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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24화 (424/741)
  • 423화

    "자, 다들 마음껏 먹어. 내가 사는 거니까."

    "네!"

    "잘 먹겠습니다!"

    "나도 잘 먹을게!"

    도진의 말에 합창하는 건 집행부의 이제 졸업한 유지은부터 시작해 후배들, 그리고 곧 막내가 될 성민혁과 성지인까지 제법 대인원이다.

    4강, 준결승에 진출하는 학생들이 확정되고 이틀간의 여유가 생겼다.

    이 이틀간 준비를 하여 준결승부터 결승까지 입학 시험 비무는 연전으로 치러진다.

    가장 중요한 준결승과 결승 사이에 여유를 두지 않는 건 역시나 '무림학교'이기 때문이다.

    -무림인이 전력으로 싸우길 바라는 건 어린아이의 어리광보다 질이 나쁜 것이다.

    이런 격언이 있는 곳이 무림인 만큼, 오히려 준결승과 결승을 연전으로 치르도록 일정을 정했다.

    뭐 그런 배경으로 주어진 이틀의 시간은 물론 귀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숨막힐 듯 걱정하고 내쫓기는 건 옳은 것이 아니니까.

    도진은 시간이 되는 이들 모두 고깃집, 그것도 소고깃집으로 데려와 크게 한 턱 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여앉은 이들 가운데 두 개의 불판에서 능숙하게 고기를 굽고 있는 사람이.

    "와, 뭔데 벽태웅."

    "왜 고기 잘 굽는 거야, 너."

    바로 그 덩치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고기를 만들어내는 벽태웅이었다.

    약리지가 감탄하고 우서진마저 주목할 정도로 벽태웅은 고기를 잘 구웠다.

    가히 고기 마스터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의 벽태웅은 푸근한 곰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항상 제가 동생들의 고기를 구워 줬거든요. 그래서 고기는 좀 잘 굽습니다."

    "아, 그랬구나."

    "야, 태웅이 진짜 장남이었네."

    무림인이라면 기본적으로 몇 번 해 보는 것만으로도 고기 굽는 것 정도야 감을 잡고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잘하는 것과 능숙한 것은 결에서 차이가 있으니 벽태웅의 능숙함은 말 그대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벽태웅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며 도진이 성민혁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어땠어?"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짧지만 그걸로 충분한 문답이었다.

    엑소시아 후보생으로 성민혁은 앞으로 많은 것을 배울 것이고 무시무시하게 강해질 것이다.

    허나 '엑소시아 후보생'이라는 이름만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정지어선 안 된다.

    한 우물을 파는 건 좋지만 그 우물을 파느라 세상과 고립되고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어선 안 되니까.

    숭무고의 정시를 택한 건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성민혁은 그 의도를 200% 이해하고 배웠다고 할 수 있었다.

    "지인이는 어땠어?"

    고개를 돌려 도진은 성지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성지인은 텁, 텁 복스럽게 고기를 먹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응, 응. 그래."

    평소와 같은 모습처럼 보였지만, 도진은 그 동그랗고 귀여운 눈망울 안에 일렁이는 불꽃을 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도진이 성민혁과 이문호 사이의 싸했던 분위기를 캐치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으르릉, 적의를 불태우던 성지인까지도 말이다.

    도진은 굳이 그것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성지인 같은 부류는 그런 식으로 화를 토해내는 경험 또한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 대상이 '때려도 무죄'인 이문호 같은 악당이라면 더욱 환영이다.

    "우리 민혁이는 앞으로도 열심히 수련해야 하니까 많이 먹고, 우리 지인이도 준결승이랑 결승 준비해야 하니까 많이 먹어."

    "우우. 선배. 아무리 막내들이 귀여워도 그렇지, 우리는 너무 찬밥인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을 '우쭈쭈'하는 도진에게 항의하는 건 다름 아닌 약리지다.

    가볍게 알콜이 들어가 안 그래도 새하얀 볼이 더욱 발간 약리지의 항의에 도진은 피식 웃었다.

    "헌내기는 알아서 잘 하니까 말야."

    "응애! 나도 아직 새내기에요!"

    "오, 좀 귀여웠어. 더 해 봐."

    "…몇 잔 더 마시고 해 볼게요."

    "하하하! 그래."

    좋은 분위기 속에서 회식은 마무리되었다.

    알콜의 힘을 빌려 성민혁과 성지인은 제법 도진의 울타리 안에 녹아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 입학 시험 비무의 준결승이 진행되었다.

    "이문호, 승!"

    "성지인, 승!"

    결승의 권리를 쟁취한 건 이변없이, 모두의 예상대로 성지인과 이문호가 되었다.

    군계일학(群鷄一鶴).

    두 사람은 천재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천재였고, 후기지수로서 별호를 얻을 만큼의 경지를 자랑했다.

    의룡(義龍) 이문호.

    이문호는 의천검가의 인물이 후기지수가 되면 붙여졌던 별호를 잇게 됐다.

    이 별호는 본래 이문호의 형, 폐관에 들어간 이문강에게 주어졌던 별호였다.

    불미스런 사건으로 회수되었던 그 별호가 다시 의천검가에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성지인에게 붙여진 별호는 용봉(龍鳳).

    쿠오오오오오-!

    결승 비무대 위에 선 성지인의 기세와 함께 울리는 용울음 소리에 기인한 별호였다.

    '…마음에 안 들어.'

    성지인을 마주한 이문호는 미미하게 얼굴을 굳히며, 속으로는 완전히 일그러뜨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용봉.

    그런 거창하고 있어 보이는 별호가 버러지 따위한테 붙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그런 버러지가 내뿜는 기세에 밀리는 듯한 자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쿵!

    결승은 드물게도 성지인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성지인이 결승에 오르기까지 선공을 취한 적이 없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였으나 이문호는 당연히 당황하지 않고 대처했다.

    쿠웅-!

    '……!'

    진각과 함께 포탄처럼 쏘아진 '용의 턱'에 이문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급히 보법을 밟아 피했다.

    정직한 직선의 지르기가 아니라 정말로 용이 쇄도하는 듯 곡선을 그리는 주먹은 상대의 동선에 맞춰 급격한 변화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끝까지 보고 최소 두 수 이상을 앞서 움직일 필요가 있었기에 이문호는 잡생각을 버리고 집중해야만 했다.

    쿠오오오오-!

    겨우 피해낸 주먹에 어렸던 경력이 옆을 스쳐가며 식은땀을 날려 버린다.

    이 순간 이문호는 알았다.

    성지인은 성민혁과 다르다는 것을.

    이쪽은 원석이 아닌 어느 정도 다듬어진 무인이었다.

    성민혁은 이제서야 재능에 걸맞는 교육을 받게 됐고 그래서 냉정하게 말해 깊이가 얕았다.

    허나 성지인은 달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성민혁보다도 늦게 도진과 만났음에도 그녀의 깊이는 얕지가 않았던 것이다.

    '더 대단한 재능이라도 가지고 있었다고?'

    이문호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니었다.

    성지인의 무공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건 몽혼술을 통해 오랜 시간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후오오오오-!

    '하지만 이쪽도 아직은 어설퍼!'

    이문호는 놀라는 스스로에 분노하며 생각을 쳐날리듯 그렇게 생각했다.

    본래는 피하기 힘들었을 공격을 어쨌든 완벽하게 피해내고 있다.

    그것은 성지인의 움직임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파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수준에, 그러니까 일류에 이르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파탄이다.

    그러나 이문호는 의천검가의 둘째로 그 일류에 도달한 후기지수였기에 격전 중에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성민혁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벼락치기라는 거겠지.'

    이문호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엔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

    그녀의 움직임에서 드러나는 파탄은, 실제로 벼락치기에 가까웠으니 '환골탈태'한 몸에 아직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공이란 극한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정밀한 움직임이다.

    한데 성지인은 꿈 속에서 그것을 배우긴 했으나 실제 육체로 구사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실제로 환골탈태라 해야 할 만큼 육체의 변화가 있었던 성지인의 움직임엔 그 육체에 관한 적응까지 더하여 부정교합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문호는 그 틈을 노리기로 하고 차근차근 실행해 나갔다.

    그것이 가능할 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그 재능에 부족하지 않은 무공을 꾸준히 익힌 이문호이기에 계획대로 비무는 진행되었다.

    '이 정도면 힘 좀 써도 괜찮겠지.'

    인정할 건 인정한다.

    눈앞의 버러지가 보여주는 위력은 자신보다 윗줄에 있다.

    아니꼬운데, 오히려 그래서 좋은 부분도 있다.

    조금 진심으로 '쑤셔도' 비무의 범위 내에서 다칠 테니까.

    목표했던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어쩌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의 일격을 심어줄 수 있다.

    순진한 척 착한 척 약한 척하는 버러지가 벌벌 떨며 바닥을 기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짜릿한 감각이 달리게 해 준다.

    그것을, 실제로 실행해 보자!

    후오오오오-!

    경력이 일으키는 바람 소리와 용울음 소리가 볼을 스친다.

    베인 상처가 쓰라리지만 그것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상상과 기대로 오히려 쾌감이 된다.

    이 상처가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

    버러지는 상처를 보고 조금씩 몰아넣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쿠웅, 진각을 밟으며 간격을 좁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왼 주먹으로 퇴로를 봉쇄하고 다시 오른 주먹으로 결정타를 꽂아 넣을 생각이겠지만!

    콰아앙!

    여기서 역으로 이문호가 강하게 한 발 내딛어 극한까지 거리를 좁히며 어느새 검집으로 되돌렸던 검을 발검술(拔劍術)의 형태로 쏘아낸다!

    "오?!"

    "저건!"

    호포격(虎砲擊).

    기본이 되는 발검술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극한까지 가까워진 거리에서 칼날이 아닌 손잡이의 끝부분으로 상대를 가격하는 형태로도 쓸 수 있는 초식이다.

    그렇게 상대를 제압하거나 쳐서 날린 뒤 검끝으로 벨 수도 있다.

    비무이기에 상대를 베는 일은 지양하는 게 좋았고 검끝으로 치는 것도 급소를 피하는 게 기본이다.

    허나 이문호는 그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지키지 않을 생각으로 정확하게 갈비뼈를 노렸다.

    이걸로 갈비뼈를 아예 으스러뜨릴 생각이다.

    물론 일방적으로 그렇게 피해를 입히면 뒷말이 나올 테니 아주 약간, 완벽하게 방비를 하고 허초일 왼 주먹을 최소한의 피해를 입는 형태로 받아줄 거다.

    완벽한 계획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문호는.

    쾅!

    "……!"

    '어?'

    전혀 계획에 없던 강렬한 반탄력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호포격은 분명하게 성공했다.

    쏘아진 검끝이 분명하게 갈비뼈를 가격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버러지의 얼굴에 전혀 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반탄력이 분명히 있었다.

    그냥도 아니고 상당하게.

    그러니까 아주 제대로 들어갔다는 건데 왜 반응이 없지?

    -껄껄. 아주 악랄한 놈이구나.

    -예.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도진의 눈을 통하여 지켜보던 위지혁의 말대로였다.

    과거, 광룡군이 내가고수의 정점처럼 여겨질 때 그런 이야기가 나돌았었다.

    -광룡군은 내공에 치중하는 무인이니 외공은 그리 대단치 않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

    거의 사실처럼 떠돌았던 이야기지만 그건 뭘 모르는 하수들 사이의 이야기였고 고수들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쿠오오오오오-!

    격룡기는 천마기를 제하면 천하에 비할 데가 없는 광포한 내공이었다.

    그런 내공을 극한까지 연마하고 구사하는 고수의 육체가, 외공이 대단치 않을 거라고?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오히려 그런 내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육체의 단련에 피땀을 흘려야 했다.

    광룡군, 용마는 그렇기에 투마와 더불어 천마신교에서도 제일을 다투는 외공의 고수였다.

    그러니까 그 후계자인, 지금 격룡기를 일으키며 주먹을 쏘아내기 직전의 성지인 또한 그 외견에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단단했다.

    이 꽉 물어.

    '……뭐?'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 말을 들은 것만 같다.

    그것은 이문호가 마주한 성지인이 눈으로 한 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라 이문호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고.

    빠아아악!!

    그것이 죽빵을 제대로 쳐맞은 그가 찰나에 할 수 있었던 최선이 되었다.

    털푸덕!

    "서, 성지인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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