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417화 (417/741)

416화

쿠오오오오오-!!

그것은 '실체화된 기세'였다.

볼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세는 지켜보는 이들의 감각에 무시무시한 용(龍)의 턱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용의 턱이, 소녀의 진각과 함께 내지르는 주먹에 따라 격발되어 시커먼 동산을 으깨어 부숴 버렸다.

꽈아아아아앙-!!

"흡!"

지켜보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마치 포탄이라도 내부에서 터진 듯 총알처럼 비산하는 파편이, 맞을 리가 없음에도 거기에 깃든 기세 때문에 본능처럼 몸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무형의 기(氣) 자체를 실체화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영향력, '물리력'만큼은 기세에 담아 행사할 수 있는 경지.

세계무림연맹에서 인정하는 '일류'의 영역이었다.

찰나의 찰나.

성지인을 질투하고 혹은 깔보았던 이들은 그것을 본능의 영역에서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동시에.

"으아아악!!"

파편이 비산하는 또 다른 찰나의 찰나를 꿰뚫는 비명이 있었다.

그 비명의 이유를 인지한 이는 극소수였다.

말 그대로 찰나의 찰나였기에.

시험을 감독하기 위해 지켜보던 예의 직원, 감독관이 안전 수칙을 어기고 현장 가까이 있었기에 비산하는 파편에 얻어맞을 위기에 처했다는 건, 미리 눈치채고 있지 않았다면 인지하기 힘든 일인 것이다.

설령 인지했다 하더라도 늦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파편의 속도와 수는 인지한 뒤 움직여 막아내기엔 너무 빠르고 많았으니까.

그러니까 사고는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아……악?"

비명을 내질렀던 직원이 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윽.

직원의 앞에는 고요히 손을 내리는 도진이 서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도진의 앞에는, 부숴진 합성고무 주괴의 파편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시험을 감독하고 관리해야 할 분이…… 안일하시네요. 안전제일. 아시잖아요?"

"…죄, 죄송합니다."

담담하고 일정하지만 그래서 더 귀에 박히는 도진의 말에 직원은 고개를 떨구며 저도 모르게 사죄하고 말았다.

도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더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직원은 고개를 들기가 힘들었다.

그 직원을 다독이는 대신 도진은 성지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잘했어."

"가,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네, 네!"

자신에 의해 누군가가 다칠 뻔 했다.

멘탈이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오히려 성지인은 이후의 테스트에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도진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었기에.

도진이 지켜보고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잘못되지 않는다.

내가 조금 미숙하여도, 내가 아직 조금 못 미더워도, 그 모든 것을 받쳐주고 도와줄 소지존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 믿음으로 굳건해진 심지가 날뛰려드는 격룡기를 온전히 지배 하에 둘 수 있도록 해 주었고.

"…합격입니다."

성지인에게 A-3 자격증의 합격 서류를 안겨주었다.

"자격증은 7 영업일 이내에 등록하신 주소로 직원이 직접 전달할 예정입니다. 본인 수령이 원칙이며 수령이 불가할 경우 미리 연락을 주셔야 합니다. 혹은 날짜를 지정하여 방문 수령하시는 것도 가능합니다. 자격증 수령 이전엔 합격 서류로 해당 효력을 갈음할 수 있습니다."

직원은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설명을 했다.

그 얼굴은 스스로가 멍청했다는 걸 인지한 듯한 모습이었다.

-끌끌. 이번 기회로 우물 안의 현명한 개구리만큼은 똑똑해지면 좋겠구나.

흔히 우물 안 개구리는 하늘 넓은 줄 모르는 어리석은 미물로 묘사된다.

허나 그 우물 안 개구리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줄 안다면 최소한 하늘이 깊은 줄은 안다.

눈앞의 직원은 하늘을 보면서도 그것이 깊은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매번 보는 것이 좁은 우물 안의 평범한, 혹은 평범보다 '못하게 된' 사람들이었으니까.

A-3는 '평범한 사람'이 딸 수 있는 가장 좋은 자격증이요 취직과 이어지는 통행권이었다.

일류.

일반적으로 재능없는 이가 피나는 노력을 꾸준히 하여 서른 즈음 도달할 수 있는 경지.

그렇기에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고 그 수가 급감하는 첫 번째 경지이기도 했다.

수가 적다는 건 곧 공급이 적다는 것이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괜찮은 연봉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과거 소위 말하는 '사자 직업'과 비슷한 느낌의 이 '일류 고수'를 목표로 한 젊은이들은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적지 않은 수는 길고 긴 시간이라는 채에 걸러지고 또 걸러져 결국 소수만이 A-3 자격증을 딴다.

정말로 열심히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포기하는 이, 혹은 그것을 명분으로 허송 세월을 보내는 한심한 이들 또한 적지 않았으니 그런 것을 많이 보아 온 직원은, 시야는 물론이요 생각마저 좁고 얕아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눈과 생각을 가리는 안개가 이번 기회로 좀 옅어지면 좋겠지만…… 도진은 굳이 적극적인 도움을 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더 문의하실 것이 있습니까?"

"네."

"어떤 것을……."

도진이 웃으며 성지인의 서류를 작성할 때 함께 작성해 두었던 서류를 내밀었다.

"A-1 자격증 시험 응시하겠습니다."

"?!"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김에 한 번 더 충격을 주는 간접적인 도움 정도는 줄 수 있었다.

* * * *

웅성웅성-

"뭐, 뭐야?"

"A-1 시험을 친다고?"

도진의 발언은 그야말로 절대 고수가 진각이라도 밟은 것마냥 충격적으로 퍼져 나갔고 사람들을 뒤흔들었다.

그만큼 A-1, '초절정'이 가지는 의미가 컸다.

일류가 재능없는 이가 피나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서른 즈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면, 초절정은 재능있는 이가 피나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하여도 마흔 이전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야말로 평범한 천재를 반딧불로 만들어 버리는 보름달 수준의 천재만이 이른 나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며 시간과 노력만으로는 확정적으로 다다를 것이란 보장을 할 수 없는 경지.

그것이 바로 초절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도진은 이제 갓 열아홉의 나이로 그 초절정의 경지를 증명하겠다 선언한 것이었다.

"아니, 잠룡이라는 이름은 인정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초절정은 너무 나갔잖아……."

웅성인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일류고수라는 이름에 매달리는 만큼 무림에 관한 관심과 지식이 많았고 그렇기에 가장 도진에게 호의를 가지고 선망하는 부류이기도 했다.

허나 그럼에도, 그들마저 웅성일 수밖에 없을 만큼 초절정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초절정은 '현실의 끝'이었다.

현대 사회와 무림에서 현실의 마지막에 있는 영역이란 말이다.

이 현실의 마지막 영역에 서서 더 나아가면, 나아가는 데 성공하면.

이윽고 신비에 닿게 된다.

그래. 무형의 기를 실체화 할 수 있는, 검기(劍氣)를 구현할 수 있는 화경(化境)에 이르는 것이다.

그 신비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움켜쥐는 경지.

무수한 이들이 그 자격마저 손에 쥐지 못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경지, 초절정에.

도진이 이미 도달하였음을 증명하려 했다.

"……."

"……."

준비는 서류를 제출한 즉시 시행되었고 기다림없이 도진은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초절정의 자격을 증명하려는 이는 1년에도 몇 없었으니까.

가장 공신력 있는 시험장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시설이 준비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진은, 단 한 번으로 그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초절정의 시험장에 섰다.

무기는 들지 않았다.

쓰려면 세계무림연맹이 공인한 무기를 써야 하는데, 굳이 백설 이외의 검을 들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렇게 무기에 구애될 만큼의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붉은 선이 어지럽게 뒤얽힌 넓지만 그 공간에 온갖 장치가 들어차고 숨어 있어 숨이 막히게 만드는 길이 펼쳐져 있다.

이 길을 걸어 멀리 보이는 안전지대에 도달하는 것이 초절정의 증명이 된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소위 말하는 장수생들은, 그리고 그 외에 운 좋게 시험을 치르는 무인들을 볼 수 있었던 이들은 모두 회의적이었다.

설령 그 앞에 선 것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로 추앙받는 도진이라 해도.

날고 기는 천재들마저 저 길의 반도 가지 못하고 온전히 걸어 나가지도 못하고 실려가는 것을 보았다.

이미 무림에서 인정받는 중견 고수들마저 말이다.

그들마저 목숨을 걸고 도전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한데 아무리 최고의 후기지수, 그 후기지수마저 넘어섰다 평가받는다 해도 이제 겨우 열아홉인 도진이 이 길을 통과한다고?

그런 일은 상상조차 잘 되지 않았다.

허나, 그런 불안이 담긴 시선을 한몸에 받는 도진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들과 달리.

도진의 머릿속에서는 실패하는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았으니까.

-제법 재미있는 기관인 듯하구나.

-지금 도진이의 수련에는 적당할 정도로 잘 만들었군요.

스승들의 평가를 들으며 도진은 거침없이 한 발을 내딛었다.

"어, 어어?"

"뭐, 뭐야?"

그리고 그렇게 내딛은 걸음은, 단 한 번도 멈추는 일이 없었다.

* * * *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본래 이 '증명의 길'은 찰나의 방심조차 용납하지 않는, 그리고 모든 감각과 생각을 평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해야만 하는 길이었다.

무수한 붉은 선은 트리거다.

그 선에 닿는 순간 상상도 못할 방향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속도로 공격이 날아드니까.

이를테면 지금 도진의 눈앞에서 몇 겹이나 어지럽게 꼬인 붉은 선은 정면에서 화살이 날아드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화살이 응시자를 노리고 정면에서 날아오는 것이지만 동시에 다른 붉은 선을 건드려 연쇄적으로, 그리고 무작위하게 여러 공격을 발생시킨다는 거다.

그러니까 하나라도 건드리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하다.

붉은 선 또한 가만있지 않고 무작위로 패턴 변경이 계속되니까.

증명의 길은 단 한 번의 접촉으로 무작위의 연쇄에 대응하며 길을 뚫어야만 하는 목숨을 건 전진이었다.

허나 그 '무작위'는 도진에게 있어서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무작위라고 해봐야 그것이 '마술'의 영역이었기에.

신비가 깃들지 않은 그저 눈을 속이는 기술에 불과했기에.

진무(眞武).

그렇게 불리는 무공들마저 아득하게 넘어선 신비 중의 신비에 이르러 있는 천마신공의 계승자.

그리하여 신의 눈(神眼)을 뜬 도진은 찰나에 무수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붉은 선의 움직임을 이치의 영역에서 꿰뚫어 볼 수 있었으며.

그렇게 꿰뚫어 본 이치를 움직임에 적용할 수 있는 이치 또한 있었다.

계산할 필요조차 없다.

무작위라 하여도 결국은 이치의 아래 움직이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치 안에 있는 '선'이란, 결국 사신 장호의 가르침인 무흔잠영의 이치보다 앞설 수 없다.

그러니까 한 발 먼저 움직이면 될 뿐이다.

무수한 붉은 선의 움직임을 이치의 영역에서 꿰뚫고 그 안에서 '이어지지 않는 순간과 영역'을 밟는다.

그것이 가능한 경지를 지금 도진은 걷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저 편안히.

지금껏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거침없는 걸음을.

경이의 시선을 등으로 받으면서.

그리고 마지막 순간.

스윽.

도진은 붉은 선과 닿았다.

그것은 실수도 아니었고 일부러도 아니었다.

그 붉은 선은 애초에 피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기에 그리된 것이었다.

후우웅-!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벽에서 거대한 '망치'라고 불러야 할 것이 휘둘러졌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쇠종을 울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은 그것은, 애초에 맞서라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피하여 찰나를 쪼개고 또 쪼개어 연쇄적으로 발동하는 공격을 피해 생로를 찾아 안전지대에 들어서라는 의도였다.

이를 가능케하는 것이 초절정의 기준이라는 거다.

도진은 그 의도에 따르지 않기로 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성지인이니까.

격룡신공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도록, '패도(覇道)'를 한 번 보여주기로 했다.

두웅-!

천마기를 일깨운다.

무겁고 무섭게 퍼져 나가는 기운은 곧 구웅, 공간을 울리는 진각을 통하여 도진의 인도에 따라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모여든 천마기가 포효하는 그 초식은 이미 두 번이나 도진을 증명했었다.

효아(哮牙).

폭렬권(爆裂拳).

꽈아아아아아앙-!!

* * * *

-속보!)잠룡문주 김도진, A-1 자격증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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