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건 아직 미성년자인 '소년'이다.
더 많은 나이를 먹은 입장에서 보면 어린 사람은 어찌해도 티가 나는 법이기에 아이의 보호자들은 그토록 선명한 존재감에도 눈앞의 남자가 청년의 경계에 있는 소년이라는 걸 본능으로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그 소년의 곁에 있는 이런 상황임에도, 그리고 아직 앳된 나이임에도 시선을 떼기 힘든 두 소녀가 소년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기, 김도진!'
지구대 안의 중심은 대번에 소년, 김도진에게로 옮겨간다.
그리고 김도진의 시선은 아이들을 폭발하게 만든 한 중년 남성에게로 향했다.
"…크흠."
중년 남성은 그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사람들의 관심을 외면해 버렸다.
어렵지만 옳은 길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자신의 잘못을 외면하는 쉬운 길을 택한 것이었다.
도진은 그런 외면을 모른 척해 주지 않았다.
"사람은 얼마든지 실수를 할 수 있지만, 때로는 해서는 안 되는 실수도 있는 법이거든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못난 모습이네요."
"……!!"
중년 남성의 귓가가 시뻘게졌다.
그는 입을 한 번 벌렸으나 이내 다물었으니 반발하고 대꾸해봐야 더욱 큰 손해를 본다 판단해 버린 것이다.
그런 흐름으로 도떼기시장 같았던 지구대 내에 침묵이 내려앉았고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요즘 세력이 커진 불량 서클을 보다 못한 너희 승무회가 분기탱천해서 일기토를 했다, 이거네?"
"…예."
"허허……."
싸움의 배경은 그것이었다.
요즘 세상에서 동네를 주름잡는 '일진'이라 하면 결국은 최상위층에 무림학교의 학생들이 위치할 수밖에 없다.
일반 학교에서 제아무리 어깨에 힘주고 다녀봐야 바깥으로 나가면 무림학교 학생들 앞에선 고개를 들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보통 불량 서클하면 무림학교의 학생들이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그 밑에 호가호위하는 일반 학생들의 구조가 보통이다.
그리고 이쪽 동네의 그런 불량 서클의 정점이 '승무회(昇武會)'라는 중2병 내음이 물씬 풍기는 무림학교의 조직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겉으로는 불량 서클이 아닌 무림학교 학생들의 '정의를 위한 동아리'를 표방했고 그런 명목으로 요즘 활개치고 다니는 불량 서클을 징치하기 위해 싸움을 걸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물론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이 아이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데요."
얼굴을 굳히고 말하는 건 벽태웅이다.
그 불량 서클이라 칭해지는 아이들 사이에 보육원의 아이들도 있었으니까.
너무나 착한 고모 대신 나서서 분노한다.
"이미 알고 있는 얼굴들도 있군요. 내 동생들을 괴롭혀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아이들이요. 그런 아이들이 소속된 동아리가 그렇게 정의감 넘치는 이유로 싸움을 걸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곰은 본래 여우보다 똑똑한 동물이다.
벽태웅은 그런 똑똑한 곰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이번에는 분노가 조금 더 커 보인다.
도진은 그런 모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이 구타로 인해 아주 많이 다친 모습이었으니까.
그렇게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벽태웅은 최대한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어느 정도는 들은 바가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새끼'가 되어 좋지 않은 조직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요."
"예, 맞습니다. 이 아이들은 다 잘못을 했습니다.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된 책임이 아이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소문이 돌고 있잖습니까. 조직에 들어가면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저 아이들이 이 아이들을 괴롭히니까, 아주 질 나쁘게 괴롭히는데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이 아이들은 무공을 익혀서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조직에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마지막에 버럭 소리치는 벽태웅의 고함에는 제법 많은 감정이 스며 있다.
교육을 받은 인간이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정신에 이상이 있는 이들이 아니고서야 잘못을 한 걸 스스로 인지할 수 있다.
겉으로야 아닌 척해도 스스로까지 속일 순 없는 것이다.
때문에 벽태웅의 고함에 많은 이들이 시선을 외면했지만, 뻔뻔한 이도 있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벽태웅 군."
날카로운 인상을 둥근 안경으로 중화하는 양복 차림의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벽태웅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말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흑도 조직이라는 걸 알면서 들어가 흑도 조직의 심부름을 하는 게 그럼 올바른 일입니까? 이 아이들의 과거 잘못이 어쨌든, 그렇게 흑도의 심부름을 하는 집단을 징치하겠다고 나서는 건 분명히 옳은 일이지 않습니까?"
"……."
벽태웅이 주먹을 불끈 쥔다. 그 뻔뻔함에 불이 치솟는 게 보인다.
자신들의 밥이던 것들이 기어오르는 게 괘씸하다는 생각으로, 손봐 주겠다는 생각으로 싸움을 건 게 명백한데 무슨 개소리를!
그렇게 벽태웅이 입을 열기 전에.
스윽-
도진이 나섰다.
"네, 그렇죠. 옳고 그름은 분명히 따져야죠."
중년 여성이 움찔하는 스스로를 숨기지 못했다.
도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한 번, 제대로 따져 보죠?"
* * * *
학생들 간의 패싸움은…… 이 시대에선 그다지 뉴스가 되지 못한다.
자그마한, 그 지역의 뉴스 등에야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무림이 존재하는 시대에 그것 자체는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그 사건에 '김도진'이란 이름이 추가 된다면.
여기에 바로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보육원와 그 보육원 출신의 후기지수의 이름까지 연관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황룡의 보육원', 폭력 사건에 휘말려…….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제목의 기사 등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요소들에 의해 사건은 큰 관심을 받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건의 처리 또한 허투루 할 수 없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승무회는 공중분해 되었다.
요즘 일진들의 패악질은 상상 이상이다.
여기에 집단화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선을 넘어 멀리 가 버린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나름의 힘과 재력이 있는, 자식을 이름 있는 무림학교에 보낼 수 있는 부모들이 무마해 왔지만 그렇게 억지로 덮은 것까지 드러나면서 상당한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성보 변호사가 나서진 않았으나 그럴 필요도 없이 '김도진이 지켜본다'는 것만으로도 헛짓거리는 나올 수가 없었기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리고 벽태웅의 보육원과 상미가 머물렀던 보호소의 아이들을 포함한 흑도 조직에 가입했던 아이들 또한,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도진이 말하지 않았던가.
옳고 그름을 분명히 따져 보자고.
그렇기에 잘못을 한 아이들 또한 처벌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수위는 높지 않았으니 아이들이 했던 것이 명백하게 흑도 조직의 '심부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현대의 흑도조직은 뒷골목과 밤에 기생하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리고 그쪽 세계의 무림이기에 발생하고 마는 여러가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일에 연관된다.
때문에 표면으로 나오기 힘든 태생적인 한계가 있는데 그 부분을 보통 새끼라 부르는 학생들을 부려 해결하곤 한다.
무공을 가르쳐 준다며 아이들을 끌어들인 흑도 조직에서는 아직 초기였기에 그랬던지 수금 등의 가벼운 심부름을 시켰고 그것이 전부였기에 다수의 아이들은 큰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미안해, 형."
"…알면 그러지 마, 좀. 그리고 고모랑 고모부한테도 죄송하다고 해야지."
벽태웅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하는 동생들에게 나오려는 한숨을 감추며 그렇게 말했다.
"응. 죄송합니다, 고모. 고모부."
소수의, 폭력 사태를 일으키는 등의 악질에 포함되지 않은 다수에 속했던 보육원의 두 소년은 보호 감찰 처분을 받고 보육원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렇게 사건은 끝났지만, 많은 것이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갔을 뿐 해결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도진은 제법 늦은 밤 벽태웅에게 말했다.
"술 마실 거지?"
"…예."
벽태웅은 제법 술을 마시는 편이다.
스승인 강거혁이 술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웠다.
"괜히 혼자서 마시지 말고 같이 가자."
"…선배님은 술 안 드시지 않습니까."
"아니 너 그렇게 태클거는 캐릭터 아니잖아."
도진은 피식 웃고선 말했다.
"상미랑 클로에도 있어. 클로에는 꽤 말술이더라."
상미도 그렇지만 클로에는 정말로 말술이었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입에 댔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상미와 클로에까지 더해 넷이서 술자리를 가지게 됐다.
본래 벽태웅은 마트 같은 곳에서 조잡한 안주에 소주 등을 사 공원 벤치에서 마시곤 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고 잠룡문 소유의 꼬마 빌딩에서 모였다.
대부분의 기능을 쌍둥이 빌딩으로 옮긴 잠룡문은 그러나 처음 개파를 했던 꼬마 빌딩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사용처를 고민 중인데 오늘은 술자리를 위한 공간이 되었다.
도진은 콜라를 마시고 상미와 클로에, 벽태웅 세 사람은 소주를 마셨다.
벽태웅은 도진이 따라주는 족족 감사합니다, 하고서는 원샷을 해 버렸다.
상미와 클로에는 그 페이스에 맞추어서 같이 잔을 들어 주었고 제법 취기가 올라올 즈음이 되자 도진이 말했다.
"많이 신경 쓰이나 보네. 동생들 일."
벽태웅은 알콜이 들어간 얼굴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많이 미안합니다."
고모와 고모부의 보육원은 벽태웅의 지금은 독립한 '집'이었으며 그렇기에 같은 집에 사는 동생들을 벽태웅은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그런 동생들의 문제를 벽태웅은 해결해주지 못했다.
아이들 사이의 일진 문제는 본래 그렇다.
제아무리 벽태웅이라 해도, 누구라 해도 동화처럼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이 그렇듯 나랏님이라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그렇게 말해 주어도 벽태웅의 자책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문제로 인해 아이들이 흑도 조직의 심부름을 하는 수준까지 엇나가는 걸 잡아주지 못했으니 더더욱.
"나름 노력은 했고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결국 그 녀석들에게 있어서 저는 고민을 털어놓고 같이 고민할 만큼의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잖습니까. 그게 좀, 그렇습니다."
"녀석들이 미안하다고 할 때, 좀 더 좋은 말을 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스스로의 부족함도 통감하고 있습니다."
시야가 좁다면.
손에 들어오는 만큼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면.
참으로 편하고 간단하겠지만 벽태웅은 덩치값을 하는지 그렇게 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렇기에 결국은 그 모든 걸 감당하고 안을 수 있는 거인으로 성장하겠지만, 아직은 그러기 위한 성장통을 겪어야 하는 시기였다.
때문에 알콜의 씁쓸함으로 성장통을 달래는 벽태웅에게.
"당신은 자책만 하지 않아도 됩니다."
클로에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