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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43화 (443/741)

442화

선민사상(選民思想).

자신이 선택받은 이요 그렇기에 비천한 것들과 다른, 특별한 혜택을 누릴 자격을 갖춘 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세상에는 이런 선민사상을 가진 이가 생각 이상으로 많은데, 특히나 상류층과 연관된 흑도 무리 중에 이런 사상을 가진 이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다.

경지에 이른 무림인은 초인이 된다.

동시에 부와 명예까지 거머쥐니 그런 삶 속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요 심지어 '진보된 인류'라고까지 믿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이들로 구성된 무리가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했으며 그 특성상 상상 이상의 금력과 무력으로 암암리에 전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 규모겠느냐 말하며 도시전설이니 음모론이니 하는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여론이 흐르도록 조작까지 하고 있는, 분명히 존재하는 단체라고 나지윤이 언젠가 말을 해 주었었다.

뭐 세상을 정복하니 어쩌니 하는 그런 성격은 아니어도 그들이 유리하도록 세상의 흐름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정도는 분명히 하고 있는.

도진은 무형독이 바로 그 단체와 이어져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내놓았고.

"일리있는 이야기로구나."

위지혁과 장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천하에 드러난 무형독의 광범위한 침투와 공작들.

그만큼의 광범위한 침투와 공작을 벌이기 위해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만큼의 자금과 영향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했다.

여기에 부합할 만큼 어마어마한 조직은 나지윤이 언급한, 이름조차 없는 그 정도 집단은 되어야 한다.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는 대단하거든. 그러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그저 거슬리는 것들 중 하나였던 너를 눌러 죽이기 위해 이 정도는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을 만큼.

놈이 했던 그 말들이 사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벌이던 것들이 들통나고 꼬리를 넘어 몸통에마저 타격이 갔을 법한 상황에서도 이번 사건 정도나 되는 일을 벌일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남으려면.

선민사상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길 만큼의 재력이나 권력 같은 걸 가진 비뚤어진 이들의 집합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더욱 나아가 그들이 가진 '지식'이다.

무형독이 구사하는 압도적인 영역에 있는 독은 당연히 그냥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의 격차를 꾸준히 유지할 만큼의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만 했고 조제와 유통을 위한 은밀한 시설도 갖추어야 한다.

그걸 가능케 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며.

-부모도 못 찾을 놈이…….

도진만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고대의 알려지지 않은 '지식'을 알고 있는 것도 설명이 되어 버린다.

부모도 못 찾을 놈이란 욕은 고대 무림에서 제법 보편적으로 쓰이던 욕이라고 위지혁과 장호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시엔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종이 제법 있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원인불명의 실종이 드문 일은 아니었지. 부모도 못 찾을 놈이란 그런 이유로 생긴 욕이다. 다만 그렇잖느냐. 후대에 남길 서적 중에 굳이 그런 욕을 적을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때문에 현대에서 발굴되는 '진지한 서적'에서는 그런 욕을 볼 수 없었다.

하물며 무공 서적임에야.

다만 후대에 전해질 서적에 구분이 없다면 그런 욕이 등장할 수 있는 일반 서적 또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놈들이 정말로 물밑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혼란스런 시기에 집중적으로 고대 무림과 관련한 것들을 빼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예."

장호의 추측은 비약이라 하기엔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고 도진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은 아직도 현대인의 생각만큼 '체계적'이지 못하다.

하물며 눈부시게 발전하기 전, 무림 르네상스 이전의 '옛날'임에야 상상도 못할 만큼 빈틈으로 가득했을 터.

그런 틈의 차이로 빼돌린 무림의 자료들이 있다면 무형독의 독을 포함한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납득이 가능해진다.

바할라에서 사용했던 광범위한 미로진과 가면을 쓴 자가 사용했던 '법술'까지도.

"내가 살던 시대엔 제법 법술이란 것이 인정을 받고 있었다."

법술(法術)이란 현대에서 흔히 말하는 주술이나 마법에 가까운 신비이면서 동시에 기술이었다.

고대 무림에서는 그것이 무협지에서 뭐만 하면 '사술(邪術)이다!' 소리치며 괴이한 것으로 치부되던 것과 달리 분명한 기술의 한 갈래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고 장호는 말했다.

다만.

"법술이란 이치에 따라 인(印)을 맺고 법문(法文)을 읊어 기운을 인도해야만 한다. 다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 제기(祭器)를 포함한 여러가지 도구를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현대에서 묘사되는 마법사란 '신비'가 사라진 직업이다.

게임에서 단축키를 눌러 기술을 쓰듯 마법이 신비와 궁구가 사라진 채 그저 단순한 '기술'로써 사용된다.

허나 술법사가 구사하는 법술은 다르다.

"법력이 높은 술법사들은 오히려 그에 걸맞는 법술을 구사하기 위해 몸을 정갈히 하고 이치를 다스리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다름 아닌 술법사로서도 전입미답의 경지에 있는 장호 또한 그러했다.

'타임머신'을 발동하기 위하여 그가 들인 세월만 해도 20년이 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순수하게 타임머신의 준비에만.

그러고서도 지극히 특수한 상황이기에 가능했으며 일회용에 그쳤을 만큼 술법의 구사란 단순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가면을 쓴 자는 달랐다.

"놈은 이 시대에서 말하는 마법사에 가까웠지."

"예."

장호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을 쓴 자는 술법사라기보단 차라리 마법사였다.

그것도 현대의 신비가 사라져 버린 마법사.

분명히 놈은 많은 준비를 하였고 그 준비를 바탕으로 술법을 구사하긴 했으나 신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그 신비를 계산으로 대체한 것처럼.

그래. 고도로 발달한 '과학'으로 신비를 수식화한 것처럼.

"은밀히 빼돌린 술법서를 현대의 과학으로 분석하여 구사한다면 그리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장호의 의견은 그러했다.

장호가 살던 시대의 술법사는 정석적인 이미지 그 자체의 술법만이 사용되었다.

허나 현대는 바로 그런 신비를 과학으로 분석하여 정형화하는 데에 매진하고 있는 시대가 아니던가.

끝이 없다고 해야 할 만큼의 자금과 인력이 투입되어 분석했다면 가면을 쓴 자 같은 술법사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추측이라는 걸 경계해야 할 게다."

"예, 스승님."

위지혁의 말대로였다.

첫 시작부터가 추측에서 시작한 추론이다.

제아무리 그럴싸하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맞아들어가는 부분이 있어도 이것이 추측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의 빈틈은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치고 맹신하는 데에서부터 발생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지금 분명히 해야 할 건 하나다.

이런 추측을 할 정도로 그 실체가 얼마나 거대할지 모를 세력을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이나 불안이 없을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

다행히 도진은 그런 것에 관해 '쫓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놈들을 추월하기 위해 '쫓는' 입장의 사고방식을 가진다.

천마(天魔)가 도진이 목표하는 곳이기에.

꾸준하지만 하늘로 향하는 걸음에 흔들릴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진이 문주로 있는 잠룡문 또한 호재들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잠룡문,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 벌써?

그런 기사가 떴었다.

의뢰를 받기 시작하며 동아리가 아닌 정식 문파로서 활동을 개시했던 잠룡문이 '어어'하는 사이 정부 위탁의 치안 유지 계약을 따내 버렸다.

이건 그러니까 중소 기업이 정부와 '대박 계약'을 따낸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당장 계약을 따낸 문파의 문도들이 경찰에 준하는 권한을 얻게 되는 것만 보아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계약은 보통 1년 단위로 갱신이 되는데 별다른 하자가 없다면 3년에서 5년 정도는 계약이 유지되며 이때의 고정 수입과 이력을 바탕으로 하여 문파는 크게 성장한다.

'치안 유지 계약을 따냈던 문파'로 신용과 명성을 획득, 그리고 자금을 더하여 한 차원 높은 의뢰를 수행할 수 있는 문파로 거듭나거나 사업을 확장할 수 있으니까.

-아닠ㅋㅋㅋㅋ 이거 원래 최소 5년은 걸리는 거 아녔음?

-그것도 인맥이랑 실력이 어느 정도 있을 때 이야기고 보통은 10년 걸려도 될까말까임. 애초에 경쟁이 존나 치열하자너 ㅋㅋㅋ

문파는 많은데 구역은 한정되어 있다.

특히나 땅이 좁은 한국에서의 치안 유지 계약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근데 잠룡문은 인맥 안 쓰고도 따 버렸네?ㅋㅋ

-그것도 서울ㅋㅋㅋㅋ

-않이 ㅋㅋ 초절정 고수가 알려진 것만 두 명이라고 ㅋㅋㅋ

일반적으로 무인과 문파에 대한 평가는 '자격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객관적이고 분명한 증거가 되니까.

허나 의외로 그렇게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자격증을 따지 않는 무인들이 적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굳이 그렇게 자격증으로 자신의 증명을 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소위 말하는 '로망'으로, 자신의 행보로 자신의 경지를 증명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나쁜 쪽으로는 흑도의 무리들이 자신을 감추기 위해 자격증을 따지 않는다.

위연서의 경우 굳이 자신을 드러내서 좋을 게 없었기에 A-1이 아닌 입국에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 무난하게 A-3 자격증만을 땄었다.

안 그래도 독공을 구사하는데 무공 수준까지 높으면 더더욱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으니 양지가 본진이 아니었던 당시 입장에서는 손해만 됐다.

한데 그것이 초절정의 마두를 제압함으로써 자격증이 아니어도 자신을 증명하게 되었으니 위연서는 앞으로 조금 귀찮게 되었다.

독공을 구사하는 초절정의 무인이니 나쁜 의미는 아니어도 '특별 관심 대상'에 이름을 올리게 됐으니 말이다.

뭐 어쨌든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위연서 여신님;;

-클로에 여신님;;

-소담 여신님;;

-아니 왜 잠룡문엔 여신이 이렇게 많음?

-이참에 여신문으로 개명하자 ㅋㅋㅋㅋ

-오 찬성 ㅋㅋㅋㅋ

-아니 미친 ㅋㅋㅋ

긍정적인 쪽으로 폭발적인 명성을 얻게 됐고 그것이 곧 잠룡문의 명성으로 이어졌으니까.

위연서는 그런 면에서 제법 만족한 얼굴이었으니 소지존에게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잠룡문 인맥 원툴이라는 놈들 있지 않았음?

-ㅋ..ㅋㅋ..ㅋㅋㅋ...

-개같이 멸망한지 오래 ㅋㅋㅋㅋㅋㅋㅋㅋ

무엇이든 까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의 주된 레퍼토리가 잠룡문이 인맥빨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그게 박살이 났으니 잠룡문에 지금 알려진 것만 초절정 고수가 둘이 된 것이다.

그뿐인가.

그 구성원들의 수준 또한 심상치 않다는 게 이번 사건으로 증명됐다.

스스로의 힘으로 치안 유지 계약까지 따 버렸으니 잠룡문은 굳이 인맥이 아니더라도 어마무시한 곳이라는 걸 반박할 수 없는 문파였다.

그리고 여기에 비로소 인맥이다.

기필코 추락할 물로켓이 아니라 용이 여의주를 문 모양새로 승천하는 미래가 확정된 것이 잠룡문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도진의 호재는 이 잠룡문에 그치지 않았으니 다방면으로 호재가 밀려들고 있었다.

"눈나."

"왜?"

"시간과 예산은 얼마든지 드릴테니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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