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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37화 (437/741)
  • 436화

    작전은 순조로웠다.

    침투조가 지하의 본거지에 진입, 탐색하는 사이 체포조가 설탕파와 거래하던 이들을 동시에 급습하여 체포하였고 그들의 거래 장부도 다수 입수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조사를 진행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흩어져 도주하던 이들이 포위조와 조우, 전투에 들어갔다는 소식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좋아.'

    이번 토벌의 현장 책임자인 무림 전담 타격대의 간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실패할 이유가 없는 임무였다.

    마약을 유통하는 걸로도 모자라 심지어 미성년자를 이용하려 들었던 설탕파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중범죄자들이요 '조폭'이었다.

    그 사안의 중대함으로 이번 임무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대대적인 규모의 작전으로 수립, 진행되었고 그만큼의 전력이 투입되었다.

    EMP 수류탄 같은 게 동원되지 않았다 뿐이지 전력만큼은 일전 '개미굴 토벌 작전' 못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 토벌의 책임자로 간부인 자신이 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일대에는 이미 경보가 발령되었고 해당 범위 내의 시민들에겐 경보 문자도 발송되었다.

    웬만한 변수로는 문제가 없을 정도의 작전이었고 역시나 예상 범위 내에서 순항 중이다.

    남은 건 이 본거지의 수색과 탐색, 그리고 몸통의 체포다.

    훌륭히 완수한다면 그의 큰 공이 될 것이고 이 공은 요즘 몇몇 자리가 비어 있는 타격대에서 승진으로 이어질 귀중한 이력이 된다.

    그러니까 그는 신중하고도 안전하게 접근했다.

    "특별한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대원 중 한 명이 맵 스캐너를 사용 후 보고했다.

    파장을 퍼뜨려 일정 범위 내를 파악하는 물건으로 지형과 물건은 물론이요 은신한 사람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만능은 아니어서 탐지 범위도 좁은 편이고 탐지 자체를 방해할 수 있는 기술 또한 얼마든지 있지만 적어도 설탕파가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닐 거라 예측되었다.

    "전진하겠습니다."

    침투조는 그렇게 맵 스캐너를 포함한 여러 장비를 활용하여 느리지만 철저하게 일대를 확인하며 움직였다.

    책임자인 간부의 보신과 공 때문이 아니어도 급할 이유가 없었다.

    증거는 더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안 될 게 아니었고 조직원들 또한 외부에 포위망이 완성되어 있으니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였으니까.

    때문에 완벽한 태세를 갖추며 전진하던 무리 내에서 도진은 시선을 잠룡문 소속으로 함께 걷던 유지은에게로 향했다.

    도진과 마주한 유지은의 눈에서는, 도진과 같은 생각이 비치고 있었다.

    '개미굴.'

    설탕파의 본거지, 지하는 투박했다.

    굳이 미적인 부분을 추구할 이유가 없는 곳이었기에 그것은 특별할 것이 없는 부분이었지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묻어나는 것들이 있다.

    바로 그것들이, 도진이 유지은과 함께 했었던 개미굴 토벌 의뢰에서의 개미굴을 연상케 만든 것이다.

    그 생각을 도진은 잠시 전진이 멈춘 때에 타격대의 책임자에게 말했다.

    "개미굴 말씀이십니까."

    "네. 확실한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저희 의견이 그렇습니다."

    "흐음."

    타격대의 책임자이자 간부인 송창섭은 눈썹을 모았다.

    듣고 보니 그냥 흘릴 수 없을 만큼 신경이 쓰였다.

    그 또한 간부로 큰 사건이었던 개미파 토벌에 관한 자료를 보았다.

    그때 보았던 사진 자료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어느 정도 겹쳤다.

    '개미굴'이 말이다.

    무림인은 본능이나 육감 같은 걸 중시하는 부류다.

    그것은 송창섭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눈빛이 조금 더 신중해졌다.

    하물며 눈앞의 '학생'은 이제 타격대의 대장이 된 유상균의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했던 아주 특별한 학생이지 않은가.

    "의견 감사합니다. 조금 더 신중히 전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이곳이 당시 사건의 개미굴만큼 무시무시한 곳은 아닐 것이었다.

    해당 부분에 대한 체크가 가능한 장비를 가져와 확인을 하며 전진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만약, 설탕파가 개미파와 관련이 있는 곳이라면 그 외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나아가던 침투조는 이 지하에서 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으니.

    "허……."

    "이건 또 무슨."

    '거울?'

    무수한 거울로 이루어진 미로였다.

    어두컴컴하던 공간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싶더니 갑자기 거울 미로가 나타났다.

    거울끼리 비치고 또 비치며 눈을 어지럽히는 복잡한 길이 펼쳐져 침투조의 앞을 막아섰다.

    -제법 재미있는 걸 만들어 놓았구나.

    -정밀한 계산으로 만든 미로로군요.

    심상세계에서 위지혁과 장호가 그렇게 말을 할 정도로 미로는 그 시작부터 정교하고도 복잡했다.

    때문에 침투조는 멈춰서서 사전 파악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하나 부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원 중 하나가 방패를 앞세우고 방독면까지 쓴 상태에서 봉으로 거울 하나를 힘껏 때렸다.

    콰창-!

    제법 커다란 거울은 힘없이 부서졌다.

    강화 유리이긴 했으나 그 외엔 특별할 것이 없는 거울이라는 게 판명되었다.

    이후 몇 개를 더 부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고 별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맵 스캐너를 사용해 본 결과, 주변 지형의 파악이 불가했다.

    "…순수하게 미로라고 봐야 할까요?"

    "이곳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이나 여러 조건을 고려하면 만들 수 있는 규모와 수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을 벌기 위한 미로라고 생각하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짧은 토론 끝에 그런 결론이 나왔고 침투조는 전진을 택했다.

    미로를 나아가는 정석적인 방법을 택하였고 길의 복잡함과 폭의 문제로 이십여 명의 침투조 행렬이 조금 길어졌다.

    그리고 채 서른 걸음도 되지 않았을 때 도진은 깨달았다.

    '진법(陣法).'

    그것은 미로 안에서 점진적으로 발동하는 것이었다.

    현대의 무인이라면 절정 이상의 경지에 들어섰다 해도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은밀한 것이었으며 심지어 도진마저도 서른 걸음이나 걷고서야 알아차렸을 만큼 대단한 수준.

    개구리가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 물에 삶아지는 것처럼 내부에 들어선 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은밀하게 효과를 더하는 방식의 진법이었다.

    찰나에 그것을 파악한 도진이 입을 열었다.

    진법이라는 걸 알리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쩌적-

    '……!'

    "엎드려!"

    외침과 동시에 도진은 곁에 있던 유지은에게 손을 뻗었고.

    '……!!'

    그 손이 허무하게 유지은을 통과하는 것을 보았다.

    ……!!

    귀를 때리는 날카로운 굉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 * * *

    스으으……

    굉음과 함께 유리 조각의 폭풍이 몰아친 뒤.

    몸을 일으키니 그 위를 덮었던 날카로운 가루들이 모래처럼 떨어져 내린다.

    허나 유리 조각은 모래와 달리 온전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도진은 가볍게 진각을 밟음으로써 그것들을 털어내야 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서야, 쓰러져 있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깜빡이는 빛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인상적인 금발을 지닌 그녀는 한유아였다.

    "선배."

    조금 속도를 높여 다가간 도진의 시선은 그녀의 옆구리를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도진의 외침에 따라 한유아는 머리를 가리며 몸을 엎드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옆구리에는 커다란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다.

    -…제자야.

    -예, 스승님.

    위지혁은 도진을 나직이 불렀고 도진은 대답했다.

    대화는 그 이상 이어지지 않았는데, 위지혁의 부름이 다른 것이 아니라 상황이 심각하니 조심하라는 경고였기 때문이다.

    도진의 무복은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유릿조각이 폭발에 휘날렸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정말 문제가 되는 건 겉의 무복만이 아닌 안에 입었던 방검복(防劍服)마저 너덜너덜해졌기 때문이다.

    그래.

    방검·방탄의 기능을 하는 특수 제작 슈트마저 그 폭발에서 몸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도진은 그것을 연신극기공으로 단련된 육체에 혈도를 흐르던 천마기를 운용하여 상처없이 막아낼 수 있었지만.

    "아, 미안."

    푸스스…….

    창백해진 얼굴의 한유아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옆구리의 파편뿐 아니라 등에도 몇 개의 조각이 박혀 있다.

    절정의 경지를 증명한 그녀였던 만큼 다행히 등의 것들은 피륙의 상처에 그쳤지만 옆구리에 박힌 게 심각했다.

    "선배, 힘 빼요."

    "응."

    도진의 말에 부축받아 상체를 일으킨 한유아가 얌전히 몸에서 힘을 뺐다.

    퉁-

    가벼운 한 번의 손짓에 그녀에게 붙어 있던 미세한 조각들이 떨어졌고 이어서 세심한 손길로 등에 박혔던 조각들을 떼어냈다.

    "물어도 돼요."

    "…괜찮아."

    이후 도진이 입가에 팔뚝을 내밀었으나 한유아는 고개를 저었고 도진은 두 번 말하지 않고 그녀의 옆구리에 박혀 있던 파편을 뽑아냈다.

    "윽."

    한유아는 작은 신음 소리만 내는 것으로 그 고통을 참아냈다.

    꽈아악.

    그리고 휴대하고 있던 응급 키트 안에 있던 약과 붕대를 이용하여 응급 처치를 완료 했다.

    다행스럽게도 응급 키트 안의 내용물 대부분은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다행인 건 거기까지로, 주변에는 두 사람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위지혁이 굳이 신뢰하는 제자에게 경고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절정의 경지에 이른 한유아에게 치명상을 입힐 만큼의 위험한 트랩은 오히려 사소한 문제다.

    진짜 문제는, 그런 위험한 트랩을 맞은 뒤 남은 게 도진과 한유아뿐이라는 거다.

    폭발의 순간 도진은 분명하게 보고 겪었다.

    바로 옆에서 걷고 있던 유지은이 '가짜'였던 것을.

    겨우 서른 걸음.

    그 서른 걸음 안에 도진의 감각마저 속이고 곁에서 걷고 있던 유지은이 사라졌다.

    유지은뿐인가.

    도진의 앞에서 걷고 있던 이들과 뒤에서 걷고 있던 이들마저 사라졌다.

    상식과 현실을 넘어 '신비'의 경지에 이른 진법의 효과다.

    그리고 그 진법의 영향은 아직 남아 있어서 도진이 바로 곁에 쓰러졌던 한유아를 감각이 아닌 육안으로 보고서야 인식할 수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천마기를 일깨운다.

    감각을 벼리고 또 벼려 신안(神眼)을 더 선명히 한다.

    그리하여 감각을 속이는 것들을 찢어 발기며 도진은, 백설을 뽑아 휘둘렀다.

    천마검공(天魔劍功), 효아(哮牙).

    쿠오오오오오-!

    백설에서 천마기가 포효하며 터져 나온다.

    갑작스런 흉포하면서도 거대한 기세에 한유아의 눈이 살짝 커졌고.

    꽈아아아아앙-!!

    그 기세가 거울이 다 깨지며 드러난 벽을 박살내며 폭발했다.

    "오우, 오우. 인사가 꽤 거칠구먼. 잠룡문주."

    그리고 박살난 벽 안에서, 숨어 있던 이가 걸어 나왔다.

    어느 나라의 어디 것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가면을 쓴 그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로 동양인의 억양이 묻어나는 영어를 사용했다.

    도진은 한국어로 물었다.

    "무형독, 인가."

    "맞아! 잘 아는군."

    그는 단번에 긍정해 버렸다.

    부정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로.

    그리고 그 긍정은 영어였다.

    "설마 미리 준비해 두었던 함정인 건가?"

    "그것도 맞아! 너를 죽이기 위해 준비했지. 덤으로 여기 들어온 것들까지 말이야."

    가면의 남자가 씨익 웃는 것이 감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바깥의 놈들은 이미 다 죽었고 여기 들어온 놈들도 대부분 죽었으니, 이제 너희만 죽이면 되는 상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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