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화
기실, 이번 사건은 동물원에 있어 존폐를 위협할 수도 있을 만큼 심각해질 수 있었던 일이었다.
혹시라도, 단 한 마리라도 빠져나가 사람을 습격했다면.
그리하여 인명 피해가 났다면.
설령 인명 피해가 나지 않았다 해도 사건이 길어지고 여론이 나빠졌다면.
국가의 지원을 받는 속리동물원의 입장에서는 존폐를 위협할 만큼의 사건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입장의 속리동물원에 있어 도진의 활약을 언급한 글이 화제가 된 것은 부정적인 가능성을 지워 주는 호재였다.
-저게 그 보리꼬리, 아니 브로콜리??
-보더콜리 병**아;;;
-아, 보더콜리 ㅋㅋㅋ 그래 그 양치기견 같은 거지?
-내, 맞워요!
시작은 노리고 올렸던 대로, 예상했던 대로 영물인 설표 솜이의 '냥치기'였다.
그 호랑이와 곰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무려 스무 마리가 넘는 무리가 치명적으로 작고 귀여운 고양이의 인도에 따라 움직이는 걸 보고 도대체 어떻게 참느냔 말이다.
사진과 내용을 본 이들이 당연히 여기저기다 퍼 날랐고 화제가 되었으니 그 범위는 자연스레 사건 자체로 넓어진다.
-와.. 초절정 고수랑 영물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ㅋㅋ
-저게 호랑이가 아니라 줄무늬 있는 고양이라면서요?
-줄무늬 고양이가 사실 저기 저 작은 고양이보다 약하대요
-팩트)다.
-아 근데 진짜 저걸 하루만에 다 생포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네 ㅋㅋ
-곰 줘패는 성지인 겁나 ㄱㅇㅇ..
-나도 한 대만 맞고 싶다..
-팩트)죽는다.
이제는 당연해진 호의적이고 또 긍정적인 반응.
그런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이 속리동물원에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이 반응들이 모여 심각해졌을 수도 있었을 사건을 그저 하루 동안의 '이벤트'로 만들어 주니까.
사건이 하루 만에 피해없이 종결되었으며 여론도 나쁘지 않다.
덕분에 속리동물원은 큰 문제없이 이번 사건을 돈만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에 큰 도움이 된 도진과 성지인, 솜이가 있는 잠룡문은 그러나 그저 거기에 이용된 게 아니라 마찬가지로 큰 이득을 보았다.
말 그대로 화제가 되었으니까.
무림인이란, 아니 무림인을 넘어 이 사회에서 '명성'이란 그만큼이나 큰 자산이 된다.
속리동물원이 그렇게 화제가 됨으로써 자연스레 '첫 의뢰'를 통한 명성 또한 크게 얻었다.
공식적으로야 바른 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의 호위가 첫 의뢰겠지만 사실상 그건 문파가 구색만 갖춘 상황에서 인맥을 통한 '동아리 활동'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이번의 의뢰가 사회에서 평가받는 첫 의뢰였는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성지인에게도 좋은 스펙 한 줄이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비록 영상이나 사진이 제대로 된 것은 없다 해도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고 그 이야기에는 1:1로 흥분한 곰을 가볍게 제압했다는 내용이 있었으니까.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류의 수준이다.
그런 명성을 얻었기에.
"문주님. 의뢰가 너무 많이 들어왔는데?"
"같이 분류하죠, 눈나."
"도비라고 하면 깨물려고 했는데."
"아. 그건 좀 아쉽네요."
"야!"
"껄껄."
자연스레 많은 의뢰가 잠룡문으로 날아들었고 도진은 오성아와 함께 신중히 분류하여 성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괜찮은 것들을 선별하여 해결해 나갔다.
암산서가뿐이던 잠룡문에 투마전이 합류하고 인연을 쌓은 이들이 있어 이제는 제법 문파로서의 운영이 가능해졌다.
아직은 거창하게 무언가를 할 시기가 아니지만 적어도 꾸준히 의뢰를 해결할 만큼의 규모를 갖추었으니 내친 김에 시스템도 갖추고 문파로서의 운영을 시작했다.
"후배! 같이 의뢰하러 가자!"
여기에 이제는 졸업생이 된 유지은이 간간이 나타나 도진을 유혹(?)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 성지인은 훌륭하게 숭무고의 추가 합격 요건을 갖추어 서류를 제출했고.
-축하드립니다, 성지인 님. 합격하셨습니다.
당당하게 추가 합격에 성공했다.
"축하해, 지인아."
"가, 가, 감사합니다, 소, 소, 아니 문주님!"
"그래, 그래. 잘 했어."
단기적인, 그러나 인생의 전환점이 될 목표의 달성에 성지인은 감격하여 엉엉 울었고 도진은 그런 성지인을 기특함을 담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본 시험의 결과가 나왔는데…….
- - - -
1조 본 시험 순위.
……
3등. 성민혁.
……
……
……
9등. 이문호.
- - - -
제법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 * * *
꽈아앙! 꽈아아앙! 꽈아앙!!
"으아아아아!!"
꽈아아아앙!!
"씨발! 씨발! 씨바아아아아알!!"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내공이 담긴 손발을 거칠게 휘둘러 폭음을 일으키는 건 다름 아닌 본 시험에서 9등을 한 이문호다.
성질 같아선 방 안의 모든 것을 부쉈겠지만 그런 '방종'이 허락되지 않는 집안이었기에 방음이 철저한 지하 연무장에서 화를 토해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이문호의 화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개……씨발."
9등을 했다.
결코 나쁘지 않은 등수였다.
숭무고 본 시험에서 10등 안이면 전국에서 10등 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의천검가의 이문호'가 받아들기엔 터무니없이 모자란 결과였다.
문제는 시험의 내용이었다.
늘상 해오던 대로의 시험이 아닐까 생각했던 이들이 이미 작년에 뒤통수를 맞았기에 변수까지 고려하여 제법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과연 이번에도 무언가가 달랐던지 금화도로 가는 배 안에서부터 변화가 있었다.
"함께 다닐 수 있을 만한 친구들과 팀을 구성하도록. 인원수에 제한은 두지 않겠다."
시작부터 학생들의 머리를 터질 듯 복잡하게 만드는 변화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와 구성해야 할까. 인원은? 조합은?
출제자의 의도를 알 수 없기에 변수는 확장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다 고려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어느 정도는 감을 믿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이번 시험은 철저하게 개인전이되 눈을 마주치면 무조건 싸워야만 하는 룰이다."
후에 '광물 대전'이라 불리는 시험을 마주해야 했다.
학생들은 일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눈을 마주치면 무조건 싸워야 하다니. 상상도 못한 내용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세부적인 룰을 알려주겠다."
그리고 그렇게 멍해질 틈도 주지 않고 룰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상대와 마주치면 무조건 싸워야 한다.
-동맹이나 합의에 의한 손대중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최소한 한 수라도 섞어야만 후퇴가 가능하다.
제법 길고 복잡한 룰을 세 갈래로 간략히 하자면 그랬다.
그 룰을 다 듣고 조가 나뉘어 배치가 되었는데…….
'이런 개…….'
이문호는 환장할 수밖에 없었으니 소위 말하는 '이문호 패밀리'가 모조리 한 조에 배치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문호가 9등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눈 마주치면 무조건 싸워야 하는데 동맹이나 의도적인 손대중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문호도 골치가 아팠고 사실상 이문호의 수하 노릇을 하고 있는 학생들 또한 갈피를 잡지 못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 딴 마음을 먹진 않았는지, 그것이 고의인지 아니면 실수인지를 삼재인 정도수를 필두로 한 시험관들은 대번에 꿰뚫어 볼 만큼의 눈과 지식, 그리고 경험에 수준 높은 무공까지 있었다.
흔들렸던 이문호의 점수는 낮을 수밖에 없었고 관문 시험에서의 1등이 무색하게도 본 시험 9등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형편없군."
결과를 본 아버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그 말만을 던져 주었고 이문호는 머리가 터질 듯 차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러야만 했다.
마치 더 높은 데서 떨어뜨리기 위해 올려주었던 것처럼.
관문 시험에서 1등을 하는 것으로 조금은 형과 비교되던 신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한데 이게 뭔가.
더 높은 데서 떨어졌기에 더 아플 수밖에 없는 것처럼, 형과 달리, 그것도 처참한 '9등'이라는 성적에 온 집안이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슥!
눈이라도 마주칠까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걷는 집안의 사용인이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
고개를 숙여 보이지 않는 입가가 스윽, 올라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니 참을 수가 없어 이문호는 지하 연무장에서 이토록 미친듯이 내공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스으으…….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을 만큼 안에 든 것을 토해낸 이문호가 불안하게 침묵한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이문호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 * * *
본 시험이 종료되고 올해의 숭무고 입학생들이 확정되었다.
그 안에는 당연히 붙을 거라 예상했던 이문호와 성민혁이 있었고.
-와.. 결국 이게 되네 ㅋㅋㅋ
-믿습니다, 도멘..
-도멘..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물음표가 붙었던 성지인이 추가 합격을 통하여 이름을 올렸다.
100만 구독자 프로젝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올해에도 기대받는 후기지수들의 비무를 보기 위해 찾아온 방문자들로 인해 숭무고는 상당히 북적이고 있었다.
"올해는 참 여유로운 거 같아."
"…그건 네가 후배들을 부려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유로움을 한껏 발산하는 도진에게 태클을 거는 건, 그럴 수 있는 동기인 서태주였다.
서태주의 말에 도진은 예의 껄껄, 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게 다 유능한 후배와 친구들을 둔 덕분이지."
"끙."
작년에야 일선에서 집행부 활동을 했지만 올해 도진은 3학년이다.
모두의 요청으로 부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 발 물러선 위치에 있었으니 2학년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기는 게 당연한 것이다.
다만 그저 온몸으로 여유를 발산하는 모습이 서태주에게 태클을 걸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끼게 했을 뿐.
"맞아. 도진이는 지휘자 타입이니까."
"네. 오빠는 그 자리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시니까요."
…여기에 그 충동을 부채질하는 서소담에 윤상미까지.
'전생에 우주라도 구한 걸까, 이놈은?'
서태주는 존경심과는 별개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은 흘러 신입생들의 '서열'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나누는 입학 시험 비무의 시작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도진은 당찬 얼굴의 성민혁, 그리고 조금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눈동자에 깃들이게 된 성지인을 마주하며 씨익 웃었다.
"자신감을 가져도 돼. 너희들은 잘 할 거고, 앞으로는 더 더 더 잘 할 거니까. 알겠지?"
"네!"
"네……!"
성민혁은 딱 도진이 바라는 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할라에서 정말 제대로 배웠으며 열패감도 가지지 않는다.
후회나 아쉬움이란 걸 느끼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였고 그만큼 모든 것을 다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지인은 아직은 멘탈이 조금 불안하다.
그로 인한 변수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도진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으니 괜찮을 거다.
혹여 조금 잘못되더라도 괜찮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모든 게 완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 강박이요 욕심이니까.
오히려 그렇게 아픔을 앎으로써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잘 하고 와."
"네!"
"네!"
도진은 두 사람의 등을 밀어 주었다.
* * * *
"……."
두 동기의 등을 밀어 주는 상급생의, '리빙 레전드'의 등을 이문호는 은밀히, 그러나 끈질기게 응시했다.
'…흐응.'
그리고 그런 이문호를, 도진 또한 입꼬리를 슬쩍 올린 채 감각으로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