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화
집행부 부장인 한유아는 예언을 한다.
그런 이야기까지 들었던 한유아의 '예언'은 기실 그 관찰력과 정보력에 기인한다.
그러니까 사실은 예언이 아니라 관찰력과 정보력을 통하여 수집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사실에 가까운 유추인 것이다.
상대가 그녀의 마력 같은 미모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그녀는 우선 겉으로 보이는 상대의 모든 것을 정보로 치환하여 수집한다.
그리고 그 만남이 예정되어 있던 것이라면 미리, 철저하게 파악한 주변 정보까지 더하여 '예언의 준비'를 하니 그녀를 마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나는 그 순간 이미 패배가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정도나 되는 한유아였기에 그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사실 시간이 부족했던 건 성지인이 아니라 성민혁이었다는 것을.
한유아의 말에 도진은 부정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죠. 욕심을 부리자면…… 몇 개월 정도 더 다듬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몇 주가 아닌 몇 개월.
눈을 높이고 욕심을 냈다면 성민혁은 사실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랬다가는 1년을, 그러니까 재수를 해야 할 판이라 추합이 아닌 '정시'를 택한 것이었다.
쿵!
"큭! 이런!"
쿠웅!
"말도 안 되는!"
공격하는 쪽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는다.
가드를 단단히 굳힌, 그러나 그 가드 사이로 비치는 눈빛이 마치 상대를 꿰뚫는 것만 같은 자세의 성민혁이다.
상대의 선공을 유도하는 성민혁의 자세에 달려든 상대는 결코 뚫리지 않는 가드에 우선 흔들리고.
쿠웅!
"윽!"
상상을 넘어서는 반탄력에 자세가 흐트러지며.
퍼어엉!
"성민혁, 승!"
와아아아아아-!!
그렇게 드러난 빈틈에 꽂히는 깔끔한 카운터에 패배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시종일관 상대의 반격조차 허용하지 않는 압도적인 힘으로 승리를 가져오는 성지인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무공(武功)의 기본은 회피다.
현대 무림에 있어 진리처럼 여겨지는 말이며 대부분의 무인이 부정하지 않는 말이었다.
현대 무림의 무림인들을 게임 캐릭터에 비유하자면 공격력 스탯은 지극히 높지만 방어력 스탯은 지극히 낮은 형태다.
현대 무림의 무공을 구사함에 있어 내공이라는 힘이 방어보다는 공격 쪽으로 쏠리기 쉬우며 그것을 구사하는 이는 결국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보니 그런 형태가 된 것이다.
때문에 역시나 게임 쪽의 말을 빌리자면 '죽창 메타'가 현대의 주류가 되었고 총 등의 흉기까지 고려해 자연스레 막기보다는 피하는 쪽을 중시하게 됐다.
그런 추세에 따라 무조건 회피가 더 좋은 것이고 더 고등한 수법이고 진리다, 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회피가 더 나은 선택이 되는 게 사실이다.
허나 성민혁은 무조건 막기만 한다.
회피하는 대신 막고, 그렇게 막음으로써 '최선의 공격'이면서 동시에 '최선의 방어'를 실패한 상대에게 카운터를 꽂아 넣어 승리를 확정짓는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성민혁이 할 수 있는 최선이며, 그 외의 것에는 아직 서투니까.
숭무고 입학 시험까지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그 사이에 성민혁이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재능이 있고 그동안 해 온 토대가 있다.
천재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이다.
그러나 그렇게 토대와 재능을 가졌다 해도 단축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줄곧 가장 잘하는 것, 같은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단단한 몸에 단단한 방어, 그리고 '보는 눈'이구나."
"정답이에요."
신마공(身磨功)은 그 이름대로 몸을 단련하는 무공이다.
신마공을 익히게 되며 꾸준히 해 왔던 수련이 한 차원 높아진 성민혁의 몸은 단단하며 그를 기반으로 한 방어 또한 굳건하다.
그 몸과 방어를 믿고 성민혁은 상대의 공격을 직접 받아내며 읽어내고 틈을 찾거나 만든다.
이를 위한 눈은 길었던 괴롭힘 속에서 길렀으니 반격이 제한되는 '샌드백' 취급을 받으면서도 포기해 그저 받아들이는 대신 그 재능을 바탕으로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보는 법'을 자연스레 터득했던 것이다.
이렇게 눈과 몸이라는 무기를 갖춘 성민혁의 전법을 파악하는 학생은 드물었으며 파악했다 해도 파훼법에까지 도달한 이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알고 나면, 그리고 말로 하는 건 간단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으니까.
천재라 해도 아직은 식견과 경험이 부족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성민혁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허나 천재들 중에서도 천재라면, 대부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힘들 거 같네."
8강에 들어간 성민혁은 그 천재들 중 천재에 해당하는 학생을 마주했으니.
"……."
웃고 있지만 음울한 분위기가 그 안에 숨어 있는 소년.
의천검가의 이문호였다.
"시작!"
* * * *
쿠웅!
"……!"
처음에는 이문호 또한 당황했다.
이미 보았음에도, 그 약점이 무엇인지 짐작했음에도 그 단단함과 돌아오는 반탄력이 예상을 뛰어 넘었기에.
"와, 이문호까지도 안 되는 건가."
"이문호까지 재끼면 진짜 개쩌는 건데."
본 시험에서야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았다지만 그렇다 해도 의천검가와 손꼽히는 후기지수 후보인 이문호에 대한 평가 절하는 거의 없었다.
겨우 그것 하나로 어찌될 만큼, 스스로를 자책했던 것만큼 이문호의 이름값이 싸지는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지켜보던 이들은 주위를 돌면서 틈을 노리는 이문호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민혁에 감탄했다.
"흐음. 정답을 찾은 모양이군요."
"예. 의천검가의 둘째라면 저 정도는 돼야겠지요."
'그래도!'
허나 이문호는 곧 예상이 확신으로 바뀌고 또 그 너머를 보게 되면서.
'넌 나한테 안 돼!'
훅-!
"……!"
분위기를 반전시켜 성민혁을 흔들기 시작했다.
쿠웅-!
분명히 큰 힘을 담은 일격을 성민혁은 받아내고 또 받아쳤다.
배워 온 대로, 해가 지고 그 해가 다시 뜰 때까지 연마했던 초식에 따라서.
그리하여 충격을 받아 경직된 이문호에게 한 방을 꽂아 넣었지만.
후욱-!
피하지 못했어야 할 이문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격을 피하며 역으로 노리고 있었다는 듯 반격을 넣었다.
"……!"
쿵!
'윽.'
예상치 못했던 회피와 반격에 완벽하게 받아내지 못했다.
완벽하게 받아내지 못했으니 연계되어야 할 '받아치기' 또한 실패했다.
그리하여 도미노처럼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기지수는 후기지수네."
"그러네요."
한유아의 말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숭무고의 천재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천재가 속 빈 강정일 리가 없다.
인성과 별개로 이문호는 천재였으며 그에 걸맞는 교육과 수련을, 그것도 거의 평생을 받았으니 그만큼의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했고 그리하고 있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무너졌던 성민혁의 방어를 뒤흔들 수 있을 만큼의 힘을 행사하면서도 그것을 완벽하게 컨트롤 할 만큼의 기술과 여유가 있다.
"그렇게 쉽게 인정해도 되는 거야? 질 거 같은데?"
"한 번 진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요."
"……흐응."
"민혁이는 주어진 시간동안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나온 결과에 만족하고 또 더 큰 목표를 세울 수 있는 녀석이니까요.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이잖아요?"
"…응, 그럴 수 있지."
한유아의 대답이 조금 어두웠던 건, 그녀에게는 도진의 말이 다 와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문호, 승!"
그리고 비무의 승자는 이문호가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역시 의천검가네."
"성민혁이 잘 하기는 했는데, 역시 전통은 무시할 수 없지."
이문호는 쏟아지는 환호와 평가에 일그러지듯 웃음 지으려는 얼굴 근육을 통제했다.
허나 요동치는 마음까지는 다 통제하지 못했다.
그래, 이거다.
이런 걸 바랐다.
감히 버러지 따위가 나보다 주목받는 일 따위.
그리고 나보다 더 높은 곳에 가는 일 따위는.
결코! 있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흥분을 만들고 흥분이 이문호의 등을 떠밀어 내딛지 않아도 될 한 발을 내딛게 만들었다.
"선배의 안목도, 틀릴 수 있겠네."
"응? 뭐?"
이문호가 성민혁에게 다가가 말했다.
무슨 뜻이냐고 묻는 성민혁의 시선에 이문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니, 나는 선배가 너나 성지인이 입학 시험 비무에서 파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신 거 같은데, 틀릴지도 모르겠다고."
"…그 말은, 형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
"……."
분위기가 돌연 싸늘해진다.
웃으며 승리를 축하해 주려 했던, '호구 같던' 성민혁의 표정이 대번에 차갑게 굳어 버렸고 그런 성민혁의 모습에 이문호 또한 표정이 굳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새끼가…….'
감히 버러지 따위가 자신에게 대든다.
감히 얼굴을 굳히며 따지고 들려 한다.
그저 가벼운 한 마디에!
이미 패배한 버러지 따위가!
성질 그대로 행동했다면 이문호는 들고 있던 검집으로 성민혁을 후려쳤을 것이었다.
…씨익.
허나 이문호는 그러지 않았다.
성질대로 행동할 만큼, 경솔한 언행이 아무데서나 허용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으며 이 자리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눈치와 머리가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도진 선배가 틀릴 리가 있겠어? 그럴 리가 없잖아."
"아, 응."
돌변한 분위기에 성민혁이 템포를 잠깐 따라가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문호는 웃음에 친근함을 더하며 말을 이었다.
"그냥, 그런 거지. 내가 그런 선배의 예상을 깨고 활약하고 싶다는 그런 포부. 괜찮지 않아?"
"……응. 그렇네. 준결승 진출, 축하해."
"고마워."
인사하며 이문호는 돌아섰다.
그리고 대기실에 들어간 순간 거짓된 웃음은 사라지고 잔뜩 일그러진 본심이 얼굴을 잠식했다.
"…패죽였어야 했는데."
비무 초반의 당황 때문에 계획을 잠시 잊었다.
본래 계획은 성민혁을 비무 중에 곤죽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티가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방어를 장기로 하는 것들을 몇이나 이문호는 그런 식으로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놓은 경험이 있었으니까.
자신보다 주목 받는 놈을 그렇게 다시는 무림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싶었는데.
바보 같이 이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괜찮아.'
하지만 이문호는 곧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하나가 남았으니까.
심지어 그 남은 하나는 더욱 곤죽으로 만들어 고장내 버리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결승. 제발 올라와라.'
이문호는 그렇게 상대를 위한 기도를 하며 가학심 가득한 얼굴로 웃었지만, 알지 못했다.
그가 간과한 것.
드드드드드…….
그것은 성민혁과 나눈 대화를 그가 노리는 '타깃' 또한 들었다는 것.
'…아프게 때릴 거야.'
그리고 그 타깃의 도진에 대한 충성도가, 이 시점에서는 성민혁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드드드득!
작은 강아지 안에 깃들어 있던 난폭한 용이 이를 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