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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25화 (425/741)
  • 424화

    벌떡!

    그것은 성지인의 주먹이 막 쏘아진 순간 어떤 이들이 취한 행동이었다.

    빠아아아악!!

    성지인의 주먹이 이문호의 얼굴을 격타한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들은.

    휘청!

    "어, 어?"

    "왜 저래, 저거?"

    훨훨 날아 비무대 밖을 나뒹군 이문호가 비틀거리며 일어난 뒤, 그러나 똑바로 서지 못하고 계속 휘청거리자 다급히 중앙으로 난입했다.

    난입하는 그들의 등에는 '義天', 의천이라는 한자가 금실로 수놓아져 있었으니 바로 의천검가의 무인들이다.

    심상치 않은 상황과 분위기에 웅성거림이 파동처럼 퍼져 나갔다.

    의천검가 무인의 부축을 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갓 태어난 포유류마냥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이문호의 모습에 웅성거리는 파동에는 불안마저 깃든다.

    "사고났나?"

    "뇌진탕?"

    쿵! 쿵!

    잔뜩 흥분하여 무인들 중 일부가 무대에서 아직 내려오지 못한 성지인에게로 압박하듯 거리를 좁힌다.

    본래 얼굴이란 인간에게 있어 급소 중 급소다.

    소위 말하는 '죽빵'이란 그 어감과 달리 충격이 뇌에까지 미칠 수 있는 등 아주 치명적인 공격이 된다.

    하물며 그것이 무림인의 것이라면 상황에 따라선 살인죄까지도 적용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살초(殺招)'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지인은 혼란과 불안이 퍼져 나간 주위의 분위기와 압박하듯 다가오는 이들의 모습에 가슴 속에서 불안이 스멀거리며 새어 나왔다.

    그러나 몸을 뒤로 잡아끄는 겁쟁이로서의 자신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섰고.

    스윽-

    그런 자신을 받쳐주는 '교주님'의 기척에 허리를 올곧게 펴고서 험상궂은 무인들을 마주했다.

    "이게 무슨 지!"

    "뀐 놈이 성내지 마세요."

    크게 입을 벌리고 소리치던 그들은 마치 칼날처럼 말을 끊는 도진에 의해 도로 입을 다물게 됐다.

    비무대 위로 가볍게 내려서 성지인의 곁에 선 도진은 언제나처럼 크게 기세를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음에도 이 자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모두의 눈과 귀를 끌어당긴다.

    의천검가의 무인은 그런 도진을 마주해 잠시 압도되었으나 곧 이를 악물고 다시 말했다.

    "뀐 놈이 성내다니, 무슨 말입니까. 저 학생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 자리에서 모두가 봤는데!"

    도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맞아요. 모두 봤죠. 하지만 봤다고 해서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죠. 당신 또한 무지에서 비롯된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하고 머릿속이 열로 잠시 새하얘지는 것 같다.

    무인은 그것을 억지로 한 번 식히며 말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간단한 이야기죠. 지인이는 살초를 쓴 적이 없고 그냥 세게 한 대 때린 것 뿐이란 겁니다.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도진의 시선이 무인을 넘어 여전히 후들거리며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문호에게 닿는다.

    어떻게 보면 얼굴을 맞아 뇌에까지 충격이 간 건 아닌지 심각하게 보이는 모습이지만.

    "지인이가 쓴 건 파자결(破字訣), 부수는 게 아니라 파자결(波字訣), 충격을 퍼뜨리는 방식의 내공 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문호 학생이 저러는 건 온몸에 퍼진 충격에 '아파서' 그러는 거란 말입니다."

    "엉?"

    "뭐, 뭐야.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웅성거림의 소리가 커진다.

    그것은 혼란이나 불안이 아닌 놀람에 의한 것으로 성질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의천검가의 무인들 또한 그에 전염된 듯 당황했고 도진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들 눈은 옹이구멍입니까?"

    도진을 마주한 의천검가 무인들의 눈에 다시 한 번 불똥이 튀었다.

    "말이 너무 심하!"

    "말이 심하다?"

    "……!"

    허나 그 불똥은 도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짐과 동시에 일대의 열까지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 차가워진 분위기에 얼어붙었다.

    동시에 그들 또한 도진의 기세에 얼어붙었다.

    "의천검가의 무인들은 학생의 상태조차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정정당당하게 대련한 학생을 윽박지르는 데 정신이 팔린 나사빠진 인간들인가 보네요?"

    "그것만으로도 한심한 일인데, 더 한심한 일이 있죠. 당신들 가문의 둘째가 살초를 썼다는 건 정작 언급하지 않는 것."

    "사, 살초라니……."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운 단어에 의천검가의 무인이 얼어붙은 입술을 억지로 뗐다.

    도진이 그렇게 입술을 뗀 무인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말했다.

    "이문호가 마지막에 썼던 초식. 그 타격점은 지인이의 심장 아래 갈비뼈였습니다. 아무런 망설임없이 급소를 가격했죠. 심지어 그렇게 갈비뼈를 박살낸 뒤 끝까지 검을 휘두르려 했습니다. 생사결도 아닌 학생들 간의 비무에서. 이게 정상입니까?"

    "그……!"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처음 듣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그들 또한 의천검가의 무인. 바보가 아니어서 그런 부분을 보기는 봤다.

    그대로 맞았으면 살초겠지만 비무에서 서로의 역량에 따라 살초가 살초가 아니게 되는 경우 또한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

    흐름상 성지인이 분명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그냥 몸으로 받아낸 게 아니냐.

    오히려 그렇게 상처없이 받아내고 살초가 될 수 있는 주먹으로 이문호를 공격한 게 성지인 아니냐.

    그런 '변명'이 떠오르긴 하는데 제대로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아서였다.

    그 조잡한 변명이 전혀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으로 알게 만드는 도진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자신들 가문의 후계자가 저지른 잘못을 알아봐 놓고도 모른 척하는 게 의천검가의 방식인가 보군요?"

    "그, 그럴 리가!"

    화들짝 놀라 의천검가의 무인이 소리쳤다.

    "감히 공개적인 비무에서 살초를 썼는데 그걸 덮어놓고 오히려 정정당당하게 승부한, 그런 공격을 당했음에도 살초를 쓰지 않은 무고한 학생을 핍박하려 들어? 그러고도 고개 들고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미, 미친……!'

    의천검가 무인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신다.

    단순히 도진에게 압도되어서만이 아니었다.

    기세도 기세지만 도진의 발언의 수위가 완전히 선을 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다 알아들었다.

    도진의 앞에서 허리 숙여 사과할 의향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도진의 발언은 그 정도로 해결되지 않을 만큼 선을 완전히 넘어 버렸다.

    이건 아예 싸우자는 게 아닌가.

    그리고 도진은 실제로 그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단순히 '애들 싸움'이 아니다.

    이문호는 감히, 천마신교의 소지존 앞에서 교도를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살해하려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필요하다면. 그 징치에 있어 장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치워 버릴 의지로 도진은 이 자리에 선 것이었다.

    "어? 어?"

    "분위기가 좀 많이 이상하잖아, 이거……."

    심상치 않은, 그야말로 태풍의 핵이 되어 선 도진의 존재감에 비무대 주위가 휩쓸린다.

    당사자인 의천검가의 무인들은 의식이 아득해질 정도로 압박감에 짓눌리고 있었다.

    이대로 그렇게 극단적으로, 무언가가 터져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죄송합니다."

    다 타버리기 직전에 심지의 불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이문호였다.

    저벅.

    겨우 충격을 해소한 이문호가.

    저벅.

    "잠시 이성을 잃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도진의 앞에서 깊이, 허리를 숙였다.

    도진은 그런 이문호를 내려다 보았다.

    -환경만 받쳐준다면 큰 효웅이 될 놈이로구나.

    도진의 시선을 통하여 보는 장호는 이문호를 그렇게 평가했고 도진 또한 동의했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면서 사과를 하다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난놈은 난놈이었다.

    도진은 이문호에 머물렀던 시선을 성지인에게로 향했다.

    "사과를 하는데, 받아 줄 거야?"

    갑작스레 자신에게로 향한 사건의 중심에 성지인은 움찔했으나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받아 주겠습니다."

    그 말에 도진의 입가에 미소가 돌아왔다.

    "그래. 당사자가 받아준다네."

    "…고맙다."

    이문호는 그제서야 숙였던 고개를 들었고.

    어쩌면 한국 무림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을 잠룡문과 의천검가의 '전쟁'은 발발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 * * *

    입학 시험 비무에서 우승한 건 추합, 추가 합격으로 숭무고에 입학하게 된 성지인이었다.

    정시도 아닌 추합으로 들어와 용봉이라는 거창한 별호를 얻으며 무려 의천검가의 이문호에게서 승리하여 우승한 성지인은 그 외모까지 더하여 당연히 화제가 되었다.

    허나 지금 온갖 커뮤니티에서는 그보다 더 화제가 된 일이 있어 놀랍게도 성지인의 우승이 화제의 중심에서 밀리고 말았으니 소위 말하는 '키보드 배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잠룡문vs의천검가'였다.

    -와 ㅋㅋ 역시 상남자야 ㅋㅋ 저걸 그대로 갖다 박아 버리네 ㅋㅋㅋ

    -저거 이문호가 도게자 안했으면 그대로 전쟁 아니었음?ㅋㅋㅋ

    -ㄹㅇㅋㅋㅋ

    -다른 데도 아니고 의천검가 싸대기를 갈기면서 싸우자고 하는 신생 문파가 있다 뿌슝빠슝?!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고 합니다 ㅋㅋㅋㅋ

    의천검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파 중 한곳이며 심지어 단순히 무림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정계와도 큰 접점이 있는 문파다.

    그러니까 비호감 스택을 그만큼 쌓고 여러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굳건히 대한민국 대표 문파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문파에, 그것도 백주대낮에 '니가 잘못해 놓고 오히려 화를 내? 싸울까? 마, 함 뜨까?' 거침없이 그것을 지적한 도진이었으니 인터넷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온 이야기.

    -만약 이문호가 도게자 안 박고 덤볐으면 어케 됐을까?

    -전쟁나는 거지 ㅋㅋ

    -않이 그러니까 누가 이길 거 같냐고 ㅋㅋㅋ

    -미친ㅋㅋㅋ

    -진지빨고 말하면 의천검가 아님? 대한민국에서 의천검가를 어케 이김.

    -아니지. 김도진 인맥만 봐도 의천검가 씹어먹지. 명성공방에 심지어 클로에 덴젤이 제자니까 덴젤 공방도 가만 안 있음. 유지은도 나설 텐데 정의검가라고 지켜만 보겠냐.

    -약리지가 나서서 의천검가 무인 사절이라고 대문에 붙여놓을 의선약가도 잊지 말라구!

    -허미;; 듣고 보니 진짜 박 터지겠는데. 잠룡문이랑 의천검가가 아니라 한국 무림 전쟁 나는 거 아니냐 ㅋㅋㅋㅋㅋ

    -오히려 그래서 싸움 안 날 거임 ㅋㅋ 싸우면 레알 전쟁나는 건데 정부랑 한국 무림이 나서서 뜯어 말리지. 그래서 김도진이 더 강하게 나간 게 아닐까 싶음 나는.

    댓글을 보며 도진은 옅게 웃었다.

    도진은 '진짜' 전쟁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이에게 살초를 쓴 자를 그냥 두는 건 지존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니까.

    그 자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깊이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기에 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거창하게 말해 이문호의 늦지 않은 사과가 한국 무림 전쟁을 막았다.

    '올해도, 평탄하지만은 않겠어.'

    이문호.

    구제불능의 쓰레기라고 하기엔 제법 수준이 있다.

    도진은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분명히 집행부의 입부 신청서를 넣을 '빌런'의 존재를 한 켠에 두고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무, 문주님!"

    "이젠 선배라고 해도 돼."

    숙소를 방문한 도진을 마주한 성지인의 볼이 발갛다.

    도진은 웃으며 말했다.

    "약속을 지키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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