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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38화 (438/741)

437화

도진의 두 눈이 가면의 눈구멍을 응시한다.

그러나 제법 크게 뚫린 구멍임에도 불구하고, 어렴풋이 빛이 공간을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멍 너머의 눈은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아직 다 뜨지 못한, 그 끝자락에나 겨우 닿았다고는 하나 벼려낸 신안(神眼)으로도 꿰뚫지 못한 무언가가 펑퍼짐한 무복을 걸치고 가면을 쓴 자를 감싸고 있었다.

그를 마주하며 도진이 물었다.

"함정인가?"

"맞아. 역시 똑똑하구먼."

킬킬거리며 그는 긍정했다.

이것은 함정이었다.

도진을 노린.

그리고 그렇게 도진을 노리기 위한 함정의 시작은, 성지인과 함께 맡았던 동물원의 테러에서부터였다.

이 작전이 시행되기 바로 몇 시간 전 도진은 나지윤을 통하여 몇 가지 정보를 들었다.

"네가 준 시료와 이번에 한유아 선배가 의뢰한 독의 몇몇 부분이 일치해."

"그건?"

"맞아. 그 설탕파가 무형독과 이어져 있을 수 있다는 거야."

도진이 설탕파의 토벌에 끝까지 함께 해야 할 이유였으며 이 안에서 확인해야 할 것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었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럴 수 없었다.

'우연히' 동물원의 테러에 사용된 독이 무형독을 연상시키고.

'우연히' 근처에서 일어난, 벽태웅이 자란 보육원의 아이들을 포함한 미성년자들이 휘말린 사건에 사용된 마약이 그 독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니.

시야를 넓히면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도진을 노리고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이라는 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타난 가면을 쓴 자의 등장으로 찰나에 도진은 모든 것이 자신을 노린 함정이라는 것까지 상황을 이을 수 있었다.

"우리 무형독의 행사를 몇 번이고 방해한 자네를…… 그냥 놔둘 수는 없는 거잖아?"

끈적하면서도 위협적인 말에 도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받아쳤다.

"살림살이가 제법 거덜난 줄 알았는데, 아직 살 만한가 보네?"

바할라에서의 사건으로 동시다발로 벌이고 있던 수작질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듯 터지며 무형독은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았다.

그것은 무형독이 얼마나 큰 세력이 되었든 결코 부정할 수 없을 만큼의 타격이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을 노리고 준비한 함정의 규모는 생각 이상이었다.

개미굴을 연상케 하는 이곳 아지트는 '안정화'가 완료된 곳이다.

개미굴과 닮아 있다는 건 곧 당시의 조사로 추정하여 10년 가까이 공을 들였던 개미굴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곳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상당한 규모인 데다 서울.

그런 곳을 '차악'의 선택으로 약간은 드러나 있되 선만 넘지 않으면 방치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두었으니 말 그대로 주요 지점의 안정화된 거점을 무형독은 갖게 된 것이다.

한데 그런 거점을 무형독은 도진을 잡기 위한 함정, '버림패'로 삼았다.

큰 수익을 보장하는 마약까지 사용하여 무리한 움직임을 보였고 이렇게 대대적인 토벌 작전이 벌어졌다.

설령 도진을 잡더라도 이 거점은 사용할 수 없게 되며 그 이상의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니 그 규모는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그 정도나 되는 손해를, 외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아직 '무림 명숙'이라 하지 못할 위치에 있는 도진을 잡기 위해 감수한다고?

도진의 지적에 가면을 쓴 자는 어깨를 흔들거렸다.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는 대단하거든. 그러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그저 거슬리는 것들 중 하나였던 너를 눌러 죽이기 위해 이 정도는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을 만큼."

훅-

이어지는 말은 공간감을 어지럽히는 것처럼 그 위치가 이상했다.

멀리서 들리던 것이 갑자기 공간을 그대로 옮긴 듯 가까워졌고 다음 순간 이질적인 검은 빛을 띠는 단창이 도진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꽈앙!

"……!"

분명히 가볍게 견제하듯 휘둘러진 단창이었는데 도진이 받아치는 순간 어마어마한 힘이 폭발했다.

주변의 기운이 도진의 백설과 단창이 닿는 순간 빨려들듯 모여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수법이었으며 그렇기에 예상치 못한 반발력에 도진에게 틈이 생겼고 가면을 쓴 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칵-!

도진의 옆구리에 옅게 혈선이 그어진다.

무흔잠영의 묘리에 따라 선이 이어지지 못하도록 발끝과 함께 허리를 틀지 않았다면 내장이 드러날 만큼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캉-!

그리고 다음 그 폭발을 견제하여 더 힘을 실었던 반격은 허초(虛招), 힘이 실리지 않은 단창의 회수로 인해 또 한 번의 빈틈을 낳았다.

주변의 기운이 움직였으나 폭발로 이어지지 않고 그대로 흩어진 것이었다.

쾅!

그 빈틈을 찌르는 단창의 중간을 후려침으로써 두 번의 상처는 허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저 자는 술법사(術法師)다.

그렇게 도진이 손해를 본 공방의 사이에서 장호가 말했다.

-무인(武人)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지만 그 근간에는 술법이 있으니 일반적인 무인을 상대하는 방식으로는 손해를 볼 것이다.

술법사.

그것은 쉽게 말해 무협판 마법사다.

물론 판타지의 마법사와는 궤가 다르니 불덩이를 날린다거나 몸을 투명하게 하는 등의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건 아니다.

허나 분명히 그 비슷한 '도술'을 부릴 수는 있으니 위지혁과 장호가 있던 시대의, 신비가 일상에 깃들어 있던 고대 무림에는 그 정도 경지에 이른 술법사들이 몇이고 있었다고 들었다.

장호는 눈앞의 남자가 바로 그 경지에 이른 술법사라고 했다.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인지할 수 없게 하는 무술(霧術). 주변의 기운을 이용하여 공격을 강화하는 강화술. 경지에 이른 술법사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이토록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러니까 그는 도진이 손해를 보게 만드는,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초절정 무인'에 비견될 만큼의 수준 높은 술법사였다.

그리고 이곳은 그 술법사가 가진 바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술법사의 '진지(陣地)'다.

흔히 판타지 소설 속 마법사의 공방에 비유되는 독공 사용자의 연구실.

그 두 곳의 공통점은 마법사나 독공 사용자가 가진 능력 이상의 것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곳도 그러했다.

가면을 쓴 자는 술법사로서 초절정 무인에 비견될 만큼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술법사는 흔히 아는 '판타지 소설의 마법사'와는 다르기에 만능이 아니며 법술을 아무렇지 않게 남발할 수는 없었다.

법술의 사용에는 그만큼의 준비와 재료가 필요했으니까.

그러니까 술법사는 현대가 아닌 고전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준비가 필요한 마법사에 가깝다.

한데 도진을 몰아붙이는 지금 그는 무술에 강화술 등 몇 개나 되는 술법을 현대 소설의 마법사처럼 연이어 구사하고 있었으니 바로 이곳에 그런 준비와 재료를 광범위하고도 촘촘하게 해 두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절정에 이른 한유아의 옆구리에 심각한 상처를 만들었던 함정부터가 그런 재료와 준비를 이용한 술법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초절정의 무인에 비견되는 자가 심지어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장에서 도진을 몰아친다.

철저하게 준비한 함정.

심지어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캉-!

도진의 백설이 단창을 막아낸다.

강화술의 이지선다를 고려하면 부딪칠 필요가 없었음에도 굳이 부딪친 건 그 뒤에 한유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쾅!

캉-!

강화술을 얼마나 되는 텀으로, 혹은 몇 번 연달아 쓸 수 있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하물며 예의 무술이 얼굴만이 아닌 몸 전체를 뒤덮고 있어 정확한 움직임의 파악을 힘들게 했다.

가면을 쓴 자의 경지가 낮았다면 신안으로 그것들을 꿰뚫고 파악하여 한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겠지만 그의 경지가 지금의 도진에 뒤쳐지지 않았기에 그만큼의 여유가 없다.

때문에 도진은 한유아를 노리는 공격을 무조건 맞받아치며, 그럴 때마다 더해지는 약간의 손해를 감내해야만 했다.

가면을 쓴 자는 그렇게 손해를 입는 도진을 조롱했다.

"크크크. 과연 정의로우신 잠룡이구먼.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지키는 건가?"

한유아는 움직임에 지장이 갈 정도의 큰 상처를 입고 겨우 응급 처치만 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도진마저 손해를 보게 만드는 가면을 쓴 자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도진이 막아내지 못하면 한유아의 목에 언제 혈선이 그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면을 쓴 자는 그런 이유로 자신의 앞을 막아선 도진을 마주하며 잔혹한 선고를 했다.

"그런데 그거, 의미없는데 말이야."

"커흑."

"……."

한유아가 피를 토했다.

그 피는, 독에 중독되어 검게 변해 있었다.

가면을 쓴 자가 몸을 흔들거리며, 몸으로 웃으며 말했다.

"뭐 내 단창의 독을 경계해서 더 열심히 한 건 칭찬할 만하지만, 애초에 저 소저는 이미 중독을 피할 수 없었다고?"

유리에 박힌 그 순간부터.

유리를 구성한 성분에 독이 포함되어 있었고 상처에 박히는 순간 스며들었다.

그것은 단독으로는 독이 되지 않는다.

도진의 옆구리에 상처를 만들었던 단창에 묻어 있던 독과 마찬가지로.

허나 그 둘이 만남으로써, 기화하여 떠돌던 공기 중의 단창의 독이 상처를 통해 만난 순간 혼합독으로써 완성된 것이었다.

짧은 공방 중이라고는 하나 한유아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였다.

"어차피 죽을 소저 그냥 버리지 그랬어? 그냥 버리고 전력을 다해 싸웠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잖아? 이미 네 사람들은 다 죽었다니까? 거기에 하나 더해진다고 해서 뭐가 다르겠어?"

"아니, 다 죽었으니까 하나라도 지키고 싶었던 건가? 그런데 어쩌나. 이미 다 죽었는데."

조롱한다.

철저하게 도진의 정신을 뒤흔들고 단창을 박기 위한 틈을 만들기 위해서.

"아! 이건 어떨까. 너는 살려줄 수도 있어. 저 소저가 죽어갈 때, 네가 직접 마지막 가는 길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거야. 육보시(肉布施)라고 하지. 들어봤나?"

"그렇게 육보시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을 했으니 살려줄 수도 있는 거지. 어때?"

마지막은 지척에서 들렸다.

정신을 뒤흔들며 접근한 것이다.

도진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단창이 쇄도한 순간 늦지 않게 백설을 휘둘렀다.

꽈앙-!

강화술이 발동한 단창은 도진의 백설을 밀어내며 커다란 틈을 만들었다.

백설이 튕겨나가며 훤히 드러난 가슴팍.

가면을 쓴 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휘둘렀던 단창을 당기며 도진을 베려 했고.

효아(哮牙).

폭렬권(爆裂拳).

꽈아아아아앙-!!

빈틈인 척했던 동작을 자연스럽게 진각으로 이으며 지근거리에서 쏘아진 주먹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멀리 처박혔다.

"쿠에엑!"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억지로 충격을 해소하며 벌떡 일어난 그는 그러나 속이 진탕되어 피를 토해냈다.

만약 이곳이 진지(陣地)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찰나의 순간 방술(防術)을 펼쳐 코앞에서 위력을 감소시키지 못했다면 그대로 당했을 만큼 위험한 초식이었다.

그렇게 피를 토해낸 그를, 도진의 두 눈이 언제나처럼 흔들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너. 술법은 초절정이지만…… 아가리는 삼류보다 못하네."

"뭐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당하게 한다고 해서, 그게 사실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가 두르고 있던 안개가 흔들린다.

그리하여 찰나에 드러난 눈동자와 도진의 신안이 이어진다.

"그런 어설픈 거짓말을 누가 믿는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하는 거야?"

도진의 신안에 비치는 그의 눈가가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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