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화
복학하는 문제아.
나지윤은 그 이름을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문제아가 누구인지 도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은 지워졌지만 모든 사람이 보고 편집할 수 있는 꺼라위키의 '숭무고 사건/사고'에 기록이 되었을 만큼 대한민국 전체를 뒤집어 놓은, 그리고 그 문서의 삭제 요청이 올라왔을 때 한 번 더 온갖 커뮤니티가 들썩였을 만큼의 사건에 그 문제아가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숭무고의 '일진 문제'는 상상도 못할 만큼 심각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피라미드 꼭대기와 그 언저리의 이들이 모이는 만큼 오히려 더더욱 끔찍하고도 잔혹하며 도망칠 수도 없는 지옥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지옥이 기어코, 외부에 드러나고 말았으니 폭력에 의한 살인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래.
설령 문제가 있어도 최대한 그것을 감추고 무마해 왔던 숭무고의 견고한 벽을 뚫고 퍼져 나갈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당시 주동자로 주목된 일진들, 그러니까 집행부이자 숭무회의 멤버들 중 주동자들은 단전을 파괴하는 중형에 처해졌고 가담자들 또한 최소 10년 이상의 무림인을 대상으로 한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 선고를 받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상류층에서도 중심에 해당하는 배경을 두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하게 다뤄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욱 큰 논란을 불렀으니,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을 거라 의심을 샀던 인물.
당시 집행부의 부장이자 '숭무회주'였던 의천검가의 이문강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숭무회주이자 집행부의 부장이었으나 해당 장소에 있지 않았으며 폭행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그런 이야기였는데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초기 진술에서 숭무회의 일진들은 숭무회가 철저하게 이문강에게 충성하고 이문강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고 했으니까.
당시의 사건 또한 이문강에게 반항하던 학생을 '처벌'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하지만 전국민적인 공분에도 6개월을 끌었던 재판이 진행되며 그런 결론이 나 버렸고 이문강에 관한 일은 '도의적인 책임'과 그 일진 무리에 가담했던 '책임'으로 5년 간의 폐관수련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 버렸다.
"대단하네."
"그렇지."
의천검가는 군홍무가와 쌍벽을 이루는, 왕실의 무공을 이었다는 상징성으로 인해 어떤 면에선 그 이상으로 정치권과 끈끈한 세가였다.
아마도 그 힘과 인맥을 최대한 발휘하여 사건을 무마했을 것이다.
이문강이 첫째이자 무재(武才)가 뛰어난 것도 있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당시 사건에 가담했다는 오명이 가문의 간판에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터.
그렇기에 더욱 역겹다.
그 역겨운 조치에 의해 처벌을 피한 이문강의 폐관이, 올해로 끝이 난다.
"스물두 살에 고2라니. 웃기지도 않은 일이야."
"그러게 말야."
이문강은 처벌을 피함으로써 동시에 퇴학도 면할 수 있었다.
휴학계를 내고 폐관에 들었고, 이제 그 자숙이자 폐관이 끝났으니 복학을 할 명분을 얻었다.
그래, 무려 스물두 살에 복학을 말이다.
사실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었다.
한유아 세대에 그토록 쉽게 숭무회가 붕괴한 이유가 바로 이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사건으로 인해 뿌리 깊게 뻗고 어떻게 할 수도 없을 만큼 썩어 있던 내부의 병폐가 한 번 쓸려나갔던 것이다.
그 여파가 아물지 않았던 때에 류대현이 나서고 유지은과 한유아가 가세함으로써 숭무회는 외곽으로 밀려났다.
만약 이문강 패거리 등을 포함한 '선배'들이 건재했다면 결코 그렇게 쉽게 집행부의 자리가 한유아에게로 넘어가진 않았을 거다.
류대현이 얼마나 끈질겼든, 한유아가 금화의 영애이고 유지은이 제아무리 천재였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한유아의 뒤를 이어 도진이 이어받은 그 자리를, 5년 전 '최악의 세대'의 중심이 무려 스물두 살의 나이로 복학하여 노릴지도 모른다.
5년이 지나 함께 숭무고에 다니게 된 동생과 말이다.
본래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나이의 학생.
그러나 이문강의 경우가 워낙 특수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스물둘. 아마 막장으로 살지 않았다면 학생 수준의 무공은 아닐 거야."
실력과 인성은 별개다.
단순히 가문의 배경만으로 집행부의 부장이자 숭무회의 '폭군'으로 군림할 수는 없다.
그는 그만큼의 실력을 쌓은 무재였고 폐관동안 제대로 무공을 쌓았다면 그 경지는 분명히 학생을 넘어서 있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확신하는 나지윤은 전혀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지윤을 마주하는 도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졸업하기 전에 할 일이 하나 생겼네."
"응. 기대하고 있을게."
나지윤이 아는 도진은, 그리고 나지윤이 알고 또 믿는 도진은 분명히 그 너머에서 더욱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었으니까.
* * * *
"어휴, 걔 완전 재수탱이예요."
"그래?"
"네. 의천검가 사람들도 우리 병원 단골이거든요? 사실 제가 가주였으면 의천검가 사절이라고 대문에 붙여놨을 거예요."
"아하하. 넌 가주는 못 되겠다."
"괜찮아요. 애초에 될 생각도 없으니까."
약리지에게서도 이문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도진은 집행부를 나와 소담과 성지인을 찾아 움직였다.
아직 학생도 아니고 집행부원도 아니며 수험생의 입장인 성지인은 집행부에 들어올 수 없었기에 소담에게 맡기고 잠시 혼자 움직여 집행부장으로서의 일도 처리하고 이문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는 사이 소담이 성지인을 데리고 학교 구경을 시켜주고 있을 텐데, 전화 한 통이면 간단히 만날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고 추종술을 연습하기로 한 것이었다.
추종술(追從術). 한 마디로 사람을 추적하는 그 기술은 당연히 사신 장호에게서 배웠다.
두 사람이 굳이 숨기지 않았기에, 그리고 무려 사신 장호에게 배운 추종술이었기에 소담과 성지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와……. 진짜 개 예뻐."
"걔가 성지인이라매. 실화냐, 진짜 이거."
여기에 더더욱 난이도를 낮추어 아예 '베리 이지(Very easy)'로 만들어 주는 소담과 성지인에 대한 목격담과 시선, 그리고 관심이 마치 화살표처럼 도진을 이끌어 주기까지 해 금방 두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구경 잘 하고 있어?"
"소, 아니 선배! 네, 네!"
소담과 성지인이 자연스럽게 좌우로 한 걸음씩 움직이고 두 사람의 사이에 도진이 섰다.
"……."
그리고 부러움과 질투 등 온갖 감정이 도진에게로 날아든다.
그것들을 만끽하며 도진은 여유롭게 교내를 걸었다.
한유아와의 잊을 수 없는 첫 만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약선 치킨이 올해도 보인다.
그 약선 치킨을 파는 하오문도들 역시 그대로다.
어느새 3년째.
짧다면 짧지만 돌이켜 보면 아득하게 보이는 걸어온 길이 주욱 늘어져 있다.
그리고 앞을 보면, 더 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길이 펼쳐져 있다.
이제는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전생에는 등을 보인 채 벌벌 떨며, 목줄이 채워진 채 끌려가듯 걸었던 길.
허나 이제는 아니다.
스스로의 다리로, 고개를 들어 당당하게 앞을 보며, 누구보다 선명한 족적을 남기며, 누구보다 분명한 등을 뒤따르는 이들에게 보여주며 걸을 것이다.
도진이 웃으며 곁의 소담과 성지인에게 말했다.
"치킨 먹을래?"
"응!"
"네, 네!"
* * * *
축제를 즐기며 관문 시험도 구경했다.
그러다 서태주를 만났다.
"오, 리빙 레전드."
"만나자마자 뭔 소리야."
"몰랐어? 숭무영재고에서 너 그렇게 부르잖아."
"아니, 부끄럽게시리."
올해 숭무고의 축제는 별다른 사고 없이 그 어느 때보다 완성도 높게 치러졌는데, 절반은 숭무영재고 집행부의 부장이 된 서태주의 공이었다.
처절하게 괴롭힘 당하던 숭무영재고의 서태주는 급격히 실력을 키우며 숭무영재고의 집행부 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리빙 레전드라 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렇게 숭무영재고의 일진들을 쳐내고 기어코 숭무영재고의 중심이 된 서태주를 많은 이들이 따랐고, 이들은 숭무영재고의 집행부원으로써 일선에서 활약했다.
이 넓은 캠퍼스의 대다수를 채우는 건 사실 숭무고가 아닌 숭무영재고다.
자연스럽게 이 축제 운영의 대부분도 숭무영재고가 맡고 있다.
그런 이유로, 당장 작년까지만 해도 운영에 얼마간 삐걱이는 부분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정문의 교통 혼잡이 그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진이 숭무영재고의 집행부까지 '내정 간섭'을 할 수는 없었고 그 숭무영재고의 집행부는 아무래도 썩어 있는 부분이 많았던 탓이다.
그 썩어 있는 부분이 서태주가 집행부 부장이 됨으로써 올해는 크게 개선돼 축제 또한 삐걱이는 부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에 공헌한 서태주는 도진의 칭찬에 멋쩍게 웃고선 할 일이 많다며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그 뒷모습이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하고 커서, 도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
그날 관문 시험에서 이문호는 올해 수험생들 중 1위의 기록을 남겼다.
도진의 기록은 당연하고 작년 윤상미나 우서진의 기록 또한 경신하지는 못했지만 또래들 중에선 최고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었고.
"노력의 결과가 나온 듯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뷰에서도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당연히 만족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되었던 건 도진과 관련이 있는 녀석이자 분명히 걸림돌이 될 동기, 성민혁이 겨우 5위의 기록을 냈다는 거다.
당연히 이야기가 나왔다.
-? 성민혁 왜 1등 아님?
-의천검가가 대단한가?
-이문호면 이번 년도 후기지수 후보니까. 그럴 수 있지.
성민혁이 못한 게 아니라 의천검가가, 이문호가 대단한 거라는 의견에서는 과연 만족스런 웃음이 나왔다.
"버러지 따위가 감히 나랑 같을 수는 없지."
이걸로 좀 주제 파악을 했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절망하거나.
이문호는 그렇게 바랐지만, 성민혁과 도진의 분위기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잘했어."
"네! 열심히 했습니다!"
도진은 웃으며 칭찬했고 성민혁 또한 씩씩하게 대답했다.
성민혁의 '사수'이자 교관이라 할 수 있는 리쉬라 또한 칭찬을 잘 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니들 바보냐.. 생각해봐라. 존나 평범했던(사실 안 평범함) 성민혁이 겨우 두 달도 안 되는 특훈으로 숭무고 관문 시험 상위권 기록을 낸 거라고. 씨바 이게 말도 안 되는 일 아니냐 ㅋㅋㅋ
-..듣고 보니 그러네?
-허미 시발.. 이게 맞는 거냐.
-뭐임. 잠룡 패밀리가 1년 또 해 먹는 거임?
-ㅋㅋㅋㅋ 잠룡 패밀리가 숭무고를 다 해먹음;;
김도진이란 이름에 그들은 너무 과한 기대를 했던 거다.
'압도적인 1등'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김도진이 그랬고 윤상미와 우서진이 그랬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과한 기대였다.
한데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 기대가 과하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게 헛웃음이 나올 만큼 대단한 일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성민혁은 이제 겨우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재능에 걸맞는 특훈을 했을 뿐이니까.
오히려 앞으로 더 무서울 만큼의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대를 성민혁은 배신하지 않을 거다.
성민혁은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가 잘 되어 있었다.
최선을 다했기에 당당하다.
동시에 최선에 걸맞는 결과에 만족하되 안주하지 않는다.
그런 성민혁이기에 나아가는 걸음은 결코 멈추거나 느려지지 않을 것이다.
도진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 명 숭무고에 입학해야 할 '후배'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자, 그럼 우리도 추합을 준비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