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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12화 (412/741)

411화

이어폰을 낀, 그러나 볼륨을 제법 높여 명품 카페 거리에서 여유를 즐기는 무공을 익힌 학생들의 귀에 고스란히 들리는 '씹덕 게임'의 음성.

그 음성을 재생하는 휴대폰의 화면에 얼굴을 처박은 채 학생은 카운터로 향했다.

그리고 하던 게임을 내린 뒤 어플 하나를 실행해 잘생긴 남자 알바에게 내밀었다.

"이대로 만들어 주세요."

휴대폰을 받아드는 훤칠한 키에 척 봐도 인싸 그 자체인 남자는 친절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가면 너머의 표정은 썩어 있었다.

'하 씨바. 이 새끼가 또…….'

그는 가면에 금이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했다.

"손님, 앱을 통한 주문은 비대면으로 진행하셔야 하고, 대면으로는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만 주문이 가능합니다."

"아. 이건 정식 메뉴가 아닌 커스텀인데 제가 잘 몰라서요."

"나만의 메뉴 또한 앱에서 자체 주문이 가능하니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앱으로 주문하려면 위치정보 수집에 동의해야 하는데 제 정보를 알려줄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비동의하니까 주문이 안 되더라구요. 개선을 좀 해야 할 거 같아요. 기껏 주문하려고 앱까지 깔았는데……."

'……아.'

살다보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주먹을 부르는 인간들이 있다.

인싸 그 자체에 알파메일인 그는 이런 놈들이 있어 자신이 돋보인다는 걸 잘 알기에 평소 그들에게 호의적이고 손을 내미는 일도 적지 않았지만, 이놈만큼은 그러기가 힘들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자기 못난 걸 아는 놈들은 한 번 말하면 잘 알아듣고 알아서 처신을 잘 하는데 이놈은 벌써 며칠째 이런 꼴이다.

처음 왔을 때도 대뜸 어디 웹사이트의 '히든 메뉴'라고 올라와 있는 페이지를 내밀며 이대로 주세요, 라고 했다.

'고객님, 저희 SNS의 규칙을 읽지 않으신 건가요?'

라고 물으니 이놈은 '아, 그런 것도 있어요? 카페에는 안 보이길래 몰랐네요'라고 했다.

그때는 관대하게 이해했다.

'다음에는 규칙이랑 이용 안내를 읽어 보시고 주문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본래는 안 되는 주문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본래 깊고 옅게 느껴지는 커피 본연의 씁쓸함을 즐겨야 하는 메뉴에 설탕 시럽을 넣질 않나(셀프로 둔 통에서 몇 번이나 짜내는 걸 보고 이마를 짚었다)…….

'아니 시발 위치정보 동의 같은 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

여기가 명품 카페 거리가 아니라 어디 뒷골목이었다면 벌써 여러 대 걷어찼을 거다.

그는 그런 구타 충동을 참으며 미소지은 얼굴로 말했다.

"손님, 적혀 있는 대로 직접 말씀해 주시면 주문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설탕 시럽 세 번 추가에……."

그래도 일주일 가까이 출석을 해놓고 여전히 아는 게 없는 깡통임을 자랑하며 정말로 국어책 읽듯 주문을 한다.

남자는 다시 한 번 '이놈은 나를 돋보이게 해 주는 깔개다'라고 되뇌며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주문을 받아 주었다.

"완성되면 호출벨을 울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인 뒤 구석의 볕이 잘 안 드는 자리로 가 앉았다.

-レッドアーカイブ!

그리고 다시 예의 그 '씹덕 음성'을 재생하던 게임을 켜 몰두한다.

부우웅-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 가지 않아 음료가 나왔다.

초코와 휘핑, 자바칩이 산더미처럼 쌓인 음료다.

'이런 걸 처먹으니 그 꼬라지지…….'

혈살녹.

혈도 살살 녹는 이런 걸 먹는 인간은 절대로 고수가 될 수 없다.

남자는 그런 걸 쭉쭉 빨며 자리에 다시 앉는 남학생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앞치마를 벗은 뒤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근무 시간을 다 채운 것이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오빠."

"그래."

일바를 끝낸 그는 그러나 카페를 나가는 대신 볕 잘 드는 명당에 앉은 일행이 맡고 있던 자리에 앉았다.

하나같이 잘 생기고 예쁜 남녀는 이곳 숭무동 근처에 사는 자칭 '명품 패밀리'다.

숭무고에 입학하진 못했으나 이 근방에 살며 제법 이름 있는 명문 무림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잘 나가는 학생들이었다.

SNS에는 주로 이 명품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을 업로드하곤 했으며 무리의 중심인 남자가 아무나 뽑지 않는 이곳 카페의 점원에 합격한 것은 특히나 그들 SNS에서 크게 다루어졌다.

그런 이들이, 구석진 곳에 앉은 남학생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와, 저 새끼 진짜 물건은 물건이네."

"그러게.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 대단하긴 하다."

남학생은, 무려 마스크 가운데의 마개를 열고 그곳으로 빨대를 넣어 음료를 마셨다.

저딴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으나 정말 다른 의미로 대단하긴 했다.

거기에 게임과 휴대폰.

꼴에 이런 곳에서 음료를 마실 만큼의 돈은 있다는 건지 폰도 접었다 펴는 최신식의 폰이다.

그 폰을 펼쳐서, 소위 말하는 '미소녀 캐릭터'들이 나오는 게임을 집중해서 하고 있는데 구석 자리를 선택한 게 무의미하게도 뒤의 유리에 고스란히 그 커다란 화면이 비친다.

미소녀 캐릭터들이 총을 들고 뭔가 로봇들을 때려잡고 있는데 거기에 진지하게 집중하여 손가락을 놀리는 게 이마를 짚게 만든다.

"아니 그냥 방구석에 처박혀서 하든가 배달을 하지 왜 굳이 여기에 출석을 하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인싸 공기라도 맡고 싶은 건가?"

"쟤가 그런 거 맡아봐야 비참하기밖에 더하겠냐?"

"낄낄."

그들은 그렇게 남학생을 씹고 뜯었는데, 말의 내용과는 달리 상당히 즐거워하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남학생을 조롱하는 것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으니까.

저런 것들이 있어 자신들이 돋보인다는 걸 잘 아는 이들이었다.

그야말로 그들의 깔개.

남학생은 그들에게 있어 일종의 배경에 불과했다.

"근데 좀 보다보니까 너드미가 있는 거 같기도?"

그러다 한 여학생이 말했다.

너드미. 그러니까 찐따미다.

특별한 건 아니고 찐따인데 잘생기면 그렇게 미(美)가 붙을 수 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이 푸핫 웃었다.

"너…… 저런 거 좋아하니?"

"그냥 좀 신선한 느낌?"

"얘도 진짜 특이하단 말야."

"그러게. 까짓거 한 번 데리고 다녀보지 왜?"

장난스레 말하지만 그 안에는 일종의 기싸움이 섞여 있다.

너드미를 언급한 여학생은 무리 중에서도 특히 돋보이지만 어쩐지 겉도는 느낌이 있는데, 무리의 일부가 그녀를 시샘하여 배척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만추파라서. 기회 되면?"

여학생은 그런 걸 알고 있으면서도 별 거 아니라는 얼굴로 스무스하게 넘겨 버렸다.

그런 식으로 나름의 기싸움도 하면서 그들이 오늘 SNS에 올릴 사진을 건지기 위해 수십 번이나 스마트폰의 셔터를 눌러댈 때였다.

딸랑-

문이 열렸다.

또각.

그리고 들어선 한 명의 소녀에 자연스레 향했던 내부의 시선이, 모조리 붙잡혀 버렸다.

"어?"

"……."

팔다리가 길고 늘씬한 장발의 보브컷 소녀다.

밸런스가 잘 잡혀 있는 몸은 예술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새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입술은 연분홍으로 반짝여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구둣소리를 또각이며 첫걸음을 내디딘 그 순간부터 이 공간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누구보다 명확하게 빛나는 그녀는, 그러나 그 첫인상과 달리 태도가 소극적이었다.

오버핏의 새하얗고 폭신해 보이는 스웨터를 입은 그녀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리고 살짝 드러난 가늘고 고운 손가락의 끄트머리를 모아 꼼지락거리며 주인을 찾는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주위를 살폈다.

'…미쳤다.'

남자는 그런 소녀의 모습에 심장을 직격당했다.

함께 하는 멤버들의 기가 세다 보니 저렇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소녀가 더욱 시선을 끌었다.

같이 앉은 여학생들이 대번에 염가 제품처럼 보이는 상황에 남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어서 오세요'라고 소리치려 했다.

알바는 끝났지만 뭐 어떤가.

이곳에서 근무하는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손님 접객을 좀 도울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벌려 '어'라는 모양을 만든 그 순간.

"아……!"

채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주인을 찾은 강아지처럼 소녀는 어딘가로 빠르게 걸음을 옮겨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어?'

"뭐, 뭐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바로 그 남학생의 자리였다.

소녀는 남학생, 찐따의 곁에 가 더욱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소, 소, 아. 선배님."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을 붉히는 소녀.

한데 더욱 가관은 그런 소녀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찐따였다.

"아, 어서 와. 예쁘게 차려 입었네?"

"네, 네! 언니들이 도와주셨어요."

"그래. 뭐 마실래?"

"그, 제, 제가 이런 곳은 잘 몰라서……."

"아, 괜찮아. 여기 점원 분들이 친절하시거든."

그러면서 소녀를 이끌고 카운터 앞에 선다.

"주문 좀 받아주세요."

"네, 네!"

남자의 뒤를 이어 알바하는 남학생이 당황하며 주문을 받았다.

"뭐 좋아해?"

"서, 선배님이 사주시는 거면 뭐든 괜찮아요."

"음, 잘 몰라서 그러는데 도와주실래요?"

"예! 뭐든 물어보세요!"

…원래 저게 정말 꼴보기 싫은, 뭣도 모르면서 귀찮게 하는 놈이었는데.

소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바뀐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너도 해볼래?"

"제, 제가 선배하시던 걸 해도 괜찮을까요?"

"안 될 게 뭐 있어?"

찐따가 자신이 하던 게임을 소녀에게 해보라며 권한다.

소녀는 무슨 성은이라도 망극한 것처럼 찐따의 휴대폰을 공손히 받아들더니 열심히 손가락을 놀렸다.

"역시 잘하네."

"가, 감사합니다……."

'……?'

남자는 머리가 굳어 버렸다.

뭐지? 정말로 이게 뭐지? 지금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

혹시 세상이 잘못 돼서 상식이 역전되어 버렸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의 상식으로는 소녀가 갑이어야 했다.

아니, 갑이라는 말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애초에 소녀 정도 되는 알파걸이 저런 찐따와 상종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소녀가 찐따에 황송해하는 이건 세상의 상식이 잘못된, 세상에 오류나 버그가 나 버린 게 아니고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가스라이팅이라도 당했나?"

"설득력 있네?"

"어디 시골 구석에 처박혀 사느라 제대로 된 남자를 못 만나 본 거 아냐? 그러니까 너 같은 게 어디가서 나 정도 되는 남자 만나겠냐고 가스라이팅 당한 거지."

뭔 개소리야.

그런 말이 나와야 할 텐데 보이는 게 워낙 황당해 설득당할 것만 같다.

"야. 우리가 구해줘야 되지 않겠냐."

"그렇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개소리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남학생들 중 일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당당하게 소녀와 찐따가 있는 자리로 향하는 그 순간이었다.

"선배님."

"응?"

"그, 소담 언니가……."

"응. 소담이가 왜?"

"더 보면 울화병 날 거 같다고 하시던데……."

"헐. 그랬어?"

"네."

"그래, 뭐. 이 정도면 될 거 같긴 하네. 그만하자."

영문을 모를 대화를 나누더니 찐따가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에.

"……시발?"

남자가 저도 모르게 내뱉어선 안 될 단어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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