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407화 (407/741)
  • 406화

    처음보는 순간 알았다.

    저것이 결코 '평범한 내공'이 아니라는 것을.

    단순한 진무(眞武)도 아니고 심지어 독마나 투마의 무공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무공으로 인해 깃든 내공이었다.

    그런 내공이 무시무시한 폭탄처럼 혈도를 몰아치고 있어 놀란 도진은, 동시에 그에 관해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를 낸 스승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시는 내공입니까?

    -잘 알지. 격룡기는 용마, 광룡군(狂龍君)의 독문내공이니 말이다.

    독마(毒魔)에 이어 투마(鬪魔). 그에 비추어 용마(龍魔) 또한 천마신교의 장로급 인물이었을 거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 광룡군은 천마신교를 대표하는 무인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요즘 말로 하면 천마신교의 두 '헬창' 중 한 명이었지.

    '갑자기?'

    그야말로 '갑분헬창'이다.

    -구지천이 익힌 신마파산공이 육체의 단련을 통하여 한계를 극복하는 무공이었다면 강룡서의 격룡신공(激龍神功)은 내공으로써 한계를 극복하는 데 목적을 둔 무공이었다.

    -다만 그만큼 격렬하고 거대한 내공을 다루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그릇의 역할을 할 육체의 단련 또한 병행해야만 했지.

    -…그러니까 광룡군과 탁탑마왕, 투마와 용마는 천마신교를 대표하는 두 헬창이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그랬지. 다만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른데 그게 아무래도 외공과 내공으로 나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제법 박 터지게 싸우더구나.

    -이렇게만 보면 우리 교도 제법 콩가루 기질이 있는데 말입니다…….

    -껄껄. 그렇구나.

    -게다가 더 생각해 보니 주로 그렇게 싸우는 건 투마전이니 제법 이름값을 하는 것 같기도…….

    -껄껄! 그것도 그렇구나. 그렇게 싸우는 두 녀석을 화아와 취아가 함께 한심하게 보곤 했었지.

    즐거웠던 시절을 그려내는 것 같은데 내용은 어째 좀 혼란하다.

    '화아(花兒)'라고 하면 독마 하연화일 테고 '취아(取兒)'라고 하면 얼마 전 특훈에서 알게 된 공주인 주려취일 테니 더더욱 그렇다.

    -어쨌든, 룡서는 일일군단이라 불리던 녀석이었다.

    광룡군이자 용마라 불렸던 강룡서는 거대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강기공을 장기로 하는 무인이었다.

    단순히 강력하기만 한 게 아니라 요즘 말로 '범위 공격'에 특화된 무인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녀석이 한 집단의 수장이 되면서 키운 제자들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화력 지원 특화 부대가 되어 버리더구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폭격기 편대가 미사일을 후두둑 떨어뜨린 몇 초 뒤 지상에서 일어나는 대폭발이다.

    눈앞의 성지인에게 깃든 격룡기를 신안을 통해 보고 있자니 절로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너를 통해 보아하니 아무래도 눈앞의 아이는 진짜 용마의 후계자에게 무공을 배운 게 맞는 듯하구나.

    직접 볼 순 없지만 어엿한 후계자로 성장하고 있는 도진의 신안(神眼)을 통하여 파악한 것이니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용마의 후계자가 그런 모습이 되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만 말이다.

    다만 그렇기에 더 많은 의문이 파생되고 만다.

    허나 지금은 그 의문에 대해 깊이 고민할 때가 아니었기에.

    도진은 자신에게로 모여드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성지인과 눈을 맞추었다.

    "아……."

    어쩔 줄 몰라하던 성지인은 잠시 후 거짓말처럼 몸둘 바를 몰라하던 기색을 지우고 홀린 듯 도진과 눈을 맞춘 채 멈추었다.

    마치 시간이 함께 멈춘 듯.

    그때가 되어서야 도진이 말했다.

    "성지인 씨. 사람답게 살아갈 의지, 있습니까?"

    그것은 한 점의 빛조차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어둠이 내린 미로에 내동댕이쳐진 이를 이끌어 줄 찬란한 희망이었다.

    그 어떤 때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의심과 불안, 공포 등 모든 부정적인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명확한 시선이다.

    그런 시선으로 응시하는 구세주가, 손을 내밀었다.

    흑백으로 색을 모조리 잃어버린 세상에서 그 손만이 유일하게 색과 빛이 깃들어 있는 듯 보였다.

    성지인은 그 손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였고 또 입술을 움직였다.

    스윽-

    기필코 붙잡아야만 하는 손에 자신의 초라한 손이 닿자 그곳을 시작으로 하여 색과 빛, 시간이 돌아온다.

    그리고 움직인 입술이 말을 자아냈다.

    "……네."

    * * * *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도진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눈앞의 소녀가 안고 있는 내적인, 그리고 외적인 문제가 마치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그 많은 문제가 얼마나 어렵든.

    도진이 내민 손을 성지인이 잡은 순간 그것은 이미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었기에 분위기는 대번에 반전하였다.

    그리고 분위기가 누그러졌을 때에야 외부의 소리가 들렸다.

    -띠링!

    -흐읍님이 1,000원 후원!

    저.. 이제 숨쉬어도 되나요?

    "응?"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카메라가 있는 방향으로 향한다.

    그리하여 갑자기 이 자리의 시선을 모두 받게 된, 카메라 옆에 있던 최정도가 목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 이제 음소거 풀어도 되는 거 아니었나요?"

    '아.'

    레드슈의 멤버인 여은영이 살짝 입을 벌렸다.

    그러고 보니 생방송 중이었다.

    * * * *

    100만 구독자 두 번째 에피소드의 첫 방송은 어마어마한 댓글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않이, 그래서 도대체 뭐임?;;

    -뭔가 심각한 분위기였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해줌;;

    -궁금해 돌아버리겠ㄴ4ㅔ ㅋㅋㅋㅋ

    생방송은 그 시작부터 숨막힐 듯한 분위기였다.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는데 심지어 후원을 통해 나오는 음성조차 막아 두었을 정도였다.

    액정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심각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

    그 분위기에서 도진이 사람답게 살아갈 의지가 있냐 물었고 당첨자는 네, 하고 답하면서 끝이 났다.

    -이 집 예고편 진짜 극찬 나오게 잘하네;;

    -아 ㅋㅋ 욕나오게 만들었으면 레알 잘 만든 거지 ㅋㅋ;;;

    -그래서 본편 언제 나오나요 시**;;

    사람들은 다음편을 내놓으라며 아우성을 쳤다.

    한데 그런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의 관심을 확 끄는 글이, 갑자기 올라온 것이었다.

    -두 번째 당첨자 후견인 잣 된 거 같은데?

    -?

    -?

    * * * *

    촬영이 끝나고 도진은 성지인과 단 둘이,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가 끝나고 신속하게 몇 가지 일들이 진행이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성지인에게 무공을 전수해 주었다는 노인에 관한 정보를 찾는 것이었다.

    단 하루만에 제법 많은 정보를 수집한 나지윤이 그것을 도진에게 말해 주었다.

    "이름, 강룡서. 숨을 거두었을 때 나이, 98세. 본관은 서울……. 가족은 물론이요 친척조차 한 명 없음. 1년 전 세상을 떠났고 수습해 줄 사람 한 명 없어서 관할 복지센터에서 수습을 해 줬어."

    "……."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던 사람이라 이웃조차 제대로 인사를 나눈 사람이 없었다고 해. 유의미한 정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심지어 화장을 할 때 얼마없는 유품까지 다 처리를 해서 건질 수 있는 정보가 없을 것 같아."

    "그렇구나. 고마워."

    성지인에게 전수된 것은 틀림없는 광룡군의 격룡신공이다.

    그렇다는 것은 성지인에게 무공을 전수한 이가 광룡군 강룡서의 전인이라는 말이 된다.

    독마전과 투마전에 이어, 세 번째로 천마신교의 맥을 이은 전인과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세 번째 인연 또한 석연치 않다.

    독마전과 투마전의 경우 그 만남 자체는 어찌되었든 분명하게 우연의 범주 안에 있었다.

    인위가 개입되지 않은, 낮은 확률이지만 이 세상을 구성하는 우연의 범주 안에 있었단 말이다.

    한데 이번은 다르다.

    -그 아이의 몸은…… 너를 만날 때까지의 유예를 둔 것만 같구나.

    위지혁은 성지인의 상태에 관해 그렇게 말했다.

    격룡신공은 어느 정도 경지까지는 스승의 인도가 필요한 무공이었다.

    외공의 수련도 수련이지만 내공의 수련이 진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격룡신공의 격룡기는 지극히 거칠고 위험한 내공이어서 스승의 인도 하에 경지에 오를 필요가 있었다.

    한데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할 스승이, 그 이름마저 걸리는 '강룡서'는 온전치 않은 몸과 정신으로 채 2년도 무공을 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버렸다.

    본래는 무공 자체를 전수해서는 안 되는 상황.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강룡서는 그럼에도 격룡신공을 전수했고 그것은.

    '지존을 만날 수 있을 때까지 유예를 둘 수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위지혁은 강룡서의 격룡신공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위지혁의 제자라면 분명히 격룡신공을 알고 여기에 대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처럼.

    그렇기에 도진은, 그리고 위지혁과 장호마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우연이라 여기기 힘들구나.

    -예.

    한 번만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몇 번이고 우연은 일어날 수 있다.

    기실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은 우연의 집합이 아니던가.

    그 우연이 만들어내는 거대하고도 일정한 흐름만이 '필연'이라 불린다.

    그리고 도진은 지금 바로 그 거대한 흐름, 필연이 개입했음을 직감했다.

    인간으로서 그 거대한 흐름 자체를 원하는 대로 만질 순 없을 것이다.

    허나 원하는 단 한 순간을 지극히 크고 넓고 길게 본다면, 아주 약간의 개입만으로 그 찰나만큼은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나비의 날갯짓을 통하여 원하는 위치에 토네이도를 만드는 것 같은 일이지.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실제로 계산할 수 있을 만큼의 문명을 쌓지 않았느냐.

    -…그럴수도 있겠군요.

    장호의 말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독마전과 투마전을 통하여 '인위'를 경험하고 확신했었다.

    '하필' 만난 것이 격룡신공을 익힌 소녀인 이 상황은 그러니까 조금 더 인위적인 필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생각에 매몰되어 발걸음도 떼지 못하는 건 도진의 캐릭터가 아니다.

    도진은 천마의 후계자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나아가고 싶은 길로 나아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본래 천마란 그런 것이 아닌가.

    그 앞에 함정이 있다는 걸 알아도 당당하게 '올바른 길'을 걷는 걸음이 멈추는 일은 없다.

    * * * *

    이틀 뒤.

    성지인은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낡고 좁고 어둡고 축축한 원룸에서 나와 레드슈와 안티체리, 이은지의 숙소가 있는 바른 엔터 소유의 5층짜리 투룸 빌딩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부담가질 거 없어. 말했잖아? 이건 정당한 계약이라고."

    "네, 네!"

    몸둘 바를 몰라하는 성지인은 도진의 말에도 아직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하루이틀, 몇 마디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에 도진은 그런 성지인을 타박하지 않았다.

    "선배님, 이건 어떡할까요?"

    "스티커 붙여서 저기 전봇대 앞에 놔두면 돼."

    "예."

    대부분의 가재도구는 버리고 간다.

    기본 옵션이 없다시피 했던 원룸에 성지인의 삼촌이 사 주었던 싸구려 중 싸구려 옷장은 인간 중장비의 포스를 뽐내는 중인 벽태웅의 손에 들려 폐기물 스티커가 붙여져 전봇대 앞에 놓였는데, 벽태웅이 워낙 가볍게 들고 움직여 마치 종이로 만든 것만 같다.

    …실제로 그 정도 수준의 처참한 물건이었다.

    대부분의 물건이 그러했기에 성지인이 특별히 챙기는 몇 가지를 제외하곤 다 버리고 가게 됐다.

    상황이 그러하니 용달차를 부를 필요조차 없을 지경이었고 그만큼 도진의 심기는 좋지 않았다.

    바로 그런 때에.

    "이게 도대체 무슨 횡포입니까!"

    성지인의 후견인, 그녀의 삼촌이 나타난 것이었다.

    스으윽.

    도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