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아니 이렇게 중요하고 바쁜 시기에 학교에서 시간을 낭비한다고?'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다.
도진은 학교 생활에 충실하면서도 완벽하게 잠룡문주이자 바른 엔터 대표 이사로서의 업무도 소화해내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잠룡문주 김도진은 오성아가 총괄하고 있는 잠룡문의 업무에 관해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동시에 다섯 전문가에게 일임한 바른 엔터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믿고 일임하되 그에 관한 파악만큼은 완벽하게.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도진은 분명히 그러고 있었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그 초인적인 면모가 오성의 절대군주인 오군성을 연상케 한다.
허나 한 가지 분명하게 다른 건, 오군성이 모두의 위에서 군림한다면 김도진은 모두의 등을 균등하게 받쳐주고 밀어 준다는 것이다.
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 주고 바람이 불면 그것을 막는 벽이 되어 준다.
추우면 모닥불이 되어 온기를 전해주고 동시에 그 모닥불에 사람들이 모이게 만든다.
오성아는 그 부분에 있어서 도진에게 매료되었고 그것은 도진의 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감정이었다.
그 감정을 담은 잔이 들렸다.
"자, 그럼 모두 건강을 기원하며 건배!"
"멘트에 태클 걸고 싶지만 이번은 참을게요. 건배!"
* * * *
방송 다음날.
도진은 언제나처럼 충실한 학교 생활을 보냈다.
첫 번째 수업인 소거인 강거혁의 수련의 이해.
근육근육한 학생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평범한 체격임에도 가장 돋보이는 도진은 또한 가장 수업에 열심인 학생이었다.
태종훈은 그에 관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으나 내심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저런 몸을 만들 수 있으면서 뭐하러 수업을 열심히 듣는 거지? 이미지 메이킹인가?'
소거인 강거혁의 단련법은 분명히 유명한 것이었다.
타고난 체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련했던 그의 삶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한 단련법을 수업으로 전수해 주고 있으니 태종훈 역시 허투루 듣지 않고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허나 김도진은 좀 다르지 않은가.
태종훈 또한 영상을 통해 김도진의 몸을 보았다.
영상임에도 거대한 충격이라 해야 할 정도의 감정을 느끼게 했던 몸을 만들 수 있으면서 도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는 거다.
오죽하면 이미지 메이킹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물론, 그건 그의 짧은 생각이었다.
분명히 도진에게는 연신극기공이라는 절세의 신공이 있었고 하늘 너머에 있는 절대의 경지를 걷고 있는 두 스승이 있다.
하지만 그건 '모든 것'이 아니다.
그래. 주변이 모든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제아무리 넓더라도.
위지혁과 장호, 그리고 연신극기공을 한 치의 의심없이 신뢰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다른 세상'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위지혁과 장호가 아닌 다른 세상, 소거인 강거혁의 이치를 듣고 비교하며 궁구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무수한 정답이 있으니 그 여러가지의 정답을 통하여 시야를 넓히고 다른 길을 앎으로써 세상이 넓어진다.
그것이 도진이 학생으로서의 나날에 충실한 이유이며 그 무의 이치가 계속 확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아직 태종훈은 깨닫지 못한 그 이치를 실행하는 강거혁의 수업이 끝나고 점심 시간에 이어 오늘의 모든 수업이 끝났다.
단련의 이해 이후 태종훈은 수업에 조금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점심 시간에 있었던 삼인방 모임, 그러니까 이문호와 감우상이 함께 한 자리에서의 숙덕거림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 숙덕거림의 결과를, 도진은 집행부실에서 받아들게 되었다.
"선배님."
"그래, 문호야."
"이걸 한 번 봐 주시겠습니까?"
조금 긴장한 얼굴의 이문호가 내민 서류를 도진이 받아들었다.
그 서류의 표지에는.
-제 1회 글로벌 무림학교 교류회-
라는 제목이 유려한 폰트로 적혀 있었다.
"무림학교 교류회? 글로벌?"
도진이 서류를 살피며 물으니 이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 우리 학교의 경우 타 학교와의 교류가 없다시피한 편이지 않습니까."
"응, 그렇지."
숭무고는 의외라면 의외인데 타 학교와의 교류가 없다시피 하다.
무언가 심오하거나 복잡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반대로 간단한 이유였으니 '해서 나쁠 게 없지만 굳이 해야 할 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인맥을 만들고 교류를 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그걸 위해 굳이 타 학교와의 교류회까지 학교 단위에서 가져야 하는가, 라고 하면 거기까진 아닌 것이다.
필요하면 그냥 개인의 자격으로 참석해도 되니까.
숭무고 학생이란 타이틀은, 그리고 숭무고에 자녀를 합격시킬 수 있는 집안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개인의 단위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 굳이 바쁜 학생들의 스케쥴을 맞추어야 하는 학교 단위에서의 교류회를 추진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런 배경의 학교 단위의 교류회 제안서를 이문호가 가져온 것이었다.
"고인물은 썩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숭무고도 이제 학교 차원에서의 활발한 교류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글로벌 무림학교 교류회는 그런 목적으로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외국 무림까지 범위를 넓혀 활발한 교류를 가지기 위한 단체를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외국에서 한국을 '온실'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 무림의 교육 현황에 부족함이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까 그런 면에 있어서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외국의 장점을 배우고 흡수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외국에서는 학생 때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여러 무림과 관련된 현대의 물품들에 관해서도 알 수 있도록 여러 업체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은 1회라 부족한 부분들이 많겠지만 그렇기에 숭무고가 주도적으로 이 교류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까지 더해졌다.
도진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네."
일리있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나쁘지 않은 제안서였다.
학생들끼리 만들었다고 하기엔 너무 수준 높은.
실제로, 그것은 학생들의 영역을 크게 벗어난 곳까지 뻗어 있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