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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29화 (429/741)

428화

슈미트라가 공을 들여 만든 정보 단체에 나지윤의 답청문, 그리고 독마전의 협력이 더해진다면 독의 사용자나 단체에 한해서는 잡지 못할 이가 드물 것이다.

허나 이번 테러를 자행한 이들은 바로 그 드문 집단일 거라 도진은 예상했다.

웬만한 백독학자를 속이는 걸로도 모자라 '적정한 수준'의 테러 단체로 여기게 만들고 또 적정한 수준의 수사만이 진행되게 만들어, 이윽고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흘러간 미제 사건'이 되도록 노렸다.

한데 그런 단체가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국가가 관리하는 독 조제법의 특허를 빼내 개량까지 하여 사용했으니 결코 평범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형독일 거라 추측하는 게 결코 침소봉대(針小棒大)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도진은 명을 내리긴 했으나 시료를 건네고 위연서의 보고를 기다렸던 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기다리기로 하고 3학년 1학기를 시작했다.

"안녕."

"응! 안녕!"

만개한 벚꽃길 아래 그보다 활짝 핀 소담의 미소와 함께 등굣길을 걷는다.

"수련은 잘 돼 가?"

"응!"

요즘 들어 깨달음을 얻은 듯 수련에 몰두했던 소담의 얼굴이 밝다.

스스로의 깨달음도 깨달음이지만 암산서가 구성원들의 사회 적응이 순조롭고 죗값을 치르고 있는 아버지를 포함한 어른들의 형량이 감형됐다는 소식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잔혹하게 날개를 꿰뚫고 있던 족쇄가 모두 사라져 날개를 활짝 펼친 듯 가벼운 그녀의 걸음에 도진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린다.

"안녕."

"안녕하세요, 선배!"

집행부에 들러 후배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일을 처리한 뒤 수업을 듣기 위해 걷는다.

"그럼 조금 있다 보자."

"응!"

1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갈림길에서 소담과 헤어져 따로 걸었다.

3학년이 되어서는 소담과 수업을 다 맞추지 않았기에 겹치지 않는 과목이 제법 되었던 것이다.

얼굴 가득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소담의 모습이 품에서 아이를 떼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버리는 도진이다.

"냐앙."

"가시지요, 스승님."

"그래."

다만 혼자는 아니었으니 이제는 학교의 명물이 된 영물 솜이, 그리고 2학년 새내기 클로에가 함께 한다.

"꺄아악!"

"귀여워!"

솜이를 벤치에 두니 금새 가까이 다가오는,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 쓰는 학생들이 열광한다.

귀찮다는 듯, 그러나 자신을 좋아해 주는 걸 아는 솜이가 꼬리를 휘휘 저으면서도 턱을 치켜드는 게 역시나 귀엽다.

도진은 피식 웃고서 클로에와 함께 강의실을 찾아 들어섰다.

그리고 '그림체가' 바뀌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만나봬서 영광입니다, 선배님!"

"아, 그래. 반가워."

컷을, 아니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건 '근육'이다.

그래. 그야말로 근육 세상이었다.

통나무에 근육을 덕지덕지 붙이고 사람의 형상을 만든다면 이럴까 싶은 근육으로 가득찬 거인들이 도진에게 인사하고 있었으니 다들 외공으로 한가락하는 학생들이다.

단련(鍛鍊)의 이해(理解).

도진이 신청한 1교시 강의로, 말 그대로 단련에 관한 수업이었다.

그것도 외공의.

-외공은 내공에 비해 열등한 것이다.

이상적인 것을 떠나 냉정히 말해 지금의 무림과 현실은 내공이 압도적으로 외공의 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조금 시점을 바꾸어 외공 수련을 게을리해도 된다는 말은 절대적인 오답이 된다.

당장 성지인이 익히는 격룡신공만 가져와도 그 답이 나온다.

더 강한 내공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더 강한 육체가 필요한 것이다.

그 이전에 근본적으로 동일 조건이면 육체의 우위에 있는 무인이 더 강하다는 건 말할 필요조차 없다.

내공을 중시하는 만큼 외공의 수련 또한 중요했으니 숭무고 재학생 정도 되면 오히려 어중간한 외공 수련자보다 외공을 더 열심히 수련한다.

…그러니까 평범한 교실의 풍경을 생각했던 도진이었는데.

"선배님, 팔뚝! 팔뚝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헉헉! 선배님. 그날 동영상에서 선배님의 맨살을 보고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등! 등을 보여 주십시오, 선배님!"

"드, 등은 안 됩니다!"

마지막은 도진의 앞을 막아선 클로에였다.

뭐야 이거.

공기가 뜨겁다.

어쩐지 상식이 왜곡되어 버릴 것만 같은 열화와 같은 무수한 '맨살의 요청'이 몰려들었다.

'왜 이런 보디빌더들의 헬스장에 온 것만 같지?'

하나 같이 외공에 진심인 학생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없지는 않은데, 그 비율이 외공에 진심인 학생들이 더 높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선배님이 강의 신청 하셨다는 소식에 저도 신청을 했습니다!"

"인기 강의라 새벽부터 준비했는데 그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래."

도진이 수강 신청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이 소리없는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이쪽에 관한 이유까지 알 수 있었다.

"벽태웅 선배랑 같이 운동하셨던 날의 영상, 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몸을 만드셨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염치없게 비결은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만 해주십쇼!"

"어…… 그래. 근데 그건 내가 아니라 교수님께서 하셔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싶네."

"예!"

도진이 '헬창 게임'이라며 운동을 할 때 벽태웅에게 맨몸, 그러니까 상체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때 도진의 몸은 온갖 커뮤니티에 퍼지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특히나 소위 말하는 '헬창', 그리고 외공 수련자들에게 센세이션이었다.

-와, 저건 사람이 아니다. 근육의 화신이지.

-김도진 프레임 별로라 했던 새끼들 어디감?

-있었는데요..

-개같이 멸망했습니다..

-우리 프레임단은 패배를 인정합니다.

이 수업을 듣는 2학년과 1학년들이 도진에게 특히나 열성적인 이유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다만 모든 학생이 그렇게 열성적인 건 아니었으니.

"어, 그래. 문호 친구였지?"

"예. 태종훈이라고 합니다."

도진에게 90도로 정중히, 과하게 예의를 차려 인사하는 태종훈이 그러했다.

태종훈.

스포츠머리에 커다란 키와 덩치를 타고난 그는 날카로우면서도 거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으니 대호문(大虎門)의 후계자였다.

대호문은 의천검가의 영향력 아래 있는 문파로 회사쪽에 비유하자면 '대기업의 계열사' 같은 느낌이었다.

대호문은 본래 용역 깡패로 시작하여 큰 돈을 벌고 그 돈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 의천검가 아래 들어가면서 정식 문파가 된 케이스였다.

그러니까 의천검가의 더러운 일을 도맡는 문파가 대호문이다.

물론 대놓고 처리하지 않으며 오히려 흔적이 전혀 남지 않는 프로가 그들이라고 도진은 나지윤에게 들었다.

다만 대호파의 문주, 태종훈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런 꼬리표를 떼길 바랐고 그래서 아들을 '번듯한 숭무고 졸업생'으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숭무고에 보낸 것이다.

'벌써부터 이래선 힘들 거 같지만…….'

업계의 프로 냄새가 벌써부터 태종훈에겐 감돌고 있다.

이래서야 겉만 번듯하지 속이 다르지 않으니 소용이 없다.

그렇게 태종훈의 인사까지 받았던 근육 후배들의 무수한 맨살 요청은 이번 강의를 연 교수, 강거혁이 들어서고서야 잦아들었다.

강거혁.

소거인(小巨人)이라 불리는 무림의 명숙이자 벽태웅의 스승.

바로 그가 강의를 맡은 교수였던 것이다.

"반갑다. 강거혁이라고 한다."

작은 키. 무림인이 아닌 일반인의 기준에서도 작은 키의 그는 그러나 이 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의 단단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타고난 육체 조건 때문에 극성에 이를 수 없었던 무공.

그 무공을 극성까지 익히기 위해 깨어지고 부서지며, 그러고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그렇기에 누구보다 단단한 존재감으로 소거인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런 강거혁의 외공 단련법에 대한 강의는 작년 처음 개설된 그날부터 인기 강의가 되었다.

느긋하게 수강 신청을 했던 도진이 2학년 내내 듣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 강의는 여러분들에게 보다 나은, 그리고 평소 체험하기 힘든 극한에 이르는 단련을 체험해 주기 위해 개설되었다."

강거혁은 그 인상처럼 무뚝뚝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며.

"첫날이라고 해서 느슨하게 하진 않을 것이다. 바로 수업을 시작하겠다."

자비없이 수강 정정 기간의 첫날부터 수업을 진행했으니 그 내용이.

"호흡을 멈추고 팔굽혀펴기 500개부터 시작하지."

"……?"

* * * *

상상도 못한 내용에 학생들은 물음표를 띄웠으나 강거혁은 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즉시 숨을 쉬지 않은 채 팔굽혀펴기 500개를 하도록 학생들을 채찍질했고 곧 학생들은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자네. 왜 그게 되는 건가?"

"아, 제가 숨을 못 쉬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에 좀 익숙합니다."

뭐야, 그거. 몰라. 무서워.

강거혁은 드물게도,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 그런 표정을 짓고 말았으니 도진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숨을 쉬지 않은 채 팔굽혀펴기 500개를 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딴에는 머리를 굴려 어설프게, 혹은 엄청나게 빠르게 했던 학생들과 달리 '평소처럼' 해서 말이다.

사실 숨 쉬지 않은 채 500번의 팔굽혀펴기를 시킨 건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 이유이며 그걸 알게 된 여러분들은 저러저러해서 저러저러한 것까지 깨달아야 한다, 같은 수업 준비를 철저하게 했던 강거혁을 멍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 수업이 이제 세 학기째니 제법 능숙해진 강거혁의 계획은 그러나 도진이라는 특이케이스 때문에 조금 삐끗해 버렸다.

도진은 정말로 숨을 쉬지 않은 채 움직이는 것에 익숙했다.

단순히 연신극기공의 단련 때문이 아니라 위지혁과의 '수련 비무' 때문이었다.

서로가 천마군림을 시전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비무는 물론 비가 검기가 되어 내리거나 태풍이 몰아치는 등 호풍환우(呼風喚雨)의 경이로 가득했지만 더욱 도진에게 벽을 느끼게 만든 건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이었으니.

"스승님, 이건 좀 반칙 같습니다."

"허허. 숨 쉬는 것도 자유가 아니니라."

바로 위지혁의 '지배력'이 공기 그 자체에까지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래.

위지혁은 아예 도진이 숨을 못 쉬게 만들 수도 있었던 것이다.

도진은 '2단계'로 넘어간 수련에서 그야말로 인간의 기본 중의 기본인 '호흡'의 단계에서부터 발버둥쳐야 했으니 숨을 쉬지 않은 채로 한계까지 움직이는 요령 또한 터득하고 있었고 강거혁의 수업 계획마저 비틀고 말았다.

"크흠."

다행스럽게도, 도진이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이게 정상이 아니란 걸 학생들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수업은 스무스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사실 그렇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말이다.

'김도진'이니까 되는 거지, 하고 모두 납득해 버렸다.

"그럼 다음 수업 때 보도록 하지."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우렁찬 인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강거혁은 강의실을 나가는 대신 도진과 눈을 맞추었다.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자네도 같이 와도 좋아."

"예, 괜찮습니다."

도진은 클로에와 함께 강거혁을 따라 걸었다.

강거혁은 자신의 교수실로 두 사람을 데려왔다.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네."

"아뇨, 괜찮습니다."

강거혁은 도진과 클로에에게 사과하고서 잠시 머뭇거렸다.

평생,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행위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보이는 모습이다.

도진은 그런 강거혁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부드러운 얼굴로 가만히 기다려 주었고, 강거혁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태웅이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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