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화
이은지가 보여준 영상은…… 불쾌한 것이었다.
영상은 원룸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흔히 TV나 너튜브 등 여러 매체에서 보여주는 '원룸'하면 나오는 작아도 깔끔하고 공간 활용과 인테리어까지 잘하여서 넓어 보이는 곳이 아닌.
낡고 축축하고, 또 어둡고 좁아 충족되어야 할 것들을 잘라내고 구겨 넣은 원룸이 또한 낡고 열악한 구형 스마트폰의 작은 렌즈를 통해 투영되었다.
그 높이와 구도마저 불편하고 가끔 흔들리는 부분이 있어 도진은 그것이 흔히 말하는 '자바라', 그러니까 휴대폰 거치대를 통하여 어설프게 거치한 휴대폰으로 찍은 것임을 알았다.
그 휴대폰이 원룸을 배경으로 하여 비추는 것은 '거대한 살덩어리'였다.
작은 렌즈가 담느라 허덕이는 것만 같은 비주얼의 살덩어리는, 놀랍게도 아직 어린 소녀였다.
10대 중반의 소녀라는 게 거대한 체구에 파묻혀 있음에도 곳곳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 소녀의 앞에, 낡아 빠지고 작은 개다리소반 위에 그것이 놓여 있었다.
밥그릇도 아닌 커다랗고 낡은 냄비에 수북하게 쌓인 잡곡밥.
그 잡곡밥에 졸고 또 졸아 버린 된장에 여러 나물이 뒤섞여 있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비주얼의 그것을, 소녀는 뒤섞었고 후원과 함께 음성이 흘러나왔다.
-와, 씨바 오늘은 이거 처먹는 거임?
-우욱, 씹ㅋㅋㅋㅋㅋ 저거 그냥 돼지사료 아니냐?
-저거 다 처먹으면 만 원. 웃으면서 처먹으면 추가로 만 원 준다 ㅋㅋ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웃으면서 먹을게요.]
후원에 소녀는, 정말로 웃으면서 냄비를 비워냈다.
그렇게 냄비의 밥을 다 먹자 돈을 걸었던 시청자가 약속대로 2만 원을 후원한 뒤 다시 미션을 걸었다.
-아 노잼. 저 정도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네. 좋다. 어제 온 인간사료 다 처먹으면 5만 원. 10분 내로 다 처먹으면 10만 원 건다.
-미쳤나 ㅋㅋㅋ 그걸 어케 10분 내로 다 먹냐 ㅋㅋㅋㅋ
-아무리 생태계 파괴 돼지라도 그건 무리지 ㅋㅋ
인간사료.
인터넷에서 그 이름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것들이 있다.
몸에 결코 좋지 않은, 그러나 저렴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것들.
소녀는 미션에 비대한 몸을 불편하게 움직여 거의 먹지 않은 '인간사료'라 불리는 과자를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다 먹어 볼게요.]
-미친년인갘ㅋㅋㅋㅋㅋ
-저걸 진짜 처먹으려고 하네 ㅋㅋㅋ
시청자들이 웃으며, 놀리며, 경멸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소녀는.
-허미 시벌ㅋㅋㅋ 저걸 진짜 다 처먹었네 ㅋㅋㅋㅋ
-레전드 돼지 인정한다 시바 ㅋㅋㅋ 저게 사람 새끼여 돼지 새끼여 ㅋㅋㅋ
미션을 성공하고 10만 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아니 근데 좀 시바 좋은 거 좀 처먹을 순 없냐. 내가 다 밥맛이 떨어지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후원도 받는 데 좀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거 처먹으라고.
[네, 네. 노력해 볼게요.]
-노력해 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좀 하라고!!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ㅇㅋ 좋다. 내일 내가 메뉴랑 미션 가져올 테니 딱 대라 ㅋㅋ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도진은 채널명을 확인했다.
-성지인의 먹방
그 어떤 센스도 발휘되지 않은 지극히 정직한 글자만이 간판으로 걸린 채널.
그 채널에 걸린 동영상은…… 도진의 눈에 '먹는 방송'이 아닌 '감정 쓰레기통'으로 보였다.
그럴싸한 편집 기술도 없어 그저 시간을 적당히 줄인, 그럼에도 20분에 달하는 불쾌한 영상이 끝나고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이은지가 어렵사리 입술을 뗐다.
"우리끼리 뽑았어. 우리는 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 * * *
"이름 성지인. 열여섯 살. 이제 설날 지나면 정식으로 열일곱이 돼."
도진의 부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온 소녀에 관한 정보를 나지윤이 알려 주었다.
"평범한 가정의 외동딸로 몸이 조금 약했지만 무공에 대한 재능이 있어서 체질 개선을 기대하며 제법 비싼 교육을 받았어. 교우 관계도 원만했고 성격도 좋은 방향으로 평범했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삶이 망가졌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중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지. 부모님의 보험금은 삼촌 부부가 대리인으로 수령해서 보관하고 있는데 정작 제대로 케어를 안 해 주고 있는 상황이야."
"…그래서 이 상황이라는 거네."
"응, 그렇지."
성지인은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가 되어 버렸다.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겪었는데, 주변 친지 중에서는 제대로 그녀를 도와주려 하는 이가 없었다.
최소한의 구명줄이 되어 줄 수 있는 보험금은 삼촌 부부가 후견인 자격으로 맡아두고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성지인을 위해 쓰지 않고 있다.
더욱 악질인 건 돈만 제대로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아이를 방치했다는 거다.
도진의 100만 구독자 지인 픽으로 이은지는 레드슈의 세 사람과 함께 성지인을 뽑았다.
유애라와 함께 고민하다 눈에 띈 이 소녀를 도와주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고 여기에 레드슈까지 손을 보태 두 사람 몫의 도움을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오케이. 접수했어."
도진은 동갑내기 아이돌 소녀들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고 우선 댓글을 확인했다.
-(수정됨)조그마한 밥상 하나라도 만들어 주신다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성지인.
본명 그대로를 닉네임으로 하여 달린 댓글이었다.
도진은 댓글 앞의 '수정됨'이 그녀의 성격상 부탁의 수위를 계속 낮추는 행위로 인해 달린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처음엔 번듯한 책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앉은뱅이 책상으로, 이윽고 조그마한 밥상으로까지 격하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그런 성격이라면 애초에 이런 이벤트에 응모하는 댓글조차 달지 않았을 거라는 부분인데…….
"시청자 중 한 명이 응모해서 당첨되면 만 원……이라고 걸었어."
박소진이 그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그래도 머뭇거리니까 하라고 윽박질렀거든. 분명히 윽박이긴 한데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버렸어."
그렇게 시청자 중 한 명의 윽박으로 달린 댓글과, 그 댓글을 단 아이디를 클릭해 들어가 보게 된 동영상이 이은지와 레드슈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리고 동갑내기 소녀들의 부탁에 도진이 자세한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나지윤에게 성지인에 관한 정보를 부탁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후…….'
나지윤을 통해 파악한 성지인의 사정은 성민혁 이상으로 나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천애고아가 되었고 정신적인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몇 년이나 방치되었다.
학교에서는 극심한 따돌림을 당해 결국 집에서 인터넷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 때문에 더욱 사회와 단절되어 기형적인 형태의 삶을 살게 됐다.
동양에선 보기 힘들 만큼의 초고도 비만까지 찾아왔고 그 현재가 도진이 본 불쾌한 인터넷 방송이었다.
소통을 갈구하여 열악한 환경에서 인터넷 방송 채널을 만들었고 폭식을 컨셉으로 한 방송에서 그녀의 성격이 익명성이란 가면을 쓴 시청자들의 가학심을 자극,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버렸다.
나지윤은 생각을 정리하는 도진을 깊은 눈동자로 응시하다 말했다.
"도와줄 거지? 제대로."
도진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하려면 제대로.
누군가를 구하려면 상상 이상의, 빙산의 일각이 아닌 그 수면 아래 잠긴 것까지 모두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사고방식의 도진이었기에 성지인에게 건넬 것 또한 작은 밥상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 될 것이었다.
"과하다고 생각해?"
도진의 물음에 나지윤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
"오?"
"뭐가 오, 야. 너 정도 되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야."
나지윤은 자신이 한 집단의 수장이 되는 데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가진 것들에 대한 평가를 떠나, 자신의 성격이 거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단의 수장이 되기보단 그 수장의 곁에서 조언을 할 수 있는 '지낭'을 더 바라고 선호했다.
그리고 나지윤은 자신이 선호하는 지낭이, 최고의 지낭이 될 수 있도록 최고의 집단을 바랐고 그 최고의 집단을 만들 수 있는 '지존'으로 도진을 점찍었다.
굳이 자신의 재능을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굳이 '천재 나지윤'의 이름을 걸지 않아도, 도진이 그런 사람이 될 거라는 말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도진은 대단한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으니까.
나지윤이 멋드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대기업의 기부 같은 거지. 넌 이미 잘 하고 있으니까 언제나처럼 하면 돼."
김도진. 잠룡. 잠룡문주.
그 이름은 이미 전 세대를 아우를 만큼의 명성을 자랑하고 있으며 명성의 방향 또한 지극히 긍정적이다.
거기엔 지금껏 도진이 해 온 모든 일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도진은 언제나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 된다고 나지윤은 말하는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아주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나지윤이 조언하면 될 부분이다.
그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나지윤은 사력을 다하여 노력하고 있었고 그 노력의 성과 일부가, 시험의 이론에서만큼은 친구보다 앞서는 것이었다.
도진이 피식 웃었다.
"누나 같은 이야길 하네, 너."
오성아가 말했었다.
"이거, 본격적으로 추진해 봐도 될 거 같아."
100만 구독자 이벤트의 첫 스타트는 대번에 100만 조회수를 뚫으며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하나의 영상만 100만 조회수를 달성한 게 아니라 '성민혁 에피소드' 전체가 모두 100만을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으니 지상파의 예능마저 압도할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오성아는 이 대성공한 콘텐츠를 단발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아예 장기적이며 고정적인 프로젝트로 계속해 나가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냈다.
"너는 정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아니 아예 세계 전체에서 가장 대단한 문파의 문주가 될 거니까. 그런 문주라면 선행의 스케일도 달라야 하거든."
그러니까 계속해서 이 정도의 선행을 해 나가자는 거다.
"절세도 하고, 명성도 쌓고, 지지도 얻고. 나쁠 게 하나도 없잖아?"
실리와 선행 양쪽을 다 잡을 수 있는 정식 안주인이 된 오성아의 의견을, 도진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눈나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하고 싶은 걸 하는데 그것이 몇 가지나 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누나랑 나랑 좀 맞는 부분이 있지."
씨익 웃으며 말하는, 똑똑한 친구의 지지까지 등에 업고 도진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기 위해 움직였다.
스케줄을 맞추고 약속을 잡은 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인 성지인의 원룸 앞에 섰다.
띵- 동-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섞인 벨소리가 울리고.
"네, 네. 누구세요?"
더듬지는 않지만 한껏 좁은 껍질 안에 숨은 채 겁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도진입니다. 성지인 씨."
"아, 아! 네!"
화들짝 놀라고 당황한 기척이 있고서 삐걱이며 문이 열렸다.
그렇게 마주한 성지인은.
"……."
-으음…….
도진의 눈에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용(龍)의 형상을 한 폭탄으로 보였다.