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426화 (426/741)

425화

"야, 약속이요?"

"응, 약속."

성지인은 도진의 말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다른 게 아니라 그 '약속'이 무엇인지 짐작가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게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지존과의 약속을 잊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하물며 도진의 곁에는 소담도 함께 있었으니 더 짚이는 게 없다.

생각과 당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 얼굴에 도진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쇼핑을 가기로 했었잖아."

"아……."

그것은 이곳, 바른 엔터 소속 아이돌들이 머물고 있는 이곳 투룸으로 이사왔을 때 지나가듯 했던 말이었다.

도진은 쇼핑을 나중으로 미루자고 했었는데 그게 어느새 아주 먼 일처럼 느껴진다.

허나 다름 아닌 소지존과의 일이었기에 선명한 그때의 기억을 성지인은 떠올릴 수 있었다.

"입학도 확정됐고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하니까. 쇼핑하러 가자."

웃으며 이끌어주는 도진의 모습에 성지인의 얼굴 그득 환한 웃음이 채워진다.

"네, 네!"

* * * *

성지인은 또 한 번 이사를 가게 됐다.

-거기서 계속 사는 거 아닌가요?

생방송에 우르르 몰려든 시청자들의 물음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뭐 제가 대표로 있긴 하지만 거긴 바른 엔터 아티스트들의 숙소니까요. 엄밀히 따지면 제가 사적으로 유용한 거였죠."

-그러면 나쁜 짓 한 거 같잖아요;;

"하하. 뭐 좋은 곳에 썼으니까 다들 이해해줬으니까 나쁜 짓은 아니게 됐습니다."

허나 이제 성지인의 문제도 대부분 해결이 됐으니 제대로 머물 만한 거처를 마련해야 할 때가 되었고.

"바로 여기가 앞으로 지인이가 머물 곳입니다."

도진은 성지인이 새로 머물 곳이라며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빌딩을 가리켰다.

-?

-ㅖ???

-????? 무, 무엇?

빌딩은 넓은 부지를 포함한 12층짜리 쌍둥이 빌딩 두 채였다.

개인이 아닌 큰 회사 단위에서나 소유할 법한 규모에 외관만으로도 상상도 못할 만큼의 돈이 들어갔음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도진은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눈이 동그래진 성지인의 모습에 하하하 웃고서 말했다.

"두 개 층 정도는 잠룡문이 투자한 올리모델링 빌딩입니다."

-아, 다 쓰는 건 아니구나;;

-근데 여기 원룸 같은 그런 건물은 아닌 거 같은데.

"네, 맞습니다. 이곳은 바할라 한국 지부입니다."

-헐;;

-바, 바할라요?

"네. 요즘 한국이랑 바할라의 관계가 좋잖아요. 바할라가 이제 세계 무림에서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그 첫 걸음으로 한국에 지부를 내기로 한 거예요."

-ㅁㅊ;;

-이거 빅뉴스 아님?;

-내, 맞워요! 몇 분 내로 생방 보고 있던 기자분들이 기사 써 주실듯ㅋㅋㅋ

실제로 기자들은 화들짝 놀라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는데, 그들이 목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바라는 정보를 도진은 더 풀어놓았다.

"이 빌딩은 바할라 한국 지부이면서, 동시에 잠룡문의 지부이기도 해요."

-헐ㅋㅋㅋ

-본진보다 큰 멀티 아님요 이건?ㅋㅋㅋ

"하하. 그렇게 되네요."

잠룡문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외적 확장이 필요해졌다.

그러던 때에 슈미트라가 연락을 해 왔으니.

"소지존, 저희 투마전이 한국에 지부를 세우려 하는데 그곳을 활용해 주소서."

지부를 세우기 위해 준비했던 건물을 내놓으려 했던 것이다.

그것도 두 채나.

슈미트라의 그런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걸 그대로 받는 건 아무래도 무엇한 감이 있었고 어느 정도 절충한 것이 지금의 형태였다.

바할라의 한국 지부이되 잠룡문도 투자를 함으로써 빌딩을 공유하는 것.

이는 단순히 같은 공간을 쓰는 것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었으니 이어져 있었으나 흩어져 있던 도진의 인연들을 한곳에 모으는 결정이 되었다.

단순한 빌딩이 아닌 무림의 문파를 위한 빌딩에는 당연히 그에 필요한 시설들이 완비되어 있었다.

"이것을 넣으시면 어떻겠습니까."

"좋군요."

"이것도 넣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넣어 주십시오."

"아, 근데 이러면 예산이……."

"예산은 무제한입니다."

"……!!"

위치와 부지는 괜찮으나 연식이 제법 있었던 쌍둥이 빌딩 두 채를 매입한 슈미트라와 리모델링 업체 대표의 대화였다.

그리하여 새로 탄생한 쌍둥이 빌딩은 겉으로 보이는 게 오히려 검소할 지경으로 내부가 대단했다.

투마전 무인들의 단련을 위한 공간은 물론이요 심지어 독마전이 과하게 지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구했던 것 이상의 퀄리티로 완성된 독공 연구소 또한 있었다.

그러니까 이 빌딩 안에서 앞으로 투마전과 독마전의 무인들이 활동할 예정이다.

더불어 암산서가의 무인들 또한 앞으로는 여기서 오성아와 함께 업무를 보게 되었으니 처음 마련했던 꼬마 빌딩을 제외한 기존의 부동산을 처분하고 잠룡문 또한 이곳에 입주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잠룡문의 업무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게 되니 이사를 하는 건 성지인만이 아닌 잠룡문 전체였던 것이다.

-헐ㅋㅋㅋ

"지금 생방으로 최초로 공개하는 정보입니다."

-이걸실;;(이걸 실시간으로 봄이라는 뜻ㅎ)

-생방 알람 맞춰놓길 잘했어..

채팅창이 미친듯이 요동치고 이미 인터넷에는 속보가 우르르 뜨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폭탄 발언이 터졌으니.

-와.. 도진님 혹시 슈미트라 왕세자님이랑 친하세요?

"거의 가족이죠?"

-ㅁㅊ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룡문주 피셜)슈미트라 왕자와 난 가족이야..

"그렇네요. 거의도 아니고 그냥 가족이죠."

공식적인 발언으로 바할라의 슈미트라 왕세자와 친하다고 말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진의 발언이었으니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채팅창은 폭주했다.

"아는 분들은 다 아시잖아요. 우리 잠룡문이랑 바할라가 협업하는 거. 당연히 친하죠."

바할라가 독마전, 세간에는 잠룡문 소속의 독공 연구소로 알려진 곳에 답청문과도 협업하는 건 비밀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무형독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그 일선에서 움직이고 있는 바할라는 한국에서는 한국의 무림맹과 정부와의 협조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특히나 잠룡문, 그리고 답청문과 가까운 사이라는 게 고스란히 보였으니까.

허나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라 해도 좋을 생방송에서 가족이라 말할 정도라는 건 과연 크나큰 여파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폭탄 발언을 던져 놓고 도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뭐 그런 고로 이렇게 한지붕 아래에서 지내게 됐는데, 저쪽에 아주 럭셔리한 투룸 숙소가 있단 말이죠. 지인이는 앞으로 거기서 지내게 될 겁니다. 물론 월세나 관리비는 청구되지 않습니다."

-뭐야. 나도 입주하게 해줘요.

쌍둥이 빌딩 좌측의 절반은 무인들이 머물기 위한 숙소로 배정되었다.

'예산은 무제한'이었던 만큼 엘리베이터부터 시작해 복도는 물론이요 내부 또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대단했다.

옵션부터 시작해서 그저 대단했다.

-이것이.. 오일의.. 힘..

-미쳤다 진짜..ㅋㅋ

성지인 또한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진 채 주위를 둘러 보았고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모르는 거 있으면 소담이한테 물어 봐. 소담이가 잘 아니까."

"응! 나한테 물어보면 돼!"

소담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새내기를 보는 표정이다.

그녀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까.

숭무고의 기숙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최신 기기들의 사용법을 몰랐을 때 도진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는 마치 신혼집에 처음 함께 들어간 듯한…….

'크흠.'

살짝 볼이 붉어진 소담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문주님."

"문도를 챙기는 건 문주의 의무야. 그러니까 감사하는 걸로 충분해."

-오.

-형아. 날 가져요!

"남자는 가지지 않겠습니다."

-아.

-ㅜㅜㅜㅜ

"뭐, 그런 고로 앞으로 여기서 살아야 할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같이 사러 가자고 온 거야."

"네, 네! 감사합니다!"

-어, 근데 도진님.

"네."

-여기 싹 다 풀옵션인데 왜 책상은 없어요? 숨겨져 있나요?

-그러네?

-최신식이라 진짜 숨겨져 있는 건가?

도진이 씨익 웃었다.

"아뇨. 책상은 따로 들일 예정이라 빼달라고 했습니다."

-어?

-어, 잠깐.

"네, 맞습니다. 이건 100만 구독자 달성 기념 이벤트니까요. 가구를 만들어 주기로 했고, 지인이에겐 책상을 만들어 줄 거거든요."

"아……."

성지인의 커다란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도저히, 이 커다란 은혜에 무어라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그 감정이 흘러넘칠 뿐.

도진이 그렇게 물기 어린 성지인의 눈을 마주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책상이란 것도 그렇거든. 사용자의 체형에 맞출 필요가 있었고 지인이 넌 환골탈태할 예정이었으니까. 이제는 그 환골탈태를 했고 앞으로 너는 계속 이렇게 예쁠 테니까. 며칠 안으로 우 명장님이랑 시작할 거야."

"네! 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하지 마. 내가 잘난 척을 못 하게 되잖아."

"네, 네!"

성지인이 물기 어린 얼굴로 활짝 웃었다.

* * * *

-너는 계속 이렇게 예쁠 테니까. 메모..

-어차피 쓸 일이 없을 텐데 메모는 왜 함...

-ㅠㅠㅠㅠㅠ..

도진은 소담과 함께 성지인을 데리고 쇼핑을 했다.

"치약이랑 칫솔……. 그리고 또 뭐 사야 하지?"

"도진이는 보면 안 되는 거……."

-앗..

-*-_-*..

보통은 생각하기 힘든 부분까지 도진은 꼼꼼하게 자취를 해야 하는 성지인을 챙겨 주었다.

여기에 남자인 도진이 챙겨주기 힘든 부분은 소담이 도와 주었다.

"니가 같이 와줘서 다행이네."

"헤헤."

그렇게 웬만큼 필요한 걸 다 샀다 싶자 도진은 본색을 드러냈는데 다름 아닌.

"옷 사러 가자!"

'옷 갈아입히기'였다.

"자, 이거 한 번 입어 보자. 아, 이것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십 벌이나 되는 옷을 가져와 성지인에게 입혀 보았다.

성지인은 도진이 가져다 주는 옷을 성실하게 착착 갈아입고 나왔는데 그럴 때마다 도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잘 어울리네. 아, 저건 소담이 너 어울릴 거 같은데. 입어 볼래?"

"응!"

-?? 원래 김도진 같은 스타일은 쇼핑 이런 거 싫어하지 않나?

-너 그거 선입관이야! ..근데 김도진은 좀 심한 거? 같기도?

무려 두 시간째였다.

시청자들은 성지인과 소담의 패션쇼(?)에 눈이 즐겁긴 했으나 그걸 주도하는 게 도진이라는 것에 놀랐다.

-도진님 이런 거 좋아하세요?

"네, 좋죠. 예쁜 옷을 저렇게 잘 차려입는 거 보면, 그리고 그게 내가 골라준 거면 좋지 않나요?"

"괘, 괜찮은가요, 문주님?"

"오! 좋네. 소매가 좀 넓은 게 매력 포인트인 거 같아."

"나는?"

"만화를 찢고 나온 거 같아."

"헤헤."

-어.. 저렇게 입어주는 사람 있으면 하루종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긴 하네요.

* * * *

그렇게 도진이 소담, 성지인과 함께 한창 쇼핑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서울의 모처.

고색창연하면서도 으리으리한 한옥들이 들어서 있으니 다름 아닌 의천검가 본가였다.

'한국의 전통을 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이곳의 가장 깊숙한 곳, 문주의 집무실에서 감정을 담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문주님, 그냥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의천검가의 수석 장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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