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화
듣는 사람조차 심장이 쿵, 떨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단어가 울려 퍼졌으나 카페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진은 심지어 남자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환골탈태'한 성지인과 함께 카페를 나갈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시발'이란 흔하게 감탄사로 쓰이는 말이 아니었던가.
며칠째 꾸준히 카페에 출석하던 찐따가 모자랑 마스크를 벗었더니 잠룡 김도진이 되었어요, 같은 상황에 자연스레 시발이란 감탄사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감탄사가 나온 장면까지 모두 김도진이 의도한 그림이었으니 더더욱 무슨 일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즉.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던 그들을 도진은 이용했다.
숭무동의 명품 카페 거리.
SNS의 성지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만의 리그'였고 외부에서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자유'의 범주라면 사실 욕하는 이들이 괜히 배아프고 질투가 나 시샘하는 것이라 치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들은 자유의 범주를 넘어 타인을 무시하는 '방종'의 영역에 이르러 있었다.
남자가 말했던 'SNS에 업로드된 규칙'부터가 그렇다.
그 규칙을 준수하길 바란다면 SNS만이 아닌 카페에도 규칙을 명시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 SNS에 업로드된 규칙도 안 읽었냐고 은근한 타박을 주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종업원이든 손님이든 서로를 존중해야만 한다.
하지만 명품 카페 거리 대부분은 손님의 '급'이 안 된다 판단될 경우 존중은커녕 아예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어 온갖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이다.
도진은 그런 명품 카페 거리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기에, 자유를 넘어 방종이 만연한 곳을 이용할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어…… 지인이 자신감 뿜뿜 작전?"
소담이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인이가 스스로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를 알려줄 필요가 있거든, 이제."
성지인은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도진의 '명령'을 지켜야만 한다는 타의에 의한 것이라고는 해도 한계에 부딪칠 때까지 단 한 점의 타협도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였고 그것이 격룡기와 육체의 조화를 예상보다 빠르게 이룩하도록 만들었다.
거친 내공을 가두는 역할을 했던 '껍질'이 녹고 그 안에 깃들어 있던 힘이 육체에 깃들었다.
동시에 바깥으로만 뻗으려 했던 격룡기는 비로소 올바른 길을 내달리며 성지인에게 막대한 용의 기운을 부여했다.
그렇게 드디어 껍질을 깨고 나온 성지인의 환골탈태한 모습은, 아직 너튜브에 공개되지 않았다.
방송이란 그런 것이니까.
조금 더 빛날 수 있도록 시기와 소재를 도진은 골랐다.
"일단 내가 찐따로 변신할 거야."
그러면서 도진은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모를 소품들로 변장을 했고.
"와……."
"수준이…… 전문가 수준입니다."
헬창 게임에 참여했던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별로 공을 들인 것 같지 않은 변장이었다.
그저 치수가 맞지 않는, 명품 로고를 달았으나 그 조합이 패션 테러리스트 수준인 옷을 걸치고 모자와 마스크를 쓴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잠룡 김도진이어야 할 인간이 '찐따'가 되어 버렸다.
비결은 간단하다.
풍기는 기운이, 그리고 온몸의 극히 세밀한 부분까지도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찐따에 완전히 일치하도록 도진이 조율을 했기 때문이다.
연신극기공으로 단련된 육체, 그리고 장호에게 배운 변장술이 만들어낸 결과다.
"변장의 대가라는 살수들도 박수를 칠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벽태웅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리고 소담은…….
"도진이 너드 버전……."
그런 소리를 하며 무언지 모를 만족감에 미소지었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변장한 도진은 밑준비를 하기 위해 명품 카페 거리 중 적당한 곳을 물색, 출석하기 시작했다.
본래 숭무고는 지금 입학 시즌이라 집행부가 바쁠 시기였지만 도진은 이제 3학년.
그런 건 2학년들에게 맡겨도 충분했다.
그래서 기왕 하는 김에 정말로 전생에선 먹어본 적도 없던 고오급 음료에, 역시나 전생에선 열심히 했으나 등수에 들지 못했던 게임의 콘텐츠에 집중해 보았다.
그리고 도진의 의도대로 잘 나가는 친구들이 도진을 조롱해 주었다.
"소파에 찐따 냄새 배는 거 아냐?"
"저런 거 들락거리면 우리 수준도 떨어질 거 같은데."
정말로 그들만의 리그라면 문제될 건 하나도 없다.
그들이, 그들끼리 즐기는 것에 남이 간섭하여 욕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허나 이런 식으로 타인을 조롱하고 멸시하며 자존감을 채우는 이들이었기에 도진 또한 거리낌없이 그들을 성지인의 치료를 위한 수단으로써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그러나 귀여운 변수가 하나 있었으니 소담이었다.
"으으으으응……!"
마치 손수건이라도 잘근잘근 물었던 듯한 소담의 모습을 카페에서 나와 마주하며 도진은 웃었다.
처음에는 못보던 도진의 모습에 몰래 숨어 눈을 반짝였던 그녀는 그러나 다 알고 있음에도 도진을 조롱하는 이들의 모습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등을 토닥여 주니 금방 헤헤 웃으며 풀리는 그녀의 대신 화내주는 모습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소담을 달래주며 도진은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성지인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어때?"
"자, 잘 모르겠어요……."
태어나 겪어본 적이 없는 형태의 밀도 높은 관심에 성지인은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카페에서의, 그녀가 '찐따'와 합류함으로써 완전히 바뀌어 버린 분위기에는 아예 어안이 벙벙한 수준이었다.
"너는 빛나는 사람이야. 알겠어?"
"와, 저거 누구야?"
"김도진이랑 같이 있는 거 보면 무지 대단한 애 아냐?"
"진짜 예쁘다……."
"서소담이랑 있는데 오징어가 안 된다고?"
"그, 자, 잘 모르겠어요."
노골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이 들림에도 고개를 젓는 성지인의 대답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발전했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중요한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네, 라고 하며 공허한 사과를 남발하던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니까 도진은 그것을 칭찬해 주었다.
성지인이 이런 모습인 건 단순히 그녀가 그랬던 적이 없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장례식 후 준비도 없이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명절마다 웃으며 마주했던 친척들 중 누구도 그녀를 보듬어주지 않았다.
보듬어주긴커녕 밀어내려 필사적이었다.
기껏 다가온 삼촌 부부는, 그 속내가 보험금에 있다는 걸 모를 만큼 성지인의 눈치가 없지 않았던 게 오히려 불행일 지경이었다.
내가 잘못했던 걸까.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고 사실은 내가 나빴던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고,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시간에 매몰되고 또 고립되어 살았다.
그러니까 병이다.
이성이나 논리를 좀먹고 비틀어 버리는 마음의 병.
도진은 그 마음의 병을 치유해주기 위해 이런 그림을 그리고 성지인이 완성하도록 했다.
건강한 육체는 완성되었으니 이제 그 육체에 어울리는 정신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병의 영역에 있는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봐. 소담이가 같이 있는데도 너의 존재감은 흐려지지 않잖아. 그건 아주 대단한 거야."
자신의 칭찬에 소담이 뿌듯해한다.
"하지만 정작 너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모든 게 무의미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게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해."
"객관화……."
"그래, 객관화. 내가 누구인지를 객관적으로 아는 거지."
그것은 비단 무공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삶에 관한 이치 중 하나이고 그렇기에 무공에서도 중요한 이치가 되는 것이다.
"그걸 알기 위해서 앞으로 많은 걸 경험해 보도록 해. 그 경험을 위해서 그 카페에 간 거기도 했으니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도록.
"혹시라도 엇나가는 경우가 있을까 경계는 하되 두려워하지는 마. 잘못되기 전에 내가 반드시 바로잡아 줄 테니까.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해 줄 테니까."
도진은 가장 앞에서 인도하는 자이자 뒤쳐지는 이가, 넘어지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이가 없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의 인도를 따르는 성지인이 결코 잘못되도록 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존재로서 자신이 곁에 있다고 말해주는 도진의 모습에, 그것만큼은 분명하게 알게 된 성지인이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 * * *
도진은 소담, 그리고 성지인과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을 하려는 건 아니고 귀국하는 이를 마중나온 것이었다.
"나온다!"
"가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게 만드는 숭무고 응시생.
사람을 압도하는 육체미를 자랑하는 몇 명의 무인들과 함께 게이트를 통과하는 엑소시아 후보생.
다름 아닌 성민혁을 마중나온 것이다.
"성민혁 군! 유학의 성과는 어떻습니까?!"
"숭무고에 합격할 자신이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인터뷰는 학교 앞에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성민혁과 함께 하는 무인들은 사진은 찍도록 해 주었지만 그 자리에서의 인터뷰는 거절했다.
이유는 하나다.
"어서 와. 어서 오세요."
자신들을 마중나와 준 소지존을 앞에 두고 감히 다른 걸 할 수는 없었으니까.
"마중 감사합니다, 잠룡문주 님."
"형!"
외부의 시선이 있기에 정중하지만 과하지 않은 예로 인사하는 대표 인솔자는 다름 아닌 성민혁을 데려가기 위해 방문했던 리쉬라다.
엑소시아 소속으로 제법 '짬'이 있는 그녀가 직접 성민혁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녀와 인사를 나눈 도진이 성민혁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꽤 열심히 했나 보네?"
"네!"
자신있게 대답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럴 만큼 성민혁은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제법 재능을 개화한 듯 보였다.
"좋아. 그러면 한 번 성과를 보러 갈까?"
시간은 아직 이른 편이다.
그리고 성민혁은 이미 지원서를 내 두었고 숭무고의 관문 시험은 진행 중이다.
그 말은 곧 지금 당장이라도 관문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소리다.
"네! 보여드릴게요!"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것에 대한 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에 영향을 받을 만큼 성민혁이 해 온 수련이 녹록지 않았고 누구보다 스스로가 당장이라도 그 성과를 확인하고 싶어 했으며 도진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 기색을 읽었기에 도진은 먼저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고 성민혁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뒤따르는 기자들과 함께 바로 숭무고로 향했다.
관문 시험이 열린 숭무고의 정문은 예상대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그 북적이는 인파와 소란이 집중되어 있는 인물이 하나 보였다.
"잠룡문이다!"
"성민혁이다!"
집중되어 있던 인파와 소란은 도진 일행이 등장하는 순간 그곳으로 급격히 몰렸다.
그리고 그들이 빠짐으로써 둘러싸여 있던, 중심이 되었던 소년과 도진의 시선이 이어졌다.
스으-
'…호오.'
시선이 마주친, 그러나 분명히 처음 보는 귀공자 티가 나는 소년의 시선에 찰나간 머물렀던 적대감을 도진은 놓치지 않았다.
기자들의 카메라와 마이크가 몰려드는 가운데, 소년과 시선을 마주했던 도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