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쩌적-
"엎드려!"
꽈아아아아앙!
찰나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목소리에 반응하기도 전에 일어났던 폭발과 몰아치는 유릿조각의 폭풍에 한유아는 기민하게 반응했다.
절정에 이른 무인에게 있어 그 정도의 '찰나'는 얼마든지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몸을 날릴 수 있는 공간을 파악하고 엎드리며 머리를 보호하는 정석적인 대응을 했다.
퍼억!
하지만 그렇게 보호한 머리가 아닌, 방호구와 내공으로 보호받고 있었음에도 옆구리 깊숙이 유릿조각이 박히는 건 대응을 할 수 없는 불행의 영역이었다.
머리가 새햐얘질 정도의 고통에 일순간 움직일 수 없었다.
"선배."
"아, 미안."
후배의 목소리가 들리고서야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괜찮은 척을 했다.
'잘 배웠네.'
응급 처치를 해 주는 후배를 보면서는 스스로를 속일 정도로 태연하기 위해 그런 생각을 했다.
일반적으로 유릿조각 등이 박힌 경우엔 그것을 제거하기보다 고정시키고 119를 부르는 걸 추천한다.
그것을 제거하려다 일부분이 남거나 출혈이 심해질 수도 있고 심지어 혈관이나 내장을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무림인의 경우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니 손재주와 감각이 훨씬 뛰어나 그것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선 그렇게 신속하게 제거하고 움직여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도진은 위험한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능숙하게,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만큼 안전하게 유릿조각을 제거하고 환부에 응급 처치를 해 주었다.
"물어도 돼요."
"…괜찮아."
그 과정에서 배려하듯 자신의 팔뚝을 내 주었지만 한유아는 거절했다.
그녀는 '영애'라는 신분과 달리 고통에 익숙했으니까.
그것이 육체적인 고통이든 정신적인 고통이든.
그러니까 처치 과정에서의 상처는 얼마든지 '혼자' 참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뒤에 있었던 후배의 행동과 적의 등장에 더 동요했으며.
스칵-!
후배의 옆구리에 생긴 혈선(血線)에 그 이상으로 동요했다.
우습게도.
그녀에게 있어 어느 때부터 '후배'는 그런 상처가 생기는 걸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이상을 깨닫게 되었다.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시야도 흐릿했다.
가면을 쓴 자의 모습이 눈이 가물가물한 것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상처는 상당히 컸지만 출혈이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었으니 이건 독에…….
'……!'
"커흑."
깨닫는 게 너무 늦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깨닫지 못했던 그 순간부터 독에 당한 것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머리조차 제대로 돌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수세에 몰린 후배의 모습을 흐릿한 눈으로 보며, 한유아는 자괴감에 잠겨들었다.
'이번엔 뭐가 좀 될 거 같았는데.'
드디어 사업을 키울 발판이 되는 건수를 잡았다 생각했다.
그렇게 따낸 의뢰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어서 조금은, 그동안의 실패로 둔감해진 심장도 조금은 빠르게 뛰었었다.
한데 이게 뭔가.
도움도 되지 못하고 상처 입고 독에 중독되어 차가운 바닥에 엎어진 신세다.
스스로만이 아닌 후배에게도 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한심함, 분함, 그 외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이 좁은 공간에 차올라 질식할 것만 같았다.
감각이 모조리 답답한 고통이 되어 옥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버티지 못하고 이윽고 머리끝까지 잠기려던 그 순간.
스윽.
그녀를 건져 주는 손길이 있었다.
'……아.'
다음 순간 그녀는 거짓말처럼 검은 늪이 아닌 포근한 등에 업혀 있었다.
그녀가 아는 감촉.
포근하게 감싸주는 어머니의 감촉.
그리고 그녀가 잘 모르는 생소한, 그러나 결코 싫지 않은 넓고 단단하게 감싸주는 감촉.
아마도, 아버지의 등이 그렇지 않을까 상상만 했던 감촉이 함께 그녀를 감싸고 또 받쳐주고 있었다.
'뭐야. 등 진짜 넓네.'
우습게도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한유아는 이런 순간임에도 하고 말았다.
후배의 등이 넓고 단단한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직접 겪는 건 이렇게나 달랐다.
그렇게 어릴 적 이후로 느껴 본 적이 없는, 그리고 평생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감촉과 감정에 고통을 잠시 잊은 그녀에게 후배가 말했다.
-선배. 갑작스럽겠지만 혹시 나를, 지금만이라도 나를 완전히 믿어 줄 수 있겠어요?
'응.'
마치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대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목이 일을 해 주지 않아 목소리가 되지 못했다.
후배는 그런 걸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 줄 수 있다면 힘을 완전히 빼고 기대 주세요.
'알았어.'
그녀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몰래, 너무 힘들어서 발버둥을 멈추고 이 등에 완전히 기대고 싶다고 생각해 버렸으니까.
그렇게 등을 기댄 순간.
쿠오오오오오오-!
한유아의 심상(心像)에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들었다.
재난 영화에서 희생당하는 역할의 엑스트라가 도시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다란 쓰나미를 맨몸으로 마주한다면 이러할까 싶은 규모의 쓰나미였다.
그녀의 몸에 밀려든 내공은 그만큼이나 공포스러웠으며 거대한 미증유의 것이었다.
후배의 몸에 이런 것이 깃들어 있었다니, 평소에 도대체 어떻게 그토록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인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게도 후배와 하나가 된 것 같은 감각과 함께.
그렇게 밀려드는 쓰나미를 아무렇지 않게 품어줄 대자연이 펼쳐졌으니까.
그녀는 그 대자연의 안에서 그저 미증유의 경이를 안온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파아아앗-!
현실의 가물가물한 두 눈으로도 볼 수 있었던 찬란한 빛을 마지막으로.
툭.
그녀는 후배의 목덜미에 기대어 정신을 잃었다.
* * * *
스윽-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본 것은 하얀 천장이었다.
뭐지?
내가 왜 여기 누워 있는 거지?
혹시 수면이 부족해서 일을 하다 깜빡 잠이 든 걸 지서가 옮겨 준 걸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멍한 머리로 잠시간 그런 생각을 했던 한유아는.
'……!'
곧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선 눈을 크게 떴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사장님."
그리고 곁에서 들려온 나직하지만 걱정을 가득 담은 민지서의 목소리에 경직되었던 몸의 긴장을 풀었다.
"…응. 나 얼마나 잔 거야?"
"이틀입니다. 상황 종료 후 34시간이 지났습니다."
"너무 많이 자 버렸네."
"평소에 무리하시니까요. 이 기회에 푹 주무셔서 다행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서가 심각하지 않은 거 보니까, 나 괜찮나 보네."
"네. 주치의 말씀으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컨디션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응, 그렇구나."
한유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지서는 그 모습에서 그녀에게 짐작가는 부분이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대신 태블릿을 건네주었다.
"주무시는 동안의 자료입니다."
"고마워."
쉬라는 권유를 해도 듣지 않을 그녀였기에 차라리 실랑이 할 시간이라도 줄이기 위해 원하는 자료를 먼저 건네준 민지서였다.
-미성년자를 마약으로 포섭한 조직의 충격적인 정체.
-서울 안에 숨어 있었던 무형독의 지부!
-새벽의 흑도의 토벌 작전이 무형독의 토벌로 바뀌었다.
예상대로 바깥은 난리가 나 있었다.
'마약을 단순 유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성년자들을 끌어들여 사업을 확장하려 한 흑도'라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떠들썩할 일이었는데 그 흑도 조직이 사실은 무형독의 말단이었으니까.
-잠룡문, 무형독의 토벌에서 눈부신 활약!
-대마두를 제압한 잠룡문의 그녀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이슈의 중심에 선 것이 잠룡문이었다.
'초절정의 마두가 나타났었다니…….'
그녀와 후배가 지하에서 마주했던 자만 해도 A-1 자격증을 땄던, 그것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후배에게 상처를 입힐 만큼의 마두였다.
한데 그 정도 수준의 마두가 하나 더 나타났었다니 한유아로서도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런 초절정의 마두를 잠룡문 소속의 위연서가 제압했다는 것이다.
숭무고의 강사로 왔었던 그녀.
그리고 그 드물다는 독공을 사용하는 고수라니.
-뭐임. 잠룡문에 왜 이렇게 고수가 많음?;;
-와 ㅋㅋ 독공 쓰는 초절정 고수는 전나 드물지 않음?ㅋㅋ
-ㅇㅇ 겁나 희귀함.
잠룡문은 정말 파도파도 끝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세간의 이슈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근데 초절정인데 A-1 자격증을 왜 안 땄을까.
-허허. 애송이로구나. 무림에서 3할의 실력을 감추는 건 기본이거늘.
-컨셉 ㅅㅂ;;;
-근데 3할 맞음? 3푼 아님?
-몰?루. 듣고 보니 나도 헷갈리네
-그런데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서 무형독이라니 쉬바. 한국도 이제 안전한 나라가 아닌 거 같음;;
-ㄹㅇ;; 아니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깥이 이상해서 보니까 무림인들 휙휙 날아가고 있더라. 잠이 확깸;;
-난 총소리 듣고 무슨 전쟁난 줄 알았음;;
-역대급 규모로 싸웠다면서. 난 그때 꿀잠 자고 있어서 일어나서 뉴스 보고 알았음 ㅅㅂ;;
잠룡문의 이야기와 함께 무형독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갑자기 왜 싸운 거냐, 어디서 발각된 거냐 등등.
이 부분은 한유아로서도 의문이 있었다.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그 정도나 되는 전력에 상상 이상의 규모였던 아지트를 운용했던 곳이다.
작전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지만 핵심은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역으로 포위망을 구성하고 '옥쇄'하다니.
설령 도진과 자신을 포함하여 여럿의 사상자를 내더라도, 위연서라는 변수가 없었더라도 그들 또한 결코 무사할 수 없었을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버림패로 쓸 정도 수준의 무인들뿐이었다면 몰라도 초절정 무인까지 포함되었기에 강한 의문이 남는다.
그 의문에 대한 고민을 하며 한유아는 자료를 계속 훑었고.
-중요 정보를 제공했던 화온의 한유아 대표는 상처를 입고 요양 중이다.
겨우 한 줄의, 자신에 대한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
-잠룡문은 해당 구역의 치안 유지 계약 제안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수락 여부가…….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만약 일이 잘 풀렸다면 화온의 것이 되었어야 할 계약.
그 계약이 잠룡문에게로 넘어간 것을 확인한 한유아가 옅게 웃었다.
분명히 그 아름다운 얼굴에 옅게 그려진 미소임에도 너무나 쓴 미소였다.
힘들다.
약해지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한유아는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마음이란 건 섬세한 도미노 같은 것이라, 아무리 공들여 세우고 또 세워도 한 번의 무너짐으로 모든 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 한 번의 무너짐이 없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데.
요즘엔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곁에 민지서가 있음에도 눈시울이 붉어질 뻔 했던 그녀는.
"일어나셨어요, 선배?"
"아."
후배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말았다.
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