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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33화 (433/741)
  • 432화

    마약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심각한 문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로 번지기 때문에 정부에서부터 민감하게 다루며 처벌의 수위 또한 높다.

    그리고 그 수위는 무림 르네상스 이후로 더욱 높아졌으니 마약이 혼합독의 범주에 들어가게 됐기 때문이다.

    마약은 금보다 비싸며 그렇기에 자금에 쪼들리는 독과 독공을 연구하고 수련하는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연구가 되면서 동시에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하물며 발전한 현대 사회가 그 판매를 더욱 수월하게 만들었으니 한때 이들에 의한 세계 단위의 '독과의 전쟁'이 선포되기도 했을 정도다.

    당시의 여파로 안 그래도 빡빡하던 독에 관한 취급이 더욱 빡빡해졌다.

    이토록 민감한 '마약'이란 단어가, 도진의 귓가에만 스며드는 한유아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도진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아이들이 마약을 했다는 거죠?"

    "응, 맞아."

    한유아 또한 장난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 있었던 혈액을 은밀하게 채취해서 따로 의뢰를 넣었어. 그리고 양성 반응을 확인한 게 낮이었지."

    "…애들이 마약을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네요."

    "맞아. 그러니까 이렇게 조용한 거야."

    마약이 연관된 것만으로도 사건이 강력계에 배당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하물며 그것이 미성년자인 아이들에게서 검출됐다면 당장 온갖 매체가 뒤집어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조용하다는 건 그 정보가 아직 새어 나가지 않았다는 거다.

    목적은 간단히 유추할 수 있다.

    "일망타진을 노리는 건가요?"

    "응, 그렇지."

    사건의 전개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들에게서 마약의 금단 증상이 나타나면서 사건이 커진다.

    그렇게 되기 전에 흑도 조직이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리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점조직으로 운영되며 사건이 터지면 꼬리를 자르듯 말단을 넘기고 자중하는 게 흑도 조직의 일반적인 대처다.

    하지만 사건이 커지면 알짜만 챙겨서 완전히 잠수를 타 버린다.

    두 번째는 티가 나기 전에 조치를 하여 오히려 대담하게 아이들을 이용,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흑도 조직은 합법과 비합법 양쪽에서 사업을 전개하던 놈들이었다.

    합법은 유흥 시설을 직접 운영하며 거기에 꼬이는 날파리와 진상들을 컨트롤하기 위한 무력을 갖추고 성장한 지극히 '정석적인' 사업체.

    비합법은 동종 업계의 비슷한 사업을 하는 조직을 무력으로 박살내고 그들이 흔히 내세우는 바지 사장을 데려와 그대로 사업체를 먹어 버리는 사업 확장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수금을 포함한 잡다한 업무를 수행할 일손이 필요했고 이것을 '새끼'들로 보충한 것이 이번 사건의 얼개였다.

    조사의 결과가 그러했기에 전자의 형태로 사건이 진행되고 마무리될 것처럼 보였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그런 놈들이 아니었네요."

    "맞아. 마약을 이렇게 대담하게 쓰는 것부터가 보통이 아니지."

    아이들은 그저 심부름을 한 게 아니었다.

    업장을 돌아다니며 마약과 돈을 운반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 또한 마약을 접했고 그럼으로써 '충실한 조직원'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던 이유였다.

    단순 심부름꾼이 아닌 마약을 운반하고 심지어 그것을 사용하기까지 했으니, 아이들은 결코 입을 열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입장이 되었기에 사건의 전개는 두 번째로 기운다.

    "절대로 입을 열 수 없는 입장인 데다 마약에 의존하게 된 훌륭한 조직원이면서 감시의 시선은 느슨한 미성년자들. 그 미성년자들을 이용해서 사업을 계속한다……. 그걸 노리고 있겠네요."

    "맞아. 그러니까 그 조직, '설탕파'는 자중하는 척하면서 더 대담하게 움직일 거야."

    설탕파.

    그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정식 명칭이 아닌 수사 본부 내에서의 가칭이다.

    그 우스운 이름과 달리 반드시 박멸해야만 하는 조직.

    일반적으로 '선을 넘지 않은 조직'은 어느 정도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완전하게 소탕을 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렇게 소탕해봐야 금새 다른 조직이 빈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더 큰 소란과 피가 발생하니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사건으로 그 차악은 최악이라는 게 밝혀졌으니 박멸해야만 했다.

    "내일 소탕 작전이 개시될 거야."

    정보의 유통기한은 지극히 짧다.

    그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행동해야만 했고 그렇기에 소탕작전은 바로 내일 시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설탕파가 엄청 민감한 조직일 거라는 거지."

    흑도 조직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력이 아니라 정보와 민첩함이다.

    잡히기 전에 도망갈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귀가 밝아야 하니까.

    하물며 대담하게 마약을 쓰는 놈들이니 더더욱 귀가 밝을 것이다.

    아이들이 마약을 했다는 걸 밝혀낸 건 사건이 배당된 수사팀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조용히 움직인 민간의 무력 기업인 한유아였다.

    그렇게 밝혀낸 정보를 최소한으로 공유했기에 아직 그 정보가 설탕파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겠지만 박멸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면 대번에 눈치를 챌 것이었다.

    "그래서, 너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

    "제안이라고 하시면?"

    "선발대로 우리랑 너희가 설탕파의 본거지를 덮치는 거야."

    도진은 그 제안의 의도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한유아의 업체는 '화온(華溫)'이라고 해서 문파의 간판조차 걸지 못한 업체다.

    그녀가 입에 담곤 했던 '영세 업체'라는 게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 도진의 잠룡문은 '예비 천하제일문파'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은 그 활동 영역과 성과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뗐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화온은 평범하게 이 근방의 순찰 계약을 체결,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도진은 자연스럽게 그런 순찰을 도는 한유아와 합류가 가능하다.

    "선배와 우리가 본거지를 덮쳐 퇴로를 차단하면 그때 본대가 나선다는 거네요."

    "그렇지."

    설탕파의 경계를 느슨하게 한 상태에서 대번에 화온과 잠룡문이 본거지를 덮친다.

    화온과 잠룡문은 그 현주소와 인식과 비례하지 않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화온과 잠룡문 또한 대놓고 그 전력을 다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본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퇴로를 차단하고 시간을 끄는 것만큼은 할 수 있는 것이다.

    "단독으로 하면 좋겠지만 우리가 단독으로 하기엔 큰 건이거든. 그러니까 너한테 협업을 제안하는 거야. 어때?"

    성공만 한다면 큰 공이자 명성이 되고 그것이 홍보로 이어진다.

    이후 정부 부처와의 좋은 계약을 따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한유아는 이 역할을 독자적으로 조사하여 알아낸 중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따낼 수 있었다.

    다만 그녀가 말한 대로 화온으로서는 단독으로 그것을 하기에 무리가 있어 이렇게 도진을 만나 협업을 제안한 것이다.

    한유아의 제안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제안,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도진의 수락에 한유아의 입가에 아름다운 미소가 어렸다.

    "좋아. 그러면 바로 내용 설명할 테니까 숙지하고 움직여 줘."

    * * * *

    "왜 나가려고 한 거야."

    "……."

    "……."

    깊은 새벽.

    벽태웅은 몰래 밖으로 나가려 했던 두 동생들을 빈 방에 데려와 마주 앉은 채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행히 보호 감찰 처분이 나왔고 보육원으로 돌아온 지 채 12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한데 자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 늦은 시간에 몰래 외출을 하려 하다니.

    벽태웅으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사정을 알기 위해 이렇게 마주 앉은 것이었는데 도통 입을 열질 않으니 답답함이 가중되기만 한다.

    바로 아까 전까지만 해도 생각을 달리하였고 동생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다짐했었는데.

    그렇게 다짐했던 '이야기'가 성립하질 않으니 사라진 줄 알았던 벽이 더욱 크고 두껍게 눈앞에 솟아오른 것만 같다.

    "…말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답답함을 담아, 그 무게를 담아 압박하듯 묻고 말았다.

    그 말에 입을 꾸욱 닫고 있던 동생이 반발하듯 되물었다.

    "말하면, 해결해 줄 수 있어?"

    "뭐?"

    "말하면 해결해 줄 수 있냐고."

    "……."

    벽태웅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있게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생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해결 못 하잖아! 그런데 왜 자꾸 말하라고 하는 거야?"

    "……."

    벽태웅은 그 외견과 다르게 영악한, 머리가 잘 굴러가는 사람이다.

    사실 곰은 여우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이 그대로 들어맞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벽태웅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재게 만들었다.

    학교 폭력의 건도 그랬다.

    어릴 적.

    아직은 많은 것을 모르던 시절 스승님을 만나 무공을 배우게 되면서 벽태웅은 괴롭힘 당하던 어린 동생들 앞에서 자신있게 외쳤다.

    "너희 때린 애들, 내가 다 혼내 줄게!"

    그리고 실제로 호언장담했던 그 말 그대로 실행했었다.

    하지만 점점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렸을 때처럼 자신있게 동생들 앞에서 외칠 수가 없게 되었다.

    많은 것을 보게 되었고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아무런 망설임없이 주먹을 휘두를 수 없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서강이가 학교에서 많이 힘든 것 같더라."

    "네.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동생들도 제법 머리가 굵었다.

    사춘기가 왔고 민감한 시기였는데 그런 중요한 시기에 괴롭힘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벽태웅은 스승인 소거인 강거혁의 가르침으로 제법 뛰어난 실력을 지닌 무인이 되었고 동생들을 괴롭히던 학생들에게 경고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경고에 반발하듯 괴롭힘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영악한 놈들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말이다.

    벽태웅은 최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명분'을 만들어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고 증거를 모아 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무의미했던 건 아니었지만 벽태웅이 생각했던, 그리고 지금 동생들이 외치는 '해결'의 영역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어릴 적과는 다르다.

    문제도, 생각해야 할 것도.

    그 규모가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곰 같은' 벽태웅은 동생들의 시선을 마주한 지금 자신있게, 어릴 때처럼 외칠 수가 없었다.

    '다 해결해 줄게!'라고.

    그러니까 동생들과 벽태웅의 사이엔 벽이 생겨 버린 것이다.

    동생들이 벽태웅을 의지하면서도 모든 걸 터놓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벽이.

    벽태웅은 그 벽을 이제서야 통감했다.

    그리고 인식한 순간 벽은 대번에 덩치를 키우며 대화를 끊어 버리려 했다.

    그 순간.

    "이야기 중에 미안."

    "…선배님?"

    "어?"

    불가항력적으로 커지던 벽의 존재감을 억누르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웃으며 안에 들어서는 도진이었다.

    이런 순간임에도 동경하는, 그 어떤 연예인보다 특별한 후기지수의 등장에 동생들의 시선이 도진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도진은 씨익 웃는 얼굴로 벽태웅에게로 이었다.

    "왜 그렇게 오래 폼을 잡고 있어?"

    그리고 말했다.

    "빨리 가야 되잖아.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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