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목소리를 높이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자는 양복을 빼입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줄근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건, 실제로 그 외견에 깃든 정신이 썩어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목소리를 높이긴 하지만 빈수레처럼 텅 비어 요란했고 눈 또한 힘주어 부릅떴지만 신념이 깃들어 있지 않으니 공허하기만 하다.
그런 것들이 반영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 또한 비어 있으니 기껏 빼입은 양복 차림에 멋이 깃들지 못한다.
후줄근하고 볼품없는 남자, 성공도.
성지인의 삼촌이자 후견인을 자처하여 보험금을 관리하고 있는 인간이었다.
행동을 크게 하고 목소리마저 높여 다가오는 그였으나, 도진의 일행 중 시선을 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다만 이사를 지켜보던 이들의 시선이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몰려들었고 이어서 도진의 시선이 느릿하게 향했다.
"누구십니까?"
평이한 어조로 묻는다.
김도진이 누구인가 정도는 잘 알고 있던 성공도는 거기에 침을 꿀꺽 삼키고서 답했다.
"저기 저 지인이 삼촌 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이제는 도진의 '일행'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성지인은, 그러나 성공도와 가장 가까운 사람임에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일행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적대적인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를 배경으로 두고 도진은 싱긋 웃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었죠?"
"아, 그, 예. 그렇습니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웬만한 이라면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라고 그런 식으로 끌고 갔을 텐데 감히 김도진을 상대로 그럴 만큼 인생을 종결내고 싶은 마음은 없는 성공도였기에 반응이 좀 뭉툭해지고 말았다.
그런 뭉툭한 대답이 더 이어지지 못하게 막듯 도진이 반박자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성지인 양이 무공에 재능이 있어 앞으로 저희 인위(人爲) 재단에서 후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인위 재단이요?"
"네. 저희 잠룡문에서도 인재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거든요. 그 첫 번째로 성지인 학생을 후원하게 됐습니다."
"그, 그럼 이게?"
"예. 성지인 학생은 앞으로 저희가 지원하는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무공을 익힐 예정입니다. 그 후 진로는…… 앞으로 조금 더 심도 있는 상담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이야기가 너무 갑작스럽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다만 그럼에도 한 줄기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무려 잠룡 김도진의 후원을 자신의 조카가 받게 됐다는 것이다.
'잘 된 거 아닌가?'
자신은 성지인의 후견인이다.
당연히 떨어지는 '콩고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상황 파악도 잘 안 되는 중에도 그 이득에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이다.
'흠.'
그렇게 다른 쪽의 생각이 드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다.
'안 되지.'
"음, 이야기는 알겠습니다. 좋은 일이네요. 한데, 일은 좋은데 절차가 좀 잘못된 거 같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응당 지인이 후견인인 저와 상의를 먼저 하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내가 성지인의 후견인인데.
'성공도가 성지인의 후견인이다'라는 부분을 명확하게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도로 자신을 어필한 성공도에게.
"음?"
도진은 모로 고개를 기울여 보였다.
무슨 소리냐는 얼굴.
거기에 성공도가 당황하는 가운데 도진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후견인이요? 그런 게 있었나요?"
"……."
성공도의 얼굴이 굳는다.
상상도 못했던 대답에 어찌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도진의 말이 이어진다.
"후견인이라면, 사전적 의미로는 역량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뒤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지인이에게 그런 사람, 있었나요?"
분명히 웃는 얼굴이었고 그 표정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마지막으로 묻는 순간에는 시리게 벼린 칼날을 마주하는 것만 같아 성공도는 몸을 떨고 말았다.
그러나 곧 이를 악물었다.
지켜보는 눈이 많았다.
꼴에 산전수전을 겪으며 구르는 동안 단련된 직감도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후견인'으로서의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크게 입을 벌려.
"그!"
"더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든 말하려는 성공도의 말을 도진은 자르고 틀어막아 버렸다.
"당신은 저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웃으며 도진은 한 장의 명함을 날렸다.
그것은 놀랍게도 나비처럼 부드럽게 허공을 날아 성공도의 양복 주머니에 내려앉았다.
성공도는 홀린 것처럼 그 명함을 확인했고.
"허억."
숨을 삼켰다.
명함에는.
[변호사 나성보]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우편 하나가 갈 것 같으니 그거 읽어 보시고, 변호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겁니다."
* * * *
이사는 오전 중에 다 끝이 났다.
애초에 짐도 거의 없었기에 몇 가지만 차로 옮기면 끝나는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쓰레기를 정리하고 버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리고 성지인은 안티체리와 레드슈, 이은지가 머물고 있는 바른 엔터 소유의 5층 투룸 빌딩에 입주하게 되었다.
"자, 그럼 원래는 쇼핑을 가야겠지만……."
도진은 웃으며 성지인이 머물게 될 곳을 훑었다.
거실과 주방, 그리고 두 개의 방으로 나뉘는 제법 넓은 곳이다.
기본 옵션이 빵빵해서 냉장고에 세탁기, 건조기, 가스레인지, 심지어 붙박이장까지 갖춰져 있어서 정말로 몸만 들어와도 될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그러니까.
"그 쇼핑은 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자."
"네, 네! 감사합니다."
버릇처럼 성지인은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둘만 남게 되자 스윽, 그 비대한 몸을 최대한 굽혀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소지존님."
"……."
소지존님.
그래.
성지인은 도진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첫 만남과 촬영이 끝나고 둘이서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 이후로 말이다.
도진은 한 번에 모든 걸 다 밝힐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격룡기를 아신다는 건…… 도진 님이, 천마신교의 지존이 되실 분이셨군요."
먼저 그렇게 말하며 털썩 무릎을 꿇는 성지인으로 인해 이야기는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었다.
"하, 할아버지, 아니 스승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제법 놀라운 것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지만, 꿈 속에서 계속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몽혼술(夢魂術)의 일종이로구나. 그것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몽혼술.
그것은 술자가 꿈에 어떤 것을 심어두어 지속적으로 의도한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술법이다.
고도의 술법이었는데 그 고도의 술법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술법이 성지인에게는 심어져 있었던 것이다.
본래 높은 수준의 술법가이기도 했던 장호는 그 '타임머신'을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 더욱 정진하여 술법으로도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랐다.
그런 장호에게도 몽혼술은 제법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었는데, 바로 그 몽혼술의 상급 술법이 성지인에게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술법을 통해 성지인은 무공과 천마신교의 교리를 배웠고, 공감했다.
교도가 된 것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소, 소지존께서 저를 구원해 주실 거라고."
"……."
의문이 더해간다.
본능이 '강룡서'가 스승 위지혁이 말해 준 '강룡서'일 거라고 속삭인다.
전인이 아닌 본인이라고.
그런 일이란 불가능할 것인데 말이다.
도진은 아직은 풀 수 없는 그 의문을 기억과 함께 한 켠에 미뤄두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반사적으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아도 돼."
"예, 예. 죄, 죄송, 죄송합니다."
"진심이 깃들지 않은 말이라는 건, 가치를 가지지 못하고 낭비 돼."
"예, 예."
"그리고 보통은, 상대의 말 또한 공허하게 만들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성지인은 도진의 말을 곱씹지 못하고 그저 반사적으로 죄송하다 말할 뿐이다.
도진은 그런 성지인을 탓하지 않았다.
탓해서는 안 될, '아픈 아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지인을 탓하는 대신 그녀를 낫게 해 주어야만 했다.
* * * *
업로드 된 성지인의 두 번째 이야기는 역시나 화제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그득했다.
첫 번째는 성지인의 변화한 환경으로, 그녀를 차라리 학대했다 말해야 할 만큼 방치했던 그녀의 삼촌 부부에 대한 '참교육'이었다.
-어휴 인간 말종 새끼들.
-아 ㅋㅋ 이 맛에 내가 김도진 추종하지 ㅋㅋ
성지인의 부모님이 불행히 세상을 떠난 뒤.
그녀를 맡으려는 이가 단 하나도 없었다.
친척들이 몇이나 되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한량이나 다름없는, 반 사기꾼으로 '사업 놀음'을 하던 성공도 부부가 보험금의 냄새를 가장 먼저 맡고 잽싸게 후견인을 자처했던 내용이 밝혀졌다.
자식조차 거추장스럽다 여겼던 그들은 '이 나이 들고 보니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짓말을 뻔뻔스레 하며 후견인의 자격을 획득했고, 아이를 방치하여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제 그에 대한 죗값을 나성보 변호사를 통하여 받게 될 예정이다.
그리고 또 화제가 된 것이 그런 성지인을 새롭게 보듬어 줄 후원 단체의 등장, 그러니까 인위 재단의 등장이었다.
-와 ㅋㅋ 이젠 아예 숨길 생각도 없음 ㅋㅋㅋ
-ㄹㅇㅋㅋ 구독자 기만하려고 재단을 세워 버림 ㅋㅋㅋㅋ
-이벤트로 가구만 만들어 준다매 ㅋㅋㅋ
-아 ㅋㅋㅋ 이런 식으로 구독자 기만하면 좋아요랑 후원으로 혼내줘야지 ㅋㅋㅋ
그저 '가구 하나'를 선물로 주기로 한 이벤트였다.
물론 그 가구 하나의 가치가 상상도 못할 만큼 크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벤트가 '이런 형태'가 될 일은 아니었다.
한데 이제 이벤트는 가구 하나라는 '점' 하나에 그치지 않고 '용'을 그리는 형태로 크게 확장해 버렸다.
용을 그리고 가구라는 점을 찍어 넣는 형태.
시청자들은 그런 도진의 그림을 반기고 열광해 주었다.
그리고 궁금해했다.
-보니까 이번 당첨자는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거 같던데.
-주화입마라는 이야기도 있더라.
-ㅇㅇ 만약 진짜 주화입마 같은 거면 진짜 쉽게 해결 안 되지 않냐.
-그러게. 이렇게 느긋하게 이사하고 있어서 될 일인가 싶긴 하다. 물론 환경을 바꾸는 건 중요하긴 한데…….
과연 김도진이 이번 두 번째 당첨자는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이, 곧 생방송에서 드러났다.
* * * *
성지인의 이야기 그 세 번째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시청자들은 물이 그득 찬 댐이 터진 듯 쏟아졌고, 이내 영상을 보며 물음표를 띄웠다.
-? 뭐임?
-???
영상의 배경은…… 헬스장이었다.
그리고 그 헬스장에 선 것은 숫자가 가슴팍에 새겨진 초록색 체육복을 단체복처럼 갖춰 입은 '잠룡 패밀리'였다.
001번 서소담부터 안티체리 전원에 레드슈 전원, 이은지에 작곡가 권이솔, 벽태웅에 심지어 본래는 카메라를 맡아야 하는 최정도까지도 있었다.
015번을 새긴 체육복을 입은 마지막 성지인까지 꽤 많은 인원이 도열한 그 앞에, 도진이 서 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붉은 체육복을 입은 도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헬창 게임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