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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35화 (435/741)
  • 434화

    화려한 면면으로 채워진 집행부의 2차는 틀림없이 특별하지만 평범한 모임이었다.

    개강 시즌에 재학생과 졸업생이 만남을 가지는 건 그 구성원이 특별하다 해도 평범함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사실은, 한유아를 필두로 하여 류대현은 물론이요 우서진 등의 멤버가 개강 시즌의 모임이라는 명분만으로 모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또 다른 이유로 인해 성립된 일이었고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설탕파 토벌 의뢰'였다.

    류대현을 부른 건 한유아다.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으로 시작하여 설탕파 토벌의 전력 강화를 위해 화온의 이름으로 개인 단위의 의뢰를 넣었고 류대현이 수락했다.

    동기 좋은 게 이런 거 아니겠냐는 그거다.

    그리고 유지은은 도진의 제안을 받았다.

    "후배! 의뢰 가자!"

    평소 그렇게 먼저 제안하는 입장이었던 유지은이 처음으로 도진에게서 제안을 받았다.

    "선배. 의뢰 같이 가실래요?"

    "응!"

    답은 즉시 나왔고 그렇게 집행부의 2차 멤버가 구성되었던 것이다.

    일 때문이라고는 해도 오랜만에 모여 얼굴을 보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새벽 1시.

    이제 일을 할 시간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한유아가 작전 본부에 연락을 넣음과 동시에 민지서 또한 대기하고 있던 화온의 무인들에게 작전 개시를 알렸다.

    "움직여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도진 역시 인이어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던 소여은에게 말했다.

    대부분의 인원수를 화온이 채우긴 했으나 도진 또한 암산서가를 포함한 잠룡문의 무인들을 참여시켰던 것이다.

    암산서가의 무인들은 수는 적지만 어둠이 내린 이 시간의 작전 수행 능력은 일당백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본대, 집행부의 멤버들이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빌딩 건설 현장이다.

    어떤 문파가 조금 낙후된 지역의 땅을 싸게 사들여 빌딩을 지으려다 도산하여 방치된 곳이었다.

    건설 과정에서 비슷한 시기에 근처의 땅을 산 자산가가 있었는데 서류에 기입된 것과 실제 토지의 범위가 달랐고 하필 공사가 진행되는 영역 일부가 겹치게 됐다.

    합의가 되지 않아 소송까지 번지게 됐는데 그로 인해 공사가 질질 끌리다 도산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방치된 건설 현장에는 불량한 학생들은 물론이요 자잘자잘한 흑도라 하기도 민망한 인간들이 모이며 일종의 아지트가 되었다.

    "거기 지하가 설탕파의 본거지라고 해."

    한유아가 말한 그 정보의 출처는 정부의 무림 전담 부서였다.

    선을 넘지 않은 조직을 방치한다고 해서 정말로 손을 놓는 게 아니다.

    그것이 차악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니 설탕파의 경우 본거지까지 파악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는 도진이 이미 부탁했었던, 흑도 조직에 관해 나지윤이 건네준 정보와도 일치했다.

    작전의 시작은 기습적으로 그 건설 현장을 포위하는 거다.

    평소의 루틴 그대로 순찰을 돌던 화온의 무인들과 암산서가의 무인들, 그리고 모임을 마치고 나온 집행부의 멤버들이 그 역할을 맡는다.

    "뭐, 뭐야!"

    "뭐하는 새끼들이야!"

    낌새없이 시작된 기습에 방치되고 더러워진 건설 현장을 채우고 있던 밑바닥의 양아치 무리가 허둥거린다.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무기를 꼬나쥐지만 겁에 질려 짖어대는 허세에 불과했다.

    뻑!

    "헉!"

    "아악!"

    제대로 된 것도 아닌 무공을 체계적으로 익히지도 못했고 꾸준히 연마하지도 않은 잔챙이 중의 잔챙이들.

    그리고 그렇기에 훌륭하게 설탕파의 본거지를 '양아치들의 모임 장소'로 위장하는 데 쓰인 것들을 파죽지세로 정리하며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짓다 만 빌딩 안으로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일체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으니 쓸데없는 허세로 가득한 만화들과 달리 이것은 실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속하게 놈들을 정리하고 1층의 제압이 완료됐다 싶었을 즈음.

    슉!

    "……!"

    제대로 된 공격이 날아들었다.

    화온의 무인이 가까스로 피한 건 파르라니 섬뜩한 빛을 발하는 단검이다.

    독이 묻은 단검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전투력의 저하를 가져온다.

    파지지지직!

    또 다른 무기인 전기가 흐르는 시커먼 삼단봉 또한 막는다 해도 문제가 될 까다로운 무기였다.

    부족한 실력을 메꿀 수 있는 무기들.

    그런 무기를 든 제대로 된 자세를 잡은 놈들이 윗층에서 내려왔다.

    -대처가 빠르구나.

    -예.

    이곳에 들이닥치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바깥의 놈들을 제압한 시간까지 포함해도 6분 언저리.

    길다면 긴 시간이긴 한데 그저 그런 흑도 무리가 허둥거리는 게 아닌 침착하게 장비까지 갖춰서 맞설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이 말은 곧 설탕파가 돌발 상황에서 소위 말하는 '5대기', 5분 내에 태세를 갖추고 행동하는 게 가능할 정도의 체계와 훈련이 갖추어진 조직이라는 게 된다.

    물론, 거기까지 상정 범위 내였다.

    타앗!

    외부에서의 제압이 그랬듯 내부에서의 움직임에도 말은 오가지 않았다.

    상정 범위 내의 일에 관한 부분은 이미 모든 이야기가 완료되어 있었으니까.

    집행부 멤버들이 앞장 서서 놈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훙-!

    전기가 흐르는 삼단봉이 허공을 가른다.

    제법 모양은 잡혀 있었으나 보법을 밟는 소담을 잡을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살랑이는 바람에 몽둥이를 휘두른 것마냥 무의미한 공격이 실패하고.

    뻑!

    그로 인해 드러난 커다란 틈, 명치를 얻어맞고 험상궂은 흑도의 무인은 바닥에 엎어졌다.

    쿵!

    그 옆에선 류대현이 후기지수 시절 폭룡이란 별호에 걸맞게 과감하면서도 힘 있는 초식으로 상대의 반항을 정면에서 부숴 버리며 무력화 시켰고.

    슥-

    유지은은 아예 상대의 반항이 성립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며 마혈(痲穴), 온몸을 마비시키는 혈을 짚어 버렸다.

    "이런 씨발!"

    말없이 움직이는 집행부 멤버들과 달리 설탕파의 흑도 무리는 연신 욕설을 내뱉는다.

    그거라도 하지 않고선 배길 수 없을 만큼 전황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수준이라면 설령 '후기지수'라고 해도 그들이 이렇게까지 밀리진 않았을 거다.

    무공이란 게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만큼의 시간 또한 필요로 하는 '기술'이었으니까.

    그들은 상위의 무공을 익히지 못했고 재능 또한 비루했지만 적어도 학생들에 비해 최소 5년, 평균 10년 이상 이 바닥에서 구르며 실전 무공을 연마함으로써 후기지수에게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만큼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자부했다.

    여기에 놈들이 가지고 있을 망설임을 포함한 어설픔을 일말의 여유도 주지 않고 찌를 수 있는 마음가짐과 경험, 독이 묻은 단검, 전기가 흐르는 삼단봉 등 장비의 우위도 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퍼퍽!

    "악!"

    현실은 악몽처럼 비현실적이었으니 그들이 짚단만도 못한 모양으로 쓸려 나가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천재란 시간을 단축하는 재능이니 천재 중에서도 천재는 그 필요한 시간을 극한까지 단축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다 생각한 '시간의 우위'는 오히려, 집행부 멤버들에게 있었다.

    여기에 장비의 우위까지도.

    뻑!

    히죽.

    전기가 흐르는 삼단봉을 팔뚝으로 막는 거한, 벽태웅의 행동에 흑도의 무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뻐억!

    그러나 그렇게 입꼬리가 올라간 얼굴은 곧 형편없이 구겨지고 말았으니 벽태웅이 그 전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진입한 암산서가의 무인들은 물론이요 잠룡문 소속은 '실습'으로 참여한 벽태웅까지도 모두 특수 제작된 전신슈트를 입고 있었다.

    방검, 방탄에 절연 효과까지 있는 그것은 상당히 비싼 장비였으나 도진이 아낌없이 '플랙스'하여 지급했다.

    이것은 장난이 아닌 육식계의 의뢰였으니까.

    최악의 경우 총까지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진은 준비했고 그것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덕분에 벽태웅은 거침없이 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주먹을 휘두를 수 있었다.

    쿵!

    아무렇지 않게 거칠게 휘둘러진 흑도 무인의 삼단봉을 팔뚝으로 받아낸다.

    꽝!

    그리고 그 충돌이 마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주먹이 격발되니 흑도의 무인들이 마치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어릴 적 그때처럼.

    쏘아진 주먹을 끌어당기는 고민이나 쏘는 것 자체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소들이 없었기에.

    벽태웅은 정말로 오랜만에 제한없이 무공을 풀어놓을 수 있었고 그것이 크나큰 한 걸음으로 이어졌다.

    꽈앙!

    '좋아.'

    도진은 벽태웅의 한 걸음을 꿰뚫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아지경에 이르는 등의 기연은 아니었지만 길을 나아가는 데 있어 방해가 되던 진창을 훌쩍 뛰어넘었으니 크게 축하할 일이었다.

    다만 그 축하는 일이 완전히 끝난 뒤다.

    현대의 무림은 일체의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곳이 제아무리 '평화에 찌들었다는' 한국이라 해도.

    진짜 뒷골목의 마약까지 다루는 흑도를 상대하는 지금 어디서든 총알이 날아들 수도 있으니까.

    슈트만으로 그치지 않고 방탄모까지 괜히 쓴 게 아니다.

    "케엑!"

    다행히 내부의 제압은 변수없이, 사상자 없이 완료되었다.

    "1층의 제압 완료했습니다. 내부 수색 시작하겠습니다."

    한유아가 상황을 섭음술로 알렸다.

    -확인. 외부의 제압과 증거, 포인트 확보 또한 순조롭습니다.

    그리고 외부의 작전 또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인이어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화온과 잠룡문이 설탕파의 본거지를 점령하는 사이 정부의 무림 전담 타격대와 무림맹의 무인들이 동시에 세 팀으로 나뉘어 움직였다.

    한 팀은 마약을 거래했던 이들을 제압,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다른 한 팀은 설탕파가 혹시 있을지 모를 다른 도주로를 이용하여 도주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포위망을 펼친다.

    그리고 마지막 한 팀이 잠룡문과 화온이 점령한 본거지로 향하는 것이다.

    제압한 흑도 무리를 정리하는 사이 무림 전담 타격대와 무림맹의 무인들이 도착했다.

    그들 중 일부가 흑도 무리를 연행하고 잠룡문과 화온까지 포함하여 본거지의 '입구'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설탕파의 본거지는 이곳이 아니라 이곳 지하였으니까.

    들어가기 위해선 숨겨진 입구를 찾아야 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2인 1조로 움직였고 도진은 한유아와 함께 윗층으로 향했다.

    평소의 장난기를 완전히 배제하고 신속하지만 신중하게 움직였다.

    감각을 날카롭게 하고 기감(氣感)까지 펼쳐 혹여 놓치는 게 없도록 꼼꼼하게 살폈다.

    덕분에 13층에 교묘하게 감춰져 있던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13층. 입구 발견했습니다."

    -즉시 합류하겠습니다.

    입구는 통유리가 설치되었어야 할 구역의 옆 벽면이었다.

    일반적으로 통로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위치였는데, 실제로 평범한 통로가 아니었다.

    기둥의 겉면을 밀어내자 아래로 주욱 이어진 시커먼 공간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내려가는 방법은, 시커먼 공간 아래로 주욱 이어진 봉이다.

    이 봉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공간이 지하의 아지트로 이어진 유일한 입구인 듯 보였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무림 전담 타격대 소속의 무인이 그 앞에서 한유아와 도진에게 물었다.

    여기까지가 기본 계약에 해당하는 임무였다.

    이후의 참여는 판단 하에 결정할 수 있으며 빠지더라도 일절 불이익이 되지 않는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 함께 가겠습니다."

    한 가지, 도진에게는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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