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410화 (410/741)

409화

"……."

"……."

분위기가 싸해졌다.

현장의 분위기는 물론이요 채팅창까지도.

그것은 겨우, 단순한 미션 하나를 거절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언젠가는,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를 이런 일에 관해서 이미 여러 이야기를 했었고 또 염두에 두고 있었던 일이 정말로 일어나 버렸기에 내려간 온도였다.

'성지인의 먹방'은 인터넷에 이미 업로드되어 있었고 제법 퍼져 나간 것이었기에 지우는 게 의미가 없었다.

설령 철저하게 지웠다 해도 김도진의 100만 구독자 이벤트의 당첨자라는 게 밝혀진 순간 어디에서든, 심지어 영상이 정말로 없다 해도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어떤 면에선 영상 이상으로 악영향을 낳을 것이었다.

때문에 굳이 영상을 지우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레 어떤 가정을 하게 만든다.

-어떤 미친놈이 김도진이랑 성지인 방송하는 데 먹는 미션 거는 거 아님?

-ㅋㅋㅋ 존나 가능성 100%라서 걱정되네.

-현실에서는 아니어도 인터넷에서는 백만 용자들로 가득하니까 ㅋㅋ

그 이야기가, 지금 실현되었다.

"죄송하지만 미션은 거절하겠습니다."

그리고 도진은 단칼에 다수의 예상대로 미션을 거절했다.

문제는 그 뒤다.

과연 이야기가 어떻게 흐를지 사람들은 긴장하며 집중했고, 채팅이 먼저 올라왔다.

-왜 거절해요? 성지인 원래 먹방 BJ인데.

-용감한 새**;;

-분탕이.. 말대꾸?!

채팅창이 소란스러워진다.

그것이 과격해지기 전에 도진이 입을 열었다.

"지인이가 스스로의 의지로, 원해서 하는 것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그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이 이어진다.

"지인이가 방송을 시작한 이유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관종'이 아니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가 그것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요."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

한데 그 부모님을 잃고, 점점 더 심해지는 상처를 치료받지도 못한 채 차라리 유폐라고 해야 할 환경에서 지내게 됐다.

미쳐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에서 성지인은 살고 싶었고.

"그러니까 방송을 시작한 거죠."

파르르…….

성지인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비대해진 손목이 도진의 손 안에서 파르르 떨렸다.

"지인이는 작은 관심 하나에도 크게 반응해 주었고 그것이 최소한의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지인이를 위해 후원을 해 주었죠."

그 후원 덕분에 성지인은 몸이 요구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음식을 구매할 수 있었고 그것이 '먹는 방송'의 틀을 갖추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렇게 크게 반응해 주는 지인이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겁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진심으로, 크게 반응해 준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데 있어 크나큰 장점이다.

"본래 세상 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긍정적인 것이라 해서 결과까지도 긍정적으로 나오는 게 확정되지는 않죠.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고 지인이 또한 그랬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토해내는, 그래도 뒤탈이 없고 오히려 가학심을 자극하는 성지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게 됐다.

그런 의도로 모인 이들이 방송을 장악했고 그런 이들만이 남게 되었다.

-;; 난 그런 의도는 없는데요;;

진지한 이야기에 그가 항변했다.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든, 그 의도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압니다."

그래.

실제로 보기 힘든 장면을 만들어내긴 했으나 순수하게 악한 의도만을 가지고 후원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늘 후원으로 미션을 건 이 시청자 또한 오히려 절반 이상은 측은지심으로 미션을 걸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한 번을 시작으로 그런 악의 섞인 후원이 계속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형태의 후원은, 조금 뒤로 미루었으면 합니다."

"지인이가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게 될 때,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만요."

꾸욱-

도진이 성지인의 손목을 힘주어 잡아 떨림이 멎게 만든다.

"네, 이건 지인이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제가 내린 독단입니다. 하지만 지인이는 아직 지켜줘야 할 아이니까요. 지인이를 지키기 위해 저는 조금, 독단적인 행사를 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 * *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사람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솔직히 좀 감탄했음. 진짜 그 나이보다 두 배는 돼 보이는 깊은 생각이 느껴져서.

-그 말이 맞지. 솔직히 정상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사실상 학대당하다시피 한 건데 거기에 동조하는 거나 다름 없었음.

-후원 자체는 좋은 거였어도 문제가 생긴다면 단호하게 차단하는 게 맞다고 봄.

다만…….

-지인이는 아가야.. 우리가 지켜줘야 돼..

-????;;;

요상한 밈 같은 게 드문드문 보이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뭐 그런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고서 '헬창 게임'은 순항 중이었다.

그러다 반란이 일어났으니.

"이건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찬성!"

설현주의 외침에 유혜진이 손을 번쩍 들며 찬동했다.

"나, 나도."

여기에 시크한 냉미녀 스타일에 키도 큰, 그러나 사실 안티체리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위치하고 있는 설하은까지 딸려오듯 손을 들었다.

도진은 그 반동분자(?)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네, 뻐꾸기들. 무엇이 불합리한가요?"

그야말로 귀여운 아이들을 보는 듯한 시선에 설현주는 기세에서 밀렸으나 곧 당차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운동 시간인데 우리만 운동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마, 맞습니다!"

"교관도 운동을 해야 합니다!"

설현주와 설하은, 유혜진의 의견에 도진은.

"음. 그렇네요."

너무나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해 버렸다.

'어?'

'이렇게 쉽게?'

반동분자들이 오히려 당황했다.

그런 당황조차 기다려주지 않고 도진은 씨익 웃으며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사실 저만 지켜보는 것도 시간 낭비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렇게 된 거 같이 하면 될 거 같네요."

그러면서 도진은 바닥에 엎드렸다.

주변에는 그렇게 엎드려 팔 굽혀 펴기가 한창이었다.

일반인의 범주에 있는 안티체리는 한 팔을 들고 그 팔과 반대 방향의 다리를 든 채로.

레드슈와 소담, 그리고 벽태웅은 같은 방향의 팔과 다리를 든 채 팔 굽혀 펴기를 했다.

당연히 내공은 쓰지 않고 순수하게 근력만 사용한다.

안티체리가 하나를 할 때 무려 서너 개씩 하는 소담과 벽태웅의 모습이 특히 돋보이였는데.

-........와.

-저게.. 잠룡?

-사람이 아닌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에 도진이 감독까지 하며 직접 운동에 합류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모조리 빼앗아 버렸다.

"여러분들이 200개를 하니까 저는 천 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교관답겠죠?"

그러면서 오른 다리를 들고 오른손 엄지손가락만으로 팔 굽혀 펴기를 했다.

올라오면서는 박수를 치고 허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올 때는 엄지손가락이 아닌 검지손가락으로 바닥을 짚었다.

자세는 현란해 보이면서도 절도 있었고 정확했으며 속도는 배속이라도 해 버린 듯 빨랐다.

손가락만이 아닌 팔과 다리마저 휙휙 바뀐다.

-아 ㅋㅋㅋ 눈을 뗄 수가 없네 ㅋㅋㅋ

-시** 누가 모니터랑 내 눈이랑 붙여놨냐 ㅋㅋㅋ

여기에.

-어어어어엌ㅋㅋㅋㅋㅋ

-시** 이게 운동이야 서커스야? ㅋㅋㅋㅋㅋㅋ

나중엔 아예 양손을 '안 대고' 팔 굽혀 펴기를 해 버렸다.

발끝의 힘만으로 말이다.

-아니 팔을 안 굽히는 팔 굽혀 펴깈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이게 잠룡식 팔 굽혀 펴기?..

누군가가 물었다.

-내공 쓰는 거 아니죠?

그리고 벽태웅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사실은 맞았다.

도진은 내공을 썼다.

다만 그게 몸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하를 거는 것, 연신극기공이라는 게 달랐을 뿐.

"…우리 분량 어떡해, 언니?"

"우린 이미 쓸모가 없다. 팝콘이나 가져와라, 하은아."

…그렇게 깨알 같이 안티체리의 큰언니와 막내가 분량을 챙기는 것으로 쿠데타는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 * * *

뭐, 사소한 해프닝은 재미를 잡기 위한 것이고 사실 모두 열심이었다.

이게 다 자신들을 위해 없는 시간을 내어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도진의 호의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훈훈하게 진행되던 시간에 어느날 또 한 번의 파란이 일었으니.

"선배님."

"어, 태웅아."

"옷 벗어 주시면 안 됩니까?"

"푸허으어어억?!"

-??

-????????;;

-ANG?!;;;;

벽태웅의 한 마디에 현실은 물론이요 채팅창까지도 초토화 되어 버렸다.

특히 언제나 거북이처럼 느긋하게 미소짓던 셋째 은미소의 반응이 격렬하여 어떤 의심을 샀고 소담 또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런 반응에 벽태웅이 당황하며 급히 말했다.

"아, 그. 아닙니다. 다른 게 아니라 선배님이 운동하실 때 어떻게 근육을 쓰시나가 순수하게 궁금해져서 그런 겁니다!!"

놀리려면 얼마든지 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제법 진지한 구석이 많은 벽태웅이다 보니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알았어."

그러면서 도진이 입고 있던 체육복 상의를 벗자.

"어."

"……."

사위가 조용해지며 대부분이 입을 헤에 벌렸다.

드러난 도진의 몸이, 그렇게 만들었다.

도진은 아령을 들고 운동하고 있었다.

"후우."

규칙적으로 길게 반복되는 호흡과 함께 아령이 올라갔다 내려가는데, 동시에 드러난 상체의 근육이 지켜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그것은 그러니까, 산을 단 한 삽에 퍼낼 수 있는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포크레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투박하고 저렴한 표현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만큼 또한 완벽하고도 아름답다.

소위 말하는 미관을 위한 '잔근육'이 아니다.

그야말로 파괴적인 근육인데 또 동시에 비대하거나 '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아름답고 완벽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그러나 동시에 압도적이면서 무시무시함이 동시에 깃들어 있는 근육이었다.

도진이 그런 근육에 멍해진 벽태웅을 보며 씨익 웃었다.

"어때. 좀 도움이 되겠어?"

"아, 예, 예. 역시 대단하십니다, 선배."

-와.. 씨바;;

-몸이 저러니까 한 대 맞으면 다 뒤지는구나;;;

채팅창이 한 발 늦게 난리가 난다.

기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도진의 '맨살'이 렌즈에 비친 적은 없었으니까.

연신극기공으로 단련한 도진의 몸이란 그렇게도 압도적이었다.

"앞으론 가끔씩 벗겠습니다."

-끼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엑!!

반응이 열렬하다.

도진은 어깨를 으쓱이고선 걸음을 옮겼다.

톡톡.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담의 자세를 봐주었고.

퍼어엉-!

소담은 자신의 얼굴이 터지는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단순히 자세를 봐준 게 아니라 도진이 헤에 벌리고 있던 그녀의 입술을 아무도 모르게 톡톡 닦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날 소담의 이불에는 구멍 세 개가 생겼다.

* * * *

시간은 느리지만 또 뒤돌아 보면 어느새 저만큼 지나가 무림학교 고등반 입학 시즌이 가까워졌다.

도진은 여전히 성지인의 운동을 봐주고 있었는데 시청자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래서, 두 번째 당첨자는 어떻게 돼요?

그 물음에 도진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숭무고에 입학할 겁니다."

-ㅖ?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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