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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39화 (439/741)
  • 438화

    침투조는 결국 이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쩌적-

    "엎드려!!"

    함정이 발동하여 폭발한 순간에서야 함정에 빠졌다는 걸 강제로 알게 되었다.

    콰아아아아앙-!

    폭음이 귀를 때리고 폭발에 부서진 유리 파편이 미친듯이 몰아친다.

    사아아아아…….

    유리 파편의 폭풍이 잦아들고 몸을 일으킨 뒤 빠르게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다행히 목숨을 잃은 자는 없었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자도 없었다.

    그들 사이에 어중이떠중이가 없었고 일반적인 무인들 이상으로 특수 장비와 방호 장비를 둘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기실 그들을 덮쳤던 함정이 도진과 한유아를 덮쳤던 함정의 '외곽', 그러니까 여파에 해당하는 위력이었던 것도 크게 작용한 덕분이었다.

    때문에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그들이었으나 곧 혼란이 찾아왔다.

    "금봉과 잠룡이 없어요."

    "……!"

    냉정함을 잃지 않은 유지은의 목소리였으나 주변은 제법 동요했다.

    분명히 행렬의 중앙에 있었던, 침투조의 누구보다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이 귀신같이 사라져 버렸으니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터엉-!

    그리고 마치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것처럼 저편 통로의 철문이 열리며 기괴한 가면을 쓴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개, 개미파?"

    그들을 본 무인들 중 한 명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흘렸다.

    그는 일전 개미파 토벌 작전에 참여했던 무인이었기에 기괴한 가면을 쓴 흑도 무리에 더 크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동요는 대번에 침투조 전체로 퍼져 나갔다.

    송창섭이 그 동요를 억누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도망치지 않고 우리 앞에 나타나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그들은 미로를 거의 다 통과했었다.

    거울 미로의 끝이 보였고 그 너머에 철문이 보였으니 침투조는 철문을 외부로 통하는 도주로로 추측했다.

    한데 그 철문이 열리며 흑도 무리가 들이닥쳤으니 자연스럽게 설탕파의 주요 인물들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도주로가 막혀 오히려 역공을 가하려 하는 의도로 말이다.

    그 흑도 무리 중 한 명이 송창섭의 말에 답했다.

    "도망치다니,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조금은 어색한 억양의 한국어였다.

    허나 발음이 어색했을 뿐 비웃고 조롱하는 의도만큼은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의도를 듬뿍 담아 충격적인 내용을 말했다.

    "바깥의 놈들은 모두 죽었다. 남은 건 네놈들뿐인데 말이야."

    "……!"

    "뭐, 뭐라고?"

    송창섭의 눈가가 꿈틀거리고 침투조의 동요가 커진다.

    "네 말을 어떻게……!"

    툭.

    냉정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외치던 송창섭 앞으로 무언가가 던져졌다.

    공격의 의도가 없었기에 모두의 눈에 명확히 보이는 그것은, 잘린 손이었다.

    "쳐라."

    그리고 가면을 쓴 흑도 무인들이 침투조에게 쇄도했다.

    "큭!"

    "대열을 유지해라!"

    평소라면 할 필요도 없는 소릴 굳이 크게 외친 건 그렇게라도 평정심을 되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송창섭의 외침에 베테랑 무인들이 억지로 동요를 억누르며 무기를 들었다.

    개미파를 연상케 하는 가면을 쓴 무인들의 수준이 심상치 않았다.

    여기에 독이 묻은 무기는 물론이요 상대를 죽이기 위한 온갖 수법의 사용에 거리낌이 없었으니 아차하다간 목숨을 잃을 상황이었다.

    때문에 타의로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던 침투조였으나 그것이 조금 늦어서.

    스각-!

    "끅!"

    대열의 한 축이 흔들리고 말았다.

    상처를 입은 대원은 당장 목숨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전투 속행이 어려운 지경이었고 방진이 무너질 상황이었다.

    둑의 한 곳이 무너지듯 그로 인해 침투조의 전멸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그 상황에서.

    스각-

    "……!"

    후두둑.

    흔들린 대열을 두드리려던 흑도 무인 둘의 가슴팍을 갈라 버리는 날카로운 검풍이 중앙에서 쏘아졌다.

    침투조를 두들기던 흑도 무인들이 움찔하여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들 정도로 날카로운 검풍을 쏘아낸 건.

    "얕은 수작에 당황하지 마세요."

    한 자루 아름다운 검과 같은 기세를 일대에 퍼뜨리며 앞으로 나서는 유지은이었다.

    스각-!

    또 한 번의 검풍을 날려 흑도 무인 하나의 팔뚝을 벤 유지은이 자신에게로 모든 시선을 모으며 말했다.

    "저 손은 바깥에 대기하던 사람들 중 누구의 손도 아니에요. 우릴 기만하기 위해 준비한 거라는 이야기죠."

    한 치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한 선언이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압도적인 천재인 그녀는 함께 했던 모두의 손 모양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지은의 선언에 이번엔 가면을 쓴 흑도 무인들에게서 동요가 일어난다.

    베테랑인 송창섭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정면으로 안 되니 수작을 부리려 했던 거로군. 하지만 안 됐어. 이쪽엔 천재가 있어서 말이지!"

    침투조의 무인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 * * *

    아지트에 있던 양아치들을 정리하고 대기하던 외부의 대기조는 곧 자신들을 포위하는 가면을 쓴 무인들과 대치하게 되었다.

    '도망치지 않고 역으로 우릴 포위한다고? 무슨 생각이지?'

    대기조의 조장을 맡은 무림 전담 타격대의 무인은 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은 곧 위기였으니까.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질 않으니 그 예감대로였다.

    "먹음직스런 애송이들이 제법 모여 있구나."

    제법 나이를 먹었음을 짐작케하는 목소리의 주인은 대놓고 기세를 흩뿌렸다.

    '이, 이런……!'

    그리고 그 기세는 명백하게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를 증명하고 있었기에 대기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도록 만들었다.

    마두(魔頭). 그것도 대마두(大魔頭)라 해야 할 흉악한 무인의 등장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포위한 흑도 무리의 수도 적지 않은데 거기에 초절정의 대마두라니.

    지지직-!

    황급히 지원을 요청하려 했으나 어느새 방해 전파가 흐르고 있었던지 통신이 되지 않았다.

    대마두는 느긋한 고갯짓으로 주위를 훑었고 이내 시선이 소담에서 멈추었다.

    "참으로 맛있어 보이는 아이로구나. 클클."

    가면 너머 번들거리는 시선에 소담이 검을 들었다.

    익숙하지만 결코 적응할 수 없는 더러운 시선에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 대마두의 더러운 주둥이가, 그 이상의 말을 뱉지 못하고 손으로 가려졌다.

    "웬놈이……!"

    호흡기를 가린 채 소리치는 그의 모습에서 은밀히 독이 살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독의 살포자는 곧 모습을 드러냈으니.

    "감히 문주님의 친우에게 역겨운 주둥이를 놀렸으니 너는 남은 생을 결코 편히 살 수 없을 것이다."

    새벽의 어둠을 드레스처럼 두르며 선언하는 위연서였다.

    그리고 그 뒤로 살기를 드러낸 독마전의 교도들이 있었다.

    "…쳐라!"

    분노하여 내공을 끌어올린 마두가 외쳤고 가면을 쓴 흑도 무리가 독마전이 합류한 대기조와 격돌했다.

    위연서가 대마두를 맡았고 독마전과 암산서가의 무인들이 눈부시게 활약했다.

    폐허에 가까운 방치된 공사 현장. 그리고 새벽의 어둠은 독마전과 암산서가 무인들의 무대였기에.

    전투는 대기조와 독마전의 승리로 기울었고 그 과정에서 벽태웅은 '아는 사람'을 마주하게 됐다.

    정확히는 아는 사람이라는 걸 꿰뚫어 보았다.

    "…이무곤이 어머님이시군요."

    움찔-!

    나직한 목소리로 정체를 말하자 가면을 쓴 무인, '중년 여성'이 움찔했다.

    이무곤.

    보육원의 동생들을 괴롭히던 무리 중 한 명의 이름으로 그녀는 그 학생의 보호자였다.

    -감정에 호소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벽태웅 군.

    경찰서에서 그렇게 말했던 그녀의 정체를 벽태웅은 알아챘던 것이다.

    둥근 안경을 올리던 손의 모양을 기억했던 덕분이다.

    뻐어어억-!!

    그리고 그렇게 정체가 드러나 당황한 그녀의 빈틈을, 명치를 벽태웅의 두터운 주먹이 망설이지 않고 꿰뚫었다.

    쿠당탕!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나뒹구는 그녀의 모습에 벽태웅은 씨익 웃었다.

    여러가질 생각할 필요없이, 자제하지 않고 내지를 수 있었던 주먹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 * * *

    "거짓말이라니, 뭘 믿고 그렇게 확신하는 거지?"

    가면을 쓴 자가 다시 두터운 안개를 두른 채 일체의 흔들림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도진은 그 허세를 피식 비웃었다.

    "이곳을 버림패로 썼지. 그렇다면 이 안에 있는 너도 버림패라는 거잖아?"

    "…뭐라?"

    "결국 버림패로 쓸 수 있는 수준의 것들만 동원했다는 건데 그런 버림패 따위가,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인다고? 차라리 무형독의 보스가 니 아빠라고 하지 그러냐."

    "……!!"

    별 거 아닌 도발이지만 그것이 너무나 확신에 차 있는 조롱이었기에 가면을 쓴 자를 뒤흔들었다.

    도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효아(哮牙).

    폭렬권(爆裂拳).

    다시 한 번 주먹으로 효아를 때려 박았다.

    꽈아아아아앙-!!

    "두 번 통할 것 같으냐!"

    가면을 쓴 자가 폭음을 뚫고 버럭 소리친다.

    실제로 그는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이번엔 완벽하게 방술을 펼치고 물러남으로써 효아를 막아냈다.

    그리고 그 사이, 도진은 어느새 한유아를 업고 있었다.

    가면을 쓴 자가 그 모습에 입꼬리를 올렸다.

    도진에게 보이지 않음에도 그러했으니 순수한 감정의 발로다.

    "큭큭. 잠룡은 경지에 비해 내공이 부족하다 들었는데, 그런 귀중한 내공을 헛쓰면서까지 그 여자를 살리고 싶은 건가?"

    누군가를 업는 건 무인에게 있어 상상도 못할 만큼의 패널티가 된다.

    극한까지 몸을 활용하여 그 이상의 '기술'을 구사해야 하는 것이 무림인인데 누군가를 업었으니 그것이 얼마나 제한되겠는가 말이다.

    하물며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 확 늘어나기까지 한다.

    안 그래도 가면을 쓴 자는 무술과 강화술을 활용하여 도진을 몰아붙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상황.

    그의 입장에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 여자는 이미 독에 중독되기까지 했다.

    남은 건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 뿐이다.

    그런 가면을 쓴 자의 조롱을 무시한 채 도진의 입술이 달싹인다.

    섭음술을 넘어선 전음으로 힘없이 업힌 한유아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었다.

    가면을 쓴 자는 굳이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기로 했다.

    슬슬, 끝을 내야 할 때였으니까.

    그래서 철저하게 준비한 한 방을 쏘아냈다.

    무술에 강화술을 최대치로 발휘한 절초가 단창을 통하여 펼쳐진다.

    진지(陣地)의 백업마저 최대로 받은 이 절초는 설령 효아라 해도 정면에서 부술 수 있을 만큼의 절초였다.

    여자를 업고 있어 결코 피할 수 없는 상태를 노린 숨을 끊기 위한 한 수.

    그 절초는.

    파아아아앗-!

    다음 순간 찬란한 빛에 양단되었다.

    그가 자랑하던 법구(法具)였던 단창, 그리고 그 단창을 들었던 두 팔과 함께.

    텅그렁-!

    둘로 나뉜 단창이 잘린 팔과 함께 바닥을 뒹군다.

    가면을 쓴 자는 그렇게 자신의 법구와 팔이 바닥을 구르는 순간에도 우두커니 선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 두 눈에 결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감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입을 통하여 토해진다.

    "말도, 안…… 된다……."

    불신으로 가득한 두 눈이 일(一)을 그렸던 백설을 투영한다.

    그 백설의 검날에는 현실이 된 신비.

    검기(劍氣)가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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