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화
숭무고의 관문 시험 시즌에 업로드된 성지인의 세 번째 이야기는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하며 그 관심을 입증했다.
그 모습을 다 비추지 않은 채, 일부만을 비추는 앵글 속에서 성지인은 매일매일 자전거를 탔다.
배속에 편집까지 더해졌음에도 마치 끝없는 형벌을 반복해야만 하는 지옥을 보는 것만 같은 운동.
그 운동을 성지인은 계속해 나갔고.
"이제 다른 운동을 해도 되겠네."
도진의 말에 '네!'라고 대답하는, '환골탈태'한 성지인의 모습을 풀샷으로 비추어주며 세 번째 영상은 끝이 났다.
-? 환골탈태 실존하는 거였음?
-? 뭔 소리야. 검기도 실존하는데 환골탈태가 왜 없다고 생각함?
-그러게 ㅋㅋ 저쉑 중세시대 살다옴?ㅋㅋㅋ
-?????;;; 환골탈태가 진짜 있는 거였어? 난 왜 몰랐지???
-ㅋㅋㅋㅋㅋ 미친놈들아 진짜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아 ㅋㅋ 저걸 보고도 환골탈태가 없다고 믿는 놈이 있다고? ㅋㅋ
영상은 실시간 검색어로 '환골탈태'가 올라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자랑했다.
-헬창 게임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함? 급함;;
-알려주셈. 제발;;
-김도진 헬창 게임 크라우드 펀딩 청원인 모집합니다(1/456)
그리고 그 파급력에 대한 반응은 당연하게도 생방송의 시청자가 폭주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오, 많이들 오셨네요."
-헬창 게임 2회 언제함? 급함;;
"아하하……. 아쉽게도 시즌2는 기약이 없네요. 다만, 예. 나중에 200만 구독자 감사 이벤트로 한 번 고려는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끼에에에엑!!
-이 영상 보고 치킨 두 마리 주문했다.
-200만 기원하면서 구독 두 번 눌렀다.
-아니 임마 그건 구독 취소잖아 ㅋㅋㅋ
-구독 중이어서 새로 구독됨.
-아 ㅋㅋ 딱 기다려라. 150키로까지만 찌운다 ㅋㅋㅋㅋ
"아니, 억지로 찌우시지는 말구요."
-그런데, 그래서 헬창 게임 목적은 뭐였던 건가요? 그냥 다이어트?
"뭐, 일단은 그렇죠? 조금 더 정확하게는 다 함께 운동해서 건강해지자?"
-지금 성지인님 몸무게 몇 키로에요?
-아;; 그걸 묻네;;
돌직구로, 어쩌면 무례하게 날아온 질문에도 도진은 웃는 얼굴 그대로 즉시 답해 주었다.
"45.6입니다."
-?
-헐 ㅁㅊ;;
"물론 농담입니다."
-??;;;
"에이, 이게 어떻게 45.6키로겠어요."
너스레를 떨며 도진은 번쩍 성지인을 들어, 그러니까 비유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성지인을 가볍게 들어 카메라 앞에 두고서 말했다.
-엌ㅋㅋㅋㅋ
-않이 무슨 입간판도 아니고 그걸 ㅋㅋㅋ
시청자들이 웃고 도진은 말을 이었다.
"사실은 58키로 정도 됩니다."
-엥?;;
-않이, 농담도 두 번 하면 뇌절입니다;;
"이번엔 진짜입니다. 아시다시피 무림인은 평균 몸무게가 무겁잖아요. 근육도 그렇고 골밀도도 그렇고."
사실이었다.
무림인은 일반인보다 '훨씬' 무겁다.
근육의 궤부터가 다르고 뼈 또한 마찬가지니 예의 내공 등에 의한 형질 변화, 혹은 진화라 부르는 변이에 의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무림인은 최소 5kg 이상 무겁다.
-근데 그걸 그렇게 공개하셔도 되는 건가요?
"부끄러운 거라면 공개하기 꺼려지겠지만, 지인이 같은 경우는 부끄럽거나 꺼려질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당당하게 말하는 도진의 눈에, 그리고 카메라에 비치는 성지인은 과연 그랬다.
비쩍 말라 뼈밖에 없어 꺼려지거나 반대로 과하거나 한 부분이 단 한 군데도 없다.
오히려 조금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음에도 완벽한 라인과 밸런스가 돋보인다.
그러니까 도진의 말대로 '보이는 것보다 사실은 더 나가는데' 같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던 중 또 하나 질문이 날아들었다.
-헬창 게임은 그럼 끝난 건가요?
"네. 목적을 달성했으니까요. 뭐, 바른 엔터의 운동 시간은 없어지지 않겠지만요."
-그러면, 이제 추합 준비하겠네요?
"맞습니다. 이제 추합 준비 해야죠."
추합. 추가 합격의 준말로 관문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성지인이 숭무고에 입학하기 위해선 추가 합격을 노려야만 했다.
-그러면..
그리고 그 방법은.
"네. A3 자격증을 딸 겁니다."
* * * *
무협지에서 무인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수단은 뭐가 있을까.
1차원적으론 역시 무공이다.
'아니 그 무공은!'
'아니 그 초식은!'
'이, 이 내공은!'
뭐 그런 식으로 익히고 있는 무공이 유명한 경우도 있고 당연히 거기에 기세가 더해짐으로써 무공의 경지를 체감하게 만든다.
조금 더 나아가면 소속 문파나 세가의 표식을 옷이나 검의 수실 등에 장식함으로써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보는 이들이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이는 무인보다는 단골처럼 등장하는 표국과 산적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이렇게 무인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수단은 무협지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허나 그런 식의 '저차원적인' 증명만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다 충족할 수 없었다.
고도로 발전한 사회란 그런 것이니까.
어떤 전역하지 못하는 군인들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린 말을 믿지 않아! 증거! 증거를 내놔!'라고.
현대 무림은 사기, 기만, 사칭 등이 만연하는 현대 사회에 섞여 있었기에 그에 걸맞는 조금 더 객관적이고도 명확한 자기 증명 수단이 필요했고.
"그러니까 우리는 공신력 있는 자격증을 따야 해."
"네, 네에."
그 증명 수단이 바로 '무림인 자격증'이었다.
무림인 자격증은 말 그대로 무림인의 자격을 증명하는 것이다.
'내가 이 정도인데', 혹은 '내가 어디 소속인데'라는 말만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을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증명하지 못한다.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건 공신력 있는 객관적인 증명이었고 그 증명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무림인 자격증이다.
이 자격증으로 자신을, 자신의 무공 수준을 증명하고 그에 걸맞는 '직장'이나 '일거리'를 구하는 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샐러리맨 무림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자격증 중 가장 공신력 있는 것이 바로 세계무림연맹이 주관하는 'A 클래스 자격증'이었다.
다섯 단계로 나뉘는 A 클래스 자격증은 소위 말하는 양산형 무협 소설의 게임 같은 등급 분류를 빌려 삼류,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 정도로 대입을 할 수 있다.
A-1이 초절정, A-5가 삼류인데 숭무고 추가 합격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일류, 그러니까 A-3의 자격증을 따야 한다.
이 수준은 숭무고 1학년 상위권에 비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추가 합격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숭무고 1학년 상위권.
사실 따져보면 드문 것이지 없는 게 아니다.
당장 숭무고 입학을 노리는 명문가의 자제들이 바로 그 정도 수준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합자가 나오지 않는 건, 애초에 이 자격증을 노릴 수 있는 수준의 학생들이 추합을 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문으로 당당하게 입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뭐하러 '뒷문'을 노리느냔 말이다.
그들에게 있어선 정문을 통하여 당당하게 입학하는 것 자체가 아주 중요한 과정이었으며 심지어 뒷문을 노리는 게 더 번거롭고 변수마저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A 클래스 자격증은 '무림'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것은 숭무고의 입학 시험과 교집합은 성립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으니까.
그렇기에 평소 학생을 보는 일은 거의 없는 이곳, 광활한 부지와 첨단의 시설을 자랑하는 세계무림연맹의 자격 시험장에 그 드문 학생 두 사람이 나타났으니 도진과 성지인이었다.
아직은 그 마음의 병이 다 낫지 않아 겁먹은 강아지와 같은 모습의 성지인을 데리고 도진이 당당하게, 성큼성큼 접수장으로 향했다.
접수장에는 제법 많은 수의 무인들이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도진은 비치되어 있던 접수를 위한 서류를 성지인과 함께 능숙하게 작성한 뒤 차례를 기다려 직원 앞에 섰다.
"A-3 자격증 시험 응시하겠습니다."
"…예, 접수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은 무언가 할 말이 있었던 듯 입을 우물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우물거리다 결국 나오지 못한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정파에 저런 녀석들이 많았지.
-예.
위지혁과 장호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소위 말하는 '호가호위'다.
세계무림연맹이 주관하는 A 클래스의 자격증은 최고의 공신력을 지니는데, 그만큼의 인정을 받는 자격증의 권위를 제 것인양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설령 응시자가 김도진이 공언한 성지인이라 해도.
직원은 '감히 제대로 무공도 배우지 못했을 아직 중학생 따위'가 A-5도 아니고 A-3에 응시하는 것을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성지인은 조금 눈치를 보았고 도진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차례를 기다려 바로 시험을 보게 됐다.
실기는 무림인의 특기가 되는 무공을 시험할 수 있는 테스트를 치르는 것인데 평균적으로 세 개의 항목을 치르게 된다.
성지인은 첫 번째로 파괴력의 테스트를 받았다.
조언이나 부정 등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시피 했기에 참관이 허락됐고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성지인에 대한 관심이 여기서도 작용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스트를 주관하는 요원들이 파괴력을 테스트할 직사각형의 합성고무 주괴를 아주 꽉꽉 '눌러담고' 있었다.
제법 영향력과 지위가 있었던지 예의 직원이 직접 감독을 보았는데 그 영향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 중 일부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또 일부는 성지인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운 좋게 여기에 온 녀석.
-건방지다.
질투 등의 음습한 감정에 기반한 시선이 성지인을 찌른다.
동산처럼 쌓인 합성고무 주괴 앞에 선 성지인은, 그러나 그 시선들에 주눅들지 않았다.
주눅들지 않기 위해 소지존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민혁이 봤지?"
"네."
"스스로 한 것을 부정할 필요 없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필사적이고 분명했던 노력을 너 스스로가 가장 잘 알잖아."
"네."
"객관화. 알지?"
"네."
스으으-
무복으로 갈아입은 성지인이 호흡을 고른다.
그것은 차분하지만 맥동하는 거대하고도 흉포한 것의 기세가 깃들어 있었고.
쿠오오오오오-!!
용울음 소리와 함께 격룡기를 일깨웠다.
"헉!"
"흡!"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한다.
타인을 질시하고 질투하고 무시하는 것으로 자존감을 세우려던 이들은 압도당해 눈을 크게 떴다.
겁먹은 강아지 같았던 소녀는 더 이상 없다.
시커먼 동산 앞에 선 것은 그런 한심한 이들을 압도하는 용의 기세를 흩뿌리는 무시무시한 무림인이다.
두근두근!
아직은 익숙지 않은 감각과 다 아물지 못한 마음이 불안하게 뛰려 든다.
허나 성지인은 그것을 차분하게 억눌렀다.
"만약 그래도 조금, 아주 조금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면 나를 믿어도 돼."
"소, 소지존을요?"
"그래. 너를 믿기에 조금 부족하다면, 너를 믿는 나를 믿으라고. 그러면 괜찮겠지?"
"……네!"
자신보다 더 믿는, 누구보다 찬란해 어디서도 그 등을 볼 수 있는 인도자의 시선이 자신을 받쳐주는 감각을 느낀다.
꾸욱-
주먹을 쥔다.
쿠오오오오오-!!
언제나 몸을 터뜨릴 것만 같이 날뛰던 격룡기가 혈도를 따라 내달려 주먹에 깃든다.
마음의 빈틈을 노리고 퍼져 나가려던 격룡기는, 그러나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이윽고 순순히 성지인이 원하던 곳을 향해 포효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쇄룡아(碎龍牙).
꽈아아아앙-!!
격발된 격룡기가 눈앞의 시커먼 동산을 으깨어 박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