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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28화 (428/741)
  • 427화

    입학 비무 시험의 결승에서 큰 실수를 한 이문호는 가문에서 폐관을 명 받고 입학식까지 두문불출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으레 숭무고 입학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낸 학생들이 하게 되는 온갖 매체의 인터뷰나 홍보 등을 하지 못했다.

    현대 무림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명성을 떨치기 위해서는 그런 식으로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홍보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큰 손해를 보았음은 물론이요 이문호로서는 그 이상으로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집행부 입부 신청에서 도진이 결격 사유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적으로는 이문호의 집행부 입부를 막을 근거가 없다.

    입학 시험 비무에서 준결승을 하고 이론 성적도 좋은 이문호였으니까.

    허나 이렇게 실수를 함으로써 가문에서 폐관까지 명 받았던 건 결격 사유로 들기에 충분한 오점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간을 끄는 데 그칠 것이니 이문호에게 강한 의지가 있다면 결국은 입부가 가능한 일이었다.

    가문에서의 폐관이지 법적으로 어떤 처분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문제는 그렇게 자신의 실수가 부각되고 시간이 끌리는 것 자체가 오점이 지워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니 큰 손해가 되는 것이다.

    이문호는 도진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이문호의 목표가 집행부를 집어삼키는 것이라는 건 말로 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도진의 성격상 이문호의 집행부 입부 자체를 반기지 않을 것이고 그를 위한 여러 수단을 쓰지 않을까 했던 것이 이문호의 계산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새내기들."

    스윽-

    그러나 그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으니 철저하게 준비하고 거절했을 때를 대비한 몇 가지나 되는 플랜을 완전히 수포로 만들어 버리는 손이 내밀어졌다.

    도진은 서류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웃으며 이문호를 포함한 삼인방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예, 예. 잘 부탁드립니다."

    이문호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도진의 손을 마주 잡으며 꾸벅 인사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문호를 따라온 나머지 둘도 그에 이끌려 인사를 했다.

    "환영식은 며칠 뒤에 공지할 거야. 조율도 가능하니까 얘기해 줘."

    "예,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간단한 대화를 좀 나눈 뒤 이문호는 집행부실을 나왔다.

    친구들, 사실은 '수하'라 해야 할 둘을 보내고 이문호는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며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 사람과의 약속을 잡았다.

    "네, 형님. 지금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 괜찮아.

    "예. 그럼 30분 뒤에 뵙겠습니다."

    이문호가 형님이라 부르는, 약속을 잡은 상대는 다름 아닌 숭무고 3학년으로.

    "잘 지내셨습니까, 형님."

    "어, 그래. 준우승 입학 축하한다."

    큰 키에 화려한 패턴의 안경이 특징인, 약간의 느끼한 감이 있는 남자.

    군홍무가의 둘째 무진혁이었다.

    무진혁과 이문호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정치권과 특히나 끈끈한 사이인 군홍무가는 그렇기에 당연히 같은 성격인 의천검가와 접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무가로서 정치권에도 발을 담근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서로 협력하였고 자연스레 후계자들 사이의 관계도 필요에 따라 부드러웠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그럴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다.

    그런 배경으로 '사이가 좋은' 동생의 질문에 무진혁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도진이가 그렇게 쉽게 집행부 입부를 수락한 이유가 뭔지 내 의견이 궁금하다고?"

    "예."

    따로 배경 설명은 필요가 없었다.

    그런 것 정도야 풍문으로도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의 머리와 지식이 있었으니까.

    핵심만을 담은 질문에 무진혁은, 그리 고민하지 않고 바로 답을 내놓았다.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으니까, 겠지?"

    "거절할 필요가 없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도진이는 너를 그렇게까지 버선발로 나와서 견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

    자존심이 상한다.

    허나 이문호는 굳이 그 감정을 얼굴에 띄우지 않았고 무진혁은 말을 계속했다.

    "도진이 생각은 그거지. 입부해서 해야 할 일만 잘하면 터치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잘못을 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간단하지?"

    "…정말 간단하군요."

    너무 당연하고 평면적이면서도 명쾌해서 할 말이 없다.

    복잡하게 생각한 자신이 바보같아질 정도로.

    "문호야."

    "예, 형님."

    "네 생각은 잘 알겠는데, 가능하면 1년 정도는 숨죽이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괜히 도진이랑 싸워봐야 피밖에 더 보겠냐."

    "…조언 감사합니다."

    '패배자.'

    대화를 나누며 이문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눈앞의 무진혁은 패배자다.

    숭무고에 입학하여 'S4'라 불릴 때만 해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싸우지도 않고 도진에게 굴복하여 꼬리를 내리고 조용히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는 패배자라 여겼다.

    무림에서 힘이란 절대권력이라지만 '절대권력'이 오로지 물리력만은 아니지 않은가.

    군홍무가라는 어마어마한 배경을 타고 났으며 그것을 동원할 힘도 있으면서.

    무진혁은 싸우지도 않고 꼬리를 내린 패배자가 되었다.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도움될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한 이문호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가는 이문호의 등을 보며, 시종일관 친절한 얼굴이던 무진혁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너는 모르겠지.'

    무진혁은 실제로 김도진을 겪었다.

    권민국이, 곽필섭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심지어 3학년 선배들마저도.

    육체만이 아닌 정신마저 무릎을 꿇게 만드는 숨겨진 부분까지도 일부나마.

    육체적인 패배가 무서운 게 아니다.

    군홍무가는 그런 건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가문이다.

    진실로 무서운 건 육체가 아닌 정신이 꺾이는 것이다.

    무진혁은 그런 '정신적인 패배'를 이미 예감하고 있는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에 대립을 포기한 것이다.

    정말로, 가시적으로 정신이 꺾여 버리면 거기서 군홍무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삶도 끝장이 나 버리니까.

    그리고. 그래서.

    무진혁은 은근슬쩍 이문호를 자극한 것이었다.

    정신적으로 꺾여 버리라고.

    의천검가와 군홍무가는 동맹 관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군'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그럴 수 있다면 언제든 꺾는 게 좋았고 그럴 생각으로 무진혁은 이문호를 자극했다.

    본래는 숨죽여 지냈을 이문호를.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도 그렇게 꺾여 버리면 군홍무가로서는 이득이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너나 나나 빌런이잖아?'

    * * * *

    입학식도 끝나고 개학을 앞둔 주말.

    도진에게 위연서가 찾아왔다.

    "소지존!"

    "응, 어서 와. 음료수 줄까?"

    "네! 가능하면 일회용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그래."

    위협적일 정도로 매력적인 눈빛에 도진은 입술을 당겨 웃으며 종이컵에 음료수를 내 주었다.

    그 음료수를 전설의 영약 중 영약 공청석유마냥 홀짝이며 종이컵까지 챙기려는 모습에서 도진은 문득 우서진과 윤상미가 떠올랐다.

    그 녀석들, 항상 쓰레기를 자신들이 챙겼었지…….

    에이, 설마.

    그렇게 잡생각을 잠시 하던 도진은 진지함이 담긴 위연서의 눈빛에 자세를 바로 했다.

    "무언가 알아낸 게 있나 보네."

    "예, 소지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는 이미 알고 있다.

    성지인의 추가 합격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맡았던 의뢰.

    그중에서도 동물원에서 얻은 시료에 관한 것이다.

    "해당 독은 36종의 재료가 혼합된 혼합독이었으며 흥분제의 일종이었습니다. 환각과 미약 효과 또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약(媚藥).

    그러니까 무협지에서 흔히 말하는 춘약(春藥) 등의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약으로써도 기능했다는 말이다.

    "8종의 재료가 효과의 중심이었으며 12종의 재료가 효과를 더하면서 동시에 중심이 되는 재료를 숨기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16종의 재료가 분석을 방해하기 위해 사용됐습니다."

    "…그저 그런 단체에서 쓸 만한 수준이 아니네."

    "예, 그렇습니다."

    독(毒)이란 요리와 비슷하게 '레시피'의 비밀 엄수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나 현대에서는 더더욱 그것이 중요하니 완제품을 분해하여 기술을 훔치는 것처럼 독을 분석하여 레시피를 훔치기가 더욱 쉬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용된 독을 분석할 수 없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쓰니 재료를 더하여 진짜 레시피를 숨기거나 제대로 성분 검출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을 전문으로 검출 해내는 기술도 있으니 화이트 해커에 빗대 '백독학(白毒學)', 혹은 '백독공(白毒功)'이라 부른다.

    속리동물원에서 비용을 치르고 의뢰한 곳에서는 이미 결과가 나왔었다.

    '평범한 수준의 흥분제'로 판명이 되었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불명의 단체에서 자행한 테러로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도진은 그 발표를 다 믿지 않았으니 실제로 그랬다면 그보다 먼저 결과를 보고했어야 할 위연서의 소식이 없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

    '평범한 전문가'로서는 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독이라니.

    심지어.

    "소지존께서 맡기신 일, 최선을 다하였으나 송구하게도 중심이 되는 여덟 가지 재료 중 네 가지의 재료가 무엇인지 판명하지 못하였나이다."

    백독학에 있어서도 정점에 있다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독마전'의 기술로도 핵심재료 8가지 중 4가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이쯤되면 정말로 흔해빠진 과격 단체의 허접한 테러로는 결코 볼 수 없게 된다.

    일정 수준의 백독학으로는 평범한 흥분제로밖에 분석되지 않는 흥분제를 쓴, 그런 흥분제를 쓴 단체로 여기게 하여 또 적당한 수준의 수사력만을 움직이게 한 의문의 단체.

    "그리고, 해당 독의 제조에는 저희가 중국에서 특허를 냈던 조제법을 개량하여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독마전이 특허를 냈던 조제법을?"

    "예. 독마전 고유의 기술은 아니고 중국에서 연구소를 운영하던 시절 성과를 보이기 위해 했던 연구를 제출하며 냈던 특허였습니다."

    그 말은.

    "테러를 했던 단체가 중국에서 엄중히 관리하고 있는 독 조제법 특허 정보를 빼낼 수 있거나, 그걸 빼내 줄 수 있는 인물과 연관되어 있다는 거겠네."

    "예. 말씀대로입니다."

    독에 관한 경우는 그 특성상 전 세계 공통으로 '특허'라 해도 여러가지 이유로 상세 내용이 공개되지 않으며 증명만 할 수 있다면 상세 내용을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한데 그 수법을, 심지어 개량까지 하여 조제한 독이 '무림의 평범한 사건'에서 발견되었다.

    이 단계에서 도진과 위연서는 동시에 하나의 단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무형독……이랑 연관돼 있을 수도 있겠네."

    "예. 저희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독의 세계는 넓다.

    제아무리 정점이라 해도 모든 독의 재료와 조제법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재료와 조제법에 관한 수준만큼은 어느 정도 기준이 있으니 이 기준에 근거하여 위연서가, 독마전이 다 분석하지 못한 혼합독을 만들 수 있는 단체는 무형독 정도는 되어야 했다.

    "본격적으로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어. 위연서."

    "예, 소지존."

    "투마전, 그리고 답청문과 연계해서 한 번 알아보도록 해."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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