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숭무고와 숭무영재고의 집행부가 합심하여 잘 준비한 입학 시험 비무는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입학 시험 비무를 도진은 웃으면서 지켜 보았다.
1학년 때는.
비무대와 그 주변을 시야에 담고 있었다.
당시엔 그것만 보고 달리기도 바빴다.
2학년이 되어서는, 비무대와 주변만이 아닌 그 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시야가 넓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높이와 범위가 성장한 자신을 체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3학년.
도진은 비무에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마주하게 됐다.
"반갑습니다, 잠룡문주 님."
"네, 안녕하세요."
"하하. 벌써부터 이름을 떨치고 있는 잠룡문의 소식을 듣고 있자면 저도 불끈불끈 의욕이 샘솟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는 건 웃는 얼굴로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네는 '무림'의 사람들이다.
그래.
학교가 아닌 사회, 무림에서 찾아온 이들이 도진과 안면을 트기 위해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2학년 때까지의 도진은 비록 무림에서의 명성을 쌓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학교 안 학생의 범주에 있었다.
여기에 후원이나 광고 등의 이야기를 거의 받지 않았으니 현대 무림 사회와는 조금 격리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도진은 3학년이 되었다.
학생의 범주를 벗어나 무림에 한 발을 걸치게 되는 시기.
그럴 의지만 있다면 완전히 무림인으로서 활동할 수도 있는 시기였으며 도진은 그럴 생각이 있다는 걸 피력하듯 A-1 자격증을 땄고 잠룡문 또한 무림 문파로서 정식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도진과 잠룡문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인사를 하러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어휴, 우리 잠룡문주 님 인기가 정말 대단하시네."
"오, 선배. 오셨어요?"
몰려든 이들의 인사를 받아주고 자연스레 떠나보내던 도진은 익숙한 목소리에 웃었다.
너스레를 떨며 다가오는 건 인파 속에 있어도 결코 파묻힐 수 없는, 찬란히 빛나는 금발만큼이나 그 존재감이 대단한 미녀인 한유아였다.
그리고 그녀의 곁을 조용히 따르는 중단발의 쿨한 인상의 민지서까지.
이제는 졸업생이 된 두 사람이 찾아온 것이었다.
"우리 같은 영세 문파는 이제 집행부 부장님이랑 맘놓고 이야기하기도 힘들어졌네."
"웬 엄살이에요, 선배."
"아니이. 그렇잖아. 나도 어서 A-1을 따야 우리 잠룡문주 님이랑 마주 서기라도 할 텐데."
"지금도 옆에 서셔도 되는데요? 유아 선배님이니까 특별히 허락해 드리겠습니다."
"날 이렇게 막 대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
"오, 방금 좀 매력적이셨습니다."
"평소에는?"
"좀 귀여우신 느낌?"
언제나처럼, 항상 하던 대화를 나누고서 웃으며 도진은 한유아, 그리고 민지서와 나란히 섰다.
그리고 흘긋 한유아의 기세를 살핀다.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와 같은 대화였지만 그 느낌은 조금 달랐다.
그녀가 마치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너무 힘들어서 인내심이 증발해 버려서, 본래는 드러나지 않던 마음이 드러나고 만 것처럼.
그 이유를 도진은 전생에서의 기억으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유아 누나는, 너한테 맡길게.
술에 취해 했던 오대용의 말에 담긴 게 무엇인지 당시엔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유아라는 인재가 탐이 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의 미래를 떠올리게 됐고 오대용이 한유아의 사정에 대해 제법 많이 알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세상에서 보이는 것 대부분은 빙산의 일각이다.
그 수면 아래의 본체는 드러날 수도 있고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한유아가 감추고 있는 것은 아마 드러날 것이었으며 상상 이상으로 크고 또 무겁다.
누군가에겐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어 버릴 만큼.
허나 한유아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짐을 나눠 들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방금 전의 너무나 미미하게 드러났던 어리광 같은 투정은 특별한 것이다.
다만 그것을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모순되게도 언급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을 읽었기에 도진은 그것을 언제나와 같은 농담으로 받아 준 것이었다.
"놀러 온 거야?"
그렇게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 또 한 명 졸업생과 손님이 다가왔으니 다름 아닌 유지은과 그녀의 사촌 오빠였다.
이미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을 향하며 인사했다.
"응, 뭐. 영세 문파니까. 스카웃 할 인재가 있나 미리부터 체크해야지."
"아,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어서 서소담과 윤상미가 다가왔다.
"형!"
"오빠."
"오, 어서 와. 고마워."
"아녜요, 오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잖아."
두 사람은 도진의 두 동생, 유진이와 호진이를 데리고 와 주었다.
유진이는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전생의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세월이 참 빠르게 느껴지는 도진이었다.
예쁘게 자라 준 유진이는 무림중학교에 가는 대신 예술고를 준비할 수 있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본격적으로 아이돌을 목표로 노력해 보겠다는 그 의견을 부모님과 도진은 존중해 주었다.
사춘기가 오려는지 예전처럼 '오빠!'하면서 도도도 달려오진 않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귀여운 모습이다.
"형! 나 또 백 점 맞았어!"
"오, 우리 호진이! 뭐 가지고 싶어?"
호진이는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막내라 그런지, 그리고 도진이 귀여워해 줘서 그런지 제법 애교가 많은 막내가 됐다.
"나 노트북! 노트북 가지고 싶어!"
"그으래? 노트북 하나 찾아봐야겠네."
"오빠. 자꾸 그러면 호진이 버릇 나빠져."
"왜애! 누나도 쓸 거잖아! 그리고 나 공부 잘했어!"
"공부는 오빠가 더 잘하지!"
"형아는 원래 뭐든지 다 잘하니까 그건 이유가 안 돼!"
"푸하하!"
동생들의 싸움에 도진이 참지 못하고 웃으며 두 녀석을 덥썩 안아 주었다.
호진이가 덥썩 안기고 유진이는 조금 부끄러워 하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어이구, 귀여운 녀석들."
원래부터 나이 차가 제법 있었는데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동생들이 더더욱 귀엽다.
그렇게 귀여운 동생들을 만끽하고 있자니 지켜보던 유지은이 읊조린다.
"아……. 나도 아이 있었으면 좋겠다."
"푸허억?!"
그리고 옆에서 터져 나오는 격렬하고도 경악스런 반응.
모두의 시선이 유지은의 사촌 오빠이자 무림의 고수인 그에게로 향한다.
허나 그는 그런 시선에 신경쓰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뜬 채 유지은에게로 시선을 향할 뿐이었다.
"지, 지은아……?"
유지은이 그런 사촌 오빠의 모습에 꺄하하 웃었다.
"오빠, 음란마귀가 사는 거 아니야?"
"아, 아니. 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크흑!"
말을 더 해 봐야 손해라는 걸 좋은 머리로 깨달은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엄마랑 아빠한테 동생 만들어 달라고 할까? 아니, 결혼하는 게 더 빠르려나?"
"선배. 졸업하더니 벌써 어른이 되려고 하네요."
"어? 나 어른 맞는데."
"에이. 나이 먹어도 어른 아닌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응, 그렇긴 하지."
"애들이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면 어른이 돼 가는 거래요."
"오, 누가 들으면 깨달음을 얻어서 고수라도 될 거 같은 말이네."
"그렇죠?"
유지은도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단순히 성격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 인간 관계가 그렇다.
과거 가문에서도 겉돌던 그녀가 이렇게 사촌 오빠와 자연스럽게 웃으며 농담을 나눌 정도가 되지 않았는가.
그녀의 노력과 그 노력을 받아 준 일가 친척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미래의 검후(劍后)의 속성은 냉(冷)이 아닌 온(溫)으로 바뀌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도진이 피식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졸업생과 선배, 후배들까지 주변에 도진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선전하는 예비 집행부원, 새내기가 될 성민혁과 성지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후배는 도대체 왜 이렇게 인복이 좋을까?"
"착하게 살아서가 아닐까요?"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게 슬퍼."
한유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성민혁과 성지인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성지인은 이미 A-3 자격증으로 그 경지를 증명했고 그것이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비무에서 똑똑히 보여 주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자, 잘 부탁합니다."
포권과 함께 나누는 인사.
성지인은 그야말로 작은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지만 마주한 학생은 강적을 마주한 얼굴로 긴장하고 있으니 이미 이것이 성지인의 세 번째 비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보았다.
비무에 들어가는 순간 돌변하는 성지인의 모습을.
"시작!"
쿠오오오오오-!
'아이, 미친……!'
떨고 있던 너무나 귀엽고 예쁘던 작은 강아지가 갑자기 레드 드래곤이라도 된 듯 기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날것 그대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깡패용'이라도 마주한 것만 같다.
도대체 저 가녀린 몸 어디에 깃들어 있는지 의문이 가는 무시무시하고도 거대한 용의 기세가 그녀의 주변에 어렸고.
꽈아아아앙-!!
"컥."
꽈아아아아앙!!
그는 앞서의 동기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천재지변이라도 만난 듯 낙엽처럼 휩쓸리다 장외패를 당하고 말았다.
"압도적이네. 도대체 저 정도나 되는 진무(眞武)가 어떻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뭐, 조금 사정이 있었던 거 같긴 해요."
"아는 게 좀 있는 거야?"
"네. 근데 자세히 아는 건 아니구요. 우리 무맥(武脈)이 아무래도 비밀이 좀 많은 거 같아요."
"그렇구…… 어? 뭐라고? 우리 무맥?"
"네. 아, 그러고 보니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지인이가 우리 무맥인 거."
"안 해줬거든?!"
"와, 그랬어?"
주변이 대번에 술렁인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성지인이 도진의 무맥, 그러니까 천마신교의 무맥을 이은 건 말한 적이 없었다.
제법 격렬한 반응에 도진은 하하하 웃었다.
굳이 숨기려 한 건 아니었는데, 동시에 널리널리 퍼뜨리며 자랑할 생각도 없었다 보니 이렇게 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너튜브에 써먹어 볼까 생각이 드는 게 나도 이제 너튜버 다 됐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도진이었다.
"우리 후배님은 비밀이 너무 많은 거 같아."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한유아와 유지은이 주고받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성민혁으로 넘어간다.
"저 애도 대단하네."
쿵!
"윽!"
성지인과 함께 주목받는 소위 '잠룡 키즈'인 성민혁은 성지인과 비슷하게 압도적인 양상으로 비무를 이겨 나가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으니 성지인이 압도적인 파괴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으로 비무를 이긴다면, 성민혁은 압도적인 육체의 방어력을 바탕으로 한 방어가 중심이 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쾅!
"큭!"
상대가 공격을 가하면 성민혁은 그것을 방어한다.
여기서 단순히 막는 게 아니라 막음으로써 상대에게 오히려 더 큰 충격을 가한다는 게 눈여겨볼 부분이다.
상대 입장에서는 맨손으로 부서지지 않는 벽을 두들기다 자신만 상처입는 듯한 감각에 제풀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압도적인 두 잠룡 키즈는 그렇게 대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은 부분을 볼 수 있는 이들은 그 이상을 보았으니.
"시간이 부족했던 건…… 오히려 남자애였네."
한유아의 입술이 매력적인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